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활동에서 발견되는 특이점이 두 가지 있다. 요한은 다른 예언자들,심지어는 예수와도 다르게 사람들 곁으로 가지 않는다. 요한은 광야에서활동하는데,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기 위해 그의 곁으로 간다. 또 정결례를 위해 스스로 몸을 씻는 것이 일반적인데, 요한은 물에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런 식의 활동은 그리 일상적이지 않고, 요한에게서나 볼 수 있는 매우 특징적인 것이다

요한의 음식과 옷은 그가 생존에 꼭 필요한 최소한도에 만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것의 중심이다. 요한은 먹을거리를 광야에서 얻는다(루카 7,33 참조). 그리하여 땅에서 나는 과일에는거리를 둔다. 과일은 분명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그 선물은 항상 창조주이자 수여자이신 분을 잊게끔 유혹한다. 게다가 요한의 옷은 마치 엘리야가되돌아와 주님의 길을 준비한다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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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삶의 기적은 우리가 어떤 약점들을 타고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피부 한 꺼풀에 불과하지만, 추함은 뼛속까지 파고든다."
─도로시 파커

피부에 관한 모든 것의 권위자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인 니나 자블론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솔기는 터지는 법이 없어요. 저절로 벌어져서 새는 일이 없지요."
피부는 진피라는 안쪽 층과 표피라는 바깥쪽 층으로 이루어진다. 표피의 가장 바깥 표면은 각질층인데, 전부 죽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를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는 것이 모두 죽은 것이라니 흥미롭다. 몸이 공기와 만나는 지점만 보면, 우리는 모두 시체이다. 이 바깥 피부세포들은 매달 교체된다. 우리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피부를 떨군다. 1분에 약 2만5,000개, 즉 1시간에 100만 개가 넘는 피부 조각이 떨어져 나간다. 손가락으로 책꽂이에 내려앉은 먼지를 죽 훑으면, 대체로 예전의 자신이었던 것의 잔해들을 헤치면서 길을 내는 셈이 된다. 소리 없이 그리고 냉혹하게 우리는 먼지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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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신앙이 부족하다는 것을 애석하게도 나 자신의 슬픈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나 자신만 바라보고 하느님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곧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나를 위해 열려있는 그분의 마음에 주목하지 않고 ㄱ신의 쓸모없음만을 본다. 둘째, 내가 청원하는 바를 너무도 인간적인 눈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바라보지 않고, 내가 지금 바라는 은혜는 도저히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불가능한 것이라든가, 또는 얼마나 많은 장애가 가로막고 있는가 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이제부터는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만을 바라보자. 우리 하나하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고난을 받으신 것은 오직 사랑 때문이었으며, 그분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감미롭고 즐거우며 당연한 것으로 여기신다. (베풀어야 할 은혜가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기쁘게 내놓는 것이 사랑의 본성이다.)우리에게는 가장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능력으로 하실 수 있음을 늘 바라보자.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당신께 드린 청이 들어 허락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게 이 은혜를 전구해 주시며, 제가 졸지 않게 제 위에 당신 손을 펴주십시오. 주님의 발치에 있을 때, 그리고 주님이 기도하기를 권하실 때, 주님과 단둘이 지낼 수 있도록 일부러 불러주실 때 저는 애석하게도 여러 번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모든 일은 그분이 원하고 허락하여 일어나는 것이므로 두려움이 아니라 그분께 더 큰 영광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원칙(예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ᆞ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일어난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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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뜻에서 지혜는 ‘지식‘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잡는 기술이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치는 지식이다.
가장 본질적 의미에서 지혜란 슬기롭게 자기 몫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총체적 능력 또는 ‘최상의 지성(Whybray, 10)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지혜로운 자‘ 혹은 ‘현인‘은 결코 어떤 특정한 신분의 인물만을가리키지 않는다. 지혜롭다는 것은 오히려 어떤 영역에서든지 "일에능통하고 정통한 사람을 가리키며(탈출 36,8, 1열왕 7,14), 많은 경우 단순히 어리석은 자에 대치되는 인물이다(폰 라트, 31). 고대 세계에서 현인은 자기 삶의 길을 잘 걸어갈 뿐만 아니라, 사회가 제 기능을 성공적으로 발휘하도록 이끌어가는 사람이었다(Chrenshaw, 215-216)

율법학자의 지혜는 여가가 얼마나 있느냐에 달려 있고사람은 하는 일이 적어야 지혜롭게 될 수 있다.
온 마음을 다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율법을 명상하는 이는이런 자들과 다르다(시라 38,24.34).

지혜의 한계성을 체험한 인간은 참된 지혜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계획은 인간이 세우지만,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의 뜻뿐"(잠언 16,9; 19,21 참조)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우치는 슬기와 기도하는마음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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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의 불꽃 - 샤를 드 푸코의 영적 수기
샤를르 드 푸코 지음, 조안나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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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위에는 퇴폐와 무지, 오만이 판을 치고 있었으며, 그 자신과 그가 신앙으로이끈 신자들을 위해 늘 무언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으나그 어떤 경우에도 평화를 잃어서는 안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샤를 형제의 평화와 힘과 지고의 선은 그가 다른 모든 것을버린 결과였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그는 자기 은둔소에 들어가 팔 일이나 십일 동안 하느님 앞에 머물곤 했다.
그가 하느님과 단둘이 머무는 것을 얼마나 즐겼던가!

"신앙의 삶에 매달려야 한다."
"이것(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신앙인들에게 가는 것은 많은 영혼들을 매혹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겪을 위험이 큰 만큼그들에게 영광이 되므로…."
"건강이나 생명에 대해서는, 나무가 떨어지는 나뭇잎에 대해서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듯 염려하지 말 것."
"내 온 힘을 하느님을 위해 간직할 것."
"인간적 수단의 약함은 또 하나의 힘의 원천이다."
"예수님은 불가능의 스승이시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 대한 우리의 절대적인의무다."

자네의 생일인 오늘은 다른 어느 날들보다도 더 힘차게 하늘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네. 두려울 정도로 냉담하고 미지근해져 분심에 휩싸이는 때에,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고 싶어 하는 주님이 더없이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이며, 언젠가는 우리도그분을 사랑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흐뭇한 일인지 모르겠네. 날들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네! 우리의 여생이 얼마나 될지 누가 알겠나? 우리의 여생이 짧든 길든 주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우리 여생이 그분께 속하고, 그분을 위한 것이 되어 그분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를!
1896년 8월 15일...
"사람은 사랑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늘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아니면 적어도 하염없이 그를 바라보고 싶어 하거나 기도란 바로 지극히 사랑하는 주님과의 친밀한 대화라네. 우리는 그분을바라보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며, 그분의 발치에 머무는 것을기뻐하며, 거기서 살고 거기서 죽고 싶다고 그분께 말씀드리는것이지・・・.
1986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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