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귀양다리 이야기
장공남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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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에 제주시에 있는 병원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제주에 갈 때마다 특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저의 뿌리가 제주에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 김포를 떠나서 일을 보고 저녁에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기 때문에 제주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인지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남는 출장입니다. 근자에 제주에 다녀온 탓인지 장공남의 <제주도 귀양다리 이야기>가 특별하게 읽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서울에서 출발해도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아 제주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만, 그 옛날에는 제주도가 최악의 유배지였다고 합니다. 한양에서 제주로 떠나는 배가 닿는 곳까지 간 다음에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뚫고 제주로 향했으니 날씨라도 궂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유배길이었을 것입니다.

 

제주도에서는 지금으로부터 4,300년 양(梁), 고(高), 부(夫) 세 성을 가진 분들이 전 삼성혈에서 태어나서 수렵생활을 하다가 벽랑국(碧浪國)에서 우마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온 삼 공주를 맞으면서 탐라국으로 발전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지되어 오던 왕국은 백제, 신라, 고려에 차례로 복속하다가 15세기 초반에 조선에 병합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조 500년 동안 광해군을 비롯하여 모두 260여명이 제주에 유배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유배가 끝나 한양으로 돌아가기도 하였고,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기도 하였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유배인을 따라 온 가족들이나 유배인들이 제주여인과 인연을 맺어 남긴 혈육이 제주에 남기도 하여 제주 입도주가 되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제주 양씨가 모두 양을나 시조님의 후손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저자는 명나라에 의하여 토벌된 운남의 원나라 양왕의 후손들이 제주에 유배되어 양(梁), 안(安), 강(姜), 대(對) 씨 성을 남겼다(13쪽)는 기록을 보면서 의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나라에서 온 양씨는 어떤 본관을 쓰는지 분명하게 적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양, 고, 부 세 성씨가 주로 많았을 제주에 다양한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살게 된 배경에는 귀양다리의 역할이 있다고 합니다. 제주가 워낙 먼 곳이라서 유배지까지 가족들이 따라 오는 경우가 드물었던 탓에 당대의 지식인인 유배인 가운데 일부는 제주의 현지 여인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후손을 남겼는데, 이 후손들은 유배가 풀려 한양으로 돌아가는 선조를 따라가지 않고 제주에 남아 새로운 성씨 집단으로 커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주도 귀양다리 이야기>는 제주 유배문화를 관광자원화하기 위한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의 일환으로 정리된 내용이라고 합니다. 처음 듣는 ‘귀양다리’가 무엇 뜻인지 궁금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귀양다리’는 ‘귀양살이 하는 사람을 업신여겨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임금의 뜻을 거스른 대역죄를 짓고 제주로 추방된 대부분의 유배인들은 죄인이기에 앞서 당시 정치무대의 중앙이라 할 한양에서 온 당대의 학자, 정치인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들은 당시 제주의 유생들에게는 일종의 문화의 전달자였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귀양다리’라 불러 경계하였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많은 귀양다리들 가운데 제주에 문화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행적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거물이라 할 광해군을 비롯하여 소현세자의 세 아들을 포함한 왕족들도 있었고, 송시열, 정온과 같이 당대의 거물 학자나 정치인들은 제주 유생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특히 대역죄를 저지르고 유배 온 사람들이 중앙정치에 대한 반발심을 제주에 심는 것을 경계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중앙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은연중에 제주도민의 의식에 심어지게 되었던 것으로, 실제로 수차례에 걸친 내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실 멀리 떨어진 제주에서 내란을 일으켜 중앙정치를 전복하겠다는 뜻을 세웠다고 해도 주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제주는 오랫동안 중앙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되어온 지역이 아니라 특별자치도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사회적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주 유배인의 기록을 뒤쫓아 그들의 삶을 복원하는 작업은 꾸준하게 이어져왔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는 김윤식이 제주 유배기간 동안 남긴 일기 <속음청사>를 바탕으로 1900년대 일어났던 이재수의 난을 소설로 꾸민 현기영 작가의 <변방에 우짖는 새>가 나오고 박광수 감독이 영화로 옮긴 <이재수의 난> 등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개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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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마지막 강의
B. F. 스키너 & 마거릿 E. 본 지음, 이시형 옮김 / 더퀘스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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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0년 가까운 옛날 첫 번째 꼭지의 글만 시작해두고서는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는 나이든 분들을 위한 글모음을 다시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노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런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스키너의 마지막 강의>는 꼭 맞춤한 저자가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정리하고 있다는 점과, 이제는 저도 저자의 말씀에 공감이 가는 나이가 되었다는 점에서 쉽게 이해되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런 글에 관심을 가져온 탓인지 새삼스러운 내용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어쩌면 제가 쓰고 싶었던 글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시기와 부러움이 겹친 묘한 느낌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목도 그렇습니다. 저의 관심영역이 그리 넓지 않은 탓에 저자의 업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분의 마지막 강의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제목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느낌입니다. 이 책을 옮긴 이시형교수님께서 원제목 <Enjoy Old Age : A Practical Guide>을 ‘노년을 즐겨라’로 옮긴 것을 살려렸더라면 쉽게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책을 옮기신 이시형교수님도 제가 보기에는 저자와 비교할 만큼 중량감이 있는 만큼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살린 번역이 되어 독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더 꼬집는다면 각장의 끝에 더한 옮긴이의 생각이 오히려 책읽기의 흐름을 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사실 이 책은 이미 나이가 들어서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하신 분들을 위한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만, 은퇴시기를 예측하고 있었더라도 은퇴 이후의 삶을 미리 준비하는 철저한 삶을 사시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상 은퇴의 시점에 이르면 당장 내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난감한 느낌이 들면서 일단 쉬면서 생각해보자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년이 되면 은퇴 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전히 암중모색이지만 말입니다. 오래 전에 지방도시에 있는 병원에서 근무할 적에 나이드신 분들을 진료한 적이 있습니다. 치매를 진단하고 예방과 치료를 안내하는 일을 맡았는데, 저를 찾아오시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특별난 일상이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지나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저에게 자극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스키너 교수님은 먼저 노년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본 다음에 노년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약해보면, 우선 노년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년의 삶을 풍성하게 하려면 끊임없이 세상과 접촉하고, 자신의 지난날과도 교류를 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명확하게 생각하고, 바쁘게 지내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사람들과 잘 어울릴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권고에 그치는 것만 아니라 기분 좋게 지내는 법도 알려줍니다. 나이가 들어가다 보면 어느 날 찾아올 것이 분명한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은퇴할 시점이 그리 멀지 않은 제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경험한 방식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일하는 시간을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한 분야는 국내 여건에서 제대로 펼쳐볼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요즈음 조금씩 분위기가 마련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공부한 내용을 제대로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반을 조성하여 일을 맡을 수 있는 후배에게 전해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서는 조금씩 일을 도와줄 수 있으면 금상첨화가 되겠지요. 스키너교수님이 말미에 따로 정리하고 있는, 나이든 독자들이 기억해야 할 점 가운데 다음 구절이 제 눈길을 붙들었습니다. “젊어 보이는 것은 적어도 위험하지는 않지만, 젊게 행동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237쪽)” 그 이유를 한 번 생각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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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용법 - 한 편집자의 독서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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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부서 워크숍에서 교양강좌의 한꼭지로 책읽기에 관하여 발표를 하면서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읽게 된 책입니다. “책이야말로 인류 진화의 산물이다. 책은 나날이 변화하고 있다. 그것은 고착되는 법이 없이 살아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기 곁에서 호흡하며 몸을 뒤척이고 있다. 특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책이 주는 균형감각이다. 한두 권의 책을 읽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책을 섭렵하고 얻은 지식은 지혜가 되어 삶을 보는 균형감각을 준다. 여기에서 말 그대로 건전한 비판의식이 싹튼다. 또한 고전이나 문학작품은 조악한 이론이 보여주지 못하는 삶의 진경들을 펼쳐 보인다. 이것은 사이비 이론, 남이 불러준 이론, 한두 권의 책에 경도된 이론을 ‘물리치는 독서’를 가능케 해준다.(21~22쪽)”

 

마음산책의 대표로 책을 만드는 일을 26년째 해 오신 정은숙님의 <책사용법>입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읽는 이에 따라서 제각각일 수 있겠습니다만, 다양한 책을 섭렵하여 나름대로의 균형을 맞춘 판단기준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은, 2008년 우리사회를 거대한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제2차 광우병파동을 건너오면서 절감했던 안타까움에 대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 http://blog.yes24.com/document/7410278>의 저자 김병완님은 3년에 1,000권의 책을 읽어야 문리를 깨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만, 정은숙 대표께서는 일주일에 1권꼴로 한 20년쯤 읽어서 1,000권 정도 읽게 된다면 족하지 않겠느냐 하십니다.

 

<책사용법>에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책을 왜 읽는가’하는 질문에서부터 책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비롯하여 작가와 독자의 시선에서 책세계에 숨어있는 비밀을 귀띔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화, 치유, 오락, 지식, 인간학으로서의 기능에 더하여 더 ‘깊이’ 알게 해주거나 감성을 일깨워주는 기능까지 책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나는 책의 사용에 대한 많은 길들을 보여주고 싶다. 특히 이 글을 쓰는 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의 이야기를 많이 삽입하여 독자가 직접 그 책들을 찾아보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 과정에서 어슴푸레 우리 책읽기의 외연을 넓힐 수 있기를 감히 꿈꿔본다. 나는 이 책읽기를 통해, 또 책을 사용하면서 얻은 많은 진실을 전해보려고 행간에 꿈을 심는다.”라고 저자가 책갈피에 적은 것처럼 <책사용법>에 숨어있는 보석같은 무엇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가 된다는 말씀을 가끔 적곤 합니다만,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인용한 주옥같은 구절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 그 책을 찾아 읽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어 꼬리를 무는 책읽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군요. “책을 읽으면 또 다른 길이 보인다. 그래서 그 길을 가다보면 새로운 책에 대한 표지가 보인다. 책에서 길을 찾고 또다시 책으로 간다. 책의 사용은 바로 그런 의미이리라.(14쪽)”

 

이 책을 읽고서는 저자의 희망대로 꼭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 중에서 으뜸은 알랭 드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유는 다름 구절 때문입니다.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이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독자가 결코 자신에게서 경험하지 못했을 무언가를 분별해낼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기구일 뿐이다. 따라서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은 진실하다고 입증된다.(167쪽)”

 

그리고 빌브라이슨이 쓴 <나를 부르는 숲>도 빠트리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은 저자가 신발끈을 질끈 동여매고 뒷산에 올라, 산속에서의 보행이 현실에 대한 잡사들을 갈무리해주고 바로 보게 하는 행복한 경험을 안겨줄 것으로 믿게 되었다니 얼마나 유혹적인 독서권유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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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에서 랭보까지, 길 위의 문장들 - 대문호 12인의 걷기 예찬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외 지음, 윤희기.KU-STP 옮김 / 예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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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뜻하지 않은 무릎부상으로 오랫동안 걷기에 나서지 못했습니다만, 주말을 이용해서 서울근교의 걸을만한 길을 즐겨 걷다보니 걷기에 대한 글을 쓸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만점인 운동이 바로 걷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걷는 동안 사색이라는 덤까지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지 걷기를 예찬하는 글을 자주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걷기에 관한 글을 쓸 때 제가 즐겨 인용하는 책은 다비드 르 브르통교수님의 <걷기예찬; http://blog.joins.com/yang412/12935107>입니다. 이 책에서 브르통교수는 ‘왜 걷는가?’에 대한 답으로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걷기예찬, 2002년, 9쪽)”답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멋있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탈 것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어딘가를 가려면 걸어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특별한 목적이 있어 어딘가를 찾아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즐기기 위하여 걷고, 또 그 느낌을 글로 남기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소로우에서 랭보까지, 길 위의 문장>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비롯하여 영미권에서 손꼽히는 열두명의 대문호가 남긴 걷기에 관한 글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특히 고려대학교 국제어학원의 번역전문가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번역에 참여하셨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라 하겠습니다. 옮긴이를 대표하여 윤희기님은 “길을 걷는다는 것이 단순한 보행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의 존재확인이며 성찰과 사유의 과정임을 내보인 어려운 글들을 가슴에 안고 끙끙대던 그들이 이제 드디어 길 위에 자신들의 다짐을 묻는다.(7쪽)” 즉 ‘번역’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길을 찾아 걷기에 나선 이분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예술로서의 걷기’를 쓴 크리스토퍼 몰리는 워즈워스 이전에는 걷기 자체를 즐기려고 여행을 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마크 롤랜즈 교수는 <철학자가 달린다; http://blog.joins.com/yang412/13228772>에서 달리기는 사유가 들어오는 열린 공간으로, 저자는 자신의 육체가 달릴 때, 그의 사유도 장비나 선택과는 거의 무관한 방식으로 함께 달린다(마크 롤랜즈 지음, 철학자가 달린다, 2013년, 80쪽)”고 했는데, 레슬리 스티븐은 ‘걷기예찬’에서 “진정 걷기를 즐기는 사람은 (…) 걷기 그 자체에서 희열을 느낀다. 즉, 걷고 있는 동시에 깊은 사색과 상상을 함으로써, 단조로운 걷기 행위에 지성을 자연스레 참여시키는 것이다.(81쪽)”라고 걷기를 통하여 정신적 풍요함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교의 후의로 말을 타고 여행을 했다가 크게 실망했다는 아이작 월튼의 작품에 등장하는 후커의 사례를 인용하기도 하는데, “말이 너무 빨리 달려서, 지팡이를 짚으면서 걸을 때는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생각들이 마구 흐트러지는 느낌이었기 때문(89쪽)”이라고 합니다. 제 경우도 걷다보면 무언가에 깊이 빠져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월든호수가에 작은 집을 짓고 자연을 오롯하게 느끼며 살았던 소로우는 자연이야말로 위대한 도서관이라고 하였는데, “나로 말하자면 지식을 향한 욕망은 간헐적으로 솟아나는 반면, 발길 닿은 적 없는 미지의 곳의 공기와 풍광 속에 머리를 푹담그고 싶은 욕망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지식이 아닙니다. 지성을 겸비한 동정, 바로 이것입니다.(190쪽)”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월트 휘트먼은 ‘노래하리, 저 드넓은 길을’에서 “영혼이 길을 나선다. 육신은 영혼만큼 많은 길을 나서지 못한다. 육신 또한 영혼만큼 위대한 일을 하지만 마침내는 영혼의 여행을 위해 모든 것을 내준다.(233쪽)”고 적어 레슬리 스티븐처럼 걷기가 정신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걷기에 대한 열 두 분의 대문호들의 성찰은 앞으로 걷기를 생각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번역도 깔끔하게 되어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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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퍼센트 우주 - 우주의 96퍼센트를 차지하는 암흑물질ㆍ암흑에너지를 말하다
리처드 파넥 지음, 김혜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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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추석에는 모처럼 커다란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낮에 태양을 볼 때는 별 느낌이 없습니다만, 밤하늘을 바라보면 커다란(?) 달과 반짝이는 별들이 흩어져 있는 공간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으십니까?

 

바로 그 캄캄한 공간을 설명하는 책이 바로 <4퍼센트 우주>입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버나드칼리지의 리처드 파넥교수는 이 책에서 201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솔 펄머터 교수,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애덤 리스 교수,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교의 브라이언 슈미트 교수 등 세 사람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대한 개념을 밝혀온 과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행성과 은하 등은 우주의 4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 나머지 공간을 ‘암흑물질’이라 불리는 신비한 물질이 23퍼센트, ‘암흑에너지’라 불리는 훨씬 더 신비한 물질이 73퍼센트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우주가 처음 열리는 순간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주가 시작하는 과정은 아리조나대학 천문학과 크리스 임피교수님의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http://blog.joins.com/yang412/3043832>를 읽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흔히 빅뱅이론으로 우주의 시작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임피교수님은, 빅뱅이론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한 점에 집중되어 있다가 확산을 시작한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진화해가는 과정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다는 점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 우주가 이렇게 가속 팽창하는 것은 물질들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에너지보다 큰 에너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우주의 73퍼센트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에너지를 우주론자들은 ‘암흑에너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위키백과사전은 암흑에너지를 다음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암흑 에너지(dark energy)는 우주에 널리 퍼져 있으며 척력으로 작용해 우주를 가속 팽창 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물질들은 중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우주를 팽창시키는 암흑에너지가 없다면 우주 자체가 물질들의 중력에 의해 수축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주는 우주 안에서 물질들이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팽창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 팽창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기까지 하다. 이것은 우주 안에 있는 물질들의 중력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어떤 힘이 우주를 팽창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힘을 암흑에너지라고 하며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암흑(dark) 이라고 부른다.”

 

암흑에너지의 본질을 조사하는 방법으로 네 가지 정도가 고려되어왔다고 합니다. 첫째는, 유형 Ia 초신성의 관측을 통하여, 둘째는 중입자 음향진동의 측정을 통하여, 셋째는 전경에 놓인 은하단들의 중력적 영향 때문에 먼 은하들의 빛이 뒤틀리는 렌즈효과를 측정하여, 마지막은 은하단을 이용하여 선야예프-젤도비치 효과를 탐지하는 방법 등입니다. 저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에서부터 201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세 명의 주인공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비밀을 찾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수많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방대한 양의 자료와 인터뷰를 통하여 얻은 에피소드를 조화시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부부싸움을 중재하는 랍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222쪽), 싸우는 두 종들의 이야기에 각각 네가 옳다고 말씀하셨다는 황희정승의 고사와 꼭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천문학자 베라 루빈이 전했다는 이 이야기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황희정승의 말씀을 유대 랍비의 이야기로 둔갑시킨 것은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그동안 우주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그리고 바로 그런 우주가 우리의 우주이며, 우리가 이제야 탐구하기 시작한 우주라는 합의에 도달했다.”고 적어 우주에 대한 진정한 연구가 시작하는 출발선에 서있음을 분명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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