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새랑 눈이 마주쳤다니까요
이이은 지음 / 보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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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날 까치 대가리 같다‘
달력을 확인하니 신기하게도 정말 칠월 칠석 무렵이었다. 까치는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털갈이를 하는데, 유독머리 부분의 털이 집중적으로 빠져 이 시기에는 흡사 대머리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놓치지 않고 속담으로 박제해 둔 것이다.

"나도 피부병인 줄 알고 마음 안 좋았는데 털갈이였구나, 다행이다!"
"우리 동네 까치도 이래서 걱정했거든요. 덕분에 안심"해요?"
까치의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채고, 남몰래 마음 졸였던다정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세상은 여전히 타자의고통에귀기울이는 이들로 가득 하다는 사실이 따뜻하게 다가 왔다. 사랑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걱정이 무게도 늘어나지만 그 걱정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세상에 사랑의 총량이 크다는 뜻이 아닐까

휑한 머리를 하고도 씩씩하게 전신주를 오가던 까치 덕분에 세상에서 다정함 한 조각을 더 발견했다. 칠석날의까치는 대머리였을지언정,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하나 있었다. 직박구리는 참새목직박구리과인데, 바다직박구리는 같은 참새목이지만 솔딱새과에 속한 전혀 다른 새였다. 즉, 같은 직박구리가 아니었다. 유전적으로는 다른 그룹인데, 사람의 눈으로 보면닮아 보인다고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 상황은 이렇다.
과학: "너희는 다르다"
관습: "근데 닮았잖아?"
한 대상을 바라보는 과학적 해석과 감각적·관습적 해석이 부딪히며 생긴 작고 재미있는 오류다.

새를 찾아 나서고 집요하게 바라보지만, 결국 ‘바라봄‘에서 멈춘다는 점이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섣불리 다가가지 않고, 소중하기 때문에 함부로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않는 태도. 멀리서 지켜보며 그들의 평화로운 궤적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탐조의 방식은 내가 지향하던 자연관과 완벽하게 닮아 있었다.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누군가는 곁에 두고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나 인간이 생각하는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려는 마음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러 방식 가운데서도 ‘인식하되최소한으로 개입하는 쪽을 선택하고 싶었다. 인간은 인간대로, 새는 새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연스러운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태도. 탐조는 바로 그런 철학을 몸으로 배우고 실천하는 정중한 예법이었다.

탐조는 지리산이나 철원 같은 먼곳으로 떠나야만 가능한거창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일상이라는 프레임 안에 이미 무수히 많은 ‘주인공‘들이 살고있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이름을 아는 새가 늘어날수록, 흑백이었던 도시의 풍경에 하나둘 색이 입혀지는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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