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의 가족은 유가족협의회와 이메일로 연락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한국의 피해자와 연결된외국인 유가족은 소수다. 그레이스 래치드의 어머니 조앤은 1년반이 넘도록 유가족협의회의 존재도 모른 채로 지냈다. 한국 정부는 시신 인도 후 외국인 유가족들에게 더 이상 어떠한 연락도취하지 않았고, 외국인 유가족들은 그야말로 각자의 형편껏 참사이후를 살아내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 정부가 이렇게까지 아무 일을 안 해도 되는 것인가 싶어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사과의 말을 전하는 기록자들에게그레이스의 어머니도, 알리의 가족들도 연대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화답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우리가 아닌, 정부의 사과다. 모든 피해자가 공통으로 원하는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늘 ‘정의‘(justice)다.
‘유가족은 누구인가‘라는 물음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은 왜 싸우고 있으며,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피해자의 권리에 대해 인식했다. 피해자는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이라 도와줘야 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권리의 주체로서 그에게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있음을 이해했다. 그와 함께 일어난 또 하나의 큰 인식적 변화는 피해자 안의 차이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같은 사건의 피해자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똑같은 요구를하지 않는다. 개별 유가족이 놓인 상황은 다양하고 특별히 요청되는 권리의 내용도 달라진다. 가령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전국에 그리고 세계에 흩어져 있다. 한데 뭉쳐 활동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이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에서먼 곳에 있는 유가족은 일단 오가는 일부터가 큰일이다. 거리가멀다는 건 단지 오래 이동해야 해서 불편하다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접근권의 관점에서 지역에 거주하는 피해자들이 처한 문제를 여러 측면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2년이 흐르도록 책임 앞에서 기꺼이 비켜서기를 택하는 이들투성이다. 그러나 부디 당신이 낙담하지 않기를바란다. 설령 낙담하더라도 우리는 당신이 절망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작정이다.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가 희망에 관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고통을 껴안고도 절망하지 않는법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책임이 사라진 세상에서 스스로책임을 걸머진 사람들이 그린 궤적을 따라 걸어본다면 우리는 뜻밖의 삶을 만나게 된다.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던 이들이 유가족이 되어 함께 싸우는 일을 지켜보는 건 매번 경이로운 경험이다. 어떻게 그 두터운 시간을 한권의 책에 담을까. 그러니, 이 책에 적힌 까만 글자 사이에 존재할 그 무한한 시간을 당신이 기꺼이 상상해보길 바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식의 몸이 온기를 잃던 날, 박태월씨는 사람의 영혼에도 심장이 뛴다는 걸 알아버렸다. 사람이 지닌 두개의 심장 중 하나가 멈춰도 삶은 이어졌다. 반쯤 죽은 채 견딜 수 없는 통증을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형벌 같은 시간이 끝을 모른 채로 흘러갔다.
참사가 없었다면 평생 서로 모르고 살았을 사람들이 분향소라는 공간에 처음 모였다. 의자 몇개, 난로 한개 놓으면 사람이 더들어갈 수 없을 만큼 조그마한 공간이었다. 그곳을 가득 메운 정적을 때때로 누군가의 울음소리만이 깨뜨렸다. 그해 겨울은 유가족들에게 유난히 모질었다.
우리 애들이 술 먹고 옷 벗고 놀다가 죽었다는 소리를 하는겨. 우리 애들 욕하고 탓하는 소리 들을 때 최고 스트레스 받지. 그날 저녁에 잠을 한숨도 못 잤어. 그런 못된 소리 듣는 거, 그게 최고 힘들어. 그럼에도 분향소는 언제나 동민 아버지와 유가족들이 아픔을털어놓을 수 있고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었다. 상처를 주는 사람보다 참사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함께 분향소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더 많았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를 마찬가지로 처음 만나는 사람을 통해 회복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와갖고 위로를 많이 해주지. 생각보다 많아. 자기 일처럼 도와주고 울고... 참 내가 그만 울라고달래주고 싶을 정도야. 그런 분들이 많이 와. 덕분에 내가 힘이 생겨서 여기 계속 있으면서 엄마들 힘들 때 위로해줄 수있어서 좋아. ‘어제 무슨 일이 있어서 누구 엄마가 울었다‘ 그러면 같이 그 엄마 이야기하면서 울고, 눈물 그치면 웃고. 내가 상담사가 다 돼가.
오는 길에도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들하고 울면서 손잡고 위로해주는 게 가능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사가 일어나고 난 뒤, 집에서 계속 힘든 채로만 있다가 처음 밖에 나가서 유가족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희한하게 그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이게 왜 위로가 되지?‘ 그래서 다시 민변에서 간담회를 한다고 했을 때, 그때는 식구들한테 막 같이 가자고하면서 달려왔어요.
오체투지는 완전히 바닥에 엎드려야 하는데, 아스팔트가 너무딱딱해서 힘들었어요. 온몸이 막 배기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어요. 쌓인 눈이 쿠션처럼 되더군요. 눈밭에서 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웃음) 가족들도 전부 다 아스팔트맨바닥보다 눈이 훨씬 낫다고 좋아했어요. 뉴스로 본 사람들에게는 그 눈 속의 장면이 처절하게 보였던가 봐요. 근데 우린 너무 좋았어요, 하하.
참, 아이러니해요. 제가 그때 뭘 느꼈느냐면요, ‘대한민국은 피해자가 몸을 던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그렇게 몸을 던졌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반응은 무척 달라요. 내 몸을 던지지 않으면 쳐다보질 않아요. 이게 현실입니다. 정말 가슴 아픈현실. 피해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거예요
지금도 생사의 기로에 놓인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분이 있어요. 이런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해요. 사람들은아직까지도 버티고 있는 생존자가 있다는 건 모를 거예요. 물론저도 그분의 이름은 잘 몰라요. 알려고 하지 않아요. 나도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언론에 노출되는 것이 저도 굉장히 불편했고힘들었기에 그 가족분들의 의견이 무엇보다 존중되어야 한다고생각해요. 그분은 지금 퇴원해서 집에서 치료받고 있어요. 의사들 말로는지금까지 살아계실 수 있는 것 자체가 설명 안 될 만큼 미스터리라고 하더군요. 제가 생각할 때는 그 생존자가 지금 가기에는 너무 억울한 게 있어 계속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참마음이 많이 아파요.
저는 ‘놀러 가서 죽었다‘는 말이 너무 화가 나요. 놀러 갔으면길에서 그렇게 죽어도 되는 건가요? 우리 모두 일상에서 놀러 가잖아요. 꽃놀이도 가고 유원지에도 놀러 가잖아요. 놀러 가서 죽었다는 건 상황을 왜곡하는 말일 뿐이에요. 그날 이태원에 놀러간 사람들 모두 살 수 있었어요. 인파 때문에 압사당할 것 같다고, 살려달라고 경찰에 수차례 연락했는데 그때 경찰은 뭐 하고 있었나요? 밤 9시 10분에 사람들이 살려고 골목에서 빠져나왔는데 경찰이 차도 확보한다는 이유로 다시 골목으로 밀어 넣었죠.. 그게국가 책임 아닌가요? 그때 사람들을 인도로 올리라고 명령한 책
우리나라는 참사마저 비교를 해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유가족에게 좀더 열심히 투쟁하세요,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세요, 이런 뉘앙스로 얘기하는데 미치겠더라고요. 당사자들만 이렇게 괴롭고 막막하고 아픈 거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시간이 갈수록우리끼리 더 단단히 뭉쳐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부부 사이도 싸우기 귀찮아서, 안 바뀔 것 같으니까 모른 척 지나쳐온 문제들 때문에 결국 제자리걸음을 하잖아요.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정말 사회가 변하기를 원하면 스스로 문제에 부딪치고 변화를 위해움직여야 해요. 바뀌지 않을 거라고 체념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당연히 변화는 오지 않아요. 그리고 그건 자신의 선택인 거
공감과 연대가 결국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우리끼리 슬픔을 위로하는 걸로 끝나면 안 되고, 어떤 의로운 힘으로 모여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해요. 저는 이태원 참사가 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국가와 행정가들의 역할에 대해 이번에 바로 세우지 않으면 참사는 반복될 거예요. 그 과정에 시민의 연대와 공감이 필요하거든요. 다 같이 소리를 내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할들을 해주길 바라요.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발언 요청이 있을 때는 꼭 가려고 해요. 한 사람에게라도 우리 상황을 알려주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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