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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귀양다리 이야기
장공남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7월
평점 :
보름 전에 제주시에 있는 병원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제주에 갈 때마다 특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저의 뿌리가 제주에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 김포를 떠나서 일을 보고 저녁에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기 때문에 제주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인지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남는 출장입니다. 근자에 제주에 다녀온 탓인지 장공남의 <제주도 귀양다리 이야기>가 특별하게 읽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서울에서 출발해도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아 제주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만, 그 옛날에는 제주도가 최악의 유배지였다고 합니다. 한양에서 제주로 떠나는 배가 닿는 곳까지 간 다음에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뚫고 제주로 향했으니 날씨라도 궂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유배길이었을 것입니다.
제주도에서는 지금으로부터 4,300년 양(梁), 고(高), 부(夫) 세 성을 가진 분들이 전 삼성혈에서 태어나서 수렵생활을 하다가 벽랑국(碧浪國)에서 우마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온 삼 공주를 맞으면서 탐라국으로 발전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지되어 오던 왕국은 백제, 신라, 고려에 차례로 복속하다가 15세기 초반에 조선에 병합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조 500년 동안 광해군을 비롯하여 모두 260여명이 제주에 유배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유배가 끝나 한양으로 돌아가기도 하였고,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기도 하였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유배인을 따라 온 가족들이나 유배인들이 제주여인과 인연을 맺어 남긴 혈육이 제주에 남기도 하여 제주 입도주가 되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제주 양씨가 모두 양을나 시조님의 후손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저자는 명나라에 의하여 토벌된 운남의 원나라 양왕의 후손들이 제주에 유배되어 양(梁), 안(安), 강(姜), 대(對) 씨 성을 남겼다(13쪽)는 기록을 보면서 의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나라에서 온 양씨는 어떤 본관을 쓰는지 분명하게 적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양, 고, 부 세 성씨가 주로 많았을 제주에 다양한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살게 된 배경에는 귀양다리의 역할이 있다고 합니다. 제주가 워낙 먼 곳이라서 유배지까지 가족들이 따라 오는 경우가 드물었던 탓에 당대의 지식인인 유배인 가운데 일부는 제주의 현지 여인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후손을 남겼는데, 이 후손들은 유배가 풀려 한양으로 돌아가는 선조를 따라가지 않고 제주에 남아 새로운 성씨 집단으로 커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주도 귀양다리 이야기>는 제주 유배문화를 관광자원화하기 위한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의 일환으로 정리된 내용이라고 합니다. 처음 듣는 ‘귀양다리’가 무엇 뜻인지 궁금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귀양다리’는 ‘귀양살이 하는 사람을 업신여겨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임금의 뜻을 거스른 대역죄를 짓고 제주로 추방된 대부분의 유배인들은 죄인이기에 앞서 당시 정치무대의 중앙이라 할 한양에서 온 당대의 학자, 정치인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들은 당시 제주의 유생들에게는 일종의 문화의 전달자였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귀양다리’라 불러 경계하였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많은 귀양다리들 가운데 제주에 문화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행적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거물이라 할 광해군을 비롯하여 소현세자의 세 아들을 포함한 왕족들도 있었고, 송시열, 정온과 같이 당대의 거물 학자나 정치인들은 제주 유생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특히 대역죄를 저지르고 유배 온 사람들이 중앙정치에 대한 반발심을 제주에 심는 것을 경계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중앙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은연중에 제주도민의 의식에 심어지게 되었던 것으로, 실제로 수차례에 걸친 내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실 멀리 떨어진 제주에서 내란을 일으켜 중앙정치를 전복하겠다는 뜻을 세웠다고 해도 주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제주는 오랫동안 중앙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되어온 지역이 아니라 특별자치도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사회적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주 유배인의 기록을 뒤쫓아 그들의 삶을 복원하는 작업은 꾸준하게 이어져왔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는 김윤식이 제주 유배기간 동안 남긴 일기 <속음청사>를 바탕으로 1900년대 일어났던 이재수의 난을 소설로 꾸민 현기영 작가의 <변방에 우짖는 새>가 나오고 박광수 감독이 영화로 옮긴 <이재수의 난> 등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개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