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피하던 분의 것을 포함 책 세 권을 샀다. 이시형 박사의 ‘면역이 암을 이긴다‘, 정해심 법사의 ‘다비(茶毘)‘, 이지형 저자의 ‘주역(周易), 나를 흔들다‘등이다.

첫번째 책은 설명이 필요 없고 두번째 책은 위빠사나 수행기이다. 세번째 책은 주역 해설서이다.

거칠게 분류하면 세 권 모두 내려놓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책이다.(이시형 박사의 책은 스트레스와 근거 없는 두려움, 정해심 법사의 책은 집착, 이지형 저자의 책은 근거 없는 신념.)

아, 나는 이제 곧 깨닫게 될 것 같다.(ㅜㅜ)

낮에 들렀던 함석헌 기념관에서 선생님의 애독서들 가운데 해방신학, 세계사 편력, 논어, 주역 등의 책을 보고 동지 의식의 반가움을 느꼈다.
주역 책을 산 것은 계획에 있던 일이지만 예의 그 동지 의식의 반가움 때문이기도 하다.

주역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나 희망 가운데 석과불식(碩果不食)을 빼놓을 수 없다.

‘담론‘이란 책에 의하면 저자 신영복 선생님은 주역 산지박(山地剝) 괘의 석과불식을 가장 아끼는 괘로 여기며 20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견디셨다.

씨(로 쓸) 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 석과불식은 희망의 언어이다.

씨 과일은 초겨울 가지 끝에 남아 있는 마지막 감 같은 것이다. 모두 박탈(剝奪) 당하고 희망의 과일(씨로 쓸 과일)만이 남았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가질 것을 제안하며 자기의 이유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된다고 말한다.

선생님은 억울한 옥살이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은 것은 햇볕 때문이었고 살아간 이유는 깨달음과 공부 때문이었다고 말하며 여러분의 여정에 햇볕과 함께 끊임없는 성찰이 함께 하기를 빈다는 덕담을 건네셨다.

낮에 함석헌 기념관에서 느낀 동지의식의 반가움을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과제의 의미가 깃든 조금 다른 형태로 느끼며 나는 존재의 이유 같은 것을 새기게 된 감사함에 고개를 숙인다.
이래서 책을, 고전을, 선현(先賢)의 지혜서를 읽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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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원 교수는 김춘수 시인은 시가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을 깨뜨리고 시가 사유의 산물이거나 시론의 실험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였다는 말을 했다.(2017년 7월 출간 ’존재와 현상‘ 7 페이지)

이런 경우라면 김수영 시인이 해당자가 아닌지?

문혜원 교수는 시와 철학이라는 연구의 장(場)이 되어준 김춘수라는 텍스트에 특별한 감사와 우의를 표한다는 말을 했다.

누구 누구라는 텍스트란 말이 인상적이다. 아직 나는 감사해야 할 특별한 텍스트를 갖지 못했다.

그것을 찾으러 나서려는 찰나 뜻 밖의 제동이 걸렸다. 아니 예상한 제동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변함 없이 실험이라는 말에 가슴이 뛴다. 아직 미숙한 탓이리라. 오래 지속될 미래를 생각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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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에 나는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누구에게 못한 말을 누군가에게 하는 것처럼/ 1인분의 사랑의 말을 누군가에게 하려는 것이다/ 동백에게 못한 말을 매화에게/ 매화에게 못한 말을 생강나무에게/ 생강나무에게 못한 말을 산수유에게/ 산수유에게 못한 말을 산벚나무에게/ 앵두나무,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철쭉에게/ 이 봄에 나는 누군가에게 해야 할 사랑의 고백을/ 어딘가에게 고백해야 한다../ 분홍 미선, 상아 미선, 푸른 미선아/ 봄은 이어지고 이어져 우리 앞에 봄꽃들은 행렬은 끝이 없다,/ 낙원도 이 땅이 버린 타락 천사 같은 하얀 사과 꽃 같은/ 미선나무 물푸레나무 쥐똥나무가 차례로 수북한 꽃을 피우/ 듯이/ 당신에게 못한 1인분의 사랑의 말을/ 오늘 나는 또 누군가에게 꼭 해야 한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또 기교가 절망을 낳는˝(이상 시인의 표현) 열번째의 고개(시집)를 넘어선 김승희 시인의 시집 ‘도미는 도마 위에서‘(2017년 6월 출간)에 실린 ‘미선나무에게‘의 주요 구절이다.

클라리사 에스테스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의 추천사를 쓴 여전사 시인.

시인이 인용한 절망의 말을 따라 나도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김수영 시인의 시 ‘절망‘을 되뇌인다.

시인이 말한 미선나무는 나무 이상이리라.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미선, 효순의 그 미선을 떠올렸다. 시 중간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밀양 덕천댁 할머니와 김말해 할머니가 세월호 유족에게 편/지를 쓰듯이/ 또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월호 유족에게 편지를 쓰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듯이/ 5.18 엄마들이 4. 16 엄마들에게 편지를 쓰듯이/ 분홍 미선, 상아 미선, 푸른 미선아˝란.

나는 29년 전 나온 ‘달걀 속의 생‘에 실린 ‘시계풀의 편지 4‘를 좋아 했다. ˝사랑이여,// 나는 그대의 하얀 손발에 박힌/ 못을 빼주고 싶다./ 그러나// 못박힌 사람은 못박힌 사람에게로/ 갈 수가 없다.˝

아름답지만 무력한 시인데 이 ‘미선나무에게‘를 통해 큰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희망적이다. 나도 그렇게 희망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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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중용(中庸) 해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잘 모르지만 절대 다수 vs 두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절대다수는 중용을 타협과 적당한 온건의 산물로 본다. 중용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은 김상환, 이한우 두 철학자이다.

 

김상환은 쾌락원칙의 저편으로 향하는 죽음 충동이라는 과격한 요소를 배제한 중용(中庸)은 김빠진 콜라가 된다고 말한다.(‘공자의 생활난참고)

 

이한우는 중용은 완전히 뿌리를 뽑는 철두철미한 것, ()하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 적중한다는 것, ()은 지속적으로 끌고가는 것이라 말한다. 김상환은 극단을 배제한 온건한 중용은 직()의 정신이나 곧음의 의지가 생략된 중용이라 말한다.

 

이한우에 의하면 공자는 공부는 목표에 미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으로 설명한 사람이다. 신정근은 공자를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 한 사람(知其不可以爲之者)으로 파악한다.(‘공자의 인생 강의참고)

 

김상환은 ˝중용의 도를 지키는 사람을 찾아내어 사귀지 못한다면 나는 반드시 광자(狂者; 열광적인 사람)와 견자(狷者; 고지식한 사람)를 택할 것.˝이라는 공자의 말(‘논어자로子路 13 - 21)을 인용한다.

 

김상환은 중용의 역량은 통합 극복된 광견(狂狷)일 것이라 말한다.(‘공자의 생활난‘ 220 페이지) 진상 규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용서를 외치고, 죄가 있으면 그에 맞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기본을 무시하고 화합을 떠드는 우리의 이상한 습관이야말로 비중용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재미 있는 고전! 어이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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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생활난 - 김수영과 <논어> 탈경계인문학 연구총서 4
김상환 지음 / 북코리아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김상환 교수(철학)'공자의 생활난'은 김수영 시인이 모더니즘 못지 않게 동아시아 전통에 물을 대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저자에 의하면 4. 19 이후 저항시인으로 거듭나기 전부터 김수영의 핏줄에는 선비 정신이 흐르고 있었다.

 

공자는 천민 부랑아였던 자로(子路), 비천한 출신의 원헌(原憲), 항상 쌀 뒤주가 텅텅 비어 있을 정도로 가난했던 안회(顔回), 하급 말단 관리였던 증삼(曾參) 등을 가르치며, 그리고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상층 지배 계급들이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덕치와 예를 강조했다.

 

또한 세습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교육을 전체 인민들에게까지 확대했고 인()과 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자는 인의 사상이 전제되지 않는 한 예술()과 문화()도 소용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박기봉 지음 '교양으로 읽는 논어' 참고)

 

저자는 '공자의 생활난'을 김수영론이자 공자론이라 말한다. 김수영은 첨단 문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전통을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지켜야 하는가란 물음을 던졌다. '논어'의 문장 하나 하나는 대부분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지만 문장들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논리를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14 페이지)

 

김수영은 동서문화의 아이콘들을 하나의 문맥 속에 마주 세우는 방식의 시를 많이 썼다. 김수영은 미래로 뻗어갈 원심력을 온고지신에서 찾았다.(23 페이지) 현대 시의 일반적인 특징은 메타 시의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메타 시는 시 자체를 소재로 하는 시이다. 시에 대한 시, 시가 무엇이고 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시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시는 자연을 소재로 한다. 현대로 내려올수록 시는 시인의 내면세계로 침잠하고 급기야 시인 자신의 초상과 자신이 추구할 이념을 소재로 한다. 시론이 시가 되고 시가 시론이 되는 것이 메타 시이다.(24 페이지)

 

김수영의 사유는 끊임없이 두 축을 그린다. 하나는 당대의 역사를 주도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의 축이다.(35 페이지) 김수영에게 공자와 모더니즘은 현실을 바라보기 위해 끼어야 하는 렌즈와 같다. 하지만 공자는 오래된 렌즈이고 모더니즘은 새로운 렌즈여서 당대 한국인의 현실적 감각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한다.(45 페이지)

 

모더니즘을 통해 공자를 왜곡하고 공자를 통해 모더니즘을 왜곡하는 것이 김수영식 격물치지(格物致知)이다.(49 페이지) 김수영의 공식 데뷔작은 공자의 생활난묘정(廟庭)의 노래이다. 이 두 작품은 동아시아 전통에 대한 시인의 관심을 보여준다.

 

묘정의 노래가 다룬 대상은 관우(關羽)이다. 이 시에 나오는 남묘(南廟)는 관제묘(關帝廟) 즉 관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공자의 생활난이 다룬 대상은 공자이다. 흥미로운 것은 관우가 성인(聖人)인 공자보다 서열이 더 높다는 점이다.

 

후한 말의 무장 관우는 송나라 때 무안왕(武安王)으로 추숭된 이래 명나라 때 황제가 되고 청나라 때에는 관성대제(關聖大帝)가 되었다. 송나라 때 요나라, 금나라 등 북방민족에 밀려 중원을 내주고 남송으로 물러선 중국은 중원을 되찾고자 절치부심하게 된다.

 

관우는 이런 정치적 이유 때문에 정신무장을 통해 국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역사상 충신의 이미지로 여겨졌다. 조선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조선 개국에 반대해 태종 이방원에게 암살당했지만 조선의 문묘와 종묘에 충신으로 배향된 정몽주가 대표적이다.

 

이는 라이벌이었던 개국 공신 정도전이 왕권에 도전한 죄로 정권의 미움을 받아 조선이 끝날 때까지 철저히 외면당한 것과 정반대의 사례이다. 유학의 시조이자 최고봉인 공자를 황제의 반열로 추숭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공자는 왕의 반열에서 멈추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 말기에는 황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공자는 문()을 펼친 왕이라는 뜻의 문선왕(文宣王)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지만 그 자체로도 천자(天子)의 지위를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공자에게 부여된 왕이란 이름이 황제를 뜻한다. 우리나라에 관우 사당이 지어진 것은 임진왜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조의 명을 받은 백사 이항복이 명에 군사 원조를 요청하러 가자 명나라 황제가 먼저 관우 사당을 지은 후 관우에게 참배와 제를 올릴 것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친구들에게조차 낡았다는 이유로 묵살의 대상이 된 묘정의 노래를 말장난에 불과한 시, 무의미한 습작이었을 뿐이라 인정했다. 김수영은 이 시가 부정적 의미에서 유창한 능변(能辯)이어서 얼굴이 뜨끔해졌다고 말했지만 남의 나라 사람을, 그것도 무()를 상징하는 관우를 시작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부끄러웠을지도 모른다.

 

김수영은 묘정의 노래를 자학(自虐)의 대상으로 삼았다. 김수영은 진정한 처녀작을 쓰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공자의 생활난이 그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다. 김수영의 본적은 종로구 묘동(廟洞)이다. 김수영이 관우를 시작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미스테리이다. 관우는 도교의 신이다.

 

김수영은 4.19 이후 저항 시인으로 거듭났다.(61 페이지) 김수영에게 사랑은 중요한 주제였다.(80 페이지) 김수영은 사랑의 변주곡에서 복사 씨와 살구 씨가/ 한 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란 말을 했다. 복사 씨와 살구 씨는 성리학의 창시자 주자(朱子)가 공자(孔子)의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들인 개념이다.

 

공자의 인()에 해당하는 것이 사랑인데 인()은 행인(杏仁)이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씨앗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자는 복사와 살구가 씨앗에서 나온 열매이듯 세상만사가 인이라는 씨앗의 산물이라 보았다.(81 페이지) ()은 궁극적으로 자연 전체와 하나가 되는 일체화의 역량을 지향한다. 불인(不仁)이 어질지 못함과 마비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저자는 김수영의 을 원격감응의 유희를 내용으로 하는 시로 읽는다.(97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김수영에게 인자(仁者)에 해당하는 시인은 살아 있는 눈과 함께 호흡하며 화답하며 유희를 벌이는 사람, 자연의 생명에 참여하는 사람이다.(95 페이지)

 

이런 시로 들 수 있는 것이 이고 사랑의 변주곡의 마지막 문장인 복사 씨와 살구 씨가/ 한 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란 구절이다. 복사 씨와 살구 씨가 사랑에 미쳐 날뛰는 날은 대동사회를 의미한다.

 

공자는 사람이 어질지 않다면 예를 해서 무엇 하며 사람이 어질지 않다면 음악을 해서 무엇 하랴란 말을 했다.(108 페이지)

 

저자는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는 시에서 기침하는 것은 시작(詩作)이고, 시를 쓴다는 것은 마음을 자극하는 생명의 율동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고 파악한다.(109 페이지)

 

공자의 인() 개념에 담긴 핵심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환원불가능한 요소로 내재하는 어떤 원초적인 리듬에 대한 감수성이다. 김수영의 먼 곳에서부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먼 곳에서란 말은 공자의 능근취비(能近取譬)를 비튼 능원취비(能遠取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능근취비란 가까운 것을 비유하여 먼 것에 이르는 것, 내 처지로부터 남의 처지를 유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김수영은 왜 아프다는 말을 했을까?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란 동의보감(東醫寶鑑)’의 말이 있지만 여기서는 적용할 말은 아닌 듯 하다. 감응하기에 아프다는 말을 하는 것일까? 드라마 다모아프냐? 나도 아프다.”란 대사처럼?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一切衆生病 是故我病)”유마경(維摩經)‘의 말처럼?

 

그렇다면 이 경우 아프다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이 아픈 것이겠지만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픈 것이고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픈 것임을 해아리면 굳이 나눌 일은 아닌 듯. 주역 계사전에 근취저신 원취저물(近取諸身 遠取諸物)이란 말이 있다.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진리를 찾고 멀리서는 사물에서 진리를 구한다는 의미이다. 이 말이 김수영 시를 이해하는 단서이다. 두루 취해야 한다는 의미를 새기게 하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묘정의 노래공자의 생활난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김수영은 을 마지막으로 생애를 마쳤다. 저자는 을 메타 시 계열의 정점으로 읽는다. 몇몇 평론가는 이미 김수영의 논어의 한 구절과 연관지어 해석했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

 

은 참여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도 읽혀왔다. 김수영이 자발적으로 공자의 길에 동참하려한 정황은 여기 저기서 발견된다. 등단 작품인 공자의 생활난에서 김수영은 시인이 통과해야 할 지난한 삶의 여정을 공자의 생활난으로 표현했다.(195 페이지)

 

더러운 향로에서 그런 점은 더 짙게 나타난다. 청동 향로는 유가 전통에서의 군자의 상징이다. 공자가 망해가는 주나라를 이상 국가로 삼았듯 김수영은 시대에 뒤처진 유가 사상을 이상으로 삼았다. 김수영으로서는 썩어빠진 그 전통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으려 한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길을 공자의 길로 삼은 김수영은 자신을 모리배와 동일시하기도 했다. “아아 모리배여 모리배여/ 나의 화신이여”(’모리배참고) 모리배(謀利輩)는 온갖 옳지 못한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사람, 더 나아가 도의를 무시하고 부정한 이익을 꾀하는 무리들, 사기꾼을 뜻하는 말이다.

 

이런 자학(自虐)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는가’,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같은 시어(‘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도 나타난다.

 

김수영은 자신의 실질적인 첫 작품으로 병풍폭포를 꼽았다.(235 페이지) 김수영은 중용(中庸)’을 키워드로 한 시를 썼거니와 저자는 유가철학의 중심에 있는 중용은 종종 타협과 조정의 지혜로 즉 야성과 극단을 배제하는 온건의 지혜로 설명되지만 그러나 이런 것은 직()의 정신이나 곧음의 의지가 생략된 중용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쾌락원칙의 저편으로 향하는 죽음 충동이라는 과격한 요소를 배제한 중용은 김빠진 콜라가 된다고 말한다.(239 페이지) 이 부분에서 공자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고 시도한 사람(지기불가이지자, 知其不可而爲之者)으로 여겨졌다는 신정근 저자의 말을 참고할 만하다.

 

또한 중용을 철저하고 완전히 뿌리를 뽑는 것으로 해석한 이한우 저자의 말을 인용할 만하다. 이한우 저자에 의하면 공자는 공부를 목표에 못 미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 그리고 목표에 미쳤을 때는 그것을 잃으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한 사람이다.

 

()하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 적중한다는 말, ()하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물론 공자는 호학(好學) 없는 호직(好直)을 교살적(絞殺的)이라 했다. 앞뒤 분간하지 않고 무턱대고 정직을 추구하다 보면 목을 조르는 듯 살벌해진다는 의미이다.(236 페이지)

 

저자는 김수영이 모더니즘을 구성하는 죽음충동에 적절하게 관계하기 위해 사랑의 이념을 끌어들였다고 말한다. 사랑은 죽음과 더불어 온몸의 시학을 끌고가는 수레바퀴다.(237 페이지)

 

저자는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에 나오는 설움이란 정서를 설명하며 김수영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설움의 미학은 유가 전통에서 높이 평가되어온 수치심의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268 페이지)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293 페이지)

 

저자는 격문군자탄탕탕 소인장척척(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이라는 논어의 문장을 생각나게 하는 글로 본다.(315 페이지) 이는 군자는 평탄하여 여유가 있고, 소인은 늘 걱정스러워 한다는 뜻이지만 탄()은 평탄하다는 의미, (은 물을 흘려 시원하게 쓸어내린다는 의미이다. 군자는 마음이 편편하고 시원한데 소인은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다.

 

에는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란 구절이 있다. 저자는 이를 보며 주역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무릇 대인은 천지와 더불어 덕을 합하고 일월과 더불어 밝음을 합하며 사시와 더불어 순서를 합하고 귀신과 더불어 길흉을 합하니 하늘에 앞서 해도 하늘이 어기지 아니하며, 하늘을 뒤따라 해도 하늘의 때를 받는다.”가 그것이다.(340 페이지)

 

논어뿐 아니라 주역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공자의 생활난’, 대단한 책이다. 그 어떤 문학평론가의 김수영론보다 나은 책이다. 여러 번 정독해야 할 책이다. 동서양 사상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김수영 시인의 시를 모더니즘, 그리고 유가사상을 비롯한 동양 사상을 원류(原流)로 하는 작품들임을 밝힌 드문 책이고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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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8-02-19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인줄 알았어요. 아이언맨 주인공이요ㅎㅎ

벤투의스케치북 2018-02-19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