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란 ‘고물’이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떤 에센스를안고 있는 그 어떤 것을 뜻한다. 그것이 와인이든, 옷이든, 건축물이든 말이다. 이 점에서 최근 빈티지풍 리모델링이 디자인의 최전선에 등장하는 것은 아주 즐거운 현상이다. 그것이 공장이든, 폐교를 이용한 전시관이나 휴양 시설이든, 단독주택의 리모델링 증축이든, 한옥의 화려한 변신이든 기존의 오래된 건축물을 살리면서 새로움과 낯설음을 불어넣고 오래된 시간과 대비되는 공간을 만드는것은 그 자체로 집주인에게 즐거운 체험일 뿐 아니라 현대 건축물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이 된다.
계속 쓰는 것이 공간 최고의기록이 된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말대로 생물체로서의 인간은 기껏 유전자 보유체로서 한정된 역할을 할 뿐일지도 모르지만종으로서의 인간은 기억과 계승을 통해 문화 유전자meme’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 문화 유전자들이 쌓이고 쌓여서 사회의 집합기억 collective memory)‘을 만든다. 어차피 인류는 언젠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아니, 언젠가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태양계가 소멸하는 20억 년뒤라 할지라도 말이다. SF적 상상처럼 지구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더라도 다른 별에 가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저장하는 기억의 한 조각, 우리가 기록하는 흔적 하나가 어떤 임팩트를 가질지는 모를 일이다.
한 인간이 사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이 기억과 기록은
씨앗이 된다. 기록은 기억의 단초가 되고, 기억은 이야기의 원천이된다. 기록이 풍부할수록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라 여럿이 또는 동시대인이 같이 공유하는 집합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시간을 뛰어넘는 집합 기억으로 이어진다. 도시는 온전히 그러한 집합 기억의 풍요로운 저장소다.

우리 도시들은 잡종성‘이 강하다. 혼성性이라고 해도 좋다.유럽처럼 원조를 자처하며 순종을 내세우는 문화, 미국처럼 혁신을앞세워 신종新羅을 지향하는 문화와는 달리 우리는 순종을 품고 신종을 지향하되 그 무엇이든 품에 안는 잡종의 문화다.
왜 잡종성이 강해졌을까? 급격한 사회적 충격과 낯선 문물의 습격을 받아들이고 적응시키고 숙성시키는 과정을 스스로의 힘으로감당하기 힘들었던 근대기의 험난한 역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역사의 단절, 전통의 부정, 폐허로 변한 환경, 부족한 인프라, 급격히등장한 각종 도시 문제, 상업화 물결의 습격 등 다사다난한 과제들을 짊어지고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하기 위한 현대의 시간 속에서 저도 모르게 학습한 힘의 결과다.
우리 도시들에는 이러한 잡종성이 자아내는 독특한 맛이 있다.

주합루宙合樓라는 이름이 인상적이다. 우주와의 합일을 꾀한다니 작은 공간에 큰 뜻을 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의 도서관 격인 규장각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1층 각에는 도서를 두고, 2층 루樓에서는 왕과 대신들이 토론을 했다. 아름다운 연못 주변에서 로맨스가 일어났으리라는 인상과 달리, 이 공간은 철학과 공부와 국정 기획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주합루로 오르는 화계花階에 있는 작은 문의 이름이 어수문魚水門이다. 왕을 물에, 신하를 물고기에 비유했으니(또는 국민을 물에, 왕을 물고기에 비유한 것 아닐까?) 절묘한 이름이다.
주합루 아래 부용지 옆에 숙종이 재건하고 영조가 현판을 쓴 영화당에서 과거 시험을 치르게 한 이가 정조다. 주합루 일대의 공간이 가히 인재를 발굴하고 인재와 함께 국정을 구상하는 공부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을 풍류 공간이라고 인식하는 관광객이 자책할 이유는 없다. 정조는 신하들과 그 가족까지 불러서 주합루 일대에서 마음껏 풍류를 즐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문무와 풍류는통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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