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예술의 두드러진점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공연예술을 감상할 때 숨소리, 기침 소리도 조심해야 하는외국과 달리, 판소리 같은 무대를 보는 관객은 ‘얼쑤‘ ‘잘한다‘ 같은 추임새를 자연스럽게 곁들인다. 이는 오늘날객석의 열광적인 ‘떼창‘에 아티스트가 감동하는 한국 특유의 공연 문화로 이어졌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엄격하지 않은 것처럼, 건축에서도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하다. 마당을 통해, 혹은 툇마루 공간이나 대청처럼 내부도 외부도 아닌 중간 영역을 통해 자연이 방 안으로 스며들고 넘나든다. 그러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마치 땅이 봉긋 솟아 건물이 된 것 같은 형태를 취한다. 조경을 보아도 어디부터마당인지, 원래부터 있던 자연인지 금 긋기가 어렵다.
충남 금산에 우리가 설계한 ‘금산주택‘은 민가 살림집의 방식을 따라서 지은 소박한 집이다. 집을 남향으로앉혀 햇빛을 받아들이고 바람이 집을 지나가기 쉽도록얇게 만들었으며 앞뒤로 창을 내어 맞바람이 불도록 했다. 또한 비가 집으로 들이치지 않고 마당으로 흘러 내려가도록 경사를 조정한 맞배지붕을 얹었다.
조선의 장인은 쉽게 손에 닿는 재료와 도구를 고른다는 것이다. ‘조선의 물건에서는 인간인지 자연인지 분... 명히 알 수 없는 것이 일을 한다. 좋고 나쁘고를 넘어선 경지에서 물건이 생겨나는 것이다. 만든다기보다는생겨난다고 하는 편이 더욱 알맞다.‘ 만든다기보다는 ‘생겨나는‘ 것이라는 정의가 무척와닿는다. 조선 예술은 얼핏 투박한 듯하지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독특한 기준과 미학을 지녔고, 그렇기에흉내를 내거나 넘어서기가 오히려 어렵다.
사실 조선, 아니 우리 민족의 생각 혹은 미학은 독특하다. 세계 속에서도 다르고 문화권을 공유하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가령 중국의수도 북경과 일본의 수도 교토, 조선의 수도 한양의 도시계획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수도는 정교한 기하학적 질서로 길을 만들고 마을을 구성하고 집들을 정연하게 배열한다. 그 중심이나 끝점에는 중요한 시설과 왕궁이 존재한다. 반면 한양의 도시계획에는 애당초 그런 기하학이존재하지 않는다. 한양의 고지도는 마치 자유로운 언어 속에 질서를 숨겨 놓은 현대시 같다
지형을 건드리지않고 도시를 만들다 보니 무언가 복잡한 선이 교차하고산과 길이 서로 감싸고 돈다. 물이 제 길로 흐르고 골목이 도시 전체에 실핏줄처럼 퍼져있다. 측량할 수 없거나기하학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도시를 만든 것이 아니다. 도시에 관한 생각과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던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고, 그것은 개념적인 규준이 아니라 ‘생겨난 듯한 실제의 자연스러움이었다.
우리가 설계한 ‘까사 가이아 Casa Gaia‘는 제주도 김녕 바닷가에 지은 집이다. 코발트색 바다가 펼쳐지고 뒤로는 손등을 살짝 올린 것 같은 오름이 있다. 고양이가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라서 ‘괴살메‘라 부르는 오름이다. 크게 보면 한라산에서부터 흘러내린 땅이 오름에서 잠시 머물다가 부드럽게 바다로 들어가는 지형인데, 그 끝에 집을 짓게 되었다. 건축이란 땅에 신세를 지는 일이다. 오랜 시간 바람과 햇빛만을 얹고 지내던 땅을 건드리고 그 위에 제법 무거운 구조물을 얹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