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영혼을 깨우는 여행의 기술
롤프 포츠 지음, 강주헌 옮김 / 넥서스BOOKS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던 대학 후배가 있었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대개 전공의 과정을 밟고 전문의가 되어 병원에서 근무하거나 개업하거나 하는 코스를 따라가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언젠가 만난 이 친구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받은 월급을 모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좋은 생각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평생 일해야 하는 병원에 붙들리기 전에 세상을 두루 돌아본다는 생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작에 읽었더라면 이 친구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은 책을 만났습니다. 롤프 포츠가 쓴 <여해의 기술>입니다. 정원사로 일하고 검소한 생활을 통하여 모은 돈으로 떠나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자는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배거본드(vagabond)라는 단어에서 “질서있는 세계를 떠나 크게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하는 여행을 의미를 담은 ‘배거본딩’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저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에드 버린이라는 사람이 혼자 여행할 때 겪는 어려움과 즐거움, 그리고 철학을 차분하고 통찰력있게 담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의 배가본딩>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고서 낙담보다는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는 저자의 고백을 읽으면서 ‘정말 그랬을까’ 싶었습니다.

 

이 책의 목차를 읽으면 바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1부 배거본딩’은 바로 ‘자유인이라 선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부 떠나라’에서는 자유를 벌려면 항상 단순하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부 길에서’는 여행길에 한계는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여행길에서 만나는 이웃들과 관계는 어떻게 맺는 것이 좋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4부 길고 긴 여행’은 이렇게 떠나는 여행은 길고도 먼 것이기 때문에 순간에 충실하며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에 옮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부 집으로’에서는 여행의 끝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여행을 통하여 얻은 모든 것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훌쩍 떠나는 여행을 권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계획을 세우는 즐거움이 있다는 점을 빠트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했던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여행을 떠날 때마다 보고 싶은 곳들을 하루 일정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하고 도면에서 이동하는 연습까지 해보는 준비작업을 거쳐서 현지에서 이것들을 확인하는 일이 또다른 즐거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찰리와 함께 한 여행>에서 “우리가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물을 꾸려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새로운 변수가 끼어들어 여행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여행, 사파리, 탐험 등은 그 자체로 독립된 존재다.(70쪽)”라고 했다는 존 스타인백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계획이 치밀해도 막상 현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상황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계획은 임기응변의 여지를 두어 탄력적으로 세워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저자는 ‘이상하게도 누구나 찾아가는 코스에서 벗어나려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115쪽)’고 했습니다. 물론 직접 계획을 세운 저는 미리 계획된 코스를 변경한 적은 없습니다만, 제가 짜준 여행계획을 들고 여행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계획대로 움직인 사람은 하나도 없었더라는 것입니다.

 

글 매듭마다 배거본딩에 필요한 팁을 요약하고 있어 자유로운 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게 유용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팁들은 저자가 붙여둔 것이라기보다는 편집자가 붙여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배거본딩을 경험한 선배들의 짧은 조언에서도 참고할 것들이 많습니다. 아직까지 자유여행을 꿈꾸어보지 못한 저로서는 이런 여행이 가능할까 싶으면서도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웰컴 투 지구별 웰컴 투 지구별
로버트 슈워츠 지음, 황근하 옮김 / 샨티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부정하는 단계, 왜 자신의 운명에 분노하는 단계, 그래도 운명을 피할 길은 없는지 타협하는 단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절망하는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수용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죽음을 맞는 사람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상실수업; http://blog.joinsmsn.com/yang412/9264552), 마찬가지로 살면서 부딪히는 장애, 병, 불의의 사고와 같이 절망스러운 상황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통하여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시련에 맞서지 못하고 삶을 접어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합니다.

 

<웰컴 투 지구별>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시련을 극복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에이즈, 유방암을 앓게 된 환자, 장애아를 가진 어머니와 장애를 가진 환자, 약물중독인 아들을 가진 어머니와 딸, 사랑하는 이와 사별한 사람, 그리고 생각도 못한 사고로 평생 장애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에 닥친 시련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이들은 모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시련을 겪기로 예정된 삶을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영적성숙을 얻기 위하여 시련을 당하는 삶을 선택하였다는 것인데, 심지어는 시련을 안기는 사람 역시 영혼들의 사전협의를 통하여 역할을 담당하기로 동의하였다는 주장이고 보면 솔직하게 공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현재 시련을 당하고 자신의 시련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겠다 싶기는 합니다.

 

이 책에서는 영혼과 영매 그리고 채널러라는 존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혼들은 저자가 특정하지 않은 방에 모여 환생하게 되는 영혼의 삶을 계획하는데 참여한다고 합니다. 현세에서 부모, 자녀의 역할을 각각 맡게 되는데 심지어는 환생하는 영혼을 현세에서 살해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영매와 채널러는 다양한 존재들과 소통하는데 그 안에는 길잡이 영혼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길잡이 영혼은 대부분 육체의 윤회를 수차례 이상 경험한, 고도로 진화된 비물질적 존재로, 이러한 윤회를 통하여 얻은 깊은 지혜로 물질계에서 일반영혼들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에 대한 저자의 인식이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모호하기는 합니다. 영혼이 불멸의 존재가 될 때까지 다시 태어나며 꼭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불교의 윤회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영매 코비가 장애인 아들을 돌보는 제니퍼에 관한 세션을 시작하면서 드리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보면 기독교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주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신 하느님, 오늘 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마련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당신의 조건 없는 사랑과 보호하심, 긍휼히 여기심, 그리고 지혜와 진실의 빛으로 저희를 감싸주소서. 진실을 말하고 진실만을 듣게 하여주소서.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96쪽)”

 

뿐만 아니라 끈이 중심점에 연결되어 있는 여러 개의 차원에서 환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은 우주생성에 관한 끈이론을 연상케 합니다. 영혼이 정신이나 몸이 겪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데, 점성학에서는 한 사람의 성격과 소질, 신체적 특성을 별자리를 보고 파악하기도 하고, 한 사람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세포정보, 즉 DNA의 전달이라고 하는 점에 이르면 현대 종교와 과학을 아우르는 독특한 이론이다 싶습니다.

 

생전에 계획된 삶은 경우에 따라서 현세에서 부딪히는 상황에 따라서 새로운 계획으로 변경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시련을 겪는 영혼을 돌보는 길잡이 영혼을 비롯하여 관련된 영혼들이 삶의 계획을 새롭게 세우게 된다고 합니다. 시련을 겪는 사람들이 때로는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가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화는 에너지라고 합니다. 그 에너지를 자신을 향해 내뿜지 말고, 스스로를 단련하고 시각화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진정한 영혼의 성장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시련이란 영혼이 자기 주변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선택한 삶인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
에란 카츠 지음, 김현정 옮김 / 민음인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놀랄만한 기억력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에란 카츠는 전해 내려오는 유대인의 두뇌 계발법을 바탕으로 쓴 <천제가 된 제롬>의 성공을 바탕으로 한 기억력 강화와 두뇌 계발 비법을 주제로 한 강연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은 유대인의 지혜를 널리 알려온 그의 활동이 전환점을 맞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유대문화와 아시아문화를 접목하여 독특한 두뇌 계발 비법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 인도, 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5개국의 전통문화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어려운 상황을 수습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원치 않는 기억, 필요 없는 정보를 지우고 더 나은 기억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능력, 망각의 선물을 찾아냈습니다. 인도에서는 실수를 방지하고 의사 결정을 개선하는 법, 안전하다는 믿음이 주는 선물을 찾아냈고, 태국에서는 자제력을 발휘하고 압박감에서 벗어나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법, 욕망 관리의 선물을 찾아냈습니다. 중국에서는 중국인의 지혜가 담긴 5단계 비즈니스 전술과 유대인의 비결을 비교한 설득의 선물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에서는 완벽한 감탄의 순간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일본의 신경미학 법칙, 미의 선물을 찾아내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가 찾아낸 뇌가 가진 잠재적 능력을 극대화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잘 활용하면 우리가 극복하기 힘든 어떤 삶의 문제도 해결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자기계발서로 분류된다는 점에 동의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야기의 구조를 보면 오히려 미스터리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인공 제롬이 “인간에게는 숨겨진 능력, 평소에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두뇌의 숨겨진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16쪽)‘을 제안하는 ‘아시아 학생’의 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미선이라는 한국계 제자와 함께 이 미스터리를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인도에서는 사업을 같이 하던 형을 잃은 산토쉬 쿠마르씨의 도움으로, 태국에서는 승려 아잔 사와트의 도움으로, 그리고 중국에서는 사업가 리한의 도움으로, 마지막으로 일본에서는 예술가 후미코 야마다의 도움으로 각각 두뇌의 잠재적 능력을 끌어내는 방법을 도출하게 됩니다. 미선은 제롬교수를 동행하여 과제를 풀고 졍리하는 역할을 하는데, 마지막 일본으로 가는 일정은 제롬교수 혼자서 맡게 됩니다. 그래서 미학의 선물을 강화하는 방법은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방법을 정리하는 역할은 독자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을 찾아가는 미스터리로 가득한 여행은 시작부터 읽는 이를 추리의 세계로 안내하며 사건의 전후를 꿰어 맞출 힌트를 조금씩 내놓습니다만 결국은 한국전쟁이 사건을 잉태하는 계기가 되고 마지막으로 문제를 해결할 장소는 북한의 수용소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주요 5개국에 더하여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호주에 이르기까지 흩어져 있는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미스터리 소설로도 손색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한국독자로서 특히 반갑고 감사하게 읽었던 것은 한국에서 발명한 금속활자가 구텐베르그보다 앞섰다는 점을 분명하게 한 점, 망각의 선물을 설명하기 위하여 다양한 우리 고문화를 인용하고 있는 점입니다. 특히 신라의 월명사의 제망매가, 고려시대 불교 계파간의 갈등을 통합한 보조국사 지눌, 한글을 창제하고 이의 반포를 반대하는 훈구대신을 설득한 세종대왕 그리고 마테오 리치를 통하여 기독교 복음서를 전해 받은 이수광 등 다른 나라에 비하여 돋보이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아마도 한국에 대한 저자의 특별한 관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은 서문에서도 읽힙니다. “아시아, 그중에서도 특히 나의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놀라운 나라이자 이스라엘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한국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때가 된 듯하다.(8쪽)”

 

아쉬운 점은 최근 일본이 보이는 안타까운 행보가 책에 반영되지 못한 점이라고 할까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이 바로 용서의 힘’이고 그게 바로 한 국가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척도‘라고 본 저자는 한국인들이 한국을 괴롭힌 일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에 감동하고 원자폭탄을 피해를 입은 일본도 같은 길을 걸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이 저지른 온갖 만행을 참회하기를 거부하는 일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철학 콘서트
홍승기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다음 국어사전에는 철학에 대하여 두 가지 설명을 붙였습니다. 먼저 두 번째 것을 보면, ‘자기 자신의 경험 등에서 얻어진 세계관이나 인생관.’이라 했으니 일반화할 수는 없더라도 개인에게는 중요한 삶의 줄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철학의 첫 번째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인생관, 세계관 따위를 탐구하는 학문. 원래 진리 인식(眞理認識)의 학문 일반을 가리켰으나, 중세에는 종교가, 근세에는 과학이 독립하였다.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미학 등의 하위 부문이 있다.’ 앞서 말씀드렸던 설명을 일반화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삶의 줄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철학’하면 서양의 학문인 것처럼 생각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고유의 철학을 일반에 널리 알려 소개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노력이 부족한 반면 해방후 교육제도에 서양의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서양철학이 어느 사이 주류학문으로 자리 잡게 된 탓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 철학 콘서트>의 저자 홍승기님이 책서문에서 “서양 철학에서 쓰이는 정신이나 물질 같은 용어는 뭔가 손에 잡히는 느낌, 그래서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는 느낌을 주지만, 한국 철학의 이(理) 나 기(氣) 등은 그 뜻을 헤아리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일 같다는 막연한 생각과 특히 조선 후반에 우리 사회를 병들게 했던 당쟁의 빌미가 되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는 부정적인 생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홍승기님은 우리나라에도 엄연히 철학이 있어왔고, 그것은 서양 철학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현실과 세상사에 대한 치열한 사유의 결과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철학이 무엇인지 공부를 시작한 입장에서는 전체의 줄거리를 관통하여 개념을 정리할 수 있는 책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홍승기님의 <한국 철학 콘서트>는 좋은 텍스트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가 한국철학의 새벽을 열었다고 평가한 원효대사로부터 참된 믿음으로 시대의 양심을 피워 냈다고 평가한 함석헌목사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이름을 알만한 스물한분의 사상을 정리하여 묶은 것이 <한국 철학 콘서트>라고 했습니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임성주와 최한기는 제가 잘 모르는 분이었는데, 저자께서 정리한 내용을 읽으면서 이분들이 주목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근대 이후의 인물들 가운데는 선정하신 까닭이 어디에 있는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선정된 인물의 성장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사상의 줄거리를 요약소개한 다음에 글의 말미에는 사상의 핵심이 되는 저술의 일부를 붙여서 독자들이 생각해볼 여유를 만들어주고 있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여기 실린 분들의 사상을 모두 언급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제의 생각을 새롭게 한 몇 부분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먼저 이규보(1168-1241)가 쓴 <문조물(問造物)>의 한 부분입니다. “사람과 사물이 생겨남은 원인을 알 수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라 하늘도 알지 못하고 조물주인 나도 알지 못한다. 사람은 스스로 태어나지 하늘이 내지 않는다. 곡식과 뽕나무, 삼나무도 자기 스스로 생겨났다.(61쪽)”서양에서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던 시절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획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물은 스스로 생겨나서 스스로 변화한다.”는 이규보의 물자생자화(物自生自化)의 철학은 고려초 ‘모든 사람의 마음은 하나다. 마음의 수양을 잘 하면 살아가는 동안에도 부처의 세계에 살고, 죽어서도 불교의 천당인 극락세계에 간다.’는 의천의 마음을 중요시 하는 철학으로부터 현실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철학사상의 일대 혁신을 가져온 것이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근대서양과학이 증명한 우주의 시원과 생물의 진화 등에 관한 기본원리에 해당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理)와 기(氣)의 근본을 두고 유학자들 간의 논쟁의 꼬투리를 만들어낸 서경덕과 이황의 사상은 그렇다고 쳐도 이(理)와 기(氣)의 관계를 완성하였다는 최한기의 인식론적 사유가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한기가 쓴 <기측체위>의 서문입니다. “기(氣)는 진실한 이(理)의 근본이고, 츠측은 앎을 넗히는 요체이다. 이 기에 근거하지 않으면 탐구하는 것이 모두 허망하고 괴이한 이가 된다. 추측을 통하지 않으며 앎의 근거가 없어져 증명하지 못할 말이 될 뿐이다.(419쪽)” 서양의 인식론과 비교하여 당당하다는 생각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의 기술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카트린 파시히.알렉스 숄츠 지음, 이미선 옮김 / 김영사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때입니다.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가 사는 정읍으로 놀러갔습니다. 이튿날 아침 세 사람이서 내장사에 올라갔는데, 내장사 못미처에 있는 폭포를 구경하다가 백양사를 먼저 보기로 한 것입니다. 당연히 백양사로 넘어가는 길을 찾아갔어야 하는데, 폭포 옆 절벽을 따라 올라 산등성이를 타고 가기로 한 것입니다. 요즘처럼 내비게이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며, 정읍친구도 그길로 백양사에 가본 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절벽 위로 올라서 내장사로 가는 계곡을 굽어보면서 산등성이를 타고 걷기 시작했지만, 이내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기 시작한 것입니다. 태양을 방향삼아 산꾼이 다닌듯한 오솔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해 걷다가 냇물을 발견하고서는 냇물을 따라 걸어 내려갔습니다. 하루 온종일을 걸어 내려간 끝에 인가를 만나고 결국은 백양사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한참을 기운 다음이었습니다. 장성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가 기차로 정읍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캄캄한 저녁이 되었습니다.

 

아마 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저지른 황당사건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저질러봐야 생각지 못한 구경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카트린 파시히와 알렉스 숄츠가 같이 쓴 <여행의 기술>입니다. 저자들은 ‘들어가는 말’에 책을 쓴 의도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길을 잃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것은 길을 잃은 상황을 스스로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 다는 것입니다. 실수로 길을 잃어버릴 일이 없어지면 의도적으로 길을 잃는 것이 흥미로워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길을 잃는 것이 시간을 절약해준다거나, 훨씬 경제적이라거나, 휴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거나와 같은 저자들의 주장은 별로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을 잃어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길을 잃어봐야 한다고 전제를 하고는 있지만, 사실 이 책의 내용을 길을 잃었을 때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읽어가다 보면 저자들의 의도가 읽히는 부분을 만나게 됩니다. “이 책을 여행기로 채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초보자가 길을 잃었을 때 어떤 정신 상태를 갖고자 노력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서술하는 것이 중요하다.(195쪽)”고 적은 부분입니다. 그런 방법들 가운데 반드시 기억해야 할 구절은 “자연과 합일이 되고 패닉에 빠지지 않는 한, 자연은 너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128쪽)”라고 생각합니다. 길을 잃었을 때에는 보수적으로 행동하기, 걱정하기, 일찍 되돌아가기와 같은 것들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변을 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풍경은 절대로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괴테가 1829년에 쓴 <이탈리아 여행>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작은 시냇물에서 시작해서 이것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떤 강의 지류에 속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이 지역을 파악했다. 그리고 자연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산과 계곡은 그냥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132쪽)” 앞서 내장산에서 길을 찾아 헤매던 저의 경험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 더 제가 콜로라도 국립공원을 따라 운전할 때 황당했던 경우가 이해되는 구절도 있습니다. “옛날 통상로를 만들기 위해 길 방향을 정할 때, 발이 젖지 않을 것, 짐마차의 바퀴가 진흙에 빠지지 않을 것 등이 중요 조건이었다. 이런 길들은 보통 건조한 산등성이를 따라 나거나, 비탈과 평행을 이루며 뻗어 있다. 강을 건너지 않고는 길을 계속 갈 수 없는 상황이거나 목적지가 근처에 있을 때 길은 계곡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133쪽)”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제가 만났던 황당한 경우를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자들이 이 책에 숨겨둔 비밀이 있습니다. 나오는 글에 적어 둔 삶을 살아가는 방법 혹은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입니다. “어쩌다가 길을 잃었을 때, 가끔 한 지역을 비껴가는 대신 훨씬 재미있는 다른 지역에 도착하는 것처럼, 학문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질문에 대답하는 도중에 뭔가 새로운 다른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249쪽)”는 구절이 바로 힌트입니다. 그러면서도 길잃기는 제대로 된 생존방식이 아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실제의 주변환경과 환경에 대한 생각이 서로 일치해야만 사람들은 생존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찾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