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중용(中庸) 해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잘 모르지만 절대 다수 vs 두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절대다수는 중용을 타협과 적당한 온건의 산물로 본다. 중용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은 김상환, 이한우 두 철학자이다.

 

김상환은 쾌락원칙의 저편으로 향하는 죽음 충동이라는 과격한 요소를 배제한 중용(中庸)은 김빠진 콜라가 된다고 말한다.(‘공자의 생활난참고)

 

이한우는 중용은 완전히 뿌리를 뽑는 철두철미한 것, ()하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 적중한다는 것, ()은 지속적으로 끌고가는 것이라 말한다. 김상환은 극단을 배제한 온건한 중용은 직()의 정신이나 곧음의 의지가 생략된 중용이라 말한다.

 

이한우에 의하면 공자는 공부는 목표에 미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으로 설명한 사람이다. 신정근은 공자를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 한 사람(知其不可以爲之者)으로 파악한다.(‘공자의 인생 강의참고)

 

김상환은 ˝중용의 도를 지키는 사람을 찾아내어 사귀지 못한다면 나는 반드시 광자(狂者; 열광적인 사람)와 견자(狷者; 고지식한 사람)를 택할 것.˝이라는 공자의 말(‘논어자로子路 13 - 21)을 인용한다.

 

김상환은 중용의 역량은 통합 극복된 광견(狂狷)일 것이라 말한다.(‘공자의 생활난‘ 220 페이지) 진상 규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용서를 외치고, 죄가 있으면 그에 맞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기본을 무시하고 화합을 떠드는 우리의 이상한 습관이야말로 비중용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재미 있는 고전! 어이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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