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대낮에는 별들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가치들을 대낮처럼 환한 진리라고 믿는 사람은 어떤 별도 발견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그 결과로 생겨나는 혼돈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제 안에서 춤추는 별을 찾게 된다.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하는 삶은 불행할 거라는 협박에 굴하지 말고, 혼돈을 기꺼이맛보며 천천히 네 자신이 되어라. 남이나 스스로에게 자신의 성과를 증명하려고 서두르지 마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만 나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점점 조급해지고 불안해지는 우리를 향한 그의 다정한전언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멘토는 멀리서 거룩한 지혜의오라를 뿜어내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멀지 않은 거리에서같은 곳을 탐험하는 동료 대원이다. 그러니 젊은 시인의 가장 좋은 멘토는 젊은 시인이 아니겠는가. "젊은이들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다면?" 노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에세이집『타오르는 질문들』에서 이 질문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집사가 고양이에게 하는 충고가 아무리 유용해도(저 아랫집 덩치큰 수고양이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고양이는 듣지 않는다. 고양이는 자기 마음만을 따른다. 왜냐하면 고양이는 원래 그러니까.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젊은이들이 구체적으로뭔가 듣기를 원할 때는 예외라고 덧붙인다. 그렇지 않을 땐아무리 유용한 조언을 해도 참견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그것을 위세와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 지혜로운노인은 뭘 하지?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 축복을! 그래서 애트우드는 『햄릿』에 등장하는 폴로니어스의 대사를 빌려 모험을 막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외친다. "잘 가거라. 내 축복이안에서 피어나기를."

네덜란드 학생에게 부탁해서 교재의 프랑스어를 먼저 읽게 하고 다른 학생들은그것을 네덜란드어 번역과 스스로 대조해가면서 반복하여쓰고 외우게 했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었지만,
놀랍게도 한 학기가 지나자 프랑스어를 전혀 몰랐던 학생들이 문법 규칙을 이해하고 프랑스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통념대로라면 교사는 설명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설명 한마디 없이 학생들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니! 자코토는 새로 발견한 교육법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낯선 것을 연관시키고 기억력을 발휘하는 것만으로도 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을 배우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같은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문학, 그림, 수학, 히브리어, 아랍어 등도 가르쳤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새로 발견한 방법으로 가정교사를 두거나 학비가 비싼학교에 갈 수 없는 가난한 아이들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는생각이 들자 그는 몹시 행복해졌다. 이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는 교육법이라는 뜻에서 ‘보편 교육‘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랑시에르는 자코토의 사상에 감동받아 『무지한 스승을 썼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보편 교육이 전제하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지적 평등‘의 원리였다. 학생이 교사의 설명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면 늘 교사보다 지적으로 열등한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기들은 교사 없이도 모국어를배우지 않는가.

설명할 때만, 그리고 설명해준 것만 아는 사람은 설명자에 예속된 존재이다. 혼자서 자신의 고유한 방식과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배울 수 있을 때 그는 자유로워질수 있다. 좋은 교사는 유식한 자가 아니라 해방된 자를 만드는 교사이다.

가령 시를 가르칠 때 교사는 학생들이 시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 그 대화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전문가의 시 해석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 사람, 학생이 시에서 읽어낼 의미를 앞서 정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학생이 배우게 될 어떤 것에 무지한 사람,다시 말해 무지한 스승으로 남아야 한다.

그는 학생이 주의를 기울여 알아낸 것이 무엇인지 계속 물어봐주고 학생의말에 경청하기 위해서 곁에 머물 뿐이다. 랑시에르는 이것을예술가의 ‘해방하는 수업‘이라고 부른다. 평등이 필요한 것은 시인과 독자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독자들이 제삼자의설명 없이도 작품에 공감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시선으로 그것을 읽어주길 기대한다. 시인 자신이 누군가의 설명 없이사물과 직접 만나며 배운 것을 작품으로 썼듯이 말이다.

그런데도 난 시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을떨칠 수 없다면, 자코토의 말대로 해보라. "배우라, 되풀이하라, 모방하라, 번역하라, 문장을 뜯어보라, 다시 붙여보라."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다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바로그것이다. 여기서 ‘나는 못 하오‘는 ‘나는 하고 싶지 않소.
이런 수고를 내가 왜 하오?"를 뜻할 뿐이다. 그런 마음이라면 시집은 덮어도 된다

다만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배우려 할 때 이 무능력(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이해를 잘 못 한다)이라는 속임수를 마음에서 떨쳐내라. "이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이야기할 것만 있다." 이제, 용기를 가지고 그 이야기를 시작하라.

"오빠가 죽었을 때 나는 책의 형식으로 그를 위한 묘비명을 만들었다." 라틴어로 밤을 뜻하는 ‘녹스Nox‘라는 제목이 달린 회색 책. 저자 앤 카슨이 고인의 사진과 편지, 우표를 붙이고 메모를 해뒀던 작은 수첩은 아코디언의 주름처럼이어진 192페이지의 독특한 책으로 재탄생했다.
앤의 오빠 마이클은 청년기에 여자친구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집을 떠났다. 그는 바다 건너 덴마크로 가서 이름을 바꾸고 가족들은 모르는 삶을 살았다. 간혹 엽서나 편지를 보내지만 주소를 알려주지 않는 아들에게 엄마는 편지를쓴다. "여러 해 동안 한 번이라도 크리스마스에 소포를 부칠수 있게 네 주소를 얻었으면 좋겠다." 부치지 못한 답장 속에 쓰인 이 말은 엄마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지만, 마이클역시 죽은 여자친구에게 똑같은 말로 끊임없이 간청했을 것이다. 주소를 적지 않음으로써 마이클은 엄마에게 자신이 겪는 고통을 말없이 전한다. ‘엄마, 걔가 있는 곳의 주소를 알수 없어요. 한 번만이라도 그 애에게 무언가 보낼 수 있다면......이라고 고백이라도 하듯이.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오빠의 주소를 알지 못해, 그를 죽은 사람처럼 그리워하며살았다. 이 몹쓸 오빠.

22년 뒤, 오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부인은 누이 앤의 연락처를 2주 동안 찾지 못했다. "내가 현관을 쓸고 사과를 사고 저녁에 라디오를 켜고 창가에 앉아 있는 동안, 그의 죽음은 바다를 건너 나를 향해 천천히 유랑하며 왔다"고 앤은 적는다. 형제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신이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떠들며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책이 담겨 있다. 그녀는 소식을 듣고 급히 덴마크로 향했지만 장례가 끝나고 유해는 바다에 뿌려진뒤였다. 그녀는 자신이 제때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어디론가 항해하는 사람들처럼 그리고 정해진 장소에서 일정한 때에 수행해야 하는 제의들이 있었다. 그러나그것은 중지되었고, 우리는 아무것도 제대로 되게 할 수 없었고."
한나 아렌트는 "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말은 일종의복음이라고 말한다. 신의 아들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아이는 이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며 태어난다는 것이다. 아이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달려와 그의 탄생을 경배한다. 누군가의 아이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다. 그를알던 사람들이 달려와 그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애통해한다. 그래서 ‘그가 아무도 반기지 않은 채 태어나, 슬퍼하는이 하나 없이 떠났다‘는 말은 불행한 인생을 뜻하는 가장 흔하지만 진실한 표현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그와 작별하는 제의에 정성을 다한다.

앤 카슨은 제의의 형식은 그저 관습일 뿐이라는 헤로도토스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옛사람이 그리스인 몇 명에게 얼마만큼의 돈이라면 죽은 부모를먹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그런짓은 하지 않겠노라고 화를 냈다. 자기 부모를 먹는 풍습을가진 인도인들에게도 물었다. 얼마면 죽은 아비를 불에 태우겠느냐고. 그러자 그들은 고함을 치며 신성모독적인 말을 그치라고 했다. 이처럼 ‘관습은 모든 것의 왕‘이어서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겪을 때 관습의 도움을 받는다. 앤은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두 분을 먹는 대신 화장 관습을 선택했으며, 두 분의 이름을 새긴 돌 아래 재를 묻었다.
그렇지만 오빠를 위해서는 제의를 선택할 수 없었고, 그 사실은 그녀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그래서 형제를 잃은 로마시인 카툴루스의 비가를 번역해 책을 만드는 방식으로 지연되었던 제의를 치르기로 했다.

관습이나 종교에 따라서든, 혹은 책을 만드는 방식으로든, 우리가 애도를 위해 선택하는 모든 제의의 핵심은 이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이 살았던 삶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며 그와 정중히, 그리고 천천히 작별하는 것.

사회적 제의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핵심이전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패도 사진도 없는 분향소에서 우리는 고인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 채 누군지도 모르는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세상을떠난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고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바로 그 제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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