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란 ‘고물’이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떤 에센스를안고 있는 그 어떤 것을 뜻한다. 그것이 와인이든, 옷이든, 건축물이든 말이다. 이 점에서 최근 빈티지풍 리모델링이 디자인의 최전선에 등장하는 것은 아주 즐거운 현상이다. 그것이 공장이든, 폐교를 이용한 전시관이나 휴양 시설이든, 단독주택의 리모델링 증축이든, 한옥의 화려한 변신이든 기존의 오래된 건축물을 살리면서 새로움과 낯설음을 불어넣고 오래된 시간과 대비되는 공간을 만드는것은 그 자체로 집주인에게 즐거운 체험일 뿐 아니라 현대 건축물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이 된다.
계속 쓰는 것이 공간 최고의기록이 된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말대로 생물체로서의 인간은 기껏 유전자 보유체로서 한정된 역할을 할 뿐일지도 모르지만종으로서의 인간은 기억과 계승을 통해 문화 유전자meme’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 문화 유전자들이 쌓이고 쌓여서 사회의 집합기억 collective memory)‘을 만든다. 어차피 인류는 언젠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아니, 언젠가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태양계가 소멸하는 20억 년뒤라 할지라도 말이다. SF적 상상처럼 지구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더라도 다른 별에 가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저장하는 기억의 한 조각, 우리가 기록하는 흔적 하나가 어떤 임팩트를 가질지는 모를 일이다.
한 인간이 사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이 기억과 기록은
씨앗이 된다. 기록은 기억의 단초가 되고, 기억은 이야기의 원천이된다. 기록이 풍부할수록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라 여럿이 또는 동시대인이 같이 공유하는 집합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시간을 뛰어넘는 집합 기억으로 이어진다. 도시는 온전히 그러한 집합 기억의 풍요로운 저장소다.

우리 도시들은 잡종성‘이 강하다. 혼성性이라고 해도 좋다.유럽처럼 원조를 자처하며 순종을 내세우는 문화, 미국처럼 혁신을앞세워 신종新羅을 지향하는 문화와는 달리 우리는 순종을 품고 신종을 지향하되 그 무엇이든 품에 안는 잡종의 문화다.
왜 잡종성이 강해졌을까? 급격한 사회적 충격과 낯선 문물의 습격을 받아들이고 적응시키고 숙성시키는 과정을 스스로의 힘으로감당하기 힘들었던 근대기의 험난한 역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역사의 단절, 전통의 부정, 폐허로 변한 환경, 부족한 인프라, 급격히등장한 각종 도시 문제, 상업화 물결의 습격 등 다사다난한 과제들을 짊어지고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하기 위한 현대의 시간 속에서 저도 모르게 학습한 힘의 결과다.
우리 도시들에는 이러한 잡종성이 자아내는 독특한 맛이 있다.

주합루宙合樓라는 이름이 인상적이다. 우주와의 합일을 꾀한다니 작은 공간에 큰 뜻을 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의 도서관 격인 규장각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1층 각에는 도서를 두고, 2층 루樓에서는 왕과 대신들이 토론을 했다. 아름다운 연못 주변에서 로맨스가 일어났으리라는 인상과 달리, 이 공간은 철학과 공부와 국정 기획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주합루로 오르는 화계花階에 있는 작은 문의 이름이 어수문魚水門이다. 왕을 물에, 신하를 물고기에 비유했으니(또는 국민을 물에, 왕을 물고기에 비유한 것 아닐까?) 절묘한 이름이다.
주합루 아래 부용지 옆에 숙종이 재건하고 영조가 현판을 쓴 영화당에서 과거 시험을 치르게 한 이가 정조다. 주합루 일대의 공간이 가히 인재를 발굴하고 인재와 함께 국정을 구상하는 공부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을 풍류 공간이라고 인식하는 관광객이 자책할 이유는 없다. 정조는 신하들과 그 가족까지 불러서 주합루 일대에서 마음껏 풍류를 즐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문무와 풍류는통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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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과연 집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지내는 개는 들어오거나 나갈 때, 문을미는 것을 곧 배운다. 그로서는 문을잡아당기는 것은 불가능한 행위다. 따라서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즉, 미는 행위는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언제든 손 떼고포기한 채 가버릴 수 있게 한다. (그 무슨어리석은 고집으로 시시포스는 한사코그의 바위 덩어리를 밀기만 하는 것인지나는 늘 궁금했다.) 반대로 앞에서 당기는것은 노예의 일이다. 나자레 해변의 이포르투갈 사람들에겐 다행스러운 것이한 가지 더 있다. 이 사람들은 오직 배를진수시키기 위해서, 그러니까 잠시 후에는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배를 밀고 있는것이다. 미는 행위에는 자기 앞으로쫓아낸다. 자기 앞 저쪽으로 몰아낸다는의미가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 반면에 당기는 사람은 짐을 계속 자기 쪽으로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차원에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e이있다면 공간의 차원에는 아나토피즘이있지 않을까. 아나크로니즘은시간 순서의 위반, 셰익스피어의희극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대포가등장하는 것이 그 예. 아나토피즘은지리(위상)의 위반, 홀랜드나 독일의화가들이 성탄의 말구유를 자기네고향 마을에다가 차려놓는 것이 예..
그 화가들이 그 그림 속의 인물들에게자기 동시대 사람들의 옷을 입혀놓는다면아나크로니즘에 아나토피즘이 겹쳐지는 셈.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사람에 손대지않고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는에두아르 부바 같은 작가에게아나토피즘은 우연이 몸소 그에게부여하는 어떤 기호의 의미, 어떤자발적인 선물의 의미를 지닌다.
이쯤 되면 우연은 신의 섭리를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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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비자가 쇼핑가를 걸어가면서 상점의 진열대에 전시돼 있는고급 손목시계를 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의 의식은 ‘너는 이 시계를 사야 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는 상점에 들어가 그 시계를 자세히 살펴본다. 손목밴드는 고급 악어가죽이고, 시계는 수제이며, 금으로 만들어졌다. 또다시 내면의 목소리가 말을 건넨다. 이 시계를 사!
그러면 동료와 친구들이 질투할 거야. 그리고 사람들은 네기세했다고 생각할 거야!‘ 손으로 들어보니 시계가 묵직하다. 그는 이 시계가 굉장히 특별한 물건이라고 느낀다. 가죽 손목밴드에서는 고급스러운 향이 난다. 그는 이 시계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져을 물어보니 470만 원입니다."라고 점원이 대답한다. 그의 행복감과 구매욕구에 제동이 걸린다. 그러자 또 다른 내면의 목소리가 이렇게 말한다. ‘너 완전히 정신이 나갔구나. 계좌에 400만 원밖에 없잖아. 자동차리스 할부도 아직 남아 있다고. 내면의 목소리들은 엎치락뒤치락하며계속해서 싸운다. 시계를 다시 들어본다. 그는 일단 시계의 수제 기술에매료됐다. 그리고 이 시계를 차고 골프클럽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감탄 어린 시선을 상상한다. 결국 그는 시계를 구매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리고 그 후 며칠 동안 그는 급격한 감정의변화를 느낀다. 새로 산 시계를 행복하게 바라보기보다는, 이 시계를구매한 게 과연 옳은 행동이었는지 계속 의심한다. 시계 구매를 이화해줄 정보들을 인터넷에서 찾는다. 똑같은 시계를 다른 상점에서는 130만 원이나 더 비싸게 파는 것을 봤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 의심은 멈춘다. 그는 시계를 구매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의식은 굉장히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이다. 의식의 비용은 바로 에너지다. 뇌의 에너지 소비량은 상당하다. 특히 우리가 집중하거나 의식적으로 심사숙고할 때면 훨씬 더 증가한다. 이 경우 뇌는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소비하는데, 이는 우리 몸 전체에서 사용수 있는 양이다. 그런데 뇌가 의식을 잠시 꺼두고 자동 모드로작동한다면 뇌의 에너지 소비량은 5퍼센트로 줄어든다. 에너지를엄청나게 소비하는 집중적인 사고는 대부분 신피질에서 일어난다.
신피질은 인간의 뇌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위이며 에너지 소비가 가장 큰 곳이다. 작업하는 뇌는 작업하는 근육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뇌는 같은 양의 근육 덩어리보다 22 배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면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이 왜 중요한가? 진화의 법칙에 그 답이 숨어 있다. 쓸모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생물체는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절약한 에너지를 후세에 직간접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에너지를 비축해두면 그 힘을 활용해 안전한 곳을 찾아 머물 수 있게 되고,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위험한 먹이 사냥을 좀 더 미루어도 된다.
그렇다면 의식은 왜 필요할까? 의식은 우리가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것과 맞닥뜨렸을 때, 지적인 문제를 풀어야 할 때, 결정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해 변연계가 각종 경험과 여러 조언들을 불러올 때 활성화된다.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 뇌는 되도록 많은 것을 자동화하려고 한다.
반복해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거나, 부정적인 결과를 회피했던 모는 경험과 행동은 뇌에 저장된다. 그리고 이에 적합한 해결 신호가 오번, 프로그램은 자동으로 작동한다. 물론 이때도 의식에는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

마케팅 및 광고 전문가는 회사, 제품, 브랜드의 인지도가 판매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인지도는 신뢰를 불러오고, 이를 통해 균형 시스템을 자극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다른 과정이다. 부정적인 경험이 없을 경우, 고객의 머릿속에서 인지도가 높은 제품과 브랜드는 구매-자동-메모리에 저장된다. 소비자는 상품 진열대 앞을 지나갈 때 상품을 그냥 집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장바구니에 넣을 확률이 높다.

우리의 의식은 구매행위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래서 뇌와 무의식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들을 꾸며낸다.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다니엘 베게너 Paniel Wegener와 막스 플랑크심리학 연구소장 볼프강 프린츠 Wolfgang Prinz 도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를내놓았다. 의식은 그 자체가 행동에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나중에 행위와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4.17, 4.21 볼프강 프린츠는 이러한 현상을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것을 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것을 원한다."

소비자는 광고를 비롯해 외부에서 유입되는 수많은 정보가 자신의행동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문제는 소비자의의식이 이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진짜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다는것이다. 시장연구원이 소비자에게 설문조사를 하면, 소비자들은 본인 이 얼마나 신중하게 고민해서 이 제품을 의식적으로 구매했는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그러나 소비자는 자신의 의식이 나중에 이 이야‘
기를 꾸며냈다는 것, 그리고 완전히 다른 논리로 무의식적 프로그램에복종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심리학자 바르크 Bargh, 첸 Chen, 버로우스 Burrows의 실험은 인간이 얼마나 외부 영향에 민감한 존재인지 보여준다.
연구원들은 대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학기 동안 2개의 강의실로 분산 배치했다. 한그룹은 노인들의 삶과 운동 억제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해야 했고, 다른 그룹은 반대로 청년들의 삶과 스포츠 활동에 대해 리포트를 작성해야 했다. 리포트 제출 후 대학생들은 강의실을 떠났다.
그들은 진짜 실험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몰랐다. 연구원들은대학생들의 움직임을 영상에 담았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인에 관해 리포트를 작성했던 그룹은 통로에서 마치 노인처럼 움직였고, 청년에 관해 리포트를 작성했던 그룹은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두 그룹 중 누구도 자신의 행동 변화를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분명히 뇌는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인상을 처리해 행동으로 전환하는데, 이 과정은 의식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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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테스트, 즉 피험자들 본인이 어느 상표의 콜라를 마시는지 모르는 상태로 진행한 테스트에서 펩시콜라와코카콜라는 모두 뇌의 같은 영역을 활성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특히 보상처리를 담당하는 전두엽이 활성화됐다(달콤한 맛은 뇌의 보상이다). 그런데 음료수를 주면서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상표를 보여주자 뇌 스캐너의 이미지는 급변했다. 코카콜라를 마셨을 때는 중뇌와대뇌의 다른 영역이 번쩍거렸지만, 펩시콜라를 마실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피험자들이 상표를 알고 있었을 때는 압도적으로 코카콜라를 선호했다. 뇌 사진만 보자면 펩시콜라도 똑같은 맛으로 보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도출되었다는 것은 전두엽보다 더강력한 영향력을 보유한 뇌 영역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뇌 영역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코카콜라 편을 들고 있다. 바로 대뇌가그 장본인이다.

다시 말해 ‘더는 만족하지 않는다. 더 많은것을 원해‘라는 뜻이다. 보상기대 시스템의 영원한 불만족은 소비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요 원동력이다. 자동차는 갈수록 튼튼해지고 빨라진다. 휴가 여행은 계속해서 우리를 더 먼 목적지로 유인한다. 스마트폰은 항상 새롭고 발전된 기능을 탑재한다. 빌헬름 부슈Wilhelm Busch는 이런 상황을 시에서 아주 잘 표현했다.

당신이 그토록 애타게 얻으려고 노력한 것,
그것은 당신 것이 되었다.
당신은 승리감을 느끼고 큰 소리로 환호했지
마침내 평화가 내게 찾아왔노라고
그런데 이봐, 그렇게 격렬하게 떠들지 말고
혀를 잘 길들여
모든 소원은 말이야그 소원이 이뤄지면
당장 새끼 소원을 불러올 테니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새끼 소원이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크고 좋고 빠르며 아름다워야 한다는 점이다.

회피 시스템의 구조도 이와 유사하다. 여기에도 처벌기대와 실제 처벌을 위한 하부 시스템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뇌의 영역은 편도체와 뇌섬엽이다. 처벌 시스템에도 자체 법칙이 있는데, 상실은 뇌에서 처벌로 경험된다. 처벌은 보상보다 2배나 더 강한 강도로 느껴진다. 가령100유로를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100유로를 잃었을 때 느끼는 고통이 뇌 속에서 2배나 더 강하게 일어난다.

뇌를 지루하게 만드는 상품
연필, 청소용품, 화장지의 감정적 중요도는 낮은 편이라 그 가치 또한 낮다. 이 상품들은 고객의 머릿속에서 감정 및 동기 시스템을 아주약하게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상품들이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하기에 필수품‘이라 부르지만 그저 그뿐이다. 고객은 이 상품이 필요해서 살 뿐 특별히 흥미를 느끼거나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 상품들을 사는 데 많은 돈을 쓸 생각도 없다. 그래서 이 상품들은 딱히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책정되고, 때에 따라서는 다른 브랜드나 저렴한 수입품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뇌를 활성화하는 상품
과자와 같은 기호식품이나 옷, 신발 등의 패션 제품, 비타민제제, 다양한 책, 직접 만들어 쓰는 DIY 기기, 가전제품, 일상생활에 필요한 보디 케어 제품, 음료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상품들은 소비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이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기꺼이 돈을 쓴다. 하지만 필요없을 때는 과감하게 포기하기도 한다.


뇌를 유혹하는 상품
뇌를 유혹하는 상품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소비자가 이 상품들을동경하며, 이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믿을 정도로 뇌 속의 감정 및 동기시스템을 강하게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이 상품들은 그 자체로 엄청난 매력을 발산한다. 또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지위와 개성을 드러내주기도 한다.
이 상품들은 감정의 출력을 높이는 강력한 브랜드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상품에는 스포츠카, 유명 브랜드 화장품, 디자이너전 제품, 첨단 스포츠 장비, 최신형 스마트폰, 영적인 구원을 약속하는 상품, 스토리가 담긴 상품, 멀티 감성이 풍부한 상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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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흐름이고 파동이다. 거기에 접속하려면? 읽어야 한다. 책이 곧 별이고 지도니까

나는 때로 다음과 같은 꿈을 꿉니다. 최후 심판의 날 아침, 위대한 정복자, 법률가, 정치가 들이 그들의 보답——보석으로 꾸민 관, 월계관, 불멸의 대리석에 영원히 새겨진 이름 등을 받으러 왔을 때 신은 우리가 옆구리에 책을 끼고 오는 것을 보시고 사도 베드로에게,얼굴을 돌리고 선망의 마음을 담아 이렇게 말하시겠지요. "자, 이 사람들은 보답이 필요 없어. 그들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사람들은 책 읽는 걸 좋아하니까." (버지니아 울프,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2012)

1987년을 주도한 청년들의 열정과 분노의 원천 역시 책이다. 맑스를 읽고 레닌을 읽고 『태백산맥』을 읽노동의 새벽』을 읽고… 읽고 읽었다. 금서는 더 열심히 읽었다.
금지되었다는 것은 그 안에 역사적 진실이 있다는 증거라 여겨서다. 그들의 청춘을 빛나게 해준 것들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이념과 정파에 따라 혁명의 전략전술은 다 달랐지만 모두가 한결같이지향했던 구호는 단 하나. 누구나! 무엇이든! 다 읽을 수 있는 세상! 그리하여 모두가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
그리고 우리는 그런 시대에 마침내 접어들었다.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다름 아닌 디지털 혁명이다. 흔히 디지털은 책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 때문에 책을 읽지 않고 문자를 멀리하고 사유하지 않고…. 맞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디지털은 책을 시각과 묵독이라는 영역에서 해방시켰다. 나무라는 질료로부터 벗어나는 길도 열었다. 책은 본디 천지를 관찰하고 신의 음성을 듣고 대지와 교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무가 종이로, 책이 다시 종이 안에 들어가면서 대중화의 길을 열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책이라는 물질적 형식에 갇히곤 했다. 묵독의 대세 속에서 책의 지혜는 소리와 분리되었고, 엘리트와 대중 사이의 견고한 장벽도 드높아졌다.
디지털은 이 모든 구속과 경계를 떨쳐 내는 중이다. 일단 책에접속하는 감각을 다원화했다. 사람들은 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프 양과 랩으로, 연극으로 변주한다. 전파력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책이 전자로, 음성으로, 소리로 다원화되는 여정을 기뻐하라

에티카』(스피노자)를 통독한 회원이 말했다. "내 독서의 이력은『에티카를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뉜다." 『천 개의 고원에 흠뻑빠진 한 청년은 말했다. "이젠 철학을 하지 않는 삶을 상상할 수 없어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삶의 행로를 바꾼 한 중년은 "이제 니체를 읽지 않는 시간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책이 주는 기쁨이란 이런 것이다. 그 기쁨 속에서 ‘자유의 새로운공간‘이 열린다. 그것은 실로 거룩한 체험이다. 나 또한 기꺼이 간증을 해본다면,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이런 것이었다. 사람들은 책 을 많이 보면 지식이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건 그 모든 책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경이로움을 누린다는 사실이다.

내가 읽는 책이 곧 ‘나 자신임을 아는 것.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내가 곧 세계가 되고 별이 되고 우주가 된다. 그 자체가 이미 힐링이다. 세상을 경쟁과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내 존재의 광대무변한 토대이자 배경으로 여기게 된다. 그 유동성 속에서 자존감이 충만해진다. 그것을 누리고 싶다면? 무엇이든 ‘읽을 수 있는신체가 되는 것, 모든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사실 먹는 것과 굶는 것은 신성의 영역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이 고기를 독차지하는 것에 반기를 들어 인간에게 불을 선사했고, 모든 종교는 단식을 의무화한다. "배고픔이 가장 훌륭한 치유의 약이고 모든 약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칼둔, 『무깟디마』 2, 126쪽) 이것은 신의 뜻이자 양생의 원리다. 신은 증식이 아니라 증여자체다. 식탐에 허덕이는 자가 증여를 하기란 어렵다. 하여, 주기적으로 단식을 의무화한 것이다. 게다가 이것이야말로 건강의 원리다. "모든 병의 근원은 열에 있다. [..] 위에 있는 음식이 자연적인 열로 처리를 하기에는 너무 많거나, 위에 기존 음식이 아직 완벽하게 끓지 않았는데 새로운 음식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참으로 유능하지만 아주 심각하게 무능한 영역이 하나 있다. 바로 휴식이다. 휴식은 능력이다. 잘 놀고 잘 쉬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도 삶의 내공이 필요하다.
잘 따져보자. 제대로 쉬려면 일단 노동과 화폐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야한다. 낮의 노동이 힘든 건 노동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주는 소외와 압박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소외고, 억지로 성과를 내야하는 것이 압박이다.

앎-사랑-이해-생성 창조의 무한하고 거룩한 변주! 자, 그러면 이제 니체의 이런 말들을 충분히 음미하수 있을 것이다.

신체는 앎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정화한다. 그리고 앎을 통한 시도에 의해 자기 자신을 고양시킨다. 깨친 자에게는 모든 충동이 신성시된다. 고양된 자의 영혼은 기쁨을 맛보게 되고, [.…] 아직 그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길이 천 개나 있다. 천 개나 되는 건강과 숨겨진 생명의 섬이 있다. 무궁무진하여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것이 사람이며 사람의 대지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15 [개정3판], 130쪽)

우리는 모두 즐거움과 기쁨을 원한다. 한 매체의 모토는 ‘즐거움엔 끝이 없다일 정도다. 그런데 늘 허덕인다. 더 많이 원할수록, 더 많이 누릴수록, 그래서 이런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혹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즐거움과 기쁨이 아니라 허덕임 그 자체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린 단디! 속은 것이다. 이 속임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허덕임을 떨쳐 내라. 헐떡이는 것에 도취되는 그 마음과 습관을 벗어던지라. 그러면 그 순간 평온을누리게 된다. 그것이 기쁨이다. 현대 생리학은 그걸 이렇게 증명해 준다. 아드레날린,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이 쾌락인데, 그것은 계속 강도를 높여 가야 하기 때문에 결국 끝없는 갈애(渴愛)에 빠지게된다. 반면, 세로토닌이 분비되면 존재 그 자체로 충만함을 느끼게된다고. 바로 그렇다. 책을 만나면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그렇게 신체가 평온하게 리듬을 타면 벗이 찾아온다. 벗이란 본디 그런 존재다. 이익과 권력의 장에서는 벗이 아니라 라이벌을 만난다. 감정이휘몰아치는 곳에서는 연인 아니면 연적을 만난다. 전투적 경쟁심도 감정의 파토스도 벗어날 수 있는 관계가 곧 친구다. 권력투쟁에지칠 때, 사업이 망해 갈 때, 연인 때문에 괴로움을 겪을 때 우리는친구를 찾는다. 권위, 재물, 격정이라는 조건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 그 자체로 힐링과 멘토링이 동시에 가능한 존재, 그게 곧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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