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엔 철조망이 없다 - 평화와 공존의 공간 되찾기, 인류학자의 제언
강주원 지음 / 눌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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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주원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마주보는 중국 단둥에서 15개월 간 현장 연구를 한 인류학자다. 저자는 자신의 ‘휴전선엔 철조망이 없다’를 한반도 안에서 느꼈던 자신의 무지함과 낯섦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디에서 왔는지 파악하는 여정을 담은 책이라 설명한다. 저자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언급한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압록강은 서쪽, 두만강은 동쪽에 자리한다.

 

저자는 압록강의 물결은 흐르고 흐르다 황해를 만나고 대동강과 한강에서 흘러나온 물과 섞인다고 쓴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에서 임진강을 거론하지 않았음에 주목했다. 저자는 그 강의 목소리와 삶을 모르고 한국 사회에서 살아오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 글을 접하고 나를 돌아보았다. 임진강이 흐르는 곳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 강에 대해 잘 몰라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임진강이 납북 단절만을 상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의 책을 통해 임진강 하류에 중립 수역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저자는 2000년 여름 두만강 주변에 철조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말한다. 국경 철조망이 아닌 경계를 표시하는 철조망은 있었다. 저자는 철조망이 단절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 38도선을 이야기한다.

 

저자에 의하면 38도선은 2년여에 걸쳐 생긴 도로차단기 또는 나무 표지판이었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사람들은 장사 등을 위해 남북을 오갔다. 저자에 의하면 휴전선 역시 전체가 촘촘하게 가설되지 않은 ‘ 말뚝을 이은 가상의 선’이다. 휴전선을 설치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4년이다. 휴전선은 설치 시점과 (사람들에게) 알려진 시점이 다른 모호한 존재다.

 

한국전쟁 이후 휴전선에는 말뚝만이 존재했다. 1968년에서 1972년 사이에 휴전선이 아닌 DMZ의 끝 안팎에 철조망이 생겼다. 철조망의 역사는 분단 세월과 일치하지 않는다. 남방한계선이 아닌 한강하구에 철책이 있다. 1970년 설치된 것이다. 고양과 건너편 김포 양쪽 강변에 22.6km의 철책이 세워졌다. 동해안에도 목책에 이어 철책이 설치되었다.

 

한국 사회는 1968년 전후까지 남방한계선 철조망 없이 살아왔다. 1968년 전후부터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이 아닌 남방한계선에 철조망이 설치되었다. 저자는 이를 한국사회가 만든 구조물이라 말한다. 저자는 한국 사회는 가까이 있지도 않은 DMZ를 여기저기에 가져다 붙인다고 말한다. 민통선이고 한강 하구이고 한강 하류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철조망이 있는 지역을 DMZ라 부르는 것이다.

 

책을 통해 남방한계선의 낡은 철조망을 교체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것은 당연히 군사분계선의 철조망이 아니라(군사분계선 즉 휴전선엔 철조망이 없다.) 남방한계선의 철조망이다. 저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휴전선 철조망을 사람들의 뇌리에서 걷어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라고 말한다.

 

정리하면 우리나라에는 동해안 군 경계 철조망, 서해안 군 경계 철조망, 민통선 철조망, 남방한계선 철조망이 있다. 난지도 노을 공원을 지나 가양대교 북단 언저리에서 도로명은 강변북로에서 자유로로 바뀐다. 저자는 한강 철조망은 자신에게 한강과 임진강 주변의 민통선과 남방한계선 철조망의 역사를 아울러야 함을 알려줬다고 말한다.

 

군사분계선은 서쪽 임진강에서 동쪽 고성까지 1292개의 말뚝으로 구분된 선이다. 휴전선과 임진강은 늘 평행선이 아니다. 파주 휴전선은 동서 또는 남북으로 놓여 있다. 파주 임진강은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 임진강은 문산대교 언저리에서 방향을 바꿔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한강하구와 만난다. 장단반도는 휴전선 남쪽이 아니라 오른편으로 3km 떨어진 민북(민통선 이북) 지역이다.

 

자유로를 뒤로하고 동쪽으로 37번 국도를 달려도 철조망 때문에 접근이 힘든 임진강이 한동안 이어진다. 그 길을 약 20km 가다보면 철조망이 없는 임진강변에 고구려 시대의 호로고루가 자리하고 있다. DMZ와 민북지역을 구별하지 않고 생각(말)하는 시대의 오류를 지적하며 저자는 한국사회는 중립 수역의 존재와 성격을 잊거나 모르고 지내고 있다고 덧붙인다.

 

문제는 한강 하구 즉 중립수역은 남북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물길인데 이를 비무장지대로 생각하는 오류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립수역은 파주 탄현면 만우리에서 강화 서도면 말도에 이르는 67km의 물길이다. 휴전선과 DMZ는 육지에만 있고 중립수역에는 없다. 저자는 한강 하구와 임진강 하류 중립 수역이라 부르자고 말한다.

 

저자는 통제(統制)는 금지의 의미가 아님을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통제는 제한하거나 제약하는 것이다. 저자는 민통선 이전 명칭이 있음을 말한다. 귀농선(歸農線)이다. 국가와 군대의 통제 속에서 귀농선과 민통선, 그리고 민북 지역의 역사는 다양했고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은 다채롭다. 저자는 자유로 임진강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보되면 일제강점기 연천 고랑포의 화신 백화점으로 가던 뱃길이 그려질 것이라 말한다.(169 페이지)

 

북한과 남한은 한강 하구와 임진강 하류를 함께 뱃길로 이용하지 않고 살아왔다. 저자는 임진강 하류와 더불어 중립 수역인 한강하구에 꾸준히 갈 것을 다짐한다고 말한다. 자유로 한강과 임진강의 철조망 모양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민통선이 어떤 방식으로 점차 북상하는지, DMZ 안과 밖에서 일상의 삶은 어떻게 깊어가는지, 임진강 하류는 중립 수역으로 인식되는지를 놓치지 않고 남기고자 노력할 것이라 말한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연구하기 시작한 뒤 임진강과 한강을 연구하게 된 저자의 책을 흥미 있게 읽었다. 내가 사는 곳을 흐르는 임진강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임진강 하류와 더불어 중립 수역인 한강하구에 꾸준히 갈 것을 다짐한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임진강, 한탄강을 자주 갈 것을 다짐한다고 말한다.

 

파주 옆 연천의 민통선을 넘어가“귀하는 지금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관할하는 비무장지대로 진입(접근)하고 있는 중임”이라는 간판을 보았다는 저자의 말에 나는 임진강평화습지원을 찾아가는 길에 그 문구를 보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많이 배운 책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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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요* 형제를 둔 분께 휘는 빛날 휘(輝), 요는 빛날 요(耀) 즉 빛 광(光)이 공통으로 들어가도록 맞추신 것인가요? 라고 물으니 휘는 맞지만 요는 요임금 요(堯)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빛날 요로 할 것을 그랬나 봐요‘라고 웃으신다. 요(堯)는 미수 허목 선생께서 가장 높이 인정한 요순(堯舜)의 치도 가운데 한 축을 이루는 요임금을 말한다. 요순의 치도를 다른 말로 3분(墳) 5전(典)이라 한다. 3분은 3황의 책을, 5전은 5제의 책이다. 다시 말해 3분5전이란 3황5제의 책을 말한다. 모종의 프로젝트를 위해 애쓰는 가운데 그 안에 포함된 미수 허목 선생에 대해 필요한 글을 참고하다가 이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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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서 새로운 발견을 알리는 가장 신나는 표현은 유레카(찾았다)가 아니라 그거 재미 있네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말이라고 한다. 오래 전 제논의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을 명쾌하게 설명해준 아시모프의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요 며칠 자료를 찾느라 애쓰다 보니 아시모프의 말이 그럴 듯 하게 들린다.

 

자료를 찾는 데 필요한 것은 지구력, 도움이 되지 않을 것들을 걸러내는 지혜와 찾은 것들을 연결지어 유용한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인터넷에서 찾을 때는 검색어를 어떻게 설정하는가도 중요하다. 아시모프의 말을 염두에 두고 말하자면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의외의 성과를 수확하기도 하는 자료 찾기의 장(場)은 재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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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줄로 된 여헌 장현광 선생의 시 마지막 단어들이 모두 물 수변을 쓰는 단어라는 점에 놀란 적이 있다. 뜰 부(浮), 물굽이 만(灣), 젖을 함(涵), 여울 탄(灘) 등이 그 글자들이다. 전형필 선생의 호인 간송(澗松)에도 물 수변이 들어 있다. 깊은 산속의 물과 세한도의 송을 더한 말이다. 그럼 수풀 삼(森)에 물 수변이 더해지면 어떤 글자가 될까? 물 흐르는 소리 준/ 물 흐를 준(潹)이란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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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강 서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임진강(臨津江)과 두 글자나 같은 임강(臨江) 서원은 옛 경기도 장단군 북면에 있던 서원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갑니다. 고랑포리에서 경순왕릉을 지나 서편으로 들어가면 도로 우측으로 완만한 경사면에 있는 임강서원지(臨江書院址)에 이르게 된다는 설명이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민통선 지역이라는 점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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