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가 기후 위기랑 무슨 상관이야 - 안전한 내일을 위한 어린이 환경 교과서, 2023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정지윤 지음, 조천호 감수 / 파란의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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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가 기후 위기랑 무슨 상관이야‘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지만 어른들도 읽을 만한 책이다. 아니 어른들이 더 읽어야 할 책이다. 푸른 하늘, 산 등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사는 정지윤이란 분이 대기과학자 조천호 저술가의 감수를 받아 내용을 구성하고 그림까지 그렸다. 이 책은 한 마디로 기후 위기와 탄소의 강력한 연관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공기 구성 요소들 중 0.04%에 지나지 않지만 지구의 급소를 때리는 온실가스는 종류에 따라 수십 년에서 수천 년 동안 공기 중에 남아 누적된 채로 미래 세대에게 넘겨진다.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오르면 생기는 본격 기후 위기가 2030년대에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2050년대에는 우리를 파국에 이르게 하는 2도 온도 상승이 전망되고 있다. 중요한 점은 미래 기후는 인간이 하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지구 온도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바뀌는 날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역의 계절을 평균해 구하는 온도를 말한다. 기후란 날마다 변하는 날씨들의 정보를 30년 넘게 모아 평균을 낸 수치다. 매일 변화하는 기온, 강수, 바람 등의 정보를 평균하는 것이다. 빙하기 때부터 지구 온도가 5도 오르는 데 1만년이 걸렸으니 평균 2천년에 1도가 오른 셈이다. 그런데 지금은 1도 오르는 데 170년이 걸렸다. 170년이란 산업혁명부터 지금까지를 말한다. 기후 차이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지구의 둥근 모양이다. 이 때문에 태양 열을 골고루 받지 못한다. 넘치거나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태풍은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는 다양한 활동들 가운데 하나다. 태풍의 풍이 바람이란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바람이 큰 역할을 한다.

 

지구는 추운 곳은 덜 춥게, 더운 곳은 덜 덥게 해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 문제는 너무 빠르게 오르는 온도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조절 작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다. 제트 기류란 것이 있다. 적도의 뜨거운 공기와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만나는 부분에 생기는 바람층을 말한다. 좁은 지역에서 부는 쏘는 듯한 강한 바람으로 두 공기를 잘 섞어 공기가 잘 흐르게 해준다. 그런데 지금 북극과 남극의 온도 차이가 줄어 제트기류가 힘을 쓰지 못한다. 그 결과 여름은 더 더워지고 겨울은 더 추워졌다. 제트 기류가 힘을 쓰지 못해 북극의 찬 공기의 하강을 막지 못하고 있다. 물론 북극이 뜨거워졌지만 여전히 북극은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 중 하나다.

 

북극의 하얀 빙하는 햇빛을 반사해 지구 온도 상승을 막는다. 이에 비례해 어두운 빛을 내는 바다가 넓어져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한다. 바다도 물이니까 뜨거워지면 부피가 늘어나 해수면이 올라간다. 바닷물은 뜨거워지면서 수증기를 많이 발생시킨다. 비를 부린 수증기는 주변으로 이동하고 점점 차가워지면서 아래로 내려간다. 공기가 내려가기만 하니까 비를 내릴 구름을 만들 수 없어 가뭄이 들기도 한다. 문제의 근원은 탄소, 아니 탄소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는 우리다. 탄소는 누구하고나 쉽게 친해지는 성질 때문에 어디에나 있다. 모든 생명체의 몸 속에 탄소가 있다. 산소, 질소, 아르곤, 온실 가스 등으로 이루어진 공기층을 알 필요가 있다. 빠져나가는 열의 일부를 막아 지구를 너무 뜨겁지 않게 해 살기 좋게 해주는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석탄과 석유에서 만들어진 탄소로 구성된 대표적 온실가스다. 온실가스 때문에 열이 빠져나가지 못해 온도가 높은 것이다. 지금껏 늘어나는 탄소를 흡수해주던 바다도 그 능력에 한계에 이르고 있다. 대륙 이동, 운석 충돌, 거대 화산 폭발 등은 기후를 급격히 변하게 하는 요인들이다. 지금의 급격한 온도 변화는 인류의 책임이다. 플라스틱 병을 만드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생긴다. 최초의 석유를 높은 열로 가열해 플라스틱 원료를 분리해 내는 과정에서다. 높은 열로 가열하려고 석탄이나 석유를 태우기 때문이다. 이 병들을 차로 나르는 중에 탄소가 나온다. 방방곡곡 실어나른 플라스틱 병을 냉장 보관하는 중에 온실가스가 생긴다. 우리는 이런 병을 너무 쉽게 버린다. 이것이 바로 플라스틱 병이 만드는 탄소 발자국이다. 발자국이란 이동 경로를 말하는 듯 하다.

 

우리가 탄소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지금의 세상을 당장 바꾸기는 어렵다. 햇살이나 바람 등으로 에너지를 만들고 전기 자동차도 만들어 사용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탄소를 흡수하는 산림이나 갯벌을 잘 가꾸어야 한다. 석탄을 태워 만드는 과정에서 탄소를 내보내는 전기를 아껴쓰는 것도 방법이다. 고기를 적게 먹는 것도 중요하다. 쓰레기 분리배출을 잘 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나바다 운동은 변함없이 중요하다. 목표는 탄소중립이다. 탄소 배출과 흡수 사이의 균형을 말한다. 자기 집에 불이 난 것처럼 재빨리 행동하라는 스웨덴의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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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저 교회에 다시 다닙니다."란 말을 들은 분들은 100%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어느 교단의 무슨 교회인지 묻는다. 독립교단 교회라 하면 이상한 곳이 아닌가 의심한다. 지난 주 한 지인으로부터는 박태웅 씨가 다니는 교회가 이상한 곳이 아닌지 알아보아야겠으니 그 교회의 설교 자료를 보내달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 분에게 교회 다닌다는 말을 한 것은 “그 좋은 머리로 왜 하나님을 모를까?”란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우려할 필요는 없다. 나는 충분히, 때로 과할 정도로 비판적이기 때문이고 그간의 자연과학 공부를 통해 알게 된 내용에 근거해 생긴 겸허한 마음 으로 다시 교회에 참석하기 때문이고 진화론 및 지질학 등과 신앙을 조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복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복을 우선 가치로 추구하지 않는다.

 

내 신앙의 의의를 중요한 것부터 나열하자면 첫째는 절대자에 대한 의리(義理)이고 둘째는 반듯하게 살기 위해 스스로 부과하는 의무(義務)이고 셋째는 공동체적 정서에 대한 의지(依支) 차원이다. 나는 기독교 목회자들이 개인적 차원의 신앙 만큼 우리 사회의 아픔과 불의를 해명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의 신학에도 시간을 많이 내주기를 바란다.

 

기독교인들이 보이는 이해 못할 행동 가운데 하나는 신에 대해 의문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섭리한다는 분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럽다. 내가 의문을 갖는 것은 기독교를 의심하고 훼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앙을 더 깊게 하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알아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신앙은 논리와 다르다고 하지만 가능한 한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사람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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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일별하다가 제목이든 저자 이름이든 좋은 책을 기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그런 것은 왜 기억하느냐?고 묻곤 한다. 그런데 좋은 책을 다 읽을 수 없기에 읽지 못하는 책들을 필요한 경우 활용하기 위해 제목이나 저자 이름, 출판사 이름 중 하나라도 기억하는 것이 좋다. 보관함에 책을 담아두지만 급할 때는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많은 책을 담아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에 띄는 내용을 얼핏 읽고 좋다고 생각해 (이름 등을 기억하지 않고) 담아두기만 하면 그런 경우가 생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필요하다 싶으면 담아두고 중요한 책은 저자 이름이나 책 제목을 기억해야 도움이 된다. 어떤 책이 유용한지 여부는 내가 쓰는 글의 성격에 좌우되지만 결국 기억에 좌우된다. 저자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유사시에 이용하기(인용하기) 위해서이지만 머리 속 어느 구석엔가 자리하는 세부 내용들을 떠올려 도약의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이 쌓인다. 현실에서도 쌓이고 온라인에서도 쌓인다. 그 만큼 피로도도 가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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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지질해설 근무 4년차의 해다. 내 포지션의 기본이 수업(受業)이 아닌 근무이기에 공부를 많이 할 여건이 아님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지질에 대해 알아내고 현장에 활용한 정도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친구에게 이제야 공부가 뭔지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어떻게 해야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공부가 되는지 알 것 같다는 말이다.

 

지질 공부는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든다. 연천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질은 물론 역사, 고고학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주의(注意)가 산만하지만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서울 해설까지 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분주하기까지 하다. 물론 이로 인해 이런 해설 저런 해설을 해야 하는 내 사정은 좋은 추억거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오늘 퇴근 하고 집 앞에 와 있는 책을 주워들며 감사함과 흥분을 느꼈다. 내가 공저자로 참여한 책이 저자(의 한 사람)인 내게 온 것이다. 공저자들의 글 제목을 일별하고 내 글의 제목에만 창의적이라는 글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쓴 글은 ’창의적 공공역사가가 되는 길‘이다.

 

고양에서 문화해설을 하는 페친에게 출간 소식을 알리자 그는 책 출간이 자신 같은 사람의 마지막 도전이라는 말을 했다. 마지막이라 하기는 그렇지만 그것이 의미 있는 도전임은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어떻든 나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전했다. 이는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은 지구과학 책을 이것 저것 읽으며 보내고 있다. 인문학 책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10년전 한창 과학 책을 많이 읽을 때는 그래도 한 권을 다 읽고 서평도 쓰고 넘어갔지만 지구과학 책은 사정이 다른 듯 하다. 해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는 까닭에 완전히 이해하려는 약간은 강박적인 생각이 독서를 더디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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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전인 1999년 철학자 이정우 교수의 ‘담론의 공간’에서 “아날 학파는 사건들로 시끄러운 역사의 표면 아래에서 거의 무의식과도 같은 평형들을 밝혀냈다.”는 글을 읽었다. 당시 내가 ‘담론의 공간’을 읽은 것은 동(同) 저자가 2년전에 낸 ‘가로지르기’를 읽으며 느낀 참신감(斬新感)을 지속적인 공부로 이어나가려는 의도에서였다. 그 이후 성과는 시원치 않았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올해 6월 최호근 교수의 ‘역사 문해력 수업’을 읽었다. 이 책에서 ‘아날학파의 거두‘ 페르낭 브로델에 관한 글을 만났다. ’역사적 시간의 세 층위; 파도(波濤)의 시간, 해류(海流)의 시간, 해구(海溝)의 시간‘이란 글이다. ’역사 문해력 수업‘은 ’담론의 공간‘을 읽은 데다가 지질을 공부하는 내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파도의 시간은 변화무쌍한 것 같지만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파악하기 쉬운 사건의 시간이다. 해류의 시간은 흐름을 타고 전개되는 시간으로서 이를 포착하려면 세대와 세기의 단위가 필요하다. 해구의 시간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구조적 단위의 시간이다. 이런 비유는 이야기의 끈’에서 철학자 김상환 교수가 선보인 비유를 연상하게 한다.

 

김상환 교수는 위대한 창조는 묵직한 습관의 지층에 습곡과 변동을 일으키는 용암의 분출과 같다는 말을 했다.(244 페이지) 해구가 지질 용어이듯 지층(地層), 습곡(褶曲), 용암(鎔巖) 분출(噴出)도 지질 용어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이런 참신한 비유를 접하고 실재 성과를 내려면 공부하는 사람은 구체적 적용 예를 찾아야 한다.

 

우선 판구조론 및 해저확장설 등의 지구과학 내용을 숙지하고 레이첼 카슨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 처럼 해양 과학자가 쓴 문학적인 동시에 엄밀한 과학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훈련된 눈으로 현실을 분석하면 된다. 이런 작업은 글쓰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글쓰기는 특별히 현장에서 내용을 전하는 해설사에게는 더욱 필요한 일이다.

 

다시 김상환 교수의 글을 참고하자면 글을 쓴다는 것은 가장 알맞은 표현을 찾으려 이미 쓴 글을 다시 고쳐 쓰는 것이다. ‘공공역사를 실천중입니다’에서 나는 해설사는 학문과 이야기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관계를 조율하는 사람이라고 썼다. 그리고 새로운 자료를 자신의 기존 이야기 풀pool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유연성을 갖추기 위해 건조한 글은 감성적인 글로, 감성적인 글은 엄격한 글로 만들어 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도 썼다.

 

지구과학 공부 - 인문 공부, 그리고 두 학문을 아우르는 일관된 시각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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