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 숨으로 인생을 헤쳐온 제주해녀가 전하는 나를 뛰어넘는 용기
서명숙 지음, 강길순 사진 / 북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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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해하는 자기에게 가게에놀러왔던 한 할머니가 누추하지만 자기네 집에서 자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너무나도 고마워서 염치불구하고 선뜻 응했더니 할머니는 쌀가마니를 쟁여둔 방을 미안해하면서 내주신 뒤에 삶은 고구마를 내주고다음날에는 아침까지 차려주었다.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상은 세상에서먹은 아침 중에 가장 맛난 성찬이었다. 그녀의 글은 이렇게 끝났다.
"길도 아름다웠지만 사람이 더 마음에 남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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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자를 치우지 않는 건
그가 다시 돌아오리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그건 어느 한 사람만이 앉아주기를 원하는
빈 의자의 권리를 지켜주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내가 아니라
물건이 더 아프게 그를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도 멈추어버린 사랑을
쉽게 추월할 수 없는지 모른다.



살 만해지면 너무 조금 남아 있는 것.

흔적

지울수록 더 또렷해지는 것.

착각

방 안이 자꾸만 어두워진다.
촉수가 더 높은 전구로 전등을 바꾼다.
방 안은 거짓말처럼 밝아진다.

위로

그는 내게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나도 무슨 위로를 해주어야 하는지 벌써 알고 있다.
위로를 주고 위로를 받으면서 우리는 음모한다.
진실은 더 이상 돌아보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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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철학 - 네 마리 고양이와 함께하는 18가지 마음 수업
신승철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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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심리학자 대니얼 스턴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나서 2개월 정도까지 엄마와 아이 사이에는 우주되기와 같은 합일의 순간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짧은 기간이 지나면 타자와 내가 합일된 순간을 인생에서 경험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않을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합일을 갈구하고 염원합니다. 우주되기, 그것은 도달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과 합일을 향한 노란 손수건과도 같은 노스탤지어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사랑에 대한 색다른 생각을 피력합니다. 사랑하면절로 합일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게 되면서
"사랑할수록 달라진다"는 겁니다. 사랑은 특이성으로 향하는 과정이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사랑을 통해서 색다른 생각과 유별난 행위양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다소 낯선 생각입니다. "사랑할수록 닮아간다"는생각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물론 "사랑할수록같아진다"는 동일성의 철학은 도달할 수 없는 우주되기의 지평이므로, 일단 이 논의에서는 배제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우주되기는 즉각적이고 감각적으로 도달하는 완성형으로서의 ‘이기(being)‘가 아니라, 이에 대한 색다른 경로를 개척하는 과정형으로서의 ‘되기(becoming)‘의 맥락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되기는 ‘사랑할수록 달라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오르키데 난초는 기존의 난초 영역에서 벗어나 말벌의 꽁무니를닮은 형태로 탈영토화 하고, 말벌 역시 기존의 말벌 생식의 영역으로부터 탈영토화 합니다. 둘은 일치와 합일을 미리 전제하지 않고 서로를 대면하면서 기존의 자신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는 무한한 탈주선을 개척합니다. 오르키데 난초와 말벌은 서로 사랑할수록 달라집니다. 두 생명은 도달할 수 없는 우주되기의 지평으로 무한한 여정을떠나갑니다.

‘되기‘는 ‘이기‘가 아닙니다. 되기에는 이기처럼 미리 전제된 합일이나 목표로서의 합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과정형이자진행형으로서의 미세한 차이를 만드는 사랑이 있을 뿐입니다. 합일의 지평, 우주되기는 유아기 아이, 동물, 야만인 등에 의해서만 표현되는 잠재성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주되기라는 잠재성을 가진 한 사람이 이를 드러내기 위해 미지의 장소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잠재성으로서의 우주되기는 미세한 결과 무늬, 주름(press)으로 우리 삶에 아로새겨져있습니다. 우리 안에 잠재된 지절, 주름, 결을 펼치고 전개하고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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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와의 관계는 누군가를 대상화하고 관객을 두는 연극적인 무대를 설정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자신에 대해서윤리적이고 미학적인 태도를 설정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홀로 자기 자신과 대면할 때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연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시초적인 행동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환대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 즉 삶의 내재성이 가지런히 정돈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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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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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첼리 신부님의 대답은 내가 무슨 일을 완수했더라도, 또 그 일이 아무리 선하고 옳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뻐길 필요는 없다는 것을, 특히 자만심에 빠져 떠벌리고 다녀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돈 첼리 신부님의대답을 떠올리면 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이상하게도 올리버 웬들 홈스 2세의 금언이 생각나곤한다. 〈내 성공의 비밀은 젊었을 때 내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데 있다. 자신이 신이 아님을깨닫고, 자신의 행위를 항상 의심하면서 지난 삶을 충분히 잘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이 위대한 증인이 사라지거나 쫓겨나고 나면 뭐가 남을까? 사회의 눈, 타인의 눈이 남는다. 사람들은 남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이사회에서 익명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속옷만입은 채로 술집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는 얼간이 짓도마다하지 않는다. 모두 남의 눈을 의식한 행동이다. 텔레비전 출연은 저 초월적인 존재를 대신하는, 전체적으로 고마운 유일한 대용품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텔레비전이라는, 현실과 다른 피안의 세계에 들어가 있고, 그 피안에서 남들에게 자신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지상의 피안에서는 모두가 우리를 본다.

다만 어리석은 일은 이런 경우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의미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성취나 희생, 또는 그 밖의 좋은 특성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텔레비전에 나온 다음날 누군가 카페에서 우리를 보고는 야, 어제 너 텔레비전에 나온 거 봤어!〉 하고 말한다면 그건 단순히 네얼굴을 알아봤다는 것이지, 너를 알아준다는 뜻은 아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글이 실렸는데, 거기서 그는 이렇게설명했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감시하는 도구 역할을 하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여러 권력 기관의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사용자들의열정적인 기여 덕분에 우리를, 바우만의 표현에 따르면 〈고백 사회〉로 이끈다. 이 사회는 공개적인 자기표현을 구성원들의 사회적 실존을 증명하는 중요하고도쉽게 이해되는 명확한 증거의 지위로까지 승격시킨다.

하지만 다른 진실도 있다. 언젠가 누군가 모두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이 모두가 지구 주민 전체로까지 확장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이런 식의 정보 과잉은 혼란과 소음, 침묵만 불러올 뿐이다. 물론 그로 인해 불안한 건 스파이뿐이다. 반면에 비밀 탐지의 대상이 되는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비밀에 대해 친구건 이웃이

또한 인터넷이 그학생에게 제공하는 정보들은 교사가 가진 정보보다 어마어마하게 포괄적이고, 거기다 금상첨화로 정확할때도 많다. 여기서 그 학생은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을놓치고 있다. 인터넷은 학생에게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만, 그 정보를 어떤 목적에 맞게 어떻게 찾을지,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거르고 선별할지, 또 어떤 기준으로 수용해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장 공간만 충분하다면 누구나 새로운 정보를 제장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정보가 저장할 가치가 있고, 어떤 건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는 데에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을 장악하고 있느냐가 설사 성적이 나쁘더라도 정규 학교 수업을 들은 학생과 천재적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독학자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

어떻게 옥석을 가리는지 정확한 지침을 줄 수 없다면 최소한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를 매번 비교하고 평가하는 데 정성을 쏟는 누군가를 예를 들어 줄 수는 있다. 결국 교사는 인터넷이 알파벳 순서로 제공하는 것들을 하나의 체계로 묶으려고 매일 노력해야 한다. 인터넷은 티무르와 외떡잎식물이 있다는 것은 말해 줄 수 있지만, 이 두 개념 사이에 어떤 체계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관련은 학교에서만 가르칠 수 있다. 학교가 아직 그럴 능력이 없다면 빨리 배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터넷internet, 정보 information, 투자investment로이어지는 세 I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 당나귀의 울음소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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