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에 나는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누구에게 못한 말을 누군가에게 하는 것처럼/ 1인분의 사랑의 말을 누군가에게 하려는 것이다/ 동백에게 못한 말을 매화에게/ 매화에게 못한 말을 생강나무에게/ 생강나무에게 못한 말을 산수유에게/ 산수유에게 못한 말을 산벚나무에게/ 앵두나무,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철쭉에게/ 이 봄에 나는 누군가에게 해야 할 사랑의 고백을/ 어딘가에게 고백해야 한다../ 분홍 미선, 상아 미선, 푸른 미선아/ 봄은 이어지고 이어져 우리 앞에 봄꽃들은 행렬은 끝이 없다,/ 낙원도 이 땅이 버린 타락 천사 같은 하얀 사과 꽃 같은/ 미선나무 물푸레나무 쥐똥나무가 차례로 수북한 꽃을 피우/ 듯이/ 당신에게 못한 1인분의 사랑의 말을/ 오늘 나는 또 누군가에게 꼭 해야 한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또 기교가 절망을 낳는˝(이상 시인의 표현) 열번째의 고개(시집)를 넘어선 김승희 시인의 시집 ‘도미는 도마 위에서‘(2017년 6월 출간)에 실린 ‘미선나무에게‘의 주요 구절이다.
클라리사 에스테스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의 추천사를 쓴 여전사 시인.
시인이 인용한 절망의 말을 따라 나도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김수영 시인의 시 ‘절망‘을 되뇌인다.
시인이 말한 미선나무는 나무 이상이리라.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미선, 효순의 그 미선을 떠올렸다. 시 중간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밀양 덕천댁 할머니와 김말해 할머니가 세월호 유족에게 편/지를 쓰듯이/ 또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월호 유족에게 편지를 쓰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듯이/ 5.18 엄마들이 4. 16 엄마들에게 편지를 쓰듯이/ 분홍 미선, 상아 미선, 푸른 미선아˝란.
나는 29년 전 나온 ‘달걀 속의 생‘에 실린 ‘시계풀의 편지 4‘를 좋아 했다. ˝사랑이여,// 나는 그대의 하얀 손발에 박힌/ 못을 빼주고 싶다./ 그러나// 못박힌 사람은 못박힌 사람에게로/ 갈 수가 없다.˝
아름답지만 무력한 시인데 이 ‘미선나무에게‘를 통해 큰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희망적이다. 나도 그렇게 희망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