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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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갑자기 가버리는 바람에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그자리에 붙박여 서 있었고, 무척이나 가난해 보이던 이 남자의수고에 감사의 뜻으로 돈이나 담배 몇 개비라도 건넸어야 했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떠올랐다. 그러나 이 남자는 내게 다가왔을 때와 똑같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떠났다.

그는 자신을 희생하거나 생색내는 일 없이 원하는 대로 자기 일을 했다. 이제는 백발이 된 나도 낯선 사람과 그렇게 자신 있게 대화를 시작하고 끝내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뭐든다 바칠 것 같다. 나는 이 남자의 기이한 행동을 계속 생각하며 집으로 갔다.

일꾼은 아주 많다. 그러나 안톤의 특별하고 독특한 점은, 여러 시간 힘들게 일하고도 그날 하루 필요한 것보다 많은 보수는 완강히 거부했고, 필요한 게 없는 날에는 돈을 아예 받지않았다. 이런 경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필요한 게 있으면 찾아올게."

나는 곧 깨달았다. 면도도 잘 안 하고 후줄근해 보이는 이 말라깽이 청년은 자신을 위해 철저히 반자본주의적인 새로운 시스템을 발명했다. 그는 사람들의 인성을 믿었다.
그는 은행에 적금을 넣는 것보다 이 작은 도시의 거의 모든사람의 마음에 도덕적 의무라는 유동자산을 저축하기를 더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약간의 재산을 눈에 보이지 않는자산에 투자한 것이었다. 제아무리 완고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기술이나 노동을 돈벌이 수단으로 거래하지 않고부탁받은 모든 일을 당연한 듯 흔쾌히 처리한 후 즉각적인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빚을 진 기분을 느낄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안톤을 잠시만 지켜보면 된다. 모두가 그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모두가 그와 악수를 나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정말로 교과서적으로 신을 믿는 삶, 그 위대한 삶의 비밀을 핏속에 가진 자의 힘을 나는 안톤에게서 명확히 보았다. 확실히가장 가난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는, 낡은코트 차림의 이 단순하고 걱정 없는 남자는 자기 땅을 순시하는 지주처럼 여유롭고 다정하게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는 누구의 집에든 들어갈 수 있었고, 어떤 자리에든 앉을 수있었으며, 오직 최소한의 것만 원했기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허락되었다. 나는 안톤이 가진 힘의 비밀을 곧바로 이해했다.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했기에 모두가 그를 존경했다.

때때로 사소하고 어리석은 돈 걱정이 들 때면,
나는 당장 단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아늘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이 남자를 떠올린다.

패배나 굴욕의 수치심으로 영혼을 다친 사람에게 다가가는일이 절대 쉽지 않음을 잘 알지만, 이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누군가를 돕고 싶은 첫 번째 충동에 주저 없이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공감의 말과 행위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순간에만 참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우리의 말 한마디,
다정한 몸짓 하나가 그에게불행과 고통을 이겨낼 힘을어쩌면 줄 수 있었으리라.

"분명 내 작품을 보고 싶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여기에는보다시피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일요일에 뫼동에 있는 우리 집에 저녁 먹으러 오세요. 거기라면 식사 후에 몇 가지를보여줄 수 있어요."
위대한 사람들은 거의 항상 매우 친절하다. 그리고 과하게나서지 않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관대하다. 이것이 첫 번째교훈이었다.

두 번째 교훈은 프랑스의 일반 주택보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로댕의 뫼동 집에서 배웠다. 자기 일에 전념하는 사람은 언제나 큰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산다. 작은 식탁에서 평범하게 먹고 가볍게 포도주를 마셨는데, 바로 이런 소박함이내게 편히 얘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나는 내 앞에 앉은이 반백의 소박한 남자가 아마도 당시 가장 유명한 예술가일거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나는 로댕이 한 번도 본적 없고 그래서 간절히 보고 싶어 했던 장크트볼프강성당에있는 미하엘 파허 Michael Pacher의 제단에 관해 설명했는데, 그때 내가 인식한 것은 그의 덥수룩한 눈썹 아래에서 나를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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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는 어떤 사건인가요?‘라는 모니터링단의 추상적인 물음에 유가족은 희생자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본인과어떤 관계였는지, 희생자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다시금 깨달았다. 유가족에게 ‘참사‘는 다른 무엇도 아닌 너무나도 소중했던 사람을잃은 사건이라는 사실, 그리고 진상규명은 이 사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연대하는 게 우리 유가족의 의무가된 것 같아요. 이런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다시는 우리처럼 자식을 잃은 부모가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죠. 앞으로 어떤참사와 유가족이 또 생길지 모르지만, 계속 가서 위로하고 같이애도하고 슬퍼해주고 할 거예요. 세월호도 저희들하고 같이 해주잖아요. 이렇게 계속 연대하고 기억하다보면 다시는 우리 같은유가족이 안 생길 것 같아요. 다시는 이런 사람이 없길 바라는 게진짜 우리 마음이에요.

우리는 피해자 모두가 누군가로 대체되거나 환원될 수없는 고유한 세계를 가진 존엄한 인간임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위치와 무관하게 누군가에게는 우주이자 세상의 중심임을 인정해야 한다. 참담한 고통은 법적 관계가 아닌 관계의 친밀감에서 비롯한다는 진실 또한 직시해야 한다.

재난 피해와 재난 피해자를 규정하는 일은 결국 행정과 정치의한계를 넘어 재난과 사회의 구조를 세심히 들여다봄을 통해 우리앞에 당도한 이 비극적 사건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관한 일이다. 또한 이를 어떠한 사회적 사건으로 기억하게 할 것인가에대한 질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보다 본질적으로 재난이후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새로운 사회를 향해 당신과 함께 걷고 싶다.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잖아요. 누군가의 이름을딴 법 제정을 통해서 기억될 수도 있고, 기념관이나 추모관을 통해서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어떠한 방법이든 참사를 기억하는 일이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한걸음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좋겠어요. 특히 추모공간은 사회 안에서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곳이면 더 좋겠죠. 도서관 형태도 좋고,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이태원 참사의 기억공간은 단순 추모관이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 시민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공간,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해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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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하고 좋아하는 편나는 인간의 경험, 인간이 겪는 역사적 경험이 하느님 계시의 장소라고 바라보는 미셸 드 세르토의 신학적 개념을 지지한다." 카이롤로지는 사회학자, 역사학자, 정치학자, 문화인류학자, 사회심리학자의분석에 시대에 대한 영적 진단을 덧붙인다. 시대의 문화적·도덕적환경에서 믿음, 희망,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묻는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아주 파격적인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거

성경의 하느님은 주로 일회성 역사적 사건들에서 당신을 드러내신다. 그리고 그 사건들에 관해 서술하고 해석하는 이야기들 안에서 드러내신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는 역사에서 나타나시고,

종교의 세계는 역설의 세계이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면, 우리는 ‘A‘가 동시에 ‘비非-A‘가 될 수 없다는 식으로 원칙을 독단적으로 고수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et-et(A도 B도)규칙을 따르는 게 더 좋은데, 나의 스승 요세프 즈베르지나는 이 규칙이 가톨리시즘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이 시기가 종교의 위기인가, 아니면 종교의 부활인가? 둘 다 맞다. 한 측면을 본다고 다른 측면을 간과해서는안 된다. 한 측면을 제대로 평가한다고 해서 다른 측면의 중요성을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세속화와 모더니즘은 신앙의 역사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고, 어떤 특징들을 기록해 남겼지만, 그것들은 급진적인 지지자들이 여겼던 것처럼 역사 발전의 정점이자 마지막 단계가 아니었다. 세속화는 종교사의 종말이 아니었고, 세속주의 사상가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종교의 어둠을 밝히는 이성의 승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종교의 변형이었으며, 한층 성숙한 신앙으로 내딛는 걸음이다. 이 책의 과제 중 하나는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도록장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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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 이태원 참사 가족들이 길 위에 새겨온 730일의 이야기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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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의 가족은 유가족협의회와 이메일로 연락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한국의 피해자와 연결된외국인 유가족은 소수다. 그레이스 래치드의 어머니 조앤은 1년반이 넘도록 유가족협의회의 존재도 모른 채로 지냈다. 한국 정부는 시신 인도 후 외국인 유가족들에게 더 이상 어떠한 연락도취하지 않았고, 외국인 유가족들은 그야말로 각자의 형편껏 참사이후를 살아내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 정부가 이렇게까지 아무 일을 안 해도 되는 것인가 싶어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사과의 말을 전하는 기록자들에게그레이스의 어머니도, 알리의 가족들도 연대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화답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우리가 아닌, 정부의 사과다. 모든 피해자가 공통으로 원하는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늘 ‘정의‘(justice)다.

‘유가족은 누구인가‘라는 물음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은 왜 싸우고 있으며,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피해자의 권리에 대해 인식했다. 피해자는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이라 도와줘야 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권리의 주체로서 그에게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있음을 이해했다. 그와 함께 일어난 또 하나의 큰 인식적 변화는 피해자 안의 차이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같은 사건의 피해자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똑같은 요구를하지 않는다. 개별 유가족이 놓인 상황은 다양하고 특별히 요청되는 권리의 내용도 달라진다. 가령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전국에 그리고 세계에 흩어져 있다. 한데 뭉쳐 활동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이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에서먼 곳에 있는 유가족은 일단 오가는 일부터가 큰일이다. 거리가멀다는 건 단지 오래 이동해야 해서 불편하다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접근권의 관점에서 지역에 거주하는 피해자들이 처한 문제를 여러 측면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2년이 흐르도록 책임 앞에서 기꺼이 비켜서기를 택하는 이들투성이다. 그러나 부디 당신이 낙담하지 않기를바란다. 설령 낙담하더라도 우리는 당신이 절망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작정이다.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가 희망에 관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고통을 껴안고도 절망하지 않는법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책임이 사라진 세상에서 스스로책임을 걸머진 사람들이 그린 궤적을 따라 걸어본다면 우리는 뜻밖의 삶을 만나게 된다.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던 이들이 유가족이 되어 함께 싸우는 일을 지켜보는 건 매번 경이로운 경험이다.
어떻게 그 두터운 시간을 한권의 책에 담을까. 그러니, 이 책에 적힌 까만 글자 사이에 존재할 그 무한한 시간을 당신이 기꺼이 상상해보길 바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식의 몸이 온기를 잃던 날, 박태월씨는 사람의 영혼에도 심장이 뛴다는 걸 알아버렸다. 사람이 지닌 두개의 심장 중 하나가 멈춰도 삶은 이어졌다. 반쯤 죽은 채 견딜 수 없는 통증을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형벌 같은 시간이 끝을 모른 채로 흘러갔다.

참사가 없었다면 평생 서로 모르고 살았을 사람들이 분향소라는 공간에 처음 모였다. 의자 몇개, 난로 한개 놓으면 사람이 더들어갈 수 없을 만큼 조그마한 공간이었다. 그곳을 가득 메운 정적을 때때로 누군가의 울음소리만이 깨뜨렸다. 그해 겨울은 유가족들에게 유난히 모질었다.

우리 애들이 술 먹고 옷 벗고 놀다가 죽었다는 소리를 하는겨. 우리 애들 욕하고 탓하는 소리 들을 때 최고 스트레스 받지. 그날 저녁에 잠을 한숨도 못 잤어.
그런 못된 소리 듣는 거, 그게 최고 힘들어.
그럼에도 분향소는 언제나 동민 아버지와 유가족들이 아픔을털어놓을 수 있고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었다.
상처를 주는 사람보다 참사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함께 분향소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더 많았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를 마찬가지로 처음 만나는 사람을 통해 회복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와갖고 위로를 많이 해주지. 생각보다 많아. 자기 일처럼 도와주고 울고... 참 내가 그만 울라고달래주고 싶을 정도야. 그런 분들이 많이 와. 덕분에 내가 힘이 생겨서 여기 계속 있으면서 엄마들 힘들 때 위로해줄 수있어서 좋아. ‘어제 무슨 일이 있어서 누구 엄마가 울었다‘
그러면 같이 그 엄마 이야기하면서 울고, 눈물 그치면 웃고.
내가 상담사가 다 돼가.

오는 길에도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들하고 울면서 손잡고 위로해주는 게 가능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사가 일어나고 난 뒤, 집에서 계속 힘든 채로만 있다가 처음 밖에 나가서 유가족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희한하게 그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이게 왜 위로가 되지?‘ 그래서 다시 민변에서 간담회를 한다고 했을 때, 그때는 식구들한테 막 같이 가자고하면서 달려왔어요.

오체투지는 완전히 바닥에 엎드려야 하는데, 아스팔트가 너무딱딱해서 힘들었어요. 온몸이 막 배기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어요. 쌓인 눈이 쿠션처럼 되더군요. 눈밭에서 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웃음) 가족들도 전부 다 아스팔트맨바닥보다 눈이 훨씬 낫다고 좋아했어요. 뉴스로 본 사람들에게는 그 눈 속의 장면이 처절하게 보였던가 봐요. 근데 우린 너무 좋았어요, 하하.

참, 아이러니해요. 제가 그때 뭘 느꼈느냐면요, ‘대한민국은 피해자가 몸을 던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그렇게 몸을 던졌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반응은 무척 달라요. 내 몸을 던지지 않으면 쳐다보질 않아요. 이게 현실입니다. 정말 가슴 아픈현실. 피해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거예요

지금도 생사의 기로에 놓인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분이 있어요. 이런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해요. 사람들은아직까지도 버티고 있는 생존자가 있다는 건 모를 거예요. 물론저도 그분의 이름은 잘 몰라요. 알려고 하지 않아요. 나도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언론에 노출되는 것이 저도 굉장히 불편했고힘들었기에 그 가족분들의 의견이 무엇보다 존중되어야 한다고생각해요.
그분은 지금 퇴원해서 집에서 치료받고 있어요. 의사들 말로는지금까지 살아계실 수 있는 것 자체가 설명 안 될 만큼 미스터리라고 하더군요. 제가 생각할 때는 그 생존자가 지금 가기에는 너무 억울한 게 있어 계속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참마음이 많이 아파요.

저는 ‘놀러 가서 죽었다‘는 말이 너무 화가 나요. 놀러 갔으면길에서 그렇게 죽어도 되는 건가요? 우리 모두 일상에서 놀러 가잖아요. 꽃놀이도 가고 유원지에도 놀러 가잖아요. 놀러 가서 죽었다는 건 상황을 왜곡하는 말일 뿐이에요. 그날 이태원에 놀러간 사람들 모두 살 수 있었어요. 인파 때문에 압사당할 것 같다고,
살려달라고 경찰에 수차례 연락했는데 그때 경찰은 뭐 하고 있었나요? 밤 9시 10분에 사람들이 살려고 골목에서 빠져나왔는데 경찰이 차도 확보한다는 이유로 다시 골목으로 밀어 넣었죠.. 그게국가 책임 아닌가요? 그때 사람들을 인도로 올리라고 명령한 책

우리나라는 참사마저 비교를 해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유가족에게 좀더 열심히 투쟁하세요,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세요, 이런 뉘앙스로 얘기하는데 미치겠더라고요. 당사자들만 이렇게 괴롭고 막막하고 아픈 거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시간이 갈수록우리끼리 더 단단히 뭉쳐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부부 사이도 싸우기 귀찮아서, 안 바뀔 것 같으니까 모른 척 지나쳐온 문제들 때문에 결국 제자리걸음을 하잖아요.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정말 사회가 변하기를 원하면 스스로 문제에 부딪치고 변화를 위해움직여야 해요. 바뀌지 않을 거라고 체념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당연히 변화는 오지 않아요. 그리고 그건 자신의 선택인 거

공감과 연대가 결국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우리끼리 슬픔을 위로하는 걸로 끝나면 안 되고, 어떤 의로운 힘으로 모여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해요. 저는 이태원 참사가 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국가와 행정가들의 역할에 대해 이번에 바로 세우지 않으면 참사는 반복될 거예요. 그 과정에 시민의 연대와 공감이 필요하거든요. 다 같이 소리를 내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할들을 해주길 바라요.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발언 요청이 있을 때는 꼭 가려고 해요. 한 사람에게라도 우리 상황을 알려주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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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오후 - 위기의 시대, 보편적 그리스도를 찾아서
토마시 할리크 지음, 차윤석 옮김 / 분도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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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느님이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신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사람이 경청하고 이해하는 능력치에 걸맞은 방식으로 말씀하신다.
다만 이 능력은 우리에게 싹의 형태로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관리하여 키워 나가야 한다. 이때 그 사람이 사는 문화가 도움이 될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문화에서는 영혼을 돌보는일을 중요한 과제이자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고 여겼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이런 인간존재의 차원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다.

하느님을 인격체로 이해한다는 것이 원초적이고 의인화된 신관념을 받아들이고 손쉽게 신과 친밀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곧, 하느님을 신비로 인지하는 것을 중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스도교가 절대적 신비에 ‘인격적‘ 성격을 부여하는것은 하느님과 우리 관계에 대화적 특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하느님의 성령이 교회를 진리의 충만함으로 점점 더 깊게 인도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허락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세속적 종말론과 이데올로기가 이해하는 식의 진보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 여정은 일방통행이 아니며 역사속 이상적 상황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느님 품에 안기는 충만함의 시간에서야 그 여정이 끝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해변에서 한 소년이 조가비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는 순간, 우리의 모든 신학, 교리서, 교의 교과서 전부가 하느님 신비의 충만함에 비교하면 그저 조그만 조가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인식 도구들을 감사히 사용하자. 하지만 그것들을 무한히초월하는 분의 광대함과 깊이에 경탄하는 일도 멈추지 말자.

신앙과 불신앙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구체적 인간의 삶에서 그 신앙의 진정성은 오로지 하느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전투적인광신주의는 종종 실존적 불신앙이 가장 좋아하는 가면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특히 인간의 기도와 노동을 통해(베네딕도의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를 생각하자), 하느님의 자극(전통적으로 말하면 은총의 베푸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통하여 우리 세상에 현존하신다. 그분은 신앙의 삶, 희망과 사랑의 삶에 살아 계신다. 신학적으로 보면,
믿음, 희망, 사랑은 인간의 삶의 태도일 뿐 아니라, 신성과 인성, 은총과자유, 천상과 지상의 만남의 장이며, 그 둘의 본질적인 연결(상호내재성‘ perichoresis)의 장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그분의 살아 계심을 탐구할 수 있다. 내가 믿고 따르는 신학은 사랑과 희망이 동반된 신앙 행위들에서 하느님의 자기 계시가 이뤄지는 현상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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