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을 말한다. 독일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이라는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건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의 결여‘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히만이 아니라고 해도 이 물음을 비켜갈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악(惡)들이 거악(巨惡)을 떠받치고 있는 건 아닌가. 거악은 한두 사람의 악인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의 작은 악들이 모인 결과가 아닌가.
〈주기도문(主祈禱文)>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를 바라고 희망한다. 그 악이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오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위험을 인식하고 늘 깨어있지 않다면, 내부의 악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다면 자신도모르는 사이에 악마와 손을 잡고 있을 것이다. "난 내가 할 일을 했다"고 말하며, "그래도 난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하며.

당신이 거리에서 누군가와 - 이를테면, 생존권의 머리띠를 두르고 주먹을 움켜쥔이들과 마주쳤을 때 서늘한 두려움이 앞선다면 뭔가 잘못살고 있다는 뜻이다. 당신 마음속에 편견이 도사리고 있다는의미이고, 다른 친구‘가 곁에 없다는 의미다.
주토피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토끼 주디도, 여우닉도 아니다. 나무늘보 ‘플래시‘다. 주디는 용의 차량에 대해차적 조회를 하려고 DMV(차량관리국)에 갔다가 플래시를 만나고 학을 뗀다. 말할 때도, 키보드를 두드릴 때도, 농담에 웃을 때도 시속 1미터의 슬로비디오로 움직인다. 마지막 장면에그가 다시 등장한다. 주디가 시속 185킬로미터로 달리는 스포츠카를 쫓아가 차를 세운다. 과속 딱지를 떼려는 순간 차창이내려가며 플래시의 겸연쩍은 얼굴이 나타난다.
‘나무늘보는 느리다‘는 편견에 대한 통쾌한 반박이다. 나무늘보의 몸이 느린 건 사실이지만 모든 일에 느린 건 아니다.
성격은 오히려 급할 수도 있다. 편견은 결정적으로 틀릴 때가많다. 당신이 당신의 편견에 기대어 살다간 큰코다치는 날이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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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스승 루이 비에른 Louis Vierne(1879-1937, 작곡가이자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오르간 주자) 선생님은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어요.
스물여섯 살 때 수술을 받아 앞을 조금 보게 되었지요. 그러자그분이 참을 수 없다고 느낀 게 한 가지 있었어요. 우리 머리가 목과어깨에 붙어 있는 방식이 그분에겐 그리 끔찍하게 보이더랍니다.
게다가 누가 "이 연필 잡아봐!"라고 말하면 그는 "못 잡겠어. 너무멀어" 라고 대답했대요. 하지만 집은 잡고 싶었다고 해요. 왜냐하면 집은커다랗기에 그분의 눈에는 오히려 거리가 가깝게 보인 거죠.
사물의 크기가 그 사물과의 거리와 아무 상관없다는 걸 그분은1~2년이 걸려서야 깨달았답니다. 그분은 가까이 있는 건 크다.
멀리 있는 건 작다고 보았어요. 우리는 사물들이 실제로 있는그곳에서, 그것들을 어떤 척도로 보고 있나요? 오르간 연주를 듣는사람은 말합니다. "오! 저렇게 치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그런데500음전의 오르간을 연주하는 데 드는 힘은, 길이 60센티미터짜리플루트를 부는 데 드는 힘과 똑같습니다. 난생 처음 오르간 소리를들어보는 사람은 널리 퍼지는 그 힘찬 소리에 황홀해합니다. 그런데실제 오르간 주자가 남다른 힘을 펼치는 건 전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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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당신을 제대로만 바라볼 줄 안다면, 볼 때마다 제 눈에 당신은 놀라움이에요. 그런데당신을 볼 때마다 조명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그냥당신을 보는 데 익숙해진다면, 당신은 더 이상 내 생각의 대상이아니라 하나의 가구처럼 되어버리고, 그때 저는 패자인 셈입니다.

제가 보기에 진짜 노화의 징조란 사물에 더 이상 아무런중요성도 두지 않게 되는 거예요. 저에게는 지금 노화의 다른 징조는다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만은 없어요. 내가 러시아어를 안 배워서제대로 못하는구나 하고 후회가 들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하죠.
내면에서 러시아 사람인 어머니의 피가 아주 강렬하게 외치거든요.
러시아어를 읽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

최근에, 신기한 연구를 마음먹은 대로 척척 해내는 어떤 사람이용감하게도 슈베르트가 평생 쓴 음표가 몇 개나 되는지 헤아려보는시도를 했어요. 어쩌면 이런 건 쓰잘데기 없는 시도일지도 모르죠.
여하튼 세어보니 놀랄 만큼 많은 숫자였고, 그는 스스로 이렇게자문했답니다. "천재 아닌 보통 사람이, 그저 이 많은 수의 음표를단순히 악보에 그려 넣기만 하는 데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그는 이 또한 조사해서 근 25년이 걸린다는 걸 알아냈어요. 그런데슈베르트는 수백만 개의 음표를 악보 위에 그려 넣는 데 단 15년밖에안 걸렸습니다. 이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슈베르트는
"난 러시아어를 하고 싶어" 같은 말을 안 하죠. 그런 말을 하는 대신실제로 합니다. 우리는 하지는 않으면서 말만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없다는 거창한 변명을 앞세우지요. 하지만 슈베르트도, 바흐도, 포레도시간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들은시간을 찾아낸 것이고...

어느날 스트라빈스키에게 물었어요. "그런 작곡 의뢰도 수락할 건가요?"
그는 아주 함축적이고 감탄스러운 말로 대답했어요. "수락 못 하죠.
그 일을 생각하면 침이 꿀꺽 넘어가질 않거든요." 발레리는 말합니다.
"욕망 없이는 들어가지 마라." 그리고 스트라빈스키는 말합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침이 꿀꺽 넘어가지를 않는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라는 용감한 사람이 〈요한 수난곡>과(마태 수난곡을 썼다는 그 사실 자체만 놓고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이걸 모르거나 혹시 알더라도 콧방귀를 뀌고 거기서 전혀 기쁨을못 느끼죠. 하지만 더없이 위대한 이런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무엇이 필요할까요? 당신 생각에는?

이 경우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중요한 것 같은데요.

아,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당신이에요. 왜냐하면마태 수난곡>은 당신이 그 곡을 들어야만 존재하니까요..
발레리의 신작을 읽자마자 그에게 말했어요. "얼마나 감탄스러운 일인가요, 얼마나 믿기 힘든 성공인가요!"
그러자 발레리가 대답했어요.
"그건 당신이 하신 일이죠." 그 얘길 듣고 일 분 정도 깜짝 놀랐죠.

당신이 어렸을 때 저처럼 복음서에서 이 구절을 읽고 충격 받은 적이있는지 모르겠네요.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주어지리라."
저는 발끈했어요. 뭐라고? 이 사람은 이미 많이 받았는데, 그에게 더준다는 거야!‘ 하지만 여기에 대단한 지혜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보니 마음속에 욕망도 없는 것이죠. 아무 일도 안 할 사람에게많이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많은 것들을 기억 속에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체로 훌륭한벗들을 곁에 두는 셈이 되지요. 기억에 담은 것은 모두 우리를풍부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만약 그런것들이 우리 자신을 찾는 데 장애가 된다면, 그건 우리에게 개성이전혀 없는 탓일 겁니다. 테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은 이 점에 대해 아주달변으로, 이렇게 설명하셨지요. "한 쌍에서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흡수해서는 안 되고, 차이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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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격려하기에 앞서, 그 사람이 과연 자기 안에사랑을 지니고 있는지, 그가 자기가 하는 일에 그 일이 무엇이든간에 흥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해요. 왜냐하면 어떤 일에몰두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관심을 지니는 일이니까요. 여기서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나뉘어요. 한쪽은 행동할 수 있는 비범한 여력이있는 사람들, 다른 한쪽은 제가 잠꾸러기‘라 부르는 사람들, 잠자는사람들은 굳이 흔들어 깨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을깨워봐야 아무런 이득도 없으니까요. 그들은 아주 착하고, 행복하고,그 상태로 아주 좋아요. 인간적으로 볼 때 그들은 지금 그 상태로충분히 정당화되거든요.
주의라는 것을 남에게 가르칠 수 있는지, 그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은누구나 자기 삶을 잃는 셈이다"라고요. 나아가서 부주의 때문에그의 삶은 무화無化된다고 까지 저는 말하죠. 유리창을 닦는 사람이건,명작을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건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항상베르그송Henri Bergson이 쓴 이 놀라운 구절로 돌아옵니다. "인간은자연의 혼돈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는 그 혼돈을 정연하게조직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어서 어떻게 이런 조건 속에서 인간이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 많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자신의능력에 스스로 깜짝 놀라는지, 그것을 베르그송은 펼쳐 보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 나오는 한 구절을 저는 살면서 하루도빠지지 않고 생각합니다. "생각 없는 말言은 결코 하늘로 가지 못한다."
제가 당신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하면, 저는 존재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로마에 있었을 때 제 여동생 릴리는 열아홉 살, 그 애가 로마작곡대상을 받은 직후였어요. 더없이 우아하고 순수한 모습이던 동생과빌라 메디치의 공원을 산책했습니다. 공원을 걷는 우리는 청춘이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젊은이다운 환상을 갖고 있었어요. 그 공원에서늘 잡초를 뽑던 할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피부는 주글주글했지만이목구비는 너무도 아름다웠어요. 그때가 1913년이었는데, 이 일은지금까지도 제 삶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옆으로지나갈 때 할머니가 고개를 들더니, 지울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인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좋은 하루, 그리고 하루 종일좋은 날Buon giorno, e per tutto il giorno." 이 말을 하면서 할머니는 우리를보고 미소 지었어요. 그 미소가 이미 선물이었어요. 우리는 그 말을듣고 할머니께 고맙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65년이 흘렀고,
동생은 1918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하지만 지금도 이 말이 귓가에들리면 저는 혼잣말을 합니다. "잊지 말자. 너의 하루하루가 축복받은날이라는 걸. 네가 그 날을 잘 활용하건 못 하건, 하루하루는 축복받은 날이야"

제 생각에, ‘주의‘란 우리로 하여금 있어야‘ 하는 것을 인식하게하는 상태입니다. 위대한 신비주의 명상가들이 보는 것이 바로이것이죠. 그들 신비주의자들 입장에서도 진정 주의를 기울이게되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 종종 떠오르는 인물은 아빌라의성녀 테레사예요.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인 그 대단한 성녀 테레사의경우에도 본인이 메마른 기도의 날‘이라고 이름 붙인 날들이 있다고해요. 그런 날이면 테레사 성녀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안 그래도 그분이 기도를 멈춘 적은 없었지요. 그러나 아무것도 없지요!
그러고 나면 문득, 소리가 들리는 날이 옵니다. 예술에서는 이런것을 ‘영감‘이라 부르지요. 그건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 진짜 생각을밑바닥까지 포착해낼 수 있는 순간이며, 우리가 진실과 닿는 순간이고, 일치가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또 다른 차원에선, 최근에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가 오페라〈토스카Tosca)를 연습하는 자리에 함께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말이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사실 〈토스카>를 안 들어도 우린아무 탈 없이 잘 살지요. (토스카>가 걸작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어쨌든 그 곡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은 없잖아요. 그런데 그 연습 장면을지켜본 기억이 제 뇌리에 남아 앞으로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임을알겠더군요.
연습이 끝나자 로스트로포비치가 다가오더니 서툰 불어로 이렇게말했어요. "저는 뭐든 했다 하면, 할 수 있는 한 잘해야 합니다."
음 하나하나가 그에겐 본질이에요. 어떤 음 하나 심드렁하게 나는것을 그는 견디지 못해요. 첫 연습 결과에 만족한 사람이 많았어도그는 곡의 일정 부분을 아주 여러 번 되풀이하게 했지요. 그런데 너무나 기분좋게 반복시키고 또 전혀 안달복달하지 않는 태도로 연습을 시키니까 단원들도 기꺼이 반복 연주하면서 아주 기분이 좋아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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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대학교의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헬스클럽으로 운동 장소를 바꿨고, 그곳에서 나이 든 여성의 행복을 생생히 보여주는 일화를 경험했다.

나는 두 시설의 탈의실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대학교 레크리에이션 센터의 탈의실은 불행과 스트레스에 짓눌린젊은 여성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늘 운동 파트너나 휴대전화 너머상대방을 향해 체중이나 재정 상황, 학점, 인간관계 등에 대한 불평을 늘어놨다. 옷을 벗을 때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몸을 웅크렸다. 누군가 주말이나 공휴일 계획을 자랑하는 짧은 순간을 제외하면, 그곳 분위기는 언제나 축 처져 있었다.
반면, 새로 등록한 헬스클럽의 탈의실에서는 나이 든 여성들이아무 거리낌 없이 벌거벗고 돌아다니거나 최소한의 속옷 혹은 수영복만 입은 채 자유롭게 활보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몸은 주름과 튼 살, 셀룰라이트로 가득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서로의 몸보다 수십 년의 기쁨과 고통이 새겨진 얼굴에더 큰 관심을 갖고, 종종 자신의 삶을 솔직히 공유한다.

이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뿐이며, 삶에서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법칙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없다는 것뿐이다. 인생의 이 시기에 다다른 우리는 이제부터 각종내적 · 외적 위기에 시달릴 것이다.
생애의 단계가 전환되고 정체성이 바뀌는 순간, 우리는 인생에서 새로운 목적과 의미에 대한 감각을 찾아내야 한다는 가장 큰 도전에 맞닥뜨린다. 이는 말처럼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의사였던 내남동생은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택해야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목적이라는 게 그냥 원한다고 휙 얻어지는 게 아니더라고." 존의말이 옳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지, 어떻게 남을 도울지,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하나하나 선택하면서 인생의 의미를만들어나가야 한다.
물론 매일같이 목적의식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날에는 늦잠을 자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영화를 보며 한가롭게지내고 싶을 수도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균형과 대조의 문제다.
일과 휴식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법을 찾아낼 때, 우리는 비로소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욱 빨리 성장한다. 이 시기에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인생이 공기 중으로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현실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틈만 나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제 겨우 여행 갈 시간이 생겼는데, 어디로 떠나야 하지?"
"제일 친한 친구가 애리조나로 이사 가버렸으니, 이제 누구랑 영화를 본담?" "허리가 안 좋아졌는데, 이제 어떻게 13킬로그램짜리 사료통을 옮기지?"
동시에, 우리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탐구한다. 나는 시간과 재능을 현명하게 사용했는가? 지금은 어떤가? 나는 사랑을 베풀며 살았는가? 지금은 어떤가?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는가? 지금은 어떤가? 이 세상에서 내 자리는 어디인가?
우리는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은 행복과 고통의 조합을 통해 주어진 삶의 단계를 정의하고 성장을 촉진한다. 우리는 행복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동시에’일어나는 인생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정의한다. 행복은 희망과 활력을 주고, 고통은 공감능력을 향상시킨다. 이러한 모순은 노년이라는 삶의 단계에서 우리의 영혼을 넓혀주는 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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