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대학교의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헬스클럽으로 운동 장소를 바꿨고, 그곳에서 나이 든 여성의 행복을 생생히 보여주는 일화를 경험했다.

나는 두 시설의 탈의실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대학교 레크리에이션 센터의 탈의실은 불행과 스트레스에 짓눌린젊은 여성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늘 운동 파트너나 휴대전화 너머상대방을 향해 체중이나 재정 상황, 학점, 인간관계 등에 대한 불평을 늘어놨다. 옷을 벗을 때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몸을 웅크렸다. 누군가 주말이나 공휴일 계획을 자랑하는 짧은 순간을 제외하면, 그곳 분위기는 언제나 축 처져 있었다.
반면, 새로 등록한 헬스클럽의 탈의실에서는 나이 든 여성들이아무 거리낌 없이 벌거벗고 돌아다니거나 최소한의 속옷 혹은 수영복만 입은 채 자유롭게 활보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몸은 주름과 튼 살, 셀룰라이트로 가득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서로의 몸보다 수십 년의 기쁨과 고통이 새겨진 얼굴에더 큰 관심을 갖고, 종종 자신의 삶을 솔직히 공유한다.

이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뿐이며, 삶에서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법칙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없다는 것뿐이다. 인생의 이 시기에 다다른 우리는 이제부터 각종내적 · 외적 위기에 시달릴 것이다.
생애의 단계가 전환되고 정체성이 바뀌는 순간, 우리는 인생에서 새로운 목적과 의미에 대한 감각을 찾아내야 한다는 가장 큰 도전에 맞닥뜨린다. 이는 말처럼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의사였던 내남동생은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택해야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목적이라는 게 그냥 원한다고 휙 얻어지는 게 아니더라고." 존의말이 옳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지, 어떻게 남을 도울지,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하나하나 선택하면서 인생의 의미를만들어나가야 한다.
물론 매일같이 목적의식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날에는 늦잠을 자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영화를 보며 한가롭게지내고 싶을 수도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균형과 대조의 문제다.
일과 휴식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법을 찾아낼 때, 우리는 비로소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욱 빨리 성장한다. 이 시기에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인생이 공기 중으로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현실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틈만 나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제 겨우 여행 갈 시간이 생겼는데, 어디로 떠나야 하지?"
"제일 친한 친구가 애리조나로 이사 가버렸으니, 이제 누구랑 영화를 본담?" "허리가 안 좋아졌는데, 이제 어떻게 13킬로그램짜리 사료통을 옮기지?"
동시에, 우리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탐구한다. 나는 시간과 재능을 현명하게 사용했는가? 지금은 어떤가? 나는 사랑을 베풀며 살았는가? 지금은 어떤가?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는가? 지금은 어떤가? 이 세상에서 내 자리는 어디인가?
우리는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은 행복과 고통의 조합을 통해 주어진 삶의 단계를 정의하고 성장을 촉진한다. 우리는 행복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동시에’일어나는 인생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정의한다. 행복은 희망과 활력을 주고, 고통은 공감능력을 향상시킨다. 이러한 모순은 노년이라는 삶의 단계에서 우리의 영혼을 넓혀주는 문 역할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