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란 어디론가 들어가는 길이다. 아니 종교가 그렇다. 길을 따라 들어가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길은험난할 수도 있고, 편안한 마음의 길일 수도 있다. 길을지나 만나는 대상은 스승이나 친구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이다. 길을 따라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세상을 살아가며 쌓아온 마음의 때를 씻어내게 된다.
우리 전통 사찰들은 그렇게 길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자유를 부여한다. 길을 만들 때 지형에 맞추기도 하고 종교의 핵심을 집어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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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예술의 두드러진점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공연예술을 감상할 때 숨소리, 기침 소리도 조심해야 하는외국과 달리, 판소리 같은 무대를 보는 관객은 ‘얼쑤‘ ‘잘한다‘ 같은 추임새를 자연스럽게 곁들인다. 이는 오늘날객석의 열광적인 ‘떼창‘에 아티스트가 감동하는 한국 특유의 공연 문화로 이어졌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엄격하지 않은 것처럼, 건축에서도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하다. 마당을 통해,
혹은 툇마루 공간이나 대청처럼 내부도 외부도 아닌 중간 영역을 통해 자연이 방 안으로 스며들고 넘나든다.
그러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마치 땅이 봉긋 솟아 건물이 된 것 같은 형태를 취한다. 조경을 보아도 어디부터마당인지, 원래부터 있던 자연인지 금 긋기가 어렵다.

충남 금산에 우리가 설계한 ‘금산주택‘은 민가 살림집의 방식을 따라서 지은 소박한 집이다. 집을 남향으로앉혀 햇빛을 받아들이고 바람이 집을 지나가기 쉽도록얇게 만들었으며 앞뒤로 창을 내어 맞바람이 불도록 했다. 또한 비가 집으로 들이치지 않고 마당으로 흘러 내려가도록 경사를 조정한 맞배지붕을 얹었다.

조선의 장인은 쉽게 손에 닿는 재료와 도구를 고른다는 것이다. ‘조선의 물건에서는 인간인지 자연인지 분...
명히 알 수 없는 것이 일을 한다. 좋고 나쁘고를 넘어선 경지에서 물건이 생겨나는 것이다. 만든다기보다는생겨난다고 하는 편이 더욱 알맞다.‘
만든다기보다는 ‘생겨나는‘ 것이라는 정의가 무척와닿는다. 조선 예술은 얼핏 투박한 듯하지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독특한 기준과 미학을 지녔고, 그렇기에흉내를 내거나 넘어서기가 오히려 어렵다.

사실 조선, 아니 우리 민족의 생각 혹은 미학은 독특하다. 세계 속에서도 다르고 문화권을 공유하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가령 중국의수도 북경과 일본의 수도 교토, 조선의 수도 한양의 도시계획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수도는 정교한 기하학적 질서로 길을 만들고 마을을 구성하고 집들을 정연하게 배열한다. 그 중심이나 끝점에는 중요한 시설과 왕궁이 존재한다.
반면 한양의 도시계획에는 애당초 그런 기하학이존재하지 않는다. 한양의 고지도는 마치 자유로운 언어 속에 질서를 숨겨 놓은 현대시 같다

지형을 건드리지않고 도시를 만들다 보니 무언가 복잡한 선이 교차하고산과 길이 서로 감싸고 돈다. 물이 제 길로 흐르고 골목이 도시 전체에 실핏줄처럼 퍼져있다. 측량할 수 없거나기하학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도시를 만든 것이 아니다. 도시에 관한 생각과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던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고, 그것은 개념적인 규준이 아니라 ‘생겨난 듯한 실제의 자연스러움이었다.

우리가 설계한 ‘까사 가이아 Casa Gaia‘는 제주도 김녕 바닷가에 지은 집이다. 코발트색 바다가 펼쳐지고 뒤로는 손등을 살짝 올린 것 같은 오름이 있다. 고양이가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라서 ‘괴살메‘라 부르는 오름이다.
크게 보면 한라산에서부터 흘러내린 땅이 오름에서 잠시 머물다가 부드럽게 바다로 들어가는 지형인데, 그 끝에 집을 짓게 되었다.
건축이란 땅에 신세를 지는 일이다. 오랜 시간 바람과 햇빛만을 얹고 지내던 땅을 건드리고 그 위에 제법 무거운 구조물을 얹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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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새랑 눈이 마주쳤다니까요
이이은 지음 / 보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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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비둘기를 정말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이 키링이너무 유니크해서 샀는데, 가방에 달고 매일 보다 보니이제 진짜 비둘기가 조금씩 예뻐 보여요??
누군가의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을 내고, 무심코 지나치던 길 위의 생명에게 다정한 시선을 한 번 더 머물게 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치치칫‘은 존재할 이유가 충분했다.
브랜드가 성장할수록 관찰은 화면 너머 실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확장되었다. 서울의 한 탐조 모임에 참석했을 때, 도착하자마자 누군가의 가방에서 달랑거리는 비둘기 키링을 발견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가슴이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인사를 드려야 하나? 혹시 내가 만든 사람인 걸 알면 불편해하시진 않을까?‘ 수만 번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다가갔을 때, 그분이 보여 준 환한 미소는 그 어떤 매출 지표보다도 나를 든든하게 했다. 이름도 모르는 타인과 ‘새‘라는 공통의 감각으로 연결된 그 찰나의 순간이 나를 쉼없이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새로 태어나는 것들은 대체로 뾰족하다. 여인초의 새잎도, 꽃이 피기 전의 꽃봉우리도,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부리도 험난한 세상을 뚫고 나올 만큼 뾰족하다. 험난한 새세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어중간한 둥근 마음으로는어림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뾰족하게 가다듬은 힘으로세상을 뚫고 나가는 방식을 자연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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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찬란한 아름다움
정승익 지음 / 성서와함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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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 덩어리는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동안 시간의 흐름이라는 일종의 진행 과정을 겪는다. 그러나 조각상으로 완성되면 어떠한 시간 여정도 남지 않는다. 마치작가가 작품을 끝내고 더는 손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주어진 시간이 더 없다고 해서 돌덩어리 존재가 소멸한 것인가? 완성을 향한 재료 차원에서 대리석 덩어리는 사라져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완성된 조각상으로존재한다. 따라서 재료 차원에 속한 
‘시간 안의 존재(esse in tempo)‘와 ’완성된 상태의 존재(esse in perfectione)‘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완성에 도달한 존재는 시간을 종결하는 동시에, 시간에 종속되지 않는 또 다른 차원으로 옮아간다. 우리는 이러한 완성 상태를 ‘영원‘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하느님 작품인 모든 만물은 소멸하지 않는다. 
다만 완성된 영원의 상태로 변화하여하느님 정원에 특별한 방식으로 가득 채워질 뿐이다.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존재의성‘이다. 인간 존재도 하느님의 작품으로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이제 인간 존재의 죽음을 논리적 상상력으로 분석할 실마리가겼다. 그러므로 죽음을 소멸이 아닌 완성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분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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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새랑 눈이 마주쳤다니까요
이이은 지음 / 보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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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날 까치 대가리 같다‘
달력을 확인하니 신기하게도 정말 칠월 칠석 무렵이었다. 까치는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털갈이를 하는데, 유독머리 부분의 털이 집중적으로 빠져 이 시기에는 흡사 대머리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놓치지 않고 속담으로 박제해 둔 것이다.

"나도 피부병인 줄 알고 마음 안 좋았는데 털갈이였구나, 다행이다!"
"우리 동네 까치도 이래서 걱정했거든요. 덕분에 안심"해요?"
까치의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채고, 남몰래 마음 졸였던다정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세상은 여전히 타자의고통에귀기울이는 이들로 가득 하다는 사실이 따뜻하게 다가 왔다. 사랑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걱정이 무게도 늘어나지만 그 걱정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세상에 사랑의 총량이 크다는 뜻이 아닐까

휑한 머리를 하고도 씩씩하게 전신주를 오가던 까치 덕분에 세상에서 다정함 한 조각을 더 발견했다. 칠석날의까치는 대머리였을지언정,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하나 있었다. 직박구리는 참새목직박구리과인데, 바다직박구리는 같은 참새목이지만 솔딱새과에 속한 전혀 다른 새였다. 즉, 같은 직박구리가 아니었다. 유전적으로는 다른 그룹인데, 사람의 눈으로 보면닮아 보인다고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 상황은 이렇다.
과학: "너희는 다르다"
관습: "근데 닮았잖아?"
한 대상을 바라보는 과학적 해석과 감각적·관습적 해석이 부딪히며 생긴 작고 재미있는 오류다.

새를 찾아 나서고 집요하게 바라보지만, 결국 ‘바라봄‘에서 멈춘다는 점이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섣불리 다가가지 않고, 소중하기 때문에 함부로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않는 태도. 멀리서 지켜보며 그들의 평화로운 궤적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탐조의 방식은 내가 지향하던 자연관과 완벽하게 닮아 있었다.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누군가는 곁에 두고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나 인간이 생각하는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려는 마음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러 방식 가운데서도 ‘인식하되최소한으로 개입하는 쪽을 선택하고 싶었다. 인간은 인간대로, 새는 새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연스러운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태도. 탐조는 바로 그런 철학을 몸으로 배우고 실천하는 정중한 예법이었다.

탐조는 지리산이나 철원 같은 먼곳으로 떠나야만 가능한거창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일상이라는 프레임 안에 이미 무수히 많은 ‘주인공‘들이 살고있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이름을 아는 새가 늘어날수록, 흑백이었던 도시의 풍경에 하나둘 색이 입혀지는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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