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이란 무엇인가. 드립은 선전이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로베르트 무질은 기념비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없다고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뻔뻔한 선전만큼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은 없다고. 유세차의 녹음기 소리처럼 귀에들리지 않는 것은 없다고. 시끄럽게 안달복달하는 선전들은작고 희미한 것을 듣는 능력을 무디게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파괴적이다. 그토록 크고 시끄러운 소리에 귀먹으면, 나직한 호소를 듣지 못한다. 드립은 시끄러운 선전 문구와 다르다. 잘 구사한 드립은 핸드드립처럼 수줍고 섬세하다.

드립은 ‘예, 아니오‘가 아니다. 단답식으로 말해달라는 그 수많은 요구들, 랭킹을 매겨달라는 그 안이한 요구들, 숫자로표시해달라는 그 기계적인 요구들, 개조식으로 써달라는 그단조로운 요구들에 저항하자. 대답 없는 문제에 대답할 필요가 없고, 랭킹 없는 사안에 랭킹 매길 필요 없고, 계산할 수 없는 것을 수치화할 수 없고, 항목화할 수 없는 것들을 항목별로 나열할 수 없다. 단답과 억지 랭킹과 숫자와 항목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드립이 필요하다.

드립은 거짓말과 다르다. 상대가 그 말이 드립임을 알아채지못했다면, 즉 드립을 다큐로 받는다면 그 드립은 실패한 것이다. 누군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으면 드립을 잘 치는 영재 소년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 당연히 이스탄불이 좋지!" 여기서 아이는 결코 누군가를 속이려는 것이 아니다. 대답을 들은 사람도 아이가 엄마, 아빠보다 이스탄불을더 사랑한다고 믿지 않는다. 아이는 이분법을 강요하는 상대질문을 파훼하기 위해 드립을 구사한 것뿐이다.

프랭크퍼트에 따르면 개소리는 진리에 무관심하다." 바로 그점에서 개소리는 거짓말과 다르다. 거짓말은 진리를 은폐하기 위해서라도 진리에 관심을 두지만, 개소리는 진리에 무관심한 채 그저 생각 없이 애매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다. 거짓 공포와 거짓 희망을 주입하기 위한유사 정치, 유사 종교, 유사 역사학의 언명들이 이러한 개소리에 속한다. 드립은 상대에게 그것이 드립임을 각성시키는 데서 발생하므로 개소리와 거리가 멀다. 드립은 상대의 전두엽을 새삼 자극한다는 점에서 듣는 이를 멍청하게 만드는 개소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드립은 훈계와 다르다. 훈계는 화자가 청자의 우위에 선다는점에서 억압적이다. 훈계는 심미적 요소보다 도덕적 요소가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지루하다. 성공한 드립은 상대방의 허를 찌르고, 허를 찔린 상대는 웃음을 터뜨린다. 웃음 속에서서로 간의 긴장이 이완되므로 위계적 훈계는 성립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훈계는 드립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한국 사회 꼴이 말이 아니라고 식탁에서 한탄해보라.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엄마가 이렇게 드립을 구사할지 모른다. "네 꼴이나걱정해라, 이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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