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연 이후 제따와나에 가지 못한 것은 수행보다 이론을 좋아하는 내가 걷게 된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기원정사는 부처께서 가장 오래 설법을 한 곳이고 당시 최대의 불교 사찰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금요일 서초구 방배동 효령로(孝寧路)의 한 빌딩에 가는 길에 주택가에 자리한 그 선원을 보았다. 장소를 옮긴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곳인 줄은 몰랐다.
효령로는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묘(墓)와 사당인 청권사(淸權祠)가 있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서초대로 세일빌딩에 있을 때는 공간적으로 여유가 꽤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난 금요일 본 제따와나는 공간적 여유가 부족해 보였다. 제따와나는 제따 숲을 의미하지만 나에게는 ’제따’ and ’나(我)‘로 들린다.
방배동이란 이름은 우면산(牛眠山; 서울 서초구, 경기도 과천시 경계에 있는 293m 높이의 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라는 뜻에서 방배라고도 하고 마을 북쪽에 흐르는 한강을 등진 모서리라는 뜻에서 방배라고도 한다.
방(方)이란 단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란 뜻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이란 단어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종묘(宗廟), 사직(社稷) 등이 있지만 천자의 나라를 자처한 중국은 종묘와 사직 외에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단인 환구(圜丘)와 땅에 제사지내는 제단인 방택(方澤)이 더 있었다.
위계 서열로는 환구, 방택, 종묘, 사직 순이다. 우리의 경우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을 두었다. 물론 고려 시대에도 있었다.(환구단은 원구단圜丘壇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환구단은 일본에 의해 파괴되었다. 1996년 우리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그 이후 경복궁을 복원했지만 궁궐 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환구단은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직이 임금과 혈연적으로 연결된 왕실 선조들을 대상으로 한 사적(私的)인 성격을 갖는 종묘보다 더 중요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종묘가 더 중시된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일까?(인간은 땅이 없으면 거처할 수 없고 곡식이 없으면 굶어죽는다.)
환구(圜丘..환圜은 두를 환, 둥글 원자이다.)는 서열상 가장 높지만 하늘의 후손이란 개념 규정이 애매해 환구단이 복원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방(方)은 방편이란 말을 생각하게 한다. 차제설법(次第說法), 대기설법(對機說法) 등과 맥락이 같다. 듣는 사람의 내공이나 수준에 맞게 비유를 들어 설법하는 것을 이른다.
비유 없이 설법(또는 설명)할 수 없기에 비유 또는 은유(隱喩)는 양(量)이 많고 적고의 문제이다.
얼마 전 사찰 음식 전문 식당인 마지가 방배동에서 종로구 자하문로로 옮겨왔다. 내 주요 유행처(遊行處)인 종로 입성(入城)이 반갑다. 제따와나도 그렇게 된다면 참 좋겠다. 영약(靈藥)과 신단(神丹)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maghi에서 유래한 마지(摩旨.. 갈 마, 맛있을 지)에서는 불교 강연과 행사도 열리니 금상첨화이다.
궁궐, 박물관, 서점, 미술관,도서관 등 종로에 자리한 나의 유행처(遊行處)가 한결 알차졌음을 감사한다.(유행遊行은 각처로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불교 용어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행遊行은 만행萬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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