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
홍진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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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작가라면, 당신은 독창적인 어떤 것을 쓰기 이전에 독창적이지않은 많은 것을 쓸 것이다. 그리고 독창적이지 않은 작품을 쓰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은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테드 창-

이 변화는 단순히 AI라는 도구를 써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도구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도구가 대신 지나가버린 ‘인간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AI에게 번거로운 ‘일‘
을 맡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 생각이 자라나야 할 가장 고통스럽고도 귀중한 구간을 조금씩 밖으로 넘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료를 찾는 수고, 상충하는 정보를 비교하는 지루함,
숫자를 직접 계산하며 느껴보는 불편함, 문장을 수차례 고치며 논리를 다듬는 고독한 시간. 겉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버려지는 시간 같지만 인간을 자라게 하는 거의 모든 것은 대개 이런 비효율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진짜직접 쓴 글에는 길을 잃었던 흔적이 남습니다. 막혔던순간, 지웠던 문장, 다시 떠올린 단어들. 그 고군분투의 흔적들이 뇌의 영역을 활성화하며 글 쓴 사람의 사고력을 키웁니다. 반대로 완성된 문장을 AI로부터 먼저 받아버리면우리는 생각을 시작하기도 전에 결론의 모양에 안주하게됩니다. 바로 그 편안함 때문에 생각의 근육은 움직임을 멈춥니다.
이것은 일종의 ‘사고외주‘입니다. 긴 소설 한 권을 시간을 들여 통과하는 일과 AI가 요약한 줄거리로 읽는 일은 같을 수 없습니다. 요약은 정보를 주지만, 직접 읽은 책 한권은 다양한 ‘시간‘을 살게 합니다. 기다리고, 오해하고, 다시기대하며 자기 삶의 조각들을 이야기와 연결하는 그 과정은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않습니다. 한쪽은 결과물을 얻고,다른 한쪽은 경험을 얻습니다.

심부터 정리해주기를 바랐습니다. AI는 그 욕구를 너무나정확하게 채워주었습니다. 편리했고, 빨랐고, 때로는 놀라울 만큼 유능했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람은 너무 불편한 것보다 너무 편한 것에 더 쉽게 무너집니다. 불편한 것은 경계하지만 편한 것은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빠른 답은 우리를 도와주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깊이 고민하며 성장할시간을 소리 없이 앗아갑니다.
저는 지금 ‘AI를 멀리하라‘는 케케묵은 경고를 하려는것이 아닙니다. 도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가 대신지나가서는 안 되는 ‘인간의 구간‘을 명확히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그 구간은 대개 불편합니다. 느리고 귀찮으며, 때로는 나의 초라한 실력을 직면하게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구간에서만 인간의 생각은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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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란 어디론가 들어가는 길이다. 아니 종교가 그렇다. 길을 따라 들어가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길은험난할 수도 있고, 편안한 마음의 길일 수도 있다. 길을지나 만나는 대상은 스승이나 친구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이다. 길을 따라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세상을 살아가며 쌓아온 마음의 때를 씻어내게 된다.
우리 전통 사찰들은 그렇게 길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자유를 부여한다. 길을 만들 때 지형에 맞추기도 하고 종교의 핵심을 집어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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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예술의 두드러진점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공연예술을 감상할 때 숨소리, 기침 소리도 조심해야 하는외국과 달리, 판소리 같은 무대를 보는 관객은 ‘얼쑤‘ ‘잘한다‘ 같은 추임새를 자연스럽게 곁들인다. 이는 오늘날객석의 열광적인 ‘떼창‘에 아티스트가 감동하는 한국 특유의 공연 문화로 이어졌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엄격하지 않은 것처럼, 건축에서도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하다. 마당을 통해,
혹은 툇마루 공간이나 대청처럼 내부도 외부도 아닌 중간 영역을 통해 자연이 방 안으로 스며들고 넘나든다.
그러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마치 땅이 봉긋 솟아 건물이 된 것 같은 형태를 취한다. 조경을 보아도 어디부터마당인지, 원래부터 있던 자연인지 금 긋기가 어렵다.

충남 금산에 우리가 설계한 ‘금산주택‘은 민가 살림집의 방식을 따라서 지은 소박한 집이다. 집을 남향으로앉혀 햇빛을 받아들이고 바람이 집을 지나가기 쉽도록얇게 만들었으며 앞뒤로 창을 내어 맞바람이 불도록 했다. 또한 비가 집으로 들이치지 않고 마당으로 흘러 내려가도록 경사를 조정한 맞배지붕을 얹었다.

조선의 장인은 쉽게 손에 닿는 재료와 도구를 고른다는 것이다. ‘조선의 물건에서는 인간인지 자연인지 분...
명히 알 수 없는 것이 일을 한다. 좋고 나쁘고를 넘어선 경지에서 물건이 생겨나는 것이다. 만든다기보다는생겨난다고 하는 편이 더욱 알맞다.‘
만든다기보다는 ‘생겨나는‘ 것이라는 정의가 무척와닿는다. 조선 예술은 얼핏 투박한 듯하지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독특한 기준과 미학을 지녔고, 그렇기에흉내를 내거나 넘어서기가 오히려 어렵다.

사실 조선, 아니 우리 민족의 생각 혹은 미학은 독특하다. 세계 속에서도 다르고 문화권을 공유하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가령 중국의수도 북경과 일본의 수도 교토, 조선의 수도 한양의 도시계획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수도는 정교한 기하학적 질서로 길을 만들고 마을을 구성하고 집들을 정연하게 배열한다. 그 중심이나 끝점에는 중요한 시설과 왕궁이 존재한다.
반면 한양의 도시계획에는 애당초 그런 기하학이존재하지 않는다. 한양의 고지도는 마치 자유로운 언어 속에 질서를 숨겨 놓은 현대시 같다

지형을 건드리지않고 도시를 만들다 보니 무언가 복잡한 선이 교차하고산과 길이 서로 감싸고 돈다. 물이 제 길로 흐르고 골목이 도시 전체에 실핏줄처럼 퍼져있다. 측량할 수 없거나기하학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도시를 만든 것이 아니다. 도시에 관한 생각과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던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고, 그것은 개념적인 규준이 아니라 ‘생겨난 듯한 실제의 자연스러움이었다.

우리가 설계한 ‘까사 가이아 Casa Gaia‘는 제주도 김녕 바닷가에 지은 집이다. 코발트색 바다가 펼쳐지고 뒤로는 손등을 살짝 올린 것 같은 오름이 있다. 고양이가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라서 ‘괴살메‘라 부르는 오름이다.
크게 보면 한라산에서부터 흘러내린 땅이 오름에서 잠시 머물다가 부드럽게 바다로 들어가는 지형인데, 그 끝에 집을 짓게 되었다.
건축이란 땅에 신세를 지는 일이다. 오랜 시간 바람과 햇빛만을 얹고 지내던 땅을 건드리고 그 위에 제법 무거운 구조물을 얹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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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새랑 눈이 마주쳤다니까요
이이은 지음 / 보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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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비둘기를 정말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이 키링이너무 유니크해서 샀는데, 가방에 달고 매일 보다 보니이제 진짜 비둘기가 조금씩 예뻐 보여요??
누군가의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을 내고, 무심코 지나치던 길 위의 생명에게 다정한 시선을 한 번 더 머물게 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치치칫‘은 존재할 이유가 충분했다.
브랜드가 성장할수록 관찰은 화면 너머 실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확장되었다. 서울의 한 탐조 모임에 참석했을 때, 도착하자마자 누군가의 가방에서 달랑거리는 비둘기 키링을 발견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가슴이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인사를 드려야 하나? 혹시 내가 만든 사람인 걸 알면 불편해하시진 않을까?‘ 수만 번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다가갔을 때, 그분이 보여 준 환한 미소는 그 어떤 매출 지표보다도 나를 든든하게 했다. 이름도 모르는 타인과 ‘새‘라는 공통의 감각으로 연결된 그 찰나의 순간이 나를 쉼없이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새로 태어나는 것들은 대체로 뾰족하다. 여인초의 새잎도, 꽃이 피기 전의 꽃봉우리도,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부리도 험난한 세상을 뚫고 나올 만큼 뾰족하다. 험난한 새세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어중간한 둥근 마음으로는어림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뾰족하게 가다듬은 힘으로세상을 뚫고 나가는 방식을 자연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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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찬란한 아름다움
정승익 지음 / 성서와함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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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 덩어리는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동안 시간의 흐름이라는 일종의 진행 과정을 겪는다. 그러나 조각상으로 완성되면 어떠한 시간 여정도 남지 않는다. 마치작가가 작품을 끝내고 더는 손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주어진 시간이 더 없다고 해서 돌덩어리 존재가 소멸한 것인가? 완성을 향한 재료 차원에서 대리석 덩어리는 사라져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완성된 조각상으로존재한다. 따라서 재료 차원에 속한 
‘시간 안의 존재(esse in tempo)‘와 ’완성된 상태의 존재(esse in perfectione)‘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완성에 도달한 존재는 시간을 종결하는 동시에, 시간에 종속되지 않는 또 다른 차원으로 옮아간다. 우리는 이러한 완성 상태를 ‘영원‘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하느님 작품인 모든 만물은 소멸하지 않는다. 
다만 완성된 영원의 상태로 변화하여하느님 정원에 특별한 방식으로 가득 채워질 뿐이다.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존재의성‘이다. 인간 존재도 하느님의 작품으로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이제 인간 존재의 죽음을 논리적 상상력으로 분석할 실마리가겼다. 그러므로 죽음을 소멸이 아닌 완성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분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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