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말, 영국 정부는 이산화탄소의 부족을 발견하고 놀랐다. 이산화탄소가 없으면 식품 산업은 발포성 음료를 만들거나 보존하지 못하고, 도축 전에 돼지나 닭도 기절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에 재차 놀랐다. 이 모든 게 체셔와 티스사이드에 있는 비료 공장 두 곳이 갑자기문을 닫아서 생긴 일이었다. 두 공장은 영국에서 사용하는 이산화탄소 대부분을 공급했는데, 원래 이들의 목적은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해버렸다.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암모니아는 천연가스로 만들기 때문에한 물질의 가격이 요동치는 바람에 전혀 무관해 보이던 다른 물질이갑자기 부족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것이 정말로 경악할 일일까? 그 답을 얻기 위해, 경제학자 레너드리드 Leonard Read가 1958년에 쓴 유명한 에세이 <나, 연필, Pencil>을 살펴보자. <나, 연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연필이다. 읽고 쓸 줄 아는모든 소년과 소녀, 어른에게 친숙한 나무 연필이다." 이런 식으로 리드는, 아니 연필은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나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는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연필처럼 매우 간단한 물건을 하나 만드는 데도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각각의 부품을 만드는 제조업자들부터 제조 공정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발전소 근무자들까지 "수백만 명의 사람이 나(연필)의 탄생에 참여하지만,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극히 일부밖에 알지 못한다"라고 리드는 썼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 일상용품이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하여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이토록 복잡한 제조 과정을 단 한 사람이 맡거나, 더 나아가 통제한다는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대에 집필된 <나, 연필>은 특히 두 번째 교훈을 강조한다.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경제학자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이 에세이를 예로 들면서 소련 경제학자들의 주장, 즉 중앙위원회에서 경제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잘못됐다고 반격했다.
물질 세계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단단히 뒷받침한다. 이 세계가 없다면 당신 손 위의 아름다운 스마트폰은 작동하지 않고, 전기차는 배터리를 갖지 못할 것이다. 물질 세계는 당신에게 화려한 집을 제공하지는못하지만, 당신의 집이 계속 버티고 서 있도록 지탱한다. 특별히 신경쓰지 않아도 당신을 따뜻하고 청결하게,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
물질 세계에서 당신은 낯선 이름이지만 매우 중요한 회사들, 예를들면 CATL, 바커 Wacker, 코델코Codelco, 사강Shagang, TSMC, ASML을만날 것이다. 이 이름들은 당신에게 별 의미가 없겠지만, 누구나 다 아는 월마트Walmart, 애플Apple, 테슬라 Tesla, 구글Google 같은 비물질 세계의 회사들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현대 경제에 가장 잘 숨어있는 비밀이 바로 이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들은 그들의 똑똑한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물질 세계의 이름 없는 회사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물질 세계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아이디어가현실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은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여섯 가지 물질이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물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물질들이 빠진 현대 문명은 상상하기 어렵다. 코발트가 없어도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 네오디뮴 자석이 없어도 헤드폰과 전기모터를 만들수 있다. 부피가 더 크고 덜 효율적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물질들은 대체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모래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일이다. 매우 다양한 유형의 모래가 저마다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모래는 실리카가 주성분이지만, 열대 해변의 흰모래는 바닷조개와 산호의 잔여물로 만들어졌으므로 성분이 확연히 다르다. 카리브해나 하와이의 아주 깨끗한 바다에 가면, 파랑비늘돔의 배설물 안으로발이 쑥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파랑비늘돔은 산호를 먹어서 영양분을 취한 다음, 탄산칼슘을 해저에 배설한다. 열대 해변이 희고 따뜻할수록 그곳의 모래는 파랑비늘돔 배설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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