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혼란스럽다.
인생에 대한 신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신념.
내 능력에 대한 믿음과내게 허용된 일이라고 믿는 것.
우리는 스스로를 명확히 정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떤것은 그냥 놓치거나 흘려보내도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재능‘은 훌륭한 체의 역할을 한다. 어떤 일을 몇 번 시도해본결과 계속 노력할지, 그만둘지를 결정하는 도구다. 세상에서 내로라하는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TV에 나와서 "어릴 때는 백신개발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라거나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성과를 거두기까지 8~9년은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라고말해도 누구도 이런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오히려 <엘리제를위하여>를 화음을 넣어 연주하거나 미국 국가를 멋지게 노래하는 2학년짜리 꼬마에게 온갖 찬사를 보내는 교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은 그런 칭찬을 받지 못했으므로 두 번 다시 음악은손대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천부적인 기질‘이 있었을까? ‘재능‘이 있었을까? 물론이다. 모든 아이에게는 재능이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재능이 있거나 없는지 꼬집어서 아이에게 알려주는 것은 재능의 불씨를 꺼버리는 셈이다. 나는 그 단어가 싫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 중에서 기쁨과 진정한 만족감을앗아가는 것이 ‘재능‘이라는 단어다.

무언가에 능숙해지려면 꾸준히 연습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몇 년은 걸릴 것이다.
연습 과정은 답답하고, 더디고, 크고 작은 고통이 뒤따르거나,
실망감에 젖곤 한다. 무엇보다 상당히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도 연습하는 이유는 뭘까?
배움을 통해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을해내고 싶다면 길은 하나뿐이다. 바로 연습이다. 아무도 당신이배우는 일이 대단하다고 칭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한들 놀라운 수준에 도달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적절한 지도를 받아 꾸준히 연습하면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우리 대부분은 영웅이 아니다. 우리 삶의 무대는 그보다 훨씬작으며 주로 가족, 동료, 연인,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나는 일생의 절반을 뉴욕시에서 보냈는데, 이곳에서는 성취를 향해 나아가고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고 성공을 추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하지만 소통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에게 ‘연민‘과 ‘용기‘는 삶의 큰 자산과 같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나누어야 할 전부다.

삶의 한 조각이 당신 삶의 한 조각이 될 수 있고, 당신 삶의한 조각이 내 삶의 한 조각이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남들에게 내가 어리석게 보일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줄어든다. 실제로내가 어리석은 사람이고, 몇 번이고 그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지 않으면 내가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아져, 더 많은 사람이 내게 와서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나는 상대의 말을 들을 때, 뭐라고 말해줄지 딴생각하지않는다. 이렇게 집중력을 발휘하여 상대의 말을 듣다 보면 내면의 자아가 들은 내용을 곰곰이 생각하며 상대방에게 공감을 표현한다.
그 맛이 어떤지 알아요.
나도 시도해봤는데 실패했죠.
나도 좀 아팠어요.
이젠 다 나았어요.
그게 얼마나 속상하고 절망스러운지 잘 알아요.
사랑했고, 이젠 극복했어요.
요즘은 이 도시가 더 좋아졌어요.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나는 결국에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되리라고 믿었다. 인생은 신성할 정도로 단순하고, 악마처럼 복잡하다. 인생은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이것이 곧 혼돈의 정의다. 우리는 축복받은 존재이자 저주받은 존재다. 온 우주가 내 안에 있지만, 사람은 모두 혼자다. 어떤 이는 이 세상이 무의미하다고 말하지만, 내 심장은 여전히인생의 목적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내게 친구, 연인, 가족과 같은 사람을 잃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모두내 곁을 떠나고 만다. 그래서 내 마음에는 사랑과 고통이 항상 공존하며, 사랑이 고통을 일으키거나 그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어떤 위로도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락이 오면 세상을다 얻은 듯 행복했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그런 절망감과기쁨을 오가며 살아간다. 또 모든 것을 잃는다. 고통과 환희를두고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이 세상이 초래한 슬픔을 그대로 되갚을 것인가? 아니면 슬픔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 반영된 것을 지켜보고 이를 발판으로 연민을 더 키울 것인가?

우리는 작은 것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의미는 우리가 열심히 내용을 받아들여 소화한 후에 내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존재 자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게으름과 절망에 사로잡히면 잘못된 기대에 빠져 의미가 존재 자체에 의해 성립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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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니시티라는 단어는 흔히 ‘민족성(民族性)‘으로 번역되기때문에 혈통과 유전에 근거한 분류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민족성‘이라는 번역어에서 방점은 ‘민족(民族)‘이 아닌 ‘성(性)‘에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영어에서 레이스는 ‘외모로 드러나는 특징과 어느 정도의 문화와 역사를 공유한집단‘을 가리키고 에스니시티는 문화, 전통, 가족의 유대 등을 공유하는 집단으로부터 습득된 특징을 가리킨다.

한국에서도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서울에 거주하게 된 사람들이 서울 말씨를 배워 사용하는 것을 쉽게 목격한다. 서울 사람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서울 말씨를 구사하던 이들은 고향에 돌아가 친지를 만나는 순간 사투리가 살아난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로 이동하면서 말투나 행동이 바뀌는 것을 두고 ‘코드 스위치(code switch)‘라는 말이 생겨났다.

미국의 경우는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미국 남부 텍사스에서태어나 살던 사람이 북동부 뉴욕으로 이사했다고 해서 뉴욕 말씨와 억양을 빠르게 습득하는 일은 없다. 뉴욕 출신이 서부 캘리포니아에 간다고 자기 억양을 쉽게 버리지도 않는다. 미국이 워낙땅이 넓은 나라인 데다 특정 지역들 사이에 문화적 우열이 없거나, 적어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서 그렇다.
하지만 지역이 아닌 인종을 기준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령 미국에서 아시아계로서는 사실상처음으로 메이저 방송국의 앵커로 이름을 날렸던 코니 청(ConnieChung)은 종유화(華)라는 중국식 이름을 갖고 있지만 영문이름(first name)은 콘스탄스(Constance)다. 코니 청의 중국식 이름(Yu-Hwa)은 미들네임으로 숨어 있고 방송에서는 콘스탄스의 애칭인 코니로 통했다. 이렇게 이름을 영국식으로 바꾸는 것을 앵글리시제이션(Anglicization, 영국화, 영어화)이라고 한다.

도시와 건물주변 상권의 환영을 받겠지만 그런 건물들이 세계 최고의 건축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 판단이다. 그건물들이 건물주와 도시에 돈을 벌어준다는 것과 수십,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 인류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느냐는 분명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2022년 프리츠커상이 주목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수상자인 디에베도 프랑시스 케레가 만들어온 건물들은 규모, 위치, 용도에서 전통적인 프리츠커 수상자들의 작품과는 크게 다르다. 그의 건물들은 아름답지만 작은 데다 서구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의 마을에 위치해 있다. 무엇보다 케레는 학교 건물에 관심이 많다. 그는 1965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도에서 위치를 찾기도 힘들어하는 부르키나파소에서도 가난하고 교육률이 떨어지는 지역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이장(족장)이었던 케레의 아버지는 아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린 케레를 멀리 떨어진 도시로 보내 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런데 그 학교라는 곳이 환기도 안 되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 시멘트 블록 건물이었다고 한다. 케레는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학교 건물을 이것보다는 낫게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때 가졌던생각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자기가 설계하는 학교 건물에 반영하고있다.

프리츠커상이 디에베도 프랑시스 케레를 선택한 것은 아프리카 건축이라는 지역적 다양성(이것만 고려했다면 다른 아프리카 출신의 건축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외에도 건축물이 가지는 가치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비행기를 타고오는 돈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건물과 제3세계에서 어렵게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수업 환경과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건물 중 어느 쪽이 인류의 미래를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해줄까? 다시 말하지만 이건 가치 판단의 영역이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건물을 지으면서 했던 경험은 내가 서구 국가에 건물을 설계할 때 사용된다. (서구에서 항상) 해오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각도에서 설계를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보았던 것들이 내가 서구에서 건물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대륙, 서로 다른 문화를 오가는 것은 단순히 주류를 따르는 대신 변화를가져올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하는 케레의 말은 그동안 서구 모더니즘 건축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스타 건축가를 찾아온 프리츠커가 케레를 통해 새로운 문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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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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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성인에 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으면 여자,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자 아니냐"고 말한다. 그런데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을 가르는 기준은 다양하다. 우리가 아는 대표적인 방법이 눈으로 생식기를 확인하는 방법과 성염색체(XX,
XY)를 통해 확인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안드로젠 무감응 증후군(AIS)을 가진 사람들은 생식기의 종류와 성염색체가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AIS 외에도 다른 여러 요인들이 간성을 만들어내지만결과적으로 이 사람들은 갖고 태어난 몸‘이 사회가 생각하는 남녀 이분법으로 편리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은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아서 전 세계 인구의 1.7퍼센트에달한다. 남한의 인구보다 많고 독일 인구보다 조금 적은 숫자다.

운동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큰돈과 명예를 얻는 엘리트스포츠는 뛰어난 신체적 조건을 타고난 사람들 사이의 경쟁이다.
그리고 ‘좋은 신체조건‘에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남성 호르몬도포함된다. 단, 그 선수가 여성이라면 예외다. 여성이면서 남성 호르몬이 많이 나오면 출전 자격이 박탈된다. 그게 캐스터 세메냐가 마주한 현실이었다. 요약하면, 남자가 여자 종목에 몰래 들어와서 경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별을 확인하는 절차를 만들었는데, 과거에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생각했던 성이 살펴볼수록 복잡해서 칼로 자르듯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다. 연구를 해보니 외부에 드러난 생식기도 성염색체도 여성과 남성을 구분해주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육상연맹은 세메냐가 참여할 수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호르몬제를 복용해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경기 6개월 전부터 낮추면 된다는 것이다. 이 결정이 가진 아이러니는 다른 선수들은 호르몬제를 포함한 약물을 복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는 반면 세메냐와 같은 간성의 선수들은 오히려 약물을 복용하지 않으면 경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과학적인 근거를 이야기할 때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그렇게 도출된 결론을 보면 결국 세메냐를 비롯한 간성인을 ‘잡아내기‘ 위한 조치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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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세계 -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
에드 콘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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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는 금을 가리켜 "야만적 유물"이라고 비판했다. 금이 장신구나 유물 속에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외에는 기능적으로 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금은 분명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우리가 금괴 몇 덩이를 얻겠다고 산 전체를 폭파하겠는가? 금이 실제로 할 수있는 일을 잠시 떠올려보자. 금은 전자공학이나 화학 분야에도 도움을 주지만 이건 오늘날 금 수요의 10분의 1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보석류, 장식물, 경제적 재앙을 우려하는 이들의 위험회피용 자산 등의 쓰임이 더 주요하다. 내가 코르테즈 광산에서 봤던 금은 지금쯤 누군가의 반지에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은행 대여금고 속의 금괴 형태로 다시 지하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보석상이나 예민한 투자자에게는 헛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 주위에서 갑자기금이 다 사라진다고 해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갈 것이다."

네바다주에서 돌아온 뒤 나는 이런 질문들을 몇 달간 계속 곱씹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생활에 별 지장 없는 금속을 지하에서채굴하기 위해 그렇게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니! 실제로 필요한물질들을 채굴하려면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까? 그렇다면우리가 실제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물질은 무엇일까? 이 세상에 없다면 문명을 멈춰 서게 할 정도로 중요한 물리적 요소들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미국에서 생산하는 5달러 중 4 달러가 서비스 부문에서 나오고, 나머지 1달러는 에너지업· 광산업·제조업에서 나온다. 그렇지만 소셜네트워크부터 소매업, 금융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이 물질적 하부구조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고 거기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건 물질계이다. X(트위터의 새로운 이름옮긴이)나 인스타그램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이 종말을 맞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강철이나 천연가스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상당히 심각한 이야기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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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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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여군부대(WAAC)를 만들었을 때 정식 제복에 어깨에 걸 수 있는 핸드백이포함되었다는 사실은 기이해 보이지만 남자 군인들처럼 사용할수 있는 주머니를 넣느니 핸드백을 걸게 하겠다는 발상이었던 것같다.
120쪽 사진 속 포스터를 보면 여군의 가슴에는 남자 군인들의제복과 같은 위치에 주머니가 붙어 있지만 자세히 보면 주머니덮개만 있을 뿐 주머니는 없다. 여자라면 심지어 군인이라도 옷에 주머니를 허용하지 않을 만큼 지독한 고정관념이 존재한 것이다.

미군에서는 여군이 남자와 똑같은 군복을 입을 경우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라는 오해를 살 것을 염려해서 군인이라도 여자들에게는 ‘여성스러운‘ 옷을 입히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정복에 바지 대신 치마를 도입한 것이다. 여성성에 대한 이런 배려 아닌 배려는 가슴 주머니에도 적용되어서 남자들처럼 여군이 가슴 주머니에 담뱃갑, 라이터 같은 물건을 넣으면 가슴 모양이 살아나지 않고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에 아예 덮개만 놔두고 주머니를 없앴다. 그 결과 군복을 입는 사람 입장에서의 실용성보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대상‘으로서의 모습에만 집중한 군복이 탄생하게 되었다.

카진스키는 주머니 문제가 "더 큰 불평등에서 비롯된 하나의증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진짜 문제는 남성과 여성 중 남성만이 기능하는 옷을 입을 수 있고 입게 될 것을 당연하게 기대하고그걸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기여는 제한적이라는 사고방식, 여자를 전통적인 위치에묶어두려는 태도가 여자의 옷을 만드는 데 반영된다. "옷은 사회적산물"이라고 했던 페미니스트 작가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Perkins Gilman)의 말이 맞다면 주머니가 없는 여자의 옷은 여성이해야 할 일과 여성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게 주머니 문제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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