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이주윤 지음 / 빅피시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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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이 있습니까?
내게는 다 똑같아요. 이제는 그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만 생각하죠.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조차 묻지 않게 됩니다. 보세요, 좋은사람, 나쁜 사람이란 구분도 잘 맞질 않아요. 난 모든 사람이 불쌍할뿐이에요.

어렵지요. 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이태준의 《문장 강화》에는 이런 말이다 쓰여 있을까요.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라고 말입니다.

스티븐킹 에세이, 《유혹하는 글쓰기>또 하나의 충고는 이것이다. ‘부사는 여러분의 친구가 아니다‘
부사라는 것은 동사나 형용사나 다른 부사를 수식하는 낱말을가리킨다. 흔히 ‘...하게(-ly)‘로 끝나는 것들이다. 수동태와 마찬가지로부사도 소심한 작가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낸 창조물인 듯하다.
부사를 많이 쓰는 작가는 대개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자신이없다. 자신의 논점이나 어떤 심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봐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성복 시론, 《무한화서》정작 할 얘기를 안 하기 때문에 말이 많아지는 거예요. 지금까지말 모두 지워버리고, 말 다 했다고 생각한 데서 새로 시작해보세요.

어느 날 아침, 머리를 뒤로 빗어 넘겨 왼손으로 잡은 후 고무줄로묶어야 하는데 오른쪽 팔이 올라가지 않는 거였다. 도대체 팔에서뒤통수까지 몇 센티나 된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손이 닿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오십견이 온 것이다. 내 머리도 내가 마음대로 못묶는다는 사실에 맥이 빠져 며칠이나 서글퍼하다가 나는 동네미용실로 달려갔다. 묶을 수 없으면 묶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으면되지 뭐.

046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소설,
<백년의 고독>그에게 중요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사형이선고되었을 때 그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향수였다.

은유 에세이, <글쓰기의 최전선>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삶을 글로 뚫으려고애썼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외적 원인에 휘말리고 동요할 때, 글을쓰고 있으면 물살이 잔잔해졌고 사고가 말랑해졌다. 글을 쓴다고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후련했다.

박완서 에세이, <나를 닮은 목소리로>10년 전 참척을 당하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원망을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거였다.
(중략) 슬픔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게 원망과 치욕감이었다. (중략)그때 만난 어떤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대체 어디를 걷고 있는가. 그건 다른 사람의 길이 아닌가. 그러니까어쩐지 걷기 힘들겠지. 너는 너의 길을 걸어라. 그러면 멀리까지 갈수 있다.

장자, <장자>오리 다리가 짧다고 해서 그것을 늘여준다면 오히려 오리는 괴로울것이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하여 그것을 잘라버린다면 오히려 학은슬퍼할 것이다. 본래 긴 것은 자를 것이 아니고 짧은 것은 늘여줄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길고 짧은 것은 없애야 할 근심이 아니었다.

폴 오스터 소설, <달의 궁전》여기가 있는 건 단지 저기가 있기 때문이야. 위를 올려다보지 않으면밑에 뭐가 있는지 절대로 알지 못해. 그걸 생각해 봐. 우리는 우리가아닌 것을 봄으로써만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돼. 하늘을 만지기전에는 땅에 발을 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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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알려줄래?"
고양이가 대답했다.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달려 있어."
_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처음에는 낯선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더라도그 단어가 아니라면 표현할 방도가 없는 상황도 있을 테니 익혀둘 가치가 있었습니다. 매우 좋아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거릴 때는 ‘헝겁지겁‘이라는 표현이 하는 짓이 치사하고 더러운 데가 있을 때는 ‘든적스럽다‘는 표현이적확하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게 되었습니다. 단어가 쌓이자 문장이 보였습니다.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을 섞어가며 리듬을 살리는 방식과 평범한 장면을 남다르게 묘사한 부분을 눈여겨보았지요. 문장이 모이니 구성을 살펴보게 되더군요. 문단을 나눌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 때는어떠한 연결 고리를 사용하는지, 밑줄과 빗금과 화살표로 표시해 가며 분석

문유석 에세이, <쾌락독서>암담하던 고시생 시절은 벗어났지만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벽에 부딪히곤 한다. 그럴 때 떠올린다. 그래, 나는 에이스가아니었어. 팀의 주역이 아니면 어때?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있으면 그걸로 족한 거 아냐? 누가 비아냥거려도 웃을 수 있게 된다.죄송함다. 제가 원래 에이스가 아니거든요.내가 감히 이렇게 책도 쓰고, 신문에 소설도 쓰고, 심지어 드라마대본까지 쓰고 할 수 있었던 힘은 저 두 마디에서 나온 것 같다. 나도내가 김영하도 김연수도 황정은도 김은숙도 노희경도 아닌 걸 잘알지만, 뭐 어때?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나는 나만의 ‘풋내기 슛‘을즐겁게 던질 거다. 어깨에 힘 빼고, 왼손은 거들 뿐.

최은영 소설,《내게 무해한 사람>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메마름이었다. 사랑해. 나는 속삭였다.

헤르만 헤세 소설,《클라인과 바그너》만약 지금 불안하다면, 불안의 정체가 보일 때까지 불안을 물끄러미바라보아라. 그대는 더없이 익숙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몸을 일으켜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을 두려워한다. 누구든 그렇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그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앞으로나아가는 일.그러니 자신을 버릴 각오로 뛰어들어라. 혹은 운명에 모든 것을맡기고 나아가라. 앞으로 한 걸음, 단 한 걸음만.

슬로보트 에세이, 《고르고르 인생관>그저 멀리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어느새 네 안에 들어와있구나.
사실은 모두 네 안에 이미 있던 씨앗이야.
좋아하는 것을 갈고닦아서 멋지게 피워 올린 거야.
더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지.
드디어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되었으니까!
완성된 자신을 마음껏 누리고 다시 새로운 꿈을 꾸자.
자, 이번에는 어디까지 가 볼까?

007서유미 소설,《우리가 잃어버린 것》인생을 산다는 게 그 접힌 페이지를 펴고 접힌 말들 사이를 지나가는일이라는 걸, 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여도 모든 것을 같이 나눌수도 알 수도 없다는 걸, 하루하루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다가끔 같이 괜찮은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소설, 《어린 왕자》레옹 베르트에게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데 대해 어린이들의 용서를 구하려고 한다.
내게는 그럴 만한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어른은 내가 이세상에서 사귄 가장 훌륭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또 어른은 모든 것을이해하고, 심지어 어린이들을 위해 쓴 책까지도 이해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어른이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데, 거기서 굶주림과추위에 떨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위로가 필요한 처지에 있다.
이 모든 이유로도 부족하다면, 이 책을 그의 어린 시절에게바치고 싶다. 어른들도 모두 한때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걸 기억하는어른들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헌사를 이렇게 고쳐 쓰고 싶다.
어린이였을 때의 레옹 베르트에게.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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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여름날 쓴 편지의 제목처럼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해줍니다. 또 세상과 연결하고 삶의 많은 것을 함께하고요.
특히나 저는 읽으면서 ‘나‘를 인식하고, 타자와 공동체를 생각하고불안과 불행을 건너고, 어린이를 자라게 하고, 어른과 늙음을관찰하고,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경계를 걷게 합니다.

어느 책이든 여러분 삶의 한 시절에맞닿길 바랍니다. 읽는 일이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을 가져오진못해도 매일의 곳곳에 작은 기쁨을 놓아주니까요. 이 책도어딘가에 연결되길 바라봅니다.

지난 만남 때 제임스 댄커트, 존 D. 이스트우드의지요[지루함의 심리학을 읽고 있다며 "지루하다는 것은 현재우리의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하는상태"이며, "우리 마음이 지금 하는 일이 잘못됐다고알려주는 신호"라고 했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그래서 난 외로움이나 권태감을 느끼거나 하물며 바쁘게무언가를 할 때 새로운 걸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구나,
생각했어요. 지루함이란 할 일이 없거나 하고 싶은 일이없을 때 느끼는 게으른 감정이라고 여겼었는데. 그 감정은단순한 게으름이나 무기력함이 아닐 수도 있겠더라고요.아름다움처럼 지루함도 사람마다 다르게 찾아오나봐요.지루함에서 빠져나오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고요.

루이스 캐럴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책을 읽는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독서는 혼자서만할 수 있는 일인데 정작 책을 읽으면 혼자가 아니란 걸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처럼 책으로 연결되어편지를 나누기도 하고 백 년 전 쓴 글로 인해 오늘이두근두근하기도 하니까요.

균형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레너드 코렌의[와비사비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집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곱씹게 되었어요. 이 책은 ‘일본의 오랜 성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와비사비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의문화적 전통 미의식, 미적 관념의 하나로 투박하고조용한 상태를 가리킨다고 해요. 보통 묶어서 와비사비로표현하지만, 엄밀히는 별개의 개념입니다. 와비는일본 다도의 근본이념을 나타낸 말이고, 한적한 정취,소박하고 차분한 멋 등의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사비는한자로 한적할 ‘적‘이라고도 쓰는데, 일본은 이미

그때 "너희는 늙어봤니, 우리는 젊어봤다! "분위기에 맞지않는 건배사가 들렸습니다. 크고 묵직한 목소리였어요.
가게의 음악이 잠깐 멈춘 느낌이었습니다. 저와 친구는주변을 두리번거렸죠. 건배사가 울려 퍼진 테이블엔 머리가흰 할아버지 네 분이 멋진 슈트를 입고 있었어요. 전 그건배사를 듣고 웃음이 먼저 터졌지만, 이내 눈물이 찔끔났어요. 웃음은 적막을 깬 우렁찬 목소리 때문이었는데,

제 스타일로 해석하자면 늙는다는 것은 늘어가는 것과다르지 않습니다. 키가 크고 생각이 자라고 마음이넓어지며 모든 것이 ‘늘어가는‘ 것이겠죠. 그러다 몇 번의순간에 살짝 꺾이는 시기가 옵니다. 아마 그 시기엔 좋았던옛 기억을 자주 떠올리고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나 고민도늘 거예요. 그 ‘기억‘들이 추가되는 거예요. 바로 ‘ㄱ‘입니다.
늘어가는 것 + ㄱ(기억)= 늙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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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허상에 집착해서 쉴 새 없이 자신을 핥아대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마침내 찾을 때까지는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무엇을 위해 이 고단함을 견뎌야 하는지,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이 인생의 전모를 논리적 언어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삶은 종종 부조리와 경이를 간직한 모호한 현상이므로, 때로는 구름을 술잔에 담듯 삶을 담아야 한다. 드립은바로 언어로 된 그 술잔이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그랬던가, 인간은 벌거벗은 현실을 살지않고 언어로 만든 집에서 산다고. 그 집은 하루아침에 다 지을 수 없다. 언어는 어느 날 갑자기 한 개인에 의해서 창조되지 않는다. 언어는 사회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기존 언어를비틀고 전용하고 전유하며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다. 드립도그와 같은 전유의 소산이며, 그 전유의 행위 속에 인간 고유의 자유가 깃든다.

과연 드립은 기존 언어를 효과적으로 비틀 때 성공한다. 앞에놓인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을 때 "오늘은 입맛이 없어서 못 먹겠어"라고 하면 그것은 드립이 아니다. "오늘은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 못 먹겠어"라고 해야 비로소 드립이다. 이 드립은입맛 그리고 헝그리 정신이라는 말의 의미를 숙지하면서 비틀 수 있기에 가능하다.

이런 드립이나 치고 있기에는 세상일이 너무 심각하다고? 분노하기에도 바쁘다고? 그렇다. 실로 이 세상은 분노할 일로가득 차 있다. 인간에게는 주어진 현상보다 나은 상태를 꿈꾸는 능력이 있고, 그 능력으로 인해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분노가 고삐를 잃고 극에 달했을 때, 그 분노는 혐오로 바뀌기도 한다. 그래도 분노와 혐오를 날것 그대로 발설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날것 그대로 혐오하는 순간, 바로 그 혐오에 패배하는 것이며, 그런 패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우린 좀더 심미적으로 패배할 수 있다. 드립 인간은 분노에 떠는 순간에도 유연하게 몸을 돌려 상대 정신의 빈 곳을 가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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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이란 무엇인가. 드립은 선전이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로베르트 무질은 기념비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없다고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뻔뻔한 선전만큼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은 없다고. 유세차의 녹음기 소리처럼 귀에들리지 않는 것은 없다고. 시끄럽게 안달복달하는 선전들은작고 희미한 것을 듣는 능력을 무디게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파괴적이다. 그토록 크고 시끄러운 소리에 귀먹으면, 나직한 호소를 듣지 못한다. 드립은 시끄러운 선전 문구와 다르다. 잘 구사한 드립은 핸드드립처럼 수줍고 섬세하다.

드립은 ‘예, 아니오‘가 아니다. 단답식으로 말해달라는 그 수많은 요구들, 랭킹을 매겨달라는 그 안이한 요구들, 숫자로표시해달라는 그 기계적인 요구들, 개조식으로 써달라는 그단조로운 요구들에 저항하자. 대답 없는 문제에 대답할 필요가 없고, 랭킹 없는 사안에 랭킹 매길 필요 없고, 계산할 수 없는 것을 수치화할 수 없고, 항목화할 수 없는 것들을 항목별로 나열할 수 없다. 단답과 억지 랭킹과 숫자와 항목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드립이 필요하다.

드립은 거짓말과 다르다. 상대가 그 말이 드립임을 알아채지못했다면, 즉 드립을 다큐로 받는다면 그 드립은 실패한 것이다. 누군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으면 드립을 잘 치는 영재 소년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 당연히 이스탄불이 좋지!" 여기서 아이는 결코 누군가를 속이려는 것이 아니다. 대답을 들은 사람도 아이가 엄마, 아빠보다 이스탄불을더 사랑한다고 믿지 않는다. 아이는 이분법을 강요하는 상대질문을 파훼하기 위해 드립을 구사한 것뿐이다.

프랭크퍼트에 따르면 개소리는 진리에 무관심하다." 바로 그점에서 개소리는 거짓말과 다르다. 거짓말은 진리를 은폐하기 위해서라도 진리에 관심을 두지만, 개소리는 진리에 무관심한 채 그저 생각 없이 애매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다. 거짓 공포와 거짓 희망을 주입하기 위한유사 정치, 유사 종교, 유사 역사학의 언명들이 이러한 개소리에 속한다. 드립은 상대에게 그것이 드립임을 각성시키는 데서 발생하므로 개소리와 거리가 멀다. 드립은 상대의 전두엽을 새삼 자극한다는 점에서 듣는 이를 멍청하게 만드는 개소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드립은 훈계와 다르다. 훈계는 화자가 청자의 우위에 선다는점에서 억압적이다. 훈계는 심미적 요소보다 도덕적 요소가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지루하다. 성공한 드립은 상대방의 허를 찌르고, 허를 찔린 상대는 웃음을 터뜨린다. 웃음 속에서서로 간의 긴장이 이완되므로 위계적 훈계는 성립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훈계는 드립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한국 사회 꼴이 말이 아니라고 식탁에서 한탄해보라.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엄마가 이렇게 드립을 구사할지 모른다. "네 꼴이나걱정해라, 이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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