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갑자기 가버리는 바람에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그자리에 붙박여 서 있었고, 무척이나 가난해 보이던 이 남자의수고에 감사의 뜻으로 돈이나 담배 몇 개비라도 건넸어야 했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떠올랐다. 그러나 이 남자는 내게 다가왔을 때와 똑같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떠났다.
그는 자신을 희생하거나 생색내는 일 없이 원하는 대로 자기 일을 했다. 이제는 백발이 된 나도 낯선 사람과 그렇게 자신 있게 대화를 시작하고 끝내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뭐든다 바칠 것 같다. 나는 이 남자의 기이한 행동을 계속 생각하며 집으로 갔다.
일꾼은 아주 많다. 그러나 안톤의 특별하고 독특한 점은, 여러 시간 힘들게 일하고도 그날 하루 필요한 것보다 많은 보수는 완강히 거부했고, 필요한 게 없는 날에는 돈을 아예 받지않았다. 이런 경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필요한 게 있으면 찾아올게."
나는 곧 깨달았다. 면도도 잘 안 하고 후줄근해 보이는 이 말라깽이 청년은 자신을 위해 철저히 반자본주의적인 새로운 시스템을 발명했다. 그는 사람들의 인성을 믿었다. 그는 은행에 적금을 넣는 것보다 이 작은 도시의 거의 모든사람의 마음에 도덕적 의무라는 유동자산을 저축하기를 더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약간의 재산을 눈에 보이지 않는자산에 투자한 것이었다. 제아무리 완고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기술이나 노동을 돈벌이 수단으로 거래하지 않고부탁받은 모든 일을 당연한 듯 흔쾌히 처리한 후 즉각적인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빚을 진 기분을 느낄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안톤을 잠시만 지켜보면 된다. 모두가 그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모두가 그와 악수를 나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정말로 교과서적으로 신을 믿는 삶, 그 위대한 삶의 비밀을 핏속에 가진 자의 힘을 나는 안톤에게서 명확히 보았다. 확실히가장 가난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는, 낡은코트 차림의 이 단순하고 걱정 없는 남자는 자기 땅을 순시하는 지주처럼 여유롭고 다정하게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는 누구의 집에든 들어갈 수 있었고, 어떤 자리에든 앉을 수있었으며, 오직 최소한의 것만 원했기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허락되었다. 나는 안톤이 가진 힘의 비밀을 곧바로 이해했다.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했기에 모두가 그를 존경했다.
때때로 사소하고 어리석은 돈 걱정이 들 때면, 나는 당장 단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아늘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이 남자를 떠올린다.
패배나 굴욕의 수치심으로 영혼을 다친 사람에게 다가가는일이 절대 쉽지 않음을 잘 알지만, 이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누군가를 돕고 싶은 첫 번째 충동에 주저 없이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공감의 말과 행위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순간에만 참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우리의 말 한마디, 다정한 몸짓 하나가 그에게불행과 고통을 이겨낼 힘을어쩌면 줄 수 있었으리라.
"분명 내 작품을 보고 싶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여기에는보다시피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일요일에 뫼동에 있는 우리 집에 저녁 먹으러 오세요. 거기라면 식사 후에 몇 가지를보여줄 수 있어요." 위대한 사람들은 거의 항상 매우 친절하다. 그리고 과하게나서지 않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관대하다. 이것이 첫 번째교훈이었다.
두 번째 교훈은 프랑스의 일반 주택보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로댕의 뫼동 집에서 배웠다. 자기 일에 전념하는 사람은 언제나 큰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산다. 작은 식탁에서 평범하게 먹고 가볍게 포도주를 마셨는데, 바로 이런 소박함이내게 편히 얘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나는 내 앞에 앉은이 반백의 소박한 남자가 아마도 당시 가장 유명한 예술가일거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나는 로댕이 한 번도 본적 없고 그래서 간절히 보고 싶어 했던 장크트볼프강성당에있는 미하엘 파허 Michael Pacher의 제단에 관해 설명했는데, 그때 내가 인식한 것은 그의 덥수룩한 눈썹 아래에서 나를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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