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들 사이에서만 거둘 수 있는 것이 있다. 경계에서 사는 삶은 고단하지만, 경계에서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낯선 언어가 익숙한 세계를 휘젓는 철학적 순간을 만나는 것은 고단한 경계인이 얻는 축복이다. 그 축복을 나누고 싶었다.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방향이다. 이들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지, 우리는 어느쪽을 향해 걷고 있는지. 언어란 오랜 시간에 걸쳐 한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빚어낸 작품이고, 단어는 그 작품의 중요한 기본 재료다.
파이어아벤트 Feierabend‘는 하루 일을 마감할 때 쓰는 명사다. 축제나 파티의 의미가 담긴 파이어 Feier와 저녁이라는 뜻의 아벤트Abend가 합쳐진 말이다. 일을 마칠 때 사람들은 먼지 묻은 손을 툭툭 털면서, 혹은 사무실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Feierabend! (파이어아벤트!)"라고 외치고, 동료들은 서로에게 ‘수고했어, 잘 쉬어!‘라는 의미로 "Schönen Feierabend! (쇠넨 파이어아벤트!)"라는 인사를 건넨다
훈색이라는 이름의 색이 있다. 노을이 질 때 하늘에 보이는, 분홍에 노랑이 섞인 색이다. 색이름에 저런 따뜻하고 훈훈해 보이는 글자를 넣은 이유도 아마 비슷한 감각이 아닐까. 그동안 좋아하는 색을 묻는 질문에 소녀 시절갈색에서 시작해서 지금껏 팔레트 하나를 다 돌았는데,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색은 훈색이다." 저물녘에 세상만사를 포근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색, 인격이있다면 아마도 가장 다정할 것 같은 색.
Servus, 제르부스라는 인사말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같은 성서 속 표현에서 기원을 찾는다. 비슷하게 서로에게 "I‘m your servant", 즉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너를 마치 신처럼 여기고나를 낮추겠다는 마음이 지금까지 남아 전해진다는 사실은 참 뭉클하다. 특히 전국 노래자랑에 버금가는 전국 갑질 자랑으로 도배된 사회면 뉴스에 지친 마음에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 모두는 갑이 되길 바란다. 을, 병, 정도 모자라 무기경신임계까지 물고 물리는 사슬에서 어떻게 하면 나를 조금 더 앞쪽에 놓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만만해 보이는 사람 앞에 서면 자동적으로 가슴이 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고개가 치켜올라가 거북목이 교정되는 것이다. 특히 서비스 직종에 있는 분들에게 유독 무례하게 굴어 사회적 이슈가 되고 공분을 사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제가 당신을 섬기고 살필게요"라고 말하는 인사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활짝 웃으며 온마음으로 쓰는 인사다.
gefallen 이라는 동사도 휘도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휘도라는 개념을 떠올리면 보이지 않는 수많은 빛의 굴절속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나라는 존재와 우리 인생 자체가 이렇게 무수한 굴절을 통해 닿아오는 관계 속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gefallen 은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관한 아름다운 동사다. 인간이란 나 혼자 빛날 수 없고, 애초에 빛이란 건 내 안에 있지 않다. 내가 당신을 통해서 존재한다는 것. 주체와 객체라는 조금은 차가운 관계를 이렇게 한 번 빛처럼 꺾어보는 일. 세상의 모든 문장이 ‘나는‘으로 시작하지는 않는다는 깨달음.. Das Bild gefällt mir. 그 그림이 나를 기쁘게 하네요. Gefällt dir das Buch? 그 책이 당신 마음에 드나요?
펼쳐진 자연 속에 인간은 개미만 한 모습으로 등장하곤한다. 겸재 정선이 박연폭포를 그린 그림에서 작고 귀여운 조상님들을 한번 찾아보시길. 그렇게 기본적으로 세상에 놓인 자아의 사이즈가 작다. 게다가 큰 범주에서 작은 범주로 가는 사고방식에다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윤리도 결합해 두었다. 큰 것부터, 어른 먼저... 그래서인지나를 뒤로 물리고 공동체를 위해야 한다는 생각, 나이라는숫자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사고 같은 것들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다.
반면에 이곳 독일에서는 나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배치한다. 내가 중심이고 주변부는 뒤로 간다. 나와 가장 가까운 것부터 셈하고 작은 단위부터 신경 쓴다. 나이 차이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지만 어린 사람을 중요하게 챙긴다.
그렇기에 근무시간 외의 업무 전화가 그렇게 자연스러웠던 것이고, 밥을 먹다가도 업무상 중요한 전화가오면 (애초에 거는 사람이 문제다) 뛰쳐나가 받았던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이 무척 의아해하는 부분이 바로 친구 사이에 약속을 자주 취소한다는 점이다. 작은 나의 일상이 큰 힘에 의해 통제받는 위계적인 사회에서는 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이 늘 벌어지기 때문에, 사적인 약속이 뒤로 밀려나는 경우가 잦다. 참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보다 중요한 이유를 들어 약속을 취소한다. 자신을 중심에 두는, 특히 주체적인 자아를중시하는 사고방식의 독일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것이다. 스스로 맺은 약속을 저렇게 쉽게 철회하다니.
한편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을 쓴 김미소 작가의 눈에는 ‘격리‘와 ‘요양‘의 차이가 보였다고 한다. 코로나 시기 한국에서는 공공기관에서 ‘격리‘라는 단어를 주로 썼는데, 일본에서 확진되어 안내문을 받았더니 ‘요양‘ 이라는 단어가 보였다고. 우리가 세상에 스스로를 어떤순서로 놓고, 우리 사회가 어느 쪽을 바라보며 사는지 실감케 하는 단어들이다. 동양이라는 한 단어로 게으르게뭉쳐놓기에는, 동양 사회 안에도 무척이나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가 있음을 알려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잊을 수 없는 증인』에 유대인 랍비 부남 Bunam의 말을인용한다. "모든 사람은 두 개의 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때에 따라 필요한 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오른쪽 돌에는 ‘세상은 나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왼쪽 돌에는 ‘나는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새겨져 있다."" 나는 우주이기도 하고 먼지이기도 한 존재다. 그때그때 주머니에서 적절한 돌을 만지작거리며 사는 지혜가필요하다. 왼쪽 주머니의 돌이 지나치게 무거워져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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