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과연 집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지내는 개는 들어오거나 나갈 때, 문을미는 것을 곧 배운다. 그로서는 문을잡아당기는 것은 불가능한 행위다. 따라서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즉, 미는 행위는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언제든 손 떼고포기한 채 가버릴 수 있게 한다. (그 무슨어리석은 고집으로 시시포스는 한사코그의 바위 덩어리를 밀기만 하는 것인지나는 늘 궁금했다.) 반대로 앞에서 당기는것은 노예의 일이다. 나자레 해변의 이포르투갈 사람들에겐 다행스러운 것이한 가지 더 있다. 이 사람들은 오직 배를진수시키기 위해서, 그러니까 잠시 후에는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배를 밀고 있는것이다. 미는 행위에는 자기 앞으로쫓아낸다. 자기 앞 저쪽으로 몰아낸다는의미가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 반면에 당기는 사람은 짐을 계속 자기 쪽으로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차원에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e이있다면 공간의 차원에는 아나토피즘이있지 않을까. 아나크로니즘은시간 순서의 위반, 셰익스피어의희극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대포가등장하는 것이 그 예. 아나토피즘은지리(위상)의 위반, 홀랜드나 독일의화가들이 성탄의 말구유를 자기네고향 마을에다가 차려놓는 것이 예..
그 화가들이 그 그림 속의 인물들에게자기 동시대 사람들의 옷을 입혀놓는다면아나크로니즘에 아나토피즘이 겹쳐지는 셈.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사람에 손대지않고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는에두아르 부바 같은 작가에게아나토피즘은 우연이 몸소 그에게부여하는 어떤 기호의 의미, 어떤자발적인 선물의 의미를 지닌다.
이쯤 되면 우연은 신의 섭리를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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