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의미하는 방배동 서초대로의 초기 불교 수행 센터 제따와나(jetavana) 선원(禪院)에 한 번 갔다. 윤종국 교수의 ‘시공간 속의 생멸과 현대물리학' 강연을 들으러 갔던 것으로 지난 2009년 여름의 일이다. 불교 사찰에서는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이 강연은 2009년 6월 선원 개원 기념으로 개최한 강연이었다. 불교가 수학 또는 물리학과 연관이 큰 종교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하겠다.

 

그 강연 이후 제따와나에 가지 못한 것은 수행보다 이론을 좋아하는 내가 걷게 된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기원정사는 부처께서 가장 오래 설법을 한 곳이고 당시 최대의 불교 사찰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금요일 서초구 방배동 효령로(孝寧路)의 한 빌딩에 가는 길에 주택가에 자리한 그 선원을 보았다. 장소를 옮긴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곳인 줄은 몰랐다.

효령로는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묘(墓)와 사당인 청권사(淸權祠)가 있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서초대로 세일빌딩에 있을 때는 공간적으로 여유가 꽤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난 금요일 본 제따와나는 공간적 여유가 부족해 보였다. 제따와나는 제따 숲을 의미하지만 나에게는 ’제따’ and ’나(我)‘로 들린다.

 

방배동이란 이름은 우면산(牛眠山; 서울 서초구, 경기도 과천시 경계에 있는 293m 높이의 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라는 뜻에서 방배라고도 하고 마을 북쪽에 흐르는 한강을 등진 모서리라는 뜻에서 방배라고도 한다.

 

방(方)이란 단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란 뜻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이란 단어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종묘(宗廟), 사직(社稷) 등이 있지만 천자의 나라를 자처한 중국은 종묘와 사직 외에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단인 환구(圜丘)와 땅에 제사지내는 제단인 방택(方澤)이 더 있었다.

 

위계 서열로는 환구, 방택, 종묘, 사직 순이다. 우리의 경우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을 두었다. 물론 고려 시대에도 있었다.(환구단은 원구단圜丘壇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환구단은 일본에 의해 파괴되었다. 1996년 우리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그 이후 경복궁을 복원했지만 궁궐 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환구단은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직이 임금과 혈연적으로 연결된 왕실 선조들을 대상으로 한 사적(私的)인 성격을 갖는 종묘보다 더 중요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종묘가 더 중시된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일까?(인간은 땅이 없으면 거처할 수 없고 곡식이 없으면 굶어죽는다.)

 

환구(圜丘..환圜은 두를 환, 둥글 원자이다.)는 서열상 가장 높지만 하늘의 후손이란 개념 규정이 애매해 환구단이 복원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방(方)은 방편이란 말을 생각하게 한다. 차제설법(次第說法), 대기설법(對機說法) 등과 맥락이 같다. 듣는 사람의 내공이나 수준에 맞게 비유를 들어 설법하는 것을 이른다.

 

비유 없이 설법(또는 설명)할 수 없기에 비유 또는 은유(隱喩)는 양(量)이 많고 적고의 문제이다.

 

얼마 전 사찰 음식 전문 식당인 마지가 방배동에서 종로구 자하문로로 옮겨왔다. 내 주요 유행처(遊行處)인 종로 입성(入城)이 반갑다. 제따와나도 그렇게 된다면 참 좋겠다. 영약(靈藥)과 신단(神丹)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maghi에서 유래한 마지(摩旨.. 갈 마, 맛있을 지)에서는 불교 강연과 행사도 열리니 금상첨화이다.

 

궁궐, 박물관, 서점, 미술관,도서관 등 종로에 자리한 나의 유행처(遊行處)가 한결 알차졌음을 감사한다.(유행遊行은 각처로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불교 용어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행遊行은 만행萬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아, 부지런히 배워야 하는 나...열매는 먹기 좋은 것이기에 앞서 思惟하기에 좋은 것이라 말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사숙(私淑) 제자인 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2년 서른 여섯의 나이로 타계한 시인 여림. 나는 1999년 신춘문예 당선 시인인 그를 이름으로 알지 못한 대신 가끔 그의 시를 알았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최측의 농간(출판사)에서 보내준 그의 유고 시집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에 수록된 한 편의 시 때문인데 그것은 ‘1999년 2월 3일 아침 0시 40분’이란 시이다.

2월 3일이면 신춘문예 당선 이후겠는데 이 시에서 시인은 “...힘이 든다/ 여지껏 시와 내가 지녀왔던 경계심, 혹은 긴장감들이/ 한꺼번에 용해되면서 나는 밤낮으로 죽지 않을 만큼만 술/을 먹었고 그 술에 아팠다/ 생각해 보라/ 35년을 아니, 거기에서 10년을 뺀 나머지의 생애를 한/ 사람이 시로 인해서 피폐해 갔다”는 말을 한다.

신춘문예 당선으로 경계심 또는 긴장감이 용해되는 것은 어떤 류(類)의 것일까? 어떻든 ‘1999년 2월 3일 아침 0시 40분’이란 시는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의 한 구절을 생각하게 한다.

“....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란 구절이 있는 윤동주 시인의 시.

시대가 다르고 고뇌의 성격이 다르지만 아픔은 아픔이라 말하는 것은 굳이 두 시에 모두 나이를 지칭하는 숫자(이십사 년 일 개월 vs 35년, 거기에서 10년을 뺀 나머지의 생애)가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말하자면 여림 시인의 법랍(法臘: 원래 뜻은 출가하여 승려가 된 해부터 세는 나이) 즉 (대부분) 무명 시인으로, 그리고 신춘문예 당선으로 맞은 짧은 환희를 맛본 시인으로서의 삶은 25년인 셈이다.

어제 나는 폭염 속에서 국립중앙도서관으로, 경복궁으로, 정독도서관으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걷기의 양이 갑자기 늘어 지치고 아픈 가운데 중요한 서류작업을 위해 간 정독행은 헛걸음이 되고 말았다. 일정을 확인하지 않은 탓이다.

어제의 헛걸음으로 나는 여림 시인의 절망을 잠시 내 것인 듯 여겼다. 나이도 다르고 등정(登程: 오르는 길)도 다르고 등정(登頂)도 경험하지 못한 나의 오만이 부끄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완전 채식주의(비건) 시인이신 김** 님의 페북에 완전 채식 케익 사진이 올라와 일반 케익은 너무 단데 비건 케익은 어떤가, 하는 물음을 달고 코코넛 밀크나 두유, 유기농 설탕이 듬뿍 든 당근 케익으로 포근하고 달달해도 커피와 먹으면 뇌에서 엔돌핀이 솟아나지만 살이 찌는 문제가 있다는 답을 들었다.

흑인 페미니스트 사상가인 벨 훅스는 지식이란 학생들이 먹는 영양가 높고 크림이 잔뜩 묻은 푸딩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지만 지식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꼭 즐겁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176, 177 페이지)

그래서인지 훅스는 즐겁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그가 가르침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까닭은 교수와 학생이 가르침과 배움, 수업에 대해 참을 수 없게 지루해 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이다.(같은 책 17 페이지)

물리학 교수 월터 르윈은 물리학을 지루하게 만드는 교사는 범죄자라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에서 한 말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진도를 나가는 것(cover)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내는 것(uncover)이라는 말이다.

르윈 교수는 자신이 전기와 자기가 서로 소통하는 아름다운 방정식인 맥스웰 방정식을 설명하며 보인 파격에 대해 말한다.

강의실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에 방정식을 비춘 뒤 그 의미를 설명한 사실을 말하며 르윈은 몇 해가 지나면 학생들은 맥스웰 방정식의 자세한 내용은 잊지만 자신이 강의 시간에 지적 성취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수선화를 나누어 준 아름다운 추억은 기억하고 졸업 후에도 편지를 보내오곤 한다고 덧붙인다.

르윈 교수는 학생들이 스크린에 쓰인 방정식을 기억하는 것보다 그들이 본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는 학생들이 물리를 사랑하고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말한다. 감동적이다. 르윈 교수가 갑자기 내 롤 모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한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저도 오늘 드디어(?) 카카오 뱅크 계좌를 만들고 체크카드까지 신청했습니다. 붐을 보고 한 덩달이 같은 행동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3333 - 01 - *******라는 계좌 번호를 받아드니 기분이 묘합니다.

신원 확인을 위해 카카오 뱅크가 제 다른 계좌에 1원을 입금할 때 보낸 사람 이름으로 설정한 것을 확인창에 입력해야 하는 절차에서 제게 할당된 것은 멋진 수국이었습니다.

카카오 뱅크가 제가 수국을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혹시 모든 사람이 그런 입금자명으로 돈을 받는 시스템은 아니겠지요?

갈고 닦는 것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한문 사전을 보고 연(硏), 탁(琢), 마(磨),차(磋) 등이 모두 그런 의미를 지닌 단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라는 말에서의 연, 절차탁마라는 말에서의 마와 차, 탁 등인 것입니다. 혹시 다른 단어가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어제 방배동 효령로의 한 빌딩에 다녀왔습니다. 방배동에 있다가 종로 서촌으로 자리를 옮긴 사찰 전문 음식점인 마지(摩旨)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磨)처럼 마(摩)도 갈고 닦는 것, 문지르는 것, 닿다, 쓰다듬다 등을 뜻하네요. 그리고 지(旨)는 뜻 지이기도 하고 맛있을 지이기도 합니다.

마(磨)에는 갈고 닦는다는 의미, 문지르다는 의미, 연자매의 의미가 있네요.

수국 이야기도 그렇고 마 이야기도 그런데 칼 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동시성을 운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잉해석일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호선 전철의 최북단 역인 소요산역 가는 버스 안. 북위 38도선 기념비 가까운 곳의 한탄강 정류장에서 한 여자 분 탑승.

단말기에 교통 카드를 태그하지 않고 잠깐만요란 말과 함께 놓고 내린 우산을 찾으러 왔다는 말을 하고 버스에 올라 곧바로 우산을 찾아 들고 내린다.
우산을 놓고 내린 것을 알고 바로 택시를 타 버스를 앞지른 뒤 한탄강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던 듯.
가볍게 미소지을 상황임에 분명한 일이어서 나는 그 마음이 이해된다는 의미를 담은 웃음 소리를 냈다.

그 여자 분은 우산 때문에요? 란 기사의 말에 중요한 물건이라서요란 답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이어서였겠지만 스마트폰이나 귀한 가방 같은 물건들을 잃어버리고도 찾지 않는 사람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그 분은 신문 기사를 통해 알려지는 것처럼 천이 찢어지거나 살이 부러지거나 펴지지 않는 우산을 수리 센터에 맡겨 고쳐 쓰는 사람들의 부류일 것이다.

나는 천 원짜리 펜을 잃어버려도 누군가와 헤어진 듯 마음이 스산하기만 하다. 그런 내게 그 여자분은 정이 많은 사람으로까지 보인다.

이상은 어제 있었던 일이고 상념이었다. 비는 내리지 않아 좋았지만 많이 내릴 거라는 예보를 따라 경복궁 리허설을 월요일로 연기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서울 가는 길의 평안함이 서울에서는 사라지는 것이 이제 낯설지 않다. 그래도 바쁘고 여유 없는 가운데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은 최고의 피서라 할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