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특히 나무를 사랑했던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나무들 하나하나가 고유한 형태와 특별한 상처를 가진 모습으로 자신만의 삶을 사는 모습을 가만히 목격하며 감탄하곤 했다. 프뢰벨이 그와 만났다면 아마 ‘고유하게 예쁜 꽃들이 모여 삶을 사는 공간‘으로서의 유치원에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최근『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이라는 책을 읽고 현재 내 삶이자연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새삼 깨달았다. 헤세가 말하듯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생각하는 나무들, 우리가 귀담아듣지 않아도 항상 우리보다 더 지혜로운 대지와 자연. 우리는 뜰로, 정원으로, 자연으로 나가는 법을왜 잊었을까.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을 때, "한국에 친정이 하나더 있다고 생각하게"라는 말로 큰 위로를 주신 분이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되새겨도 여전히 따뜻하고 뭉클한 말이다. 친정親庭이라는 말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친한 뜰‘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우리는 뜰에서 컸고, 뜰에서 힘을 얻는 존재들이다. ‘친한 뜰‘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풍경이 있는 건 축복이고, 우리 어른들은 그런 축복을 더 많이 누리며 컸다. 나는 아파트나 빌라가 동네를모두 먹어치우기 전에 성인이 되었으므로 정원이 있는 집에서 꽤 오래 살았다. 거기서 개미한테 과자도 주고, 구름이 변하는 풍경을 보느라 한나절을 보내기도 하고, 대추도따 먹고, 엄마가 꽃사과를 따서 술 담그는 것도 보고, 강아지를 쓰다듬고 분꽃 씨를 따 모으며 놀았다. 작은 뜰이었어도 도시 꼬마에게는 운동장만 한 우주였다. 유치원 정원이든, 학교 운동장이든, 동네 공원이든, 세상에 온 지 얼마되지 않은 작은 생명들이 오래도록 든든하게 기억할 친한

"엄마, 이음이는 세 밤 자면 던져져."
최근에 들은 귀여운 문장이다. 세 밤 자면 유치원을 졸업한다는 뜻이다. 독일 유치원에는 재미있는 풍습이 있다. 라우스부르프(Rauswurf, 실제 발음은 ‘라우스부어프‘에 가깝다), 혹은 라우스슈미스 Rausschmiss라고 하는데, 선생님이 졸업하는 아이들을 유치원 밖으로 던져주는 것이다. 물론바닥에 폭신하고 두터운 매트리스를 겹겹이 깔아두고.이것이 독일 유치원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다.

라우스부르프 Rauswurf는 ‘던짐‘을 뜻하는 명사 부르프Wurf에 ‘바깥쪽으로‘라는 의미의 접두사 라우스raus가 붙은말이다. 원래는 자의에 반해 쫓겨나거나 그만두게 되는일, 즉 퇴출이나 제명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다. 하지만 유치원에서는 말 그대로 졸업하는 아이를 밖으로 던져주는세리머니를 지칭한다. 베르펜(werfen, 실제 발음은 ‘베어펜‘에가깝다)과 슈마이센schmeiken은 모두 ‘던지다‘라는 뜻의 동사고, 여기에서 ‘밖으로 내던짐‘이라는 의미의 라우스부

rin이소라는 단어가 있다. 어린 새가 자라서 둥지를떠나는 걸 말한다. 뜻을 알게 된 순간 이 단어는 내 마음속에 둥지를 틀었다. 까치집 같은 아이들 머리통을 보며자주 그 단어를 떠올린다. 아름답고 슬픈 단어다. 미소라는 단어와 비슷한 느낌이라 어쩔 수 없이 작은 미소를 짓게 된다. 나중에 우리가 따로 살게 될 거라고 말하면 첫째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눈동자에 원망을 가득 담아 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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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말, 영국 정부는 이산화탄소의 부족을 발견하고 놀랐다. 이산화탄소가 없으면 식품 산업은 발포성 음료를 만들거나 보존하지 못하고, 도축 전에 돼지나 닭도 기절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에 재차 놀랐다. 이 모든 게 체셔와 티스사이드에 있는 비료 공장 두 곳이 갑자기문을 닫아서 생긴 일이었다. 두 공장은 영국에서 사용하는 이산화탄소 대부분을 공급했는데, 원래 이들의 목적은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해버렸다.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암모니아는 천연가스로 만들기 때문에한 물질의 가격이 요동치는 바람에 전혀 무관해 보이던 다른 물질이갑자기 부족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것이 정말로 경악할 일일까? 그 답을 얻기 위해, 경제학자 레너드리드 Leonard Read가 1958년에 쓴 유명한 에세이 <나, 연필, Pencil>을 살펴보자. <나, 연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연필이다. 읽고 쓸 줄 아는모든 소년과 소녀, 어른에게 친숙한 나무 연필이다." 이런 식으로 리드는, 아니 연필은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나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는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연필처럼 매우 간단한 물건을 하나 만드는 데도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각각의 부품을 만드는 제조업자들부터 제조 공정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발전소 근무자들까지 "수백만 명의 사람이 나(연필)의 탄생에 참여하지만,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극히 일부밖에 알지 못한다"라고 리드는 썼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 일상용품이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하여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이토록 복잡한 제조 과정을 단 한 사람이 맡거나, 더 나아가 통제한다는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대에 집필된 <나, 연필>은 특히 두 번째 교훈을 강조한다.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경제학자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이 에세이를 예로 들면서 소련 경제학자들의 주장, 즉 중앙위원회에서 경제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잘못됐다고 반격했다.

물질 세계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단단히 뒷받침한다. 이 세계가 없다면 당신 손 위의 아름다운 스마트폰은 작동하지 않고, 전기차는 배터리를 갖지 못할 것이다. 물질 세계는 당신에게 화려한 집을 제공하지는못하지만, 당신의 집이 계속 버티고 서 있도록 지탱한다. 특별히 신경쓰지 않아도 당신을 따뜻하고 청결하게,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

물질 세계에서 당신은 낯선 이름이지만 매우 중요한 회사들, 예를들면 CATL, 바커 Wacker, 코델코Codelco, 사강Shagang, TSMC, ASML을만날 것이다. 이 이름들은 당신에게 별 의미가 없겠지만, 누구나 다 아는 월마트Walmart, 애플Apple, 테슬라 Tesla, 구글Google 같은 비물질 세계의 회사들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현대 경제에 가장 잘 숨어있는 비밀이 바로 이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들은 그들의 똑똑한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물질 세계의 이름 없는 회사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물질 세계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아이디어가현실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은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여섯 가지 물질이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물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물질들이 빠진 현대 문명은 상상하기 어렵다. 코발트가 없어도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 네오디뮴 자석이 없어도 헤드폰과 전기모터를 만들수 있다. 부피가 더 크고 덜 효율적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물질들은 대체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모래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일이다. 매우 다양한 유형의 모래가 저마다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모래는 실리카가 주성분이지만, 열대 해변의 흰모래는 바닷조개와 산호의 잔여물로 만들어졌으므로 성분이 확연히 다르다. 카리브해나 하와이의 아주 깨끗한 바다에 가면, 파랑비늘돔의 배설물 안으로발이 쑥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파랑비늘돔은 산호를 먹어서 영양분을 취한 다음, 탄산칼슘을 해저에 배설한다. 열대 해변이 희고 따뜻할수록 그곳의 모래는 파랑비늘돔 배설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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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들 사이에서만 거둘 수 있는 것이 있다. 경계에서 사는 삶은 고단하지만, 경계에서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낯선 언어가 익숙한 세계를 휘젓는 철학적 순간을 만나는 것은 고단한 경계인이 얻는 축복이다. 그 축복을 나누고 싶었다.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방향이다. 이들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지, 우리는 어느쪽을 향해 걷고 있는지. 언어란 오랜 시간에 걸쳐 한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빚어낸 작품이고, 단어는 그 작품의 중요한 기본 재료다.

파이어아벤트 Feierabend‘는 하루 일을 마감할 때 쓰는 명사다. 축제나 파티의 의미가 담긴 파이어 Feier와 저녁이라는 뜻의 아벤트Abend가 합쳐진 말이다. 일을 마칠 때 사람들은 먼지 묻은 손을 툭툭 털면서, 혹은 사무실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Feierabend! (파이어아벤트!)"라고 외치고, 동료들은 서로에게 ‘수고했어, 잘 쉬어!‘라는 의미로
"Schönen Feierabend! (쇠넨 파이어아벤트!)"라는 인사를 건넨다

훈색이라는 이름의 색이 있다. 노을이 질 때 하늘에 보이는, 분홍에 노랑이 섞인 색이다. 색이름에 저런 따뜻하고 훈훈해 보이는 글자를 넣은 이유도 아마 비슷한 감각이 아닐까. 그동안 좋아하는 색을 묻는 질문에 소녀 시절갈색에서 시작해서 지금껏 팔레트 하나를 다 돌았는데,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색은 훈색이다." 저물녘에 세상만사를 포근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색, 인격이있다면 아마도 가장 다정할 것 같은 색.

Servus, 제르부스라는 인사말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같은 성서 속 표현에서 기원을 찾는다. 비슷하게 서로에게 "I‘m your servant", 즉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너를 마치 신처럼 여기고나를 낮추겠다는 마음이 지금까지 남아 전해진다는 사실은 참 뭉클하다. 특히 전국 노래자랑에 버금가는 전국 갑질 자랑으로 도배된 사회면 뉴스에 지친 마음에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 모두는 갑이 되길 바란다. 을, 병, 정도 모자라 무기경신임계까지 물고 물리는 사슬에서 어떻게 하면 나를 조금 더 앞쪽에 놓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만만해 보이는 사람 앞에 서면 자동적으로 가슴이 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고개가 치켜올라가 거북목이 교정되는 것이다. 특히 서비스 직종에 있는 분들에게 유독 무례하게 굴어 사회적 이슈가 되고 공분을 사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제가 당신을 섬기고 살필게요"라고 말하는 인사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활짝 웃으며 온마음으로 쓰는 인사다.

gefallen 이라는 동사도 휘도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휘도라는 개념을 떠올리면 보이지 않는 수많은 빛의 굴절속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나라는 존재와 우리 인생 자체가 이렇게 무수한 굴절을 통해 닿아오는 관계 속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gefallen 은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관한 아름다운 동사다. 인간이란 나 혼자 빛날 수 없고, 애초에 빛이란 건 내 안에 있지 않다. 내가 당신을 통해서 존재한다는 것. 주체와 객체라는 조금은 차가운 관계를 이렇게 한 번 빛처럼 꺾어보는 일. 세상의 모든 문장이 ‘나는‘으로 시작하지는 않는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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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림이 나를 기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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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이 당신 마음에 드나요?

펼쳐진 자연 속에 인간은 개미만 한 모습으로 등장하곤한다. 겸재 정선이 박연폭포를 그린 그림에서 작고 귀여운 조상님들을 한번 찾아보시길. 그렇게 기본적으로 세상에 놓인 자아의 사이즈가 작다. 게다가 큰 범주에서 작은 범주로 가는 사고방식에다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윤리도 결합해 두었다. 큰 것부터, 어른 먼저... 그래서인지나를 뒤로 물리고 공동체를 위해야 한다는 생각, 나이라는숫자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사고 같은 것들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다.

반면에 이곳 독일에서는 나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배치한다. 내가 중심이고 주변부는 뒤로 간다. 나와 가장 가까운 것부터 셈하고 작은 단위부터 신경 쓴다. 나이 차이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지만 어린 사람을 중요하게 챙긴다.

그렇기에 근무시간 외의 업무 전화가 그렇게 자연스러웠던 것이고, 밥을 먹다가도 업무상 중요한 전화가오면 (애초에 거는 사람이 문제다) 뛰쳐나가 받았던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이 무척 의아해하는 부분이 바로 친구 사이에 약속을 자주 취소한다는 점이다. 작은 나의 일상이 큰 힘에 의해 통제받는 위계적인 사회에서는 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이 늘 벌어지기 때문에, 사적인 약속이 뒤로 밀려나는 경우가 잦다.
참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보다 중요한 이유를 들어 약속을 취소한다. 자신을 중심에 두는, 특히 주체적인 자아를중시하는 사고방식의 독일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것이다. 스스로 맺은 약속을 저렇게 쉽게 철회하다니.

한편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을 쓴 김미소 작가의 눈에는 ‘격리‘와 ‘요양‘의 차이가 보였다고 한다. 코로나 시기 한국에서는 공공기관에서 ‘격리‘라는 단어를 주로 썼는데, 일본에서 확진되어 안내문을 받았더니 ‘요양‘
이라는 단어가 보였다고. 우리가 세상에 스스로를 어떤순서로 놓고, 우리 사회가 어느 쪽을 바라보며 사는지 실감케 하는 단어들이다. 동양이라는 한 단어로 게으르게뭉쳐놓기에는, 동양 사회 안에도 무척이나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가 있음을 알려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잊을 수 없는 증인』에 유대인 랍비 부남 Bunam의 말을인용한다.
"모든 사람은 두 개의 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때에 따라 필요한 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오른쪽 돌에는 ‘세상은 나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왼쪽 돌에는 ‘나는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새겨져 있다.""
나는 우주이기도 하고 먼지이기도 한 존재다. 그때그때 주머니에서 적절한 돌을 만지작거리며 사는 지혜가필요하다. 왼쪽 주머니의 돌이 지나치게 무거워져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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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대낮에는 별들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가치들을 대낮처럼 환한 진리라고 믿는 사람은 어떤 별도 발견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그 결과로 생겨나는 혼돈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제 안에서 춤추는 별을 찾게 된다.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하는 삶은 불행할 거라는 협박에 굴하지 말고, 혼돈을 기꺼이맛보며 천천히 네 자신이 되어라. 남이나 스스로에게 자신의 성과를 증명하려고 서두르지 마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만 나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점점 조급해지고 불안해지는 우리를 향한 그의 다정한전언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멘토는 멀리서 거룩한 지혜의오라를 뿜어내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멀지 않은 거리에서같은 곳을 탐험하는 동료 대원이다. 그러니 젊은 시인의 가장 좋은 멘토는 젊은 시인이 아니겠는가. "젊은이들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다면?" 노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에세이집『타오르는 질문들』에서 이 질문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집사가 고양이에게 하는 충고가 아무리 유용해도(저 아랫집 덩치큰 수고양이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고양이는 듣지 않는다. 고양이는 자기 마음만을 따른다. 왜냐하면 고양이는 원래 그러니까.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젊은이들이 구체적으로뭔가 듣기를 원할 때는 예외라고 덧붙인다. 그렇지 않을 땐아무리 유용한 조언을 해도 참견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그것을 위세와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 지혜로운노인은 뭘 하지?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 축복을! 그래서 애트우드는 『햄릿』에 등장하는 폴로니어스의 대사를 빌려 모험을 막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외친다. "잘 가거라. 내 축복이안에서 피어나기를."

네덜란드 학생에게 부탁해서 교재의 프랑스어를 먼저 읽게 하고 다른 학생들은그것을 네덜란드어 번역과 스스로 대조해가면서 반복하여쓰고 외우게 했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었지만,
놀랍게도 한 학기가 지나자 프랑스어를 전혀 몰랐던 학생들이 문법 규칙을 이해하고 프랑스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통념대로라면 교사는 설명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설명 한마디 없이 학생들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니! 자코토는 새로 발견한 교육법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낯선 것을 연관시키고 기억력을 발휘하는 것만으로도 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을 배우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같은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문학, 그림, 수학, 히브리어, 아랍어 등도 가르쳤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새로 발견한 방법으로 가정교사를 두거나 학비가 비싼학교에 갈 수 없는 가난한 아이들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는생각이 들자 그는 몹시 행복해졌다. 이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는 교육법이라는 뜻에서 ‘보편 교육‘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랑시에르는 자코토의 사상에 감동받아 『무지한 스승을 썼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보편 교육이 전제하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지적 평등‘의 원리였다. 학생이 교사의 설명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면 늘 교사보다 지적으로 열등한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기들은 교사 없이도 모국어를배우지 않는가.

설명할 때만, 그리고 설명해준 것만 아는 사람은 설명자에 예속된 존재이다. 혼자서 자신의 고유한 방식과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배울 수 있을 때 그는 자유로워질수 있다. 좋은 교사는 유식한 자가 아니라 해방된 자를 만드는 교사이다.

가령 시를 가르칠 때 교사는 학생들이 시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 그 대화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전문가의 시 해석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 사람, 학생이 시에서 읽어낼 의미를 앞서 정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학생이 배우게 될 어떤 것에 무지한 사람,다시 말해 무지한 스승으로 남아야 한다.

그는 학생이 주의를 기울여 알아낸 것이 무엇인지 계속 물어봐주고 학생의말에 경청하기 위해서 곁에 머물 뿐이다. 랑시에르는 이것을예술가의 ‘해방하는 수업‘이라고 부른다. 평등이 필요한 것은 시인과 독자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독자들이 제삼자의설명 없이도 작품에 공감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시선으로 그것을 읽어주길 기대한다. 시인 자신이 누군가의 설명 없이사물과 직접 만나며 배운 것을 작품으로 썼듯이 말이다.

그런데도 난 시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을떨칠 수 없다면, 자코토의 말대로 해보라. "배우라, 되풀이하라, 모방하라, 번역하라, 문장을 뜯어보라, 다시 붙여보라."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다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바로그것이다. 여기서 ‘나는 못 하오‘는 ‘나는 하고 싶지 않소.
이런 수고를 내가 왜 하오?"를 뜻할 뿐이다. 그런 마음이라면 시집은 덮어도 된다

다만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배우려 할 때 이 무능력(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이해를 잘 못 한다)이라는 속임수를 마음에서 떨쳐내라. "이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이야기할 것만 있다." 이제, 용기를 가지고 그 이야기를 시작하라.

"오빠가 죽었을 때 나는 책의 형식으로 그를 위한 묘비명을 만들었다." 라틴어로 밤을 뜻하는 ‘녹스Nox‘라는 제목이 달린 회색 책. 저자 앤 카슨이 고인의 사진과 편지, 우표를 붙이고 메모를 해뒀던 작은 수첩은 아코디언의 주름처럼이어진 192페이지의 독특한 책으로 재탄생했다.
앤의 오빠 마이클은 청년기에 여자친구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집을 떠났다. 그는 바다 건너 덴마크로 가서 이름을 바꾸고 가족들은 모르는 삶을 살았다. 간혹 엽서나 편지를 보내지만 주소를 알려주지 않는 아들에게 엄마는 편지를쓴다. "여러 해 동안 한 번이라도 크리스마스에 소포를 부칠수 있게 네 주소를 얻었으면 좋겠다." 부치지 못한 답장 속에 쓰인 이 말은 엄마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지만, 마이클역시 죽은 여자친구에게 똑같은 말로 끊임없이 간청했을 것이다. 주소를 적지 않음으로써 마이클은 엄마에게 자신이 겪는 고통을 말없이 전한다. ‘엄마, 걔가 있는 곳의 주소를 알수 없어요. 한 번만이라도 그 애에게 무언가 보낼 수 있다면......이라고 고백이라도 하듯이.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오빠의 주소를 알지 못해, 그를 죽은 사람처럼 그리워하며살았다. 이 몹쓸 오빠.

22년 뒤, 오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부인은 누이 앤의 연락처를 2주 동안 찾지 못했다. "내가 현관을 쓸고 사과를 사고 저녁에 라디오를 켜고 창가에 앉아 있는 동안, 그의 죽음은 바다를 건너 나를 향해 천천히 유랑하며 왔다"고 앤은 적는다. 형제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신이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떠들며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책이 담겨 있다. 그녀는 소식을 듣고 급히 덴마크로 향했지만 장례가 끝나고 유해는 바다에 뿌려진뒤였다. 그녀는 자신이 제때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어디론가 항해하는 사람들처럼 그리고 정해진 장소에서 일정한 때에 수행해야 하는 제의들이 있었다. 그러나그것은 중지되었고, 우리는 아무것도 제대로 되게 할 수 없었고."
한나 아렌트는 "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말은 일종의복음이라고 말한다. 신의 아들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아이는 이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며 태어난다는 것이다. 아이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달려와 그의 탄생을 경배한다. 누군가의 아이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다. 그를알던 사람들이 달려와 그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애통해한다. 그래서 ‘그가 아무도 반기지 않은 채 태어나, 슬퍼하는이 하나 없이 떠났다‘는 말은 불행한 인생을 뜻하는 가장 흔하지만 진실한 표현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그와 작별하는 제의에 정성을 다한다.

앤 카슨은 제의의 형식은 그저 관습일 뿐이라는 헤로도토스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옛사람이 그리스인 몇 명에게 얼마만큼의 돈이라면 죽은 부모를먹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그런짓은 하지 않겠노라고 화를 냈다. 자기 부모를 먹는 풍습을가진 인도인들에게도 물었다. 얼마면 죽은 아비를 불에 태우겠느냐고. 그러자 그들은 고함을 치며 신성모독적인 말을 그치라고 했다. 이처럼 ‘관습은 모든 것의 왕‘이어서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겪을 때 관습의 도움을 받는다. 앤은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두 분을 먹는 대신 화장 관습을 선택했으며, 두 분의 이름을 새긴 돌 아래 재를 묻었다.
그렇지만 오빠를 위해서는 제의를 선택할 수 없었고, 그 사실은 그녀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그래서 형제를 잃은 로마시인 카툴루스의 비가를 번역해 책을 만드는 방식으로 지연되었던 제의를 치르기로 했다.

관습이나 종교에 따라서든, 혹은 책을 만드는 방식으로든, 우리가 애도를 위해 선택하는 모든 제의의 핵심은 이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이 살았던 삶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며 그와 정중히, 그리고 천천히 작별하는 것.

사회적 제의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핵심이전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패도 사진도 없는 분향소에서 우리는 고인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 채 누군지도 모르는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세상을떠난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고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바로 그 제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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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세이버다. 피자를 배달시켜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다.
피자 중앙에 다소곳이 꽂혀 있는 플라스틱 삼발이다. 무심코버리는 물건이지만, 이름만큼은 굉장하다. 삼발이 탁자 같은생김새 때문에 ‘피자 테이블‘로 불리기도 한다. 피자 스택, 피자오토만, 피자 니플 등 별칭도 있지만, 널리 쓰이는 편은 아니다.

피스라는 단어에는 ‘골자‘, ‘핵심‘이란 뜻도 있다. 식감과 맛을 해치는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여겨 떼 버리는 귤락에 귤의 영양소가꽤 많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우리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과 귤락을 버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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