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지(之)가 쓰기가 되고 있다. 참척(慘慽)을 당했던 세 작가(한무숙, 박경리, 박완서)에 대해 쓰다가 문학평론가 문혜원이 한 ‘시론(詩論)의 실험장(實驗場)‘이란 말을 듣고 김인환 평론가가 오래 전에 한 ‘언어의 연병장(練兵場)‘이란 말을 찾아보았다.

문혜원 교수는 김춘수 시인에 대해 그는 시가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을 깨뜨리고 시가 사유의 산물이거나 시론의 실험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였다고 말했다.(2017년 7월 출간 ’존재와 현상‘ 7 페이지)

반면 김인환 교수는 “그들(중국인들)에게 불교는 단순히 새로운 사상 체계가 아니라 중국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단련하는 언어의 연병장이었다.”는 말을 했다.(1993년 9월 출간 ’상상력과 원근법‘ 188 페이지)

지난 해 나온 평론집을 읽고 출간 25년이 된 책을 찾아보게 되다니...

내가 실험이니 훈련이니 하는 말에 아직 흥미를 느끼는 것은 아직 내 공부가 얕기 때문이리라.

모색(摸索)이란 말, 더구나 암중모색(暗中摸索)이란 말을 좋아하는 아니 아직도 그런 말로 나를 수식하곤 하는 나는 누구일까?

문혜원 교수는 시와 철학이라는 연구의 장(場)이 되어준 김춘수라는 텍스트에 특별한 감사와 우의를 표한다는 말을 했다. 이런 글은 영감을 준다. 아직 나는 감사해야 할 특별한 텍스트를 갖지 못했다.

“변변치 못한 부모에게 마지막까지 ’존경과 사랑‘을 보내준 너에게 마음속으로부터 감사하면서 다시 없이 아름다우면서 또 한없이 두려운 인간의 사랑을 아파한다. 그리고 나에게 아물지 못하는 상처를 준 것은 너를 잃은 일뿐이 아니고 배반이 없었기 때문에 티없이 순수했던 슬픈 사랑이기도 했다는 것이 사무치는 것이다. 미워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욱 아프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어리석은 어머니다.”

한무숙 작가가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던 아들을 교통 사고로 잃고 쓴 단편 ‘우리 사이 모든 것이’의 구절들이다.

오늘은 이 구절로 마무리 하자. 갈 지(之)가 쓰기의 대미(大尾)를 위해. 내 사유를 단련할 연병장이거나 실험장이 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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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

 

1.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지금의 나와 되어야 할 나를 비교한다.
2. 작은 일에 기뻐한다.
3. 지적 대화가 가능한 분을 존경하는 만큼 어린 아이들에게서도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다.
4. 멀리 볼 줄 안다.(눈 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5. 책(가격 대비 산출 결과가 최상이고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어 좋은)을 항상 가까이 한다.
6. 1번 항목과 연관이 있는 사안이지만 나 잘난 맛에 산다.(나의 못난 면을 보고 마음 상해하지 않는다.)
7. 약한 것 같지만 잘 견딘다.
8. 늘 감사한다.
9. 예의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한다.
10. 균형 잡히고 논리적인 사유를 하려고 애쓴다.( = 대세에 휩쓸리지 않으려 한다.)

 

단점

 

1. 나는 재능이 없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2. 나는 내 사소한 신상의 글은 문제삼지 않고 다른 사람의 그런 글은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다.

3. 나는 약속이 미뤄질 때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4. 나는 주어진 시간의 많은 부분을 허비한 뒤 마감 며칠 전부터 허겁지겁 과제를 해결하는 버릇이 있다.

5. 나는 무리하게 글을 짜내는 버릇이 있다.

6. 나의 책 읽기는 대책 없는 또는 길을 잃은 사람의 꼼지락거림인지도 모른다.

7. 나는 진지하면 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라는 신통 찮은 낙관 같은 것이 있다.

8. 나는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비슷한 메리트를 가진 두 개의 선택지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경향이 있다.

9. 나는 작은 일에 조바심 내다가도 큰 일에 태평해 중요한 것을 잃을 때가 있다.

10. 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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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1-1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이렇게 구체적으로 잘 적으실 수 있는지. 아마도 자신을 구체적으로 잘 알고 계시다는 뜻이겠지요? 저는 이렇게 잘 못적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읽다보니 저에게서도 발견되는 점을 보게되어 빙그레 웃게 됩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8-01-11 12:2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공감해주시니 기분 좋습니다.. 좋은 오후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무숙 문학세계
이호규 외 지음 / 새미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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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정(香庭) 한무숙(韓戊淑: 1918 1993) 작가는 서울의 양반 가문 출신, 잦은 병력(病歷), 여성 작가 등의 이유로 관심을 모은 작가이다. 지금은 여성 작가는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여성 작가는 드물었다. 작가는 상봉하솔(上奉下率)의 고역과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일과 후에 누워 벽에 종이를 대고 글을 썼다.

 

1942년 장편 등불 드는 여인신세대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무숙은 창작활동을 하는 일과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 양자 사이에서 가능한 한 최선의 조화를 꾀하는 길을 선택했다.”(15 페이지)

 

한무숙 작가는 생활양식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집안의 허례허식이나 악습에 불만을 표하면서도 집안 어른들이 주는 삶의 지혜나 미덕에는 공감하는 자세를 취했다.(15 페이지)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의 계보를 살펴보게 된다. 김명순(金明淳; 1896 1951), 나혜석(羅蕙錫: 1896 1948), 김일엽(金一葉: 1896 1971), 김말봉(金末鳳; 1901 1961), 박화성(朴花城: 1903 1988), 최정희(崔貞熙: 1906 1990), 강경애(姜敬愛: 1907 1943), 한무숙(韓戊淑: 1918 1993), 강신재(康信栽: 1924 2001), 박경리(朴景利: 1926 2008), 박완서(朴婉緖: 1931 2011),

 

한말숙(韓末淑: 1931 - ), 정연희(鄭然喜: 1936 - ), 김지원(金知原: 1942 2013), 남지심(南智尋: 1944 - ), 최명희(崔明姬: 1947 1998), 강석경(姜石景: 1951 - ), 양귀자(梁貴子: 1955 - ), 최윤(崔允: 1955 - ), 은미희(殷美姬: 1960 - ), 강규(1964 - ), 오수연(吳受姸: 1964 - ), 송은일(1964 - ), 정지아(鄭智鵝: 1965 - )...

 

한무숙은 어릴 적 병마로 얼룩진 시간을 보냈다. 여덟 살 아름다운 5월의 백주(白晝) 주일학교에서의 귀도(歸途)에 화교(華僑)의 장의(葬儀)를 통해 죽음의 장면을 보았다. 강렬한 충격이었으리라.

 

필자(이호규)는 그의 감수성이 죽음과 만났던 것은 그의 운명이었고 천형(天刑)이었고 천혜(天惠)였다고 말한다. 병고(病苦)와 사색(思索)과 탐독(耽讀), 이 셋이 한무숙이 문학에 닻을 내리는 데 모든 역할을 했다.(28 페이지)

 

한무숙은 부친과 부친의 친구의 술자리에서의 약속에 따라 싫은 결혼을 했다. 얼굴도 모르는 결혼이었고 시어머니 간병에 아기자기한 신혼 살림조차 허락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만삭으로 시어머니 병간호에 첫 아이 출산 등을 치른 병약한 한무숙에게는 아프거나 힘들 때조차 쉴 공간, 아니 쉴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없었다. 한무숙은 그래도 나는 열심히 살았다. 무슨 목표를 향해서가 아니다. 행복에의 의지라든가 희망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오히려 나는 철저하게 내 불행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자학에 열정을 쏟음으로써 냉소적인 역설의 독이 가득 찬 처절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썼다.

 

한무숙이 작가가 된 과정은 하나의 소설 같다. 시댁은 가부장 질서가 엄격한 집안이었기에 여자는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화장실에서 우연히 본 신문 쪼가리에서 1500매 분량의 장편 소설 공모 소식을 접한다.

 

남은 두 달, 그녀는 그림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한()을 소설(‘등불 드는 여인’)을 쓰는 것으로 풀었고 결국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19424월의 일이었다. 당시 이 소식은 남편만이 알고 있었던 비밀이었다. 한무숙은 1948년에는 국제신문사 장편 소설 공모에 역사는 흐른다로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1970년 작가는 미국에 의학도로서 유학을 가 있던 둘째 아들 용기가 교통 사고로 사망하는 인생 최대의 슬픔을 겪는다.(용기는 의학도면서 국립극장에서 첼로 독주를 할 만큼 예술적 재능도 지닌 수재였다.)

 

1984년 한무숙은 말년의 대작 만남을 한국문학에 분재(分載)했다. 이명희는 작가가 민속의 풍속과 문화를 애지중지하며 그것을 인물과 구성에 옷을 입히듯 풀어놓은 이유는 무엇인지 풀이한다. 그것은 풍속과 문화의 지킴이란 이 민족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며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국토를 잃었지만 우리의 정신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작가 정신에 기반한다.(59 페이지) 이런 점이 역사는 흐른다에 명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무숙 작가는 인간을 비참과 위대의 풀 수 없는 혼합, 모순, 끊임없는 갈등과 분열 속에 허우적거리는 존재라고 갈파한 파스칼의 말을 위대한 명구(名句)로 기억하면서 그 명언에서 인간의 한계와 위대함을 함께 보았다.(61 페이지)

 

1963년 발표작인 유수암(流水庵)‘은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이다. 그것은 작가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의 인생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노력을 많이 들였기 때문이다. 작가가 우연히 마주친 한 노기(老妓)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아 쓴 소설이다.

 

유수(流水)는 낙화유수(落花流水)의 준 말로 쇠잔영락(衰殘零落)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리고 떨어지는 꽃에 정이 있으면 흐르는 물에도 정이 있어 물이 꽃을 띄워서 흐를 것이라는 뜻으로 남녀 사이에 서로 그리워 하는 정이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또한 행운유수(行雲流水)의 줄임말로 일정한 형태가 없이 늘 변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무숙은 수필에도 재능을 보였다. 김현주는 글쓰기는 저자가 자아를 표현하는 계기이자 자아를 구성하고 형성하는 계기임을 주장한다. 김현주는 자전적이라는 말과 자화상적이라는 말을 대비시킨다. 자전적인 것도 자화상적인 것도 모두 자신의 삶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자전적인 것은 언어 형태로 기억되는 것이고 자화상적인 것은 그림의 형태로 기억되는 것이다.

 

물론 그림 형태로 기억된다는 말은 체계적인 말을 구사하지 못하는 어릴 적의 경험이 흐릿하게 기억된다는 의미이다. 한무숙은 수필을 소설만큼 진지한 문학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녀의 수필 쓰기는 소설쓰기라는 본연의 작업의 잉여분에 해당한다.

 

작가의 의도라는 측면을 차치하고 결과로써 평가하더라도 한무숙이 수필의 영역에서 새로운 문학적 실험이나 미적 경지를 개척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133 페이지) 한무숙은 역사적 사건을 즐겨 다루지만 실제 그 절박한 국면들이 겉으로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늘 소설의 원경(遠景)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령 6.25 같은 사건이 배경일 때도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의 생활이나 심리 쪽으로 비중을 두고 묘사한다.

 

한무숙은 예술 작품에서의 표현은 사고가 시작되는 곳이 아니라 사고가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182 페이지) 한무숙에게 소설 쓰기는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인간의 의지나 욕망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미덕이란 무엇이며 신념과 도덕을 규정하는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와 같은 근원적 질문에 도달하는 형식적 실험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 과정 속에서 작가는 생의 이면에 대한 탐구와 생의 총체성에 대한 해답을 작품 쓰기의 전체를 통해 정교하게 축조해가는 것이다.(228 페이지) 정재원, 이호규, 이명희, 이상진 등 여러 필자가 참여한 한무숙 문학세계가 작가의 작품들을 실제 읽고 더 많이 이해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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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숙(韓戊淑: 1918 1993) 작가 관련 자료를 찾다가 여성 작가들의 계보를 나름대로 수집해 보았다.

 

한무숙 작가 이전에 김일엽(金一葉; 1896 - 1971), 김명순(金明淳; 1896 - 1951), 나혜석(羅蕙錫; 1986 1948), 김말봉(金末鳳; 1901 1961), 박화성(朴花城: 1903 1988), 최정희(崔貞熙: 1906 1990), 강경애(姜敬愛: 1907 1943) 등의 작가가 있고 그 이후에 젊은 느티나무의 강신재(康信栽: 1924 2001), 박경리(朴景利: 1926 2008), 박완서(朴婉緖: 1931 2011), 한말숙(韓末淑: 1931 - ), 정연희(鄭然喜: 1936 - ), 김지원(金知原: 1942 2013), 최명희(崔明姬; 1947 - 1998) 강석경(姜石景: 1951 - ) 등의 작가가 있다.

 

김일엽, 김명순, 나혜석 등의 세 작가는 모두 1896년생 작가들이다. 김명순 작가는 1917, 나혜석 작가는 1918, 김일엽 작가는 1920년 각각 소설을 발표했다.

 

한국문학사는 1917년 이광수의 무정(無情)‘을 한국 최초의 근대 소설로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시정되어야 할 일이다.

 

말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파블로 카잘스(첼리스트), 파블로 네루다(시인), 파블로 피카소(화가) 등 파블로라는 이름을 가진 세 거장이 같은 해(1973)에 타계한 사실을 무슨 신기한 일이라도 되는 양 말하곤 하는데 1896년에 태어난 우리나라 세 여성 작가를 보며 나도 그들처럼 세 작가의 기이한(?) 인연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특히 나혜석의 삶에 관심이 많이 간다. 한무숙 작가를 박경리(1926 - 2008. '토지'의 작가), 박완서(1931 - 2011), 최명희(1947 - 1998..'혼불'의 작가) 등은 물론 나혜석(1896 - 1948) 작가와 비교할 여지가 있을지 찾아보도록 하자.

 

김이듬 시인이 고정희(高靜煕; 1948 - 1991), 최승자(崔勝子; 1952 - ), 김혜순(金惠順; 1955 - ) 등의 시인을 중심으로 논한 '한국 페미니즘 시 연구'도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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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 시인의 등단작은 고풍의상(古風衣裳)’이다. 강의시간에 낙서삼아 쓴 시를 장난으로 우체통에 넣은 것이 당선된 것이라고 한다. 반면 심혈을 기울여 쓴 세기말적 탐미의식, 자의식 계열의 시편들은 제외되었다.”(윤석성 지음 조지훈 전인적 삶의 시화’ 35 페이지)

 

이런 어긋남은 어디에나 있다. 기대했던 것들은 제외되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이 순서(順序)에 드는 경우가 있다. 인터넷에 게시될 법한 시들은 없고 임팩트 없는 시들은 게시되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어긋남이라 할 수 있다.

 

고옥주 시인의 청령포를 찾을 수 없어 곧 국립중앙도서관에 갈 생각이다. “청령포는 언제나 새벽 잠못 들고 뒤척이는 새벽..“ 단종의 한()을 노래한 시이다. 수준작이 선택(게시)되지 못한 것인지 여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실릴 만한 시가 실리지 않은 것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남양주 사릉(思陵: 단종 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을 남김의 미학으로 설명한 글을 최근 읽었다. 알다시피 남양주 사능은 크기도 작고 초라하다. 하지만 이를 남김의 미학이라 하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다.

 

단종의 폐위와 연관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지난 20171214일 연산군묘를 찾은 것은 자료 수집 차원이라면 언제인지 장담할 수 없지만 갈 사릉(思陵)은 예의 차원의 방문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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