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영혼을 깨우는 여행의 기술
롤프 포츠 지음, 강주헌 옮김 / 넥서스BOOKS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던 대학 후배가 있었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대개 전공의 과정을 밟고 전문의가 되어 병원에서 근무하거나 개업하거나 하는 코스를 따라가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언젠가 만난 이 친구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받은 월급을 모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좋은 생각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평생 일해야 하는 병원에 붙들리기 전에 세상을 두루 돌아본다는 생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작에 읽었더라면 이 친구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은 책을 만났습니다. 롤프 포츠가 쓴 <여해의 기술>입니다. 정원사로 일하고 검소한 생활을 통하여 모은 돈으로 떠나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자는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배거본드(vagabond)라는 단어에서 “질서있는 세계를 떠나 크게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하는 여행을 의미를 담은 ‘배거본딩’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저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에드 버린이라는 사람이 혼자 여행할 때 겪는 어려움과 즐거움, 그리고 철학을 차분하고 통찰력있게 담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의 배가본딩>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고서 낙담보다는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는 저자의 고백을 읽으면서 ‘정말 그랬을까’ 싶었습니다.

 

이 책의 목차를 읽으면 바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1부 배거본딩’은 바로 ‘자유인이라 선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부 떠나라’에서는 자유를 벌려면 항상 단순하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부 길에서’는 여행길에 한계는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여행길에서 만나는 이웃들과 관계는 어떻게 맺는 것이 좋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4부 길고 긴 여행’은 이렇게 떠나는 여행은 길고도 먼 것이기 때문에 순간에 충실하며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에 옮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부 집으로’에서는 여행의 끝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여행을 통하여 얻은 모든 것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훌쩍 떠나는 여행을 권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계획을 세우는 즐거움이 있다는 점을 빠트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했던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여행을 떠날 때마다 보고 싶은 곳들을 하루 일정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하고 도면에서 이동하는 연습까지 해보는 준비작업을 거쳐서 현지에서 이것들을 확인하는 일이 또다른 즐거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찰리와 함께 한 여행>에서 “우리가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물을 꾸려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새로운 변수가 끼어들어 여행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여행, 사파리, 탐험 등은 그 자체로 독립된 존재다.(70쪽)”라고 했다는 존 스타인백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계획이 치밀해도 막상 현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상황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계획은 임기응변의 여지를 두어 탄력적으로 세워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저자는 ‘이상하게도 누구나 찾아가는 코스에서 벗어나려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115쪽)’고 했습니다. 물론 직접 계획을 세운 저는 미리 계획된 코스를 변경한 적은 없습니다만, 제가 짜준 여행계획을 들고 여행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계획대로 움직인 사람은 하나도 없었더라는 것입니다.

 

글 매듭마다 배거본딩에 필요한 팁을 요약하고 있어 자유로운 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게 유용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팁들은 저자가 붙여둔 것이라기보다는 편집자가 붙여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배거본딩을 경험한 선배들의 짧은 조언에서도 참고할 것들이 많습니다. 아직까지 자유여행을 꿈꾸어보지 못한 저로서는 이런 여행이 가능할까 싶으면서도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