김수영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8
김수영 지음 / 돌베개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김수영의 시 ''을 김수영의 수필 '해동(解凍)'에 근거해 푼 김혜순 시인의 책('김수영 - 세계의 개진과 자유의 여행')을 보고 읽게 된 책이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08번 김수영'이다. 철학자 김상환의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 '공자의 생활난' 등 두 권의 김수영론을 읽지 못한 아쉬움 속에 읽게 된 책이다.

 

일방적 매혹(魅惑)도 근거 없는 염오(厭惡)도 아닌 균형감각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읽는다. 수필이야말로 김수영을, 그리고 김수영의 시를 이해할 단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김수영은 자신을 동물적인 본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동물적인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 소개한다.

 

김수영은 사람이 돈을 따라서는 아니 된다는 처세의 지혜도 인용하고 여러 날을 두고 저녁때만 되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 필시 정신 이상의 전조가 아닌가 겁을 먹었다는 이야기, 무허가 이발소의 딱딱한 평상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처럼 평화로운 때는 없다는 이야기들을 더한다.

 

김수영은 시()를 논하는 것은 신()을 논하는 것처럼 두려운 일이라는 일본의 시인 니시카와 준사부로의 말을, 자유를 논하는 것은 신()을 논하는 것처럼 두려운 일이라 바꾸고 사랑이 아닌 자유는 방종이며 사랑은 호흡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김수영은 또한 자신에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사랑을 마신다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김수영은 문학 하는 이에게 술을 권한다. 그런, 그리고 술을 좋아하는 김수영은 글을 쓰는 집을 성스러운 직장으로 여겨 집 안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김수영은 흥미로운 말을 한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릴케는 소녀 릴케는 많았지만 깡패적인 릴케의 일면을 살려서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는 것이다. 김수영은 영화 배우 장동휘가 갱 영화에 쓰고 나오는 모자를 이야기 하고 아동문학가 마해송(1905 - 1966)을 사진을 가장 멋있게 찍을 줄 아는 윤백남(극작가, 1888 - 1954) 부류로 분류하면서도 작위(作爲)를 보이지 않는데는 실패했다고 평을 하는가 하면 자신이 찍은 소록도 사진을 보고 "이 사진 소독했소?"라 물은 한 문인을 이야기하며 현대 소설을 쓰는 사람이면 나균(癩菌)이 태양빛 아래서는 부지(扶持)하지 못한다는 것쯤 알고 있어야 할 것이라 말한다.

 

김수영은 동물은 어떤 것이든 직업적으로 기르게 되면 애정은 거의 전멸한다고 말한다. 김수영은 8년간 닭 100 마리 정도를 길렀다. 마포(麻浦 서강(西江) 가에서. 김수영은 구공탄 냄새는 완연히 코에 맡아질 때는 이미 늦는다는 말을 한다. 서울 서민의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들이 김수영 글들에는 많다.

 

김수영은 타고르의 시를 칭찬한다. 쉬운 말로 고운 시를 쓸 수 있는 타고르의 면모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나는 나의 가냘픈 쪽배로 욕망의 대해를 건너려고 애를 쓴다. / 리고 자기도 역시 유희(遊戲)를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 어버리고 만다."

 

김수영은 사회 비평이나 문명 비평도 좀 더 이렇게 따뜻하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김수영은 시의 경험이 낮은 시기에는 시를 찾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수가 많으나 시의 어느 정도의 훈련과 지혜를 갖게 되면 시를 기다리는 자세로 성숙해진다는 말을 한다. 시인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이 말은 김수영이 너무 많은 실재성은 현기증이, 체증이 될 수 있다는 미국 시인 데오도어 뢰스케의 시를 보고 한 말이기도 하다.

 

김수영은 너무 욕심을 많이 부리면 도리어 역효과가 나는 수가 많으니 제반사에 너무 밀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한다.(이남호 교수의 '남김의 미학'을 읽는 듯 하다. '남김의 미학'은 우리 시대는 철저함과 완전함과 효율성의 신화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이남호 교수는 최선을 다하고 완벽을 기하는 것은 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가능성을 소진해버리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김수영은 슬퍼하되 상처를 입지 말고, 즐거워하되 음탕에 흐르지 말라는 말을 인용한다. 김수영은 이를 공자인가 맹자인가의 글의 한 구절이 생각나 인용한다고 말하는데 공자의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공자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고 시도한 사람(신정근 지음 '공자의 인생 강의' 참고)이었다는 점이고 김수영은 시 쓰기는 온몸으로 하는 것, 밀고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점이다.

 

김수영은 일을 하자고 일기에 썼다. 번역이라도 부지런히 해서 과학 서적과 기타 진지한 서적을 사서 읽자고 썼다. 그리고 읽은 책은 그전처럼 서푼에 팔아서 술을 마셔버리는 일하지 말자고 썼다. 이제는 책을 사야 한다고, 피로써 읽어야 한다고, 무기로서 쌓아 두어야 한다고 썼다. 책을 쌓아 두어도 조금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떳떳이 앉아 있을 수 있다고 썼다.

 

김수영은 시고 소설이고 모든 창작 활동은 감정과 꿈을 다루는 것이고 이 감정과 꿈은 현실상의 척도나 규범을 넘어선 것이라 말한다. 김수영은 이어령의 '에비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조선일보 게재 칼럼에 대해 우리나라 문화인의 무지각과 타성을 매우 따끔하게 꼬집어 준 재미있는 글이었지만 창조의 자유가 억압되는 원인을 지나치게 문화인 자신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 같은 감을 주어 불쾌하다고 썼다.

 

김수영은 제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란 말을 제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로 바꾸어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김수영은 신동엽(1930 - 1969)'4월은 갈아 엎는 달'을 예시하며 사회참여적 정신과 최소한의 예술성을 갖춘 작품이라 칭찬한다.

 

사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

광화문서 목 터진 사월의 승리여.

강산(江山)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 엎었으며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

갈아 엎었으면

갈아 엎은 한강 연안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 칠, 아 푸른 보리밭.

 

김수영은 김재원의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를 제정신을 가지고 쓴 시라 평한다. 김수영은 알맹이는 다 이북 가고 여기 남은 것은 다 찌꺼끼뿐이라는 말을 소개하며 이북 작가들의 작품이 한국에서 출판되고 연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김수영은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지 시를 논하는 사람이 아니며 막상 시를 논하게 되는 때에도 시를 쓰듯이 논해야 할 것이라 말한다, 김수영은 시에 있어서의 모험이란 세계의 개진(開陳), 하이데거가 말한 대지의 은폐(隱閉)의 반대어라 말한다.

 

김수영은 시인이 자기의 시인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거울이 아닌 자기의 육안(肉眼)으로 사람이 자기의 전신을 바라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말한다, 김수영은 애써 책을 읽지 않으려 한다며 책이 선두가 아니라 작품이 선두라고 덧붙인다. 어떤 고생을 하든지 시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이 그 뒤의 정리를 하고 나의 시의 위치를 선사해준다고 말한다.

 

김수영은 사람은 죽을 곳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시에 적용해 사람은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죽어야 한다는 말로 바꾼다. 그런 김수영이 칭찬한 작품이 김현승(金顯昇: 1913 - 1975)파도(波濤)’이다. “이 정도의 작품이면 죽음을 디디고 일어선 자기의 스타일을 가진 강인한 정신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 여기 누가

술 위에 술을 부었나.

잇발로 깨무는

흰 거품 부글부글 넘치는

춤추는 땅바다의 글라스여.

 

,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언어는 선박처럼 출렁이면서

생각에 꿈틀거리는 배암의 잔등으로부터

영원히 잠들 수 없는,

,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 여기 누가

()보다 깨끗한 짐승들을 몰고 오나.

저무는 도시와,

병든 땅엔

머언 수평선을 그어 두고

오오오오 기쁨에 사나운 짐승들을

누가 이리로 몰고 오나.

 

, 여기 누가

죽음 위에 우리의 꽃들을 피게 하나.

얼음과 불꽃사이

영원과 깜짝할 사이

죽음의 깊은 이랑과 이랑을 따라

물에 젖은 라이락의 향기

저 파도의 꽃떨기를 7월의 한 때

누가 피게 하나.

 

종횡무진, 고투(苦鬪),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 치열함 등의 말이 떠오른다. 조금 더 김수영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수영이 추천(?)한 시들을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시론(詩論)들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을 가져야 한다는 점, 치열해야 한다는 점 등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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