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처방전 - 인문약방에서 내리는
박연옥 지음 / 느린서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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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은영이 플라스틱 칼로 미친 듯이 등을 때렸더니 허리가 나았다. 놀라워하는 의사에게 은영은 충고한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거절도 할 줄 아셔야 해요.
과도한 업무도 번거로운 마음도 거절할 줄 모르면 제가 아무리 털어봤자 또 쌓일 거예요. 노, 하고 단호하게 속으로라도 해보세요."
이쯤 되면 보건교사 안은영은 판타지 소설이라기보다 생활 건강 매뉴얼처럼 느껴진다. 악귀든 원한이든 스트레스든 떨어내야 할 것들을 제때 떨어내지 않으면 다 병이된다. 어쩌면 은영에게 진짜 필요한 능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것과 싸우는 초능력이 아니라 방전된 에너지를재충전하는 방법을 찾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이건 은영뿐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여행을 가거나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은 1년에 한두 번쯤으로 자주 가지는 못 한다. 대신 집 앞 산에 오르는 일은 일주일에 한두번 가능하다. 여행 가는 일보다 산에 가는 일이 일상적으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 아파트 종이 배출일이 화요일임을 기억하는 일, 가족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외식할 맛집 리스트를 뒤져보는 일, 코로나에 걸린 친구에게 기프티콘을 보내는 일, 카페에서 장시간 있기 위해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골라잡는일, 식당 키오스크 앞에서 메뉴를 고민하는 일 등 인생은시시콜콜한 작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잘 쌓아올린 나무토막들 가운데 한두 개쯤 빼버려도 굳건하게 버티는 젠가 게임처럼. 그러나 한두 개쯤 빼버려도 그만인 나무토막이 수북해질 때 젠가는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그러니까티끌같이 작은 일들을 얕잡아보면 안 된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는 티도 안 나는, 눈치도 못 채는 작은 틈과 균열이 있다. 그렇다고 강박증에 걸릴 필요는 없다. 약간의 주의력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S와 세 번 만나는 동안 흔히사소한 일상이라고 말하는 ‘사소함을 오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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