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뮌헨 사람들은 모두 맥주에 소시지를 먹고, 주말이면 축구 보고,하나같이 BMW를 모는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면 이런 이미지는 뮌헨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선입견, 그러니까 그저 껍데기일지도 모른다. 물론 뮌헨의 상인들이나 우리나라의 여행사들이 이 이미지를 이용하여 장사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이라고 매일 막걸리에 파전을 먹고 집에 가서 태권도를 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삶은 선입견 바깥에 있다. 이제 진정한 뮌헨의 모습을 찾아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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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인생이 비극임을 용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었고, 이 비극에서조차 성숙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것이위대한 전환이다! 모든 것이 우리가 과연 내려감(down)을 올라감(up)으로 볼것인지 또는 칼 융이 말하는 "걸려 넘어진 곳에서 순금을 발견한다는 사실을받아들일 것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레이디 줄리안은 그것을 더욱 시적인언어로 이렇게 표현한다. "먼저 추락이 있다. 그 뒤에 추락으로부터의 회복이있다. 둘 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이다."

이 분명하고 정직한 말에서, 우나무노가 보는 인생이 곧장 앞으로나아가는 직선 코스가 아니었음을나는 읽는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삶은 전체적이고 완벽한 질서보다 훨씬 많은 예외와 무질서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성경이 분명하게 보여주듯이 인생은 상실이면서 회복,죽음이면서 부활, 질병이면서 치유로 이어지고 이렇게 서로 반대되는것들의 알력 또는 충돌처럼 보인다. 우나무노는 ‘신앙‘(faith)이라는 개념을, 너무나 강하여 죽음마저도 포함시키는 저변의 생명력에 대한 ‘신뢰‘(crust)와 동일시한다. 신앙은 이성(理性)을 포함하지만,우나무노에게는, 이성보다 큰 범주다. 진실은 문제를 해결하고 사물을 돌아가게 하는 실질적인 무엇만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상충하는 것들을 화합시키는 무엇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비참한 결과를 빚는다고 해서 그것이진실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어떤 것이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한 것 또한 아니다. 인생은 태생부터 비극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근사한 논리보다 오직 신앙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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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김누리 교수의 대한민국 교육혁명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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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월감이 터무니없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단테‘ 하면 곧장 신곡을 떠올렸지만, 그게 제 지식의 전부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저 제목만알고 있을 뿐,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고, 그로 인해 제 삶이 영향을 받은 것도 없었습니다.

독일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이 누군가를 ‘알고 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그야말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작품을 읽어보았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시대와 삶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작품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주거나, 변화를 불러일으켰을 때 비로소 ‘안다‘고 표현했습니다.

독일 학생들이 ‘안다‘고 말할 때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자기 나름의 경험으로 해석된 얘기들을 하는 것이었죠. 제가 단테를 안다고 했을 때, 과연 제가 단테에 대해 할 수 있는 얘기가 무엇이고, 단테가 저에게 준 의미는 무엇인지, 제게는 그런 차원의 성찰이 없었던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그저 언제 사용할지도 모를 수많은 ‘죽은 지식‘을머릿속에 쌓아가는 과정을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교육은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입니다. 그래서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책 읽기입니다.

지식을 가능한 많이 머리에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들을 천천히 깊게 읽고 사유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독일 교육의 기본입니다. 저는 독일 학생들이 자기 관심 분야에 관해서는 거의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깊은 사유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런 학생들은 한국에서는 거의 본 적이없습니다. 잘못된 교육과 왜곡된 평가 방식 때문이지요.
우리는 경쟁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다형 단답형의 지식문항들을 풀어내기 위해, 잡다한 지식들을 낮은 수준에서 되도록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에게는 심연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깊이 사유하고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자유로이 펼치는 학생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최근 문제가 된 이른바 ‘킬러 문항‘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도 사실은 강남의 소수 아이들에게 국한된 ‘그들만의 게임‘에나 적용되는 얘기이지요.
샌델과 마코비츠는 실제로 미국의 명문대학 입학생의 출신을분석함으로써 능력주의의 신화를 깹니다. 간단히 말해서 능력주의의 가장 확고한 징표, 즉 미국 명문대학 입학은 ‘학생의 능력‘이아니라, 그의 아버지의 재력에 달렸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를 사회의 공동선을 다 때려 부수는 ‘폭군‘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면서 능력주의가 미국 사회를어떻게 망쳤는지를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첫째, 능력주의는 미국 사회를 ‘오만함(hubris)에 가득찬 엘리트‘와 ‘굴욕감(humility)에 휩싸인 대중‘으로 갈라놓았다는 것입니다. 오만한 엘리트란 누구인가요. 그들은 바로 명문대학의 졸업생들입니다. 미국에서는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명문대학 졸업장이능력의 가장 확실한 증표이기 때문이지요. 거기선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MIT 등의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대개
‘능력 있는 엘리트‘라고 부릅니다.

능력주의가 폭군인 이유는 또 있습니다. 능력주의는 오만한 엘리트와 분노한 대중으로 미국 사회를 완전히 갈라놓았을 뿐만 아니라,미국을 ‘절망사(death of despair)‘의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은 역사상 최악의 불평등 사회가 되었지만, 능력주의이데올로기로 인해 대중들은 혁명을 꿈꾸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중들은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미국의 약탈적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조에서 찾지 않고, 자신의 무능에서 찾는다는 거지요. ‘내가 무능하기 때문에, 내가 불행한 것이다‘라는 의식을 내면화하도록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부추긴 결과이지요. 그래서 불행한 대중들은 ‘혁명 대신 자살‘을 택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 결과가 바로 ‘절망사의 나라‘입니다. 2018년 한 해에만 약 15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절망사‘로 죽었습니다. 사실 절망사가 미국보다 더 심각한 나라는 확고부동한 ‘자살률 세계 1위‘ 대한민국입니다.

베라르디는 "한국인의 일상은 사막"이라고도 했습니다. 사실이 사막은 이데올로기의 모래바람으로 가득합니다. 한 대기업 광고에서 기업 오너가 직접 나와 이렇게 말합니다.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이 카피는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본이 내뱉는 이데올로기의 언어에 24시간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자본이 보내는 긍정과 소비와 노동의 ‘복음‘을 듣습니다. ‘긍정의 힘을 믿어라,
끝없이 소비하라, 쉬지 않고 일해라. 저는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나는 긍정입니다"라는 H 그룹의 광고를 보고 정말 ‘파렴치하다‘고느꼈습니다.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너무도 노골적으로 설파했기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노예 감독관이 채찍질 하면서 폭력으로노예를 지배했다면, 현대 사회는 노예 감독관을 우리 가슴속에심어놓는 방식으로 지배합니다. 밖에서 폭력으로 감시하는 것이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착취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착취의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는 ‘타인에의한 착취‘에서 ‘자신에 의한 착취‘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착취가 정치의 영역을 넘어 문화의 영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지요. 한국에서는 이 끔찍한 자기착취를 ‘자기계발‘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기를 착취하지 않는 인간은 불안해합니다. 끝없이 자기를 착취하는 개인들을 만들어내는 이것이
‘한국형 착취 양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를 보는 관점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의 언어를 통해서 이해하기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눈을 통해서, 혹은 그들이 씌운안경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이지요. 우리가 한국 사회에 대해가지고 있는 모든 생각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저들의 생각입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이 우리에게 준 가이드라인 그대로 세상을 이해하는 거죠.

‘아,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과연 내 생각일까, 아니면 나를지배하는 저들이 내 머릿속에 집어넣은 생각일까‘ 이러한 각성이시작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나는 이렇게 느껴, 나는 이렇게욕망해‘라고 할 때 바로 그 ‘나‘가 정말 나인지, 아니면 ‘나‘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진 저들인지를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에겐 이런 자기성찰이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한국이 30-50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정말 축하한다. 그런데 너희 나라는 다른 여섯 나라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한국을 제외한 여섯 나라는 모두 제국주의의 과거를 가졌다는 것이다. 한국만 제국주의 과거가 없는 유일한 나라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하고, 지배한 과거가없더라도 당당히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을한국이 보여준 것이다. 다시 말해, 30-50클럽 중에서 한국만이도덕적 권위를 가진 나라다. 그것을 정말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한국은 제3세계 국가들에게 희망의 등불 같은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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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 손웅정의 말
손웅정 지음 / 난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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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쓰는 생활공간일 텐데 저마다 그 자리의 상태는 지금 어떠한가. 항상 청결할까요. 우리가 깨끗한 것은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스스로 그렇게 만드는 건 또 아주 귀찮아한단 말이죠. 게을러서, 나태해서, 스티브 잡스가 한 말 중에 "Stay Hungry, StayFoolish!"가 있지요. 항상 배고픔을 유지하고, 항상 어리석음을유지하라는 거, 그건 항상 초심을 기억하라는 얘기잖아요. 결국나의 모든 부분을 탁월하게 만들어주는 거, 그건 큰 의미에서의불편함이죠.

결국 불편함은 노력이에요. 내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 불편함이 지속된다는 건 한편으로는 내 몸에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얘기잖아요. 처음에 그 노력은 한 사람의 습관을 만들지만, 그다음부터는 그 한 사람을 만들지요. 습관이라는 건 처음에는 얄팍한 거미줄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강철 같은 쇠줄이 되지요. 제가강연중에 가끔 이런 얘기를 해요. 게으른 자는 하지 않은 일로 평가받고, 부지런한 자는 한 일로 평가받는다고요. 부지런한 사람은 눈을 치워 길을 내며 가는데, 게으른 사람은 그저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고 앉았다고요. 시인님 바로 아시네요.

제 침대가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거든요. 그래야 그 양쪽 면을 다 청소할 수가 있잖아요. 그래 두면침대와 벽 사이에 딱 제 한몸 들어가 뉘일 공간이 생기는데 그 모양새가 딱 관 같더라고요. 저는 하루에 한 번씩 거기 딱 누워봐요. 그러고는 하루를 돌아봐요. 오늘 하루로 삶이 끝난다고 했을때 무엇이 가장 후회되는 일일까. 그렇게 해서라도 후회를 챙기는 거죠.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요, 테레사 수녀님이 봉사를 하겠다고찾아와 일에 나서려는 사람들을 면접할 때 요세 가지를 물으셨다고 해요. "잘 잘 수 있는가, 잘 먹을 수 있는가, 그리고 잘 웃을수 있는가." 웃음이야말로 저는 리더의 핵심 자질이라고 봐요. 유머는 우리 삶의 윤활유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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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3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학처방전 - 인문약방에서 내리는
박연옥 지음 / 느린서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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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은영이 플라스틱 칼로 미친 듯이 등을 때렸더니 허리가 나았다. 놀라워하는 의사에게 은영은 충고한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거절도 할 줄 아셔야 해요.
과도한 업무도 번거로운 마음도 거절할 줄 모르면 제가 아무리 털어봤자 또 쌓일 거예요. 노, 하고 단호하게 속으로라도 해보세요."
이쯤 되면 보건교사 안은영은 판타지 소설이라기보다 생활 건강 매뉴얼처럼 느껴진다. 악귀든 원한이든 스트레스든 떨어내야 할 것들을 제때 떨어내지 않으면 다 병이된다. 어쩌면 은영에게 진짜 필요한 능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것과 싸우는 초능력이 아니라 방전된 에너지를재충전하는 방법을 찾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이건 은영뿐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여행을 가거나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은 1년에 한두 번쯤으로 자주 가지는 못 한다. 대신 집 앞 산에 오르는 일은 일주일에 한두번 가능하다. 여행 가는 일보다 산에 가는 일이 일상적으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 아파트 종이 배출일이 화요일임을 기억하는 일, 가족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외식할 맛집 리스트를 뒤져보는 일, 코로나에 걸린 친구에게 기프티콘을 보내는 일, 카페에서 장시간 있기 위해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골라잡는일, 식당 키오스크 앞에서 메뉴를 고민하는 일 등 인생은시시콜콜한 작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잘 쌓아올린 나무토막들 가운데 한두 개쯤 빼버려도 굳건하게 버티는 젠가 게임처럼. 그러나 한두 개쯤 빼버려도 그만인 나무토막이 수북해질 때 젠가는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그러니까티끌같이 작은 일들을 얕잡아보면 안 된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는 티도 안 나는, 눈치도 못 채는 작은 틈과 균열이 있다. 그렇다고 강박증에 걸릴 필요는 없다. 약간의 주의력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S와 세 번 만나는 동안 흔히사소한 일상이라고 말하는 ‘사소함을 오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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