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니시티라는 단어는 흔히 ‘민족성(民族性)‘으로 번역되기때문에 혈통과 유전에 근거한 분류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민족성‘이라는 번역어에서 방점은 ‘민족(民族)‘이 아닌 ‘성(性)‘에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영어에서 레이스는 ‘외모로 드러나는 특징과 어느 정도의 문화와 역사를 공유한집단‘을 가리키고 에스니시티는 문화, 전통, 가족의 유대 등을 공유하는 집단으로부터 습득된 특징을 가리킨다.

한국에서도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서울에 거주하게 된 사람들이 서울 말씨를 배워 사용하는 것을 쉽게 목격한다. 서울 사람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서울 말씨를 구사하던 이들은 고향에 돌아가 친지를 만나는 순간 사투리가 살아난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로 이동하면서 말투나 행동이 바뀌는 것을 두고 ‘코드 스위치(code switch)‘라는 말이 생겨났다.

미국의 경우는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미국 남부 텍사스에서태어나 살던 사람이 북동부 뉴욕으로 이사했다고 해서 뉴욕 말씨와 억양을 빠르게 습득하는 일은 없다. 뉴욕 출신이 서부 캘리포니아에 간다고 자기 억양을 쉽게 버리지도 않는다. 미국이 워낙땅이 넓은 나라인 데다 특정 지역들 사이에 문화적 우열이 없거나, 적어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서 그렇다.
하지만 지역이 아닌 인종을 기준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령 미국에서 아시아계로서는 사실상처음으로 메이저 방송국의 앵커로 이름을 날렸던 코니 청(ConnieChung)은 종유화(華)라는 중국식 이름을 갖고 있지만 영문이름(first name)은 콘스탄스(Constance)다. 코니 청의 중국식 이름(Yu-Hwa)은 미들네임으로 숨어 있고 방송에서는 콘스탄스의 애칭인 코니로 통했다. 이렇게 이름을 영국식으로 바꾸는 것을 앵글리시제이션(Anglicization, 영국화, 영어화)이라고 한다.

도시와 건물주변 상권의 환영을 받겠지만 그런 건물들이 세계 최고의 건축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 판단이다. 그건물들이 건물주와 도시에 돈을 벌어준다는 것과 수십,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 인류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느냐는 분명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2022년 프리츠커상이 주목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수상자인 디에베도 프랑시스 케레가 만들어온 건물들은 규모, 위치, 용도에서 전통적인 프리츠커 수상자들의 작품과는 크게 다르다. 그의 건물들은 아름답지만 작은 데다 서구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의 마을에 위치해 있다. 무엇보다 케레는 학교 건물에 관심이 많다. 그는 1965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도에서 위치를 찾기도 힘들어하는 부르키나파소에서도 가난하고 교육률이 떨어지는 지역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이장(족장)이었던 케레의 아버지는 아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린 케레를 멀리 떨어진 도시로 보내 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런데 그 학교라는 곳이 환기도 안 되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 시멘트 블록 건물이었다고 한다. 케레는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학교 건물을 이것보다는 낫게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때 가졌던생각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자기가 설계하는 학교 건물에 반영하고있다.

프리츠커상이 디에베도 프랑시스 케레를 선택한 것은 아프리카 건축이라는 지역적 다양성(이것만 고려했다면 다른 아프리카 출신의 건축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외에도 건축물이 가지는 가치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비행기를 타고오는 돈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건물과 제3세계에서 어렵게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수업 환경과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건물 중 어느 쪽이 인류의 미래를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해줄까? 다시 말하지만 이건 가치 판단의 영역이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건물을 지으면서 했던 경험은 내가 서구 국가에 건물을 설계할 때 사용된다. (서구에서 항상) 해오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각도에서 설계를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보았던 것들이 내가 서구에서 건물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대륙, 서로 다른 문화를 오가는 것은 단순히 주류를 따르는 대신 변화를가져올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하는 케레의 말은 그동안 서구 모더니즘 건축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스타 건축가를 찾아온 프리츠커가 케레를 통해 새로운 문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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