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계절이라는 시간을 마음대로 불러온다. 그러나 화가는 화폭에 그렇게 그릴 수 없다.

화가는 대신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 구만리 머나먼 하늘을 날아 장강가에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복숭아 언덕 초가를 마음대로 그릴 수 있다.

시인은 계절을 수시로 넘나들 수 있고, 화가는 장소를 자유롭게 드나든다.˝ 박은영 교수가 지은 ‘풍경으로 본 동아시아 정원의 미‘의 한 구절이다.

나는 이 글이 얼핏 직관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히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겠다.

이 책은 흥미로운 글들을 꽤 담고 있다. ˝연못에 비치는 그림자는 마치 산수화를 땅에 눕힌 것과 같다˝(107 페이지)는 구절,

˝선비가 관직에서 물러나 칩거하면 은둔(隱遁)이고, 세속을 멀리해 별서(別墅)를 짓고 살면 복거(卜居)라고 한다.

사대부가 벼슬을 할 때는 서울에 머물고 퇴관 시에는 별서로 돌아가는 것이 당시 상례였다.˝(203 페이지)는 구절 등이 그렇다.

그러면 출처(出處)는 어떤가? 최승호 교수는 유가(儒家)들의 자연 서정시를 설명하며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란 구절로 시작하는 조지훈 시인의 ‘낙화(落花)‘를 인용한다.

설명에 의하면 출은 상황이 좋아 공적 활동을 하는 것이고 처는 상황이 나빠 자연으로 돌아와 은둔생활을 하는 것이다.

출은 함께 즐기는 동락(同樂)과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감화시켜 착하게 하는 겸선(兼善)을 지향하고 처는 혼자 즐기는 독락(獨樂)과 남을 돌보지 않고 자신만의 처신을 바르게 하는 독선(獨善)을 지향한다.

조지훈 시인의 ‘낙화‘는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이란 구절이 말해주듯 처(處)의 시이다. 그런데 앞 부분과 뒷 부분이 대조적인 것이 눈에 띈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라는 첫 연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라는 마지막 몇 연이 대조적임을 알 수 있다.

하기야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란 말은 바람을 탓하고 싶은 마음을 달래는 심사가 반영된 것이 아닐지?

간접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는 시가 ‘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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