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학 콘서트
홍승기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다음 국어사전에는 철학에 대하여 두 가지 설명을 붙였습니다. 먼저 두 번째 것을 보면, ‘자기 자신의 경험 등에서 얻어진 세계관이나 인생관.’이라 했으니 일반화할 수는 없더라도 개인에게는 중요한 삶의 줄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철학의 첫 번째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인생관, 세계관 따위를 탐구하는 학문. 원래 진리 인식(眞理認識)의 학문 일반을 가리켰으나, 중세에는 종교가, 근세에는 과학이 독립하였다.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미학 등의 하위 부문이 있다.’ 앞서 말씀드렸던 설명을 일반화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삶의 줄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철학’하면 서양의 학문인 것처럼 생각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고유의 철학을 일반에 널리 알려 소개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노력이 부족한 반면 해방후 교육제도에 서양의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서양철학이 어느 사이 주류학문으로 자리 잡게 된 탓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 철학 콘서트>의 저자 홍승기님이 책서문에서 “서양 철학에서 쓰이는 정신이나 물질 같은 용어는 뭔가 손에 잡히는 느낌, 그래서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는 느낌을 주지만, 한국 철학의 이(理) 나 기(氣) 등은 그 뜻을 헤아리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일 같다는 막연한 생각과 특히 조선 후반에 우리 사회를 병들게 했던 당쟁의 빌미가 되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는 부정적인 생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홍승기님은 우리나라에도 엄연히 철학이 있어왔고, 그것은 서양 철학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현실과 세상사에 대한 치열한 사유의 결과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철학이 무엇인지 공부를 시작한 입장에서는 전체의 줄거리를 관통하여 개념을 정리할 수 있는 책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홍승기님의 <한국 철학 콘서트>는 좋은 텍스트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가 한국철학의 새벽을 열었다고 평가한 원효대사로부터 참된 믿음으로 시대의 양심을 피워 냈다고 평가한 함석헌목사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이름을 알만한 스물한분의 사상을 정리하여 묶은 것이 <한국 철학 콘서트>라고 했습니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임성주와 최한기는 제가 잘 모르는 분이었는데, 저자께서 정리한 내용을 읽으면서 이분들이 주목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근대 이후의 인물들 가운데는 선정하신 까닭이 어디에 있는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선정된 인물의 성장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사상의 줄거리를 요약소개한 다음에 글의 말미에는 사상의 핵심이 되는 저술의 일부를 붙여서 독자들이 생각해볼 여유를 만들어주고 있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여기 실린 분들의 사상을 모두 언급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제의 생각을 새롭게 한 몇 부분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먼저 이규보(1168-1241)가 쓴 <문조물(問造物)>의 한 부분입니다. “사람과 사물이 생겨남은 원인을 알 수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라 하늘도 알지 못하고 조물주인 나도 알지 못한다. 사람은 스스로 태어나지 하늘이 내지 않는다. 곡식과 뽕나무, 삼나무도 자기 스스로 생겨났다.(61쪽)”서양에서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던 시절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획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물은 스스로 생겨나서 스스로 변화한다.”는 이규보의 물자생자화(物自生自化)의 철학은 고려초 ‘모든 사람의 마음은 하나다. 마음의 수양을 잘 하면 살아가는 동안에도 부처의 세계에 살고, 죽어서도 불교의 천당인 극락세계에 간다.’는 의천의 마음을 중요시 하는 철학으로부터 현실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철학사상의 일대 혁신을 가져온 것이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근대서양과학이 증명한 우주의 시원과 생물의 진화 등에 관한 기본원리에 해당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理)와 기(氣)의 근본을 두고 유학자들 간의 논쟁의 꼬투리를 만들어낸 서경덕과 이황의 사상은 그렇다고 쳐도 이(理)와 기(氣)의 관계를 완성하였다는 최한기의 인식론적 사유가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한기가 쓴 <기측체위>의 서문입니다. “기(氣)는 진실한 이(理)의 근본이고, 츠측은 앎을 넗히는 요체이다. 이 기에 근거하지 않으면 탐구하는 것이 모두 허망하고 괴이한 이가 된다. 추측을 통하지 않으며 앎의 근거가 없어져 증명하지 못할 말이 될 뿐이다.(419쪽)” 서양의 인식론과 비교하여 당당하다는 생각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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