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당신을 제대로만 바라볼 줄 안다면, 볼 때마다 제 눈에 당신은 놀라움이에요. 그런데당신을 볼 때마다 조명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그냥당신을 보는 데 익숙해진다면, 당신은 더 이상 내 생각의 대상이아니라 하나의 가구처럼 되어버리고, 그때 저는 패자인 셈입니다.

제가 보기에 진짜 노화의 징조란 사물에 더 이상 아무런중요성도 두지 않게 되는 거예요. 저에게는 지금 노화의 다른 징조는다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만은 없어요. 내가 러시아어를 안 배워서제대로 못하는구나 하고 후회가 들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하죠.
내면에서 러시아 사람인 어머니의 피가 아주 강렬하게 외치거든요.
러시아어를 읽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

최근에, 신기한 연구를 마음먹은 대로 척척 해내는 어떤 사람이용감하게도 슈베르트가 평생 쓴 음표가 몇 개나 되는지 헤아려보는시도를 했어요. 어쩌면 이런 건 쓰잘데기 없는 시도일지도 모르죠.
여하튼 세어보니 놀랄 만큼 많은 숫자였고, 그는 스스로 이렇게자문했답니다. "천재 아닌 보통 사람이, 그저 이 많은 수의 음표를단순히 악보에 그려 넣기만 하는 데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그는 이 또한 조사해서 근 25년이 걸린다는 걸 알아냈어요. 그런데슈베르트는 수백만 개의 음표를 악보 위에 그려 넣는 데 단 15년밖에안 걸렸습니다. 이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슈베르트는
"난 러시아어를 하고 싶어" 같은 말을 안 하죠. 그런 말을 하는 대신실제로 합니다. 우리는 하지는 않으면서 말만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없다는 거창한 변명을 앞세우지요. 하지만 슈베르트도, 바흐도, 포레도시간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들은시간을 찾아낸 것이고...

어느날 스트라빈스키에게 물었어요. "그런 작곡 의뢰도 수락할 건가요?"
그는 아주 함축적이고 감탄스러운 말로 대답했어요. "수락 못 하죠.
그 일을 생각하면 침이 꿀꺽 넘어가질 않거든요." 발레리는 말합니다.
"욕망 없이는 들어가지 마라." 그리고 스트라빈스키는 말합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침이 꿀꺽 넘어가지를 않는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라는 용감한 사람이 〈요한 수난곡>과(마태 수난곡을 썼다는 그 사실 자체만 놓고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이걸 모르거나 혹시 알더라도 콧방귀를 뀌고 거기서 전혀 기쁨을못 느끼죠. 하지만 더없이 위대한 이런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무엇이 필요할까요? 당신 생각에는?

이 경우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중요한 것 같은데요.

아,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당신이에요. 왜냐하면마태 수난곡>은 당신이 그 곡을 들어야만 존재하니까요..
발레리의 신작을 읽자마자 그에게 말했어요. "얼마나 감탄스러운 일인가요, 얼마나 믿기 힘든 성공인가요!"
그러자 발레리가 대답했어요.
"그건 당신이 하신 일이죠." 그 얘길 듣고 일 분 정도 깜짝 놀랐죠.

당신이 어렸을 때 저처럼 복음서에서 이 구절을 읽고 충격 받은 적이있는지 모르겠네요.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주어지리라."
저는 발끈했어요. 뭐라고? 이 사람은 이미 많이 받았는데, 그에게 더준다는 거야!‘ 하지만 여기에 대단한 지혜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보니 마음속에 욕망도 없는 것이죠. 아무 일도 안 할 사람에게많이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많은 것들을 기억 속에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체로 훌륭한벗들을 곁에 두는 셈이 되지요. 기억에 담은 것은 모두 우리를풍부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만약 그런것들이 우리 자신을 찾는 데 장애가 된다면, 그건 우리에게 개성이전혀 없는 탓일 겁니다. 테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은 이 점에 대해 아주달변으로, 이렇게 설명하셨지요. "한 쌍에서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흡수해서는 안 되고, 차이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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