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짓는 주체이면서 내가 짓는 객체다. 주체인 동시에 객체로서 하나인 나, 인간이 본디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외로운 존재인 것은 이 점에서비롯된다. 자유롭기 때문에 외롭고, 외롭기 때문에 자유롭다.
어느 고즈넉한 황혼 녘에 초승달을 바라보며 느닷없이 가슴 저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근거 없는 슬픔에 겨워하거나, 아직 살아 있음에 가없이 기뻐하는 인간의 모습은 자유로우면서 외로운, 외로우면서 자유로운 존재의 눈물겨운 모습이다. 그렇게인간은 자기를 짓는 자유, 자기 형성의 자유를 누리는 외로운존재다.
자유는 외로움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외로움과 함께 밀려오는 심리적 불안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자유는 외로움과 불안의 조건 아래 얻을 수 있으므로 자유인은 외로움을 즐길 줄알아야 하며, 심리적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독립성을 갖춰야한다. 외로운 존재인 나를 대면하는 또 하나의 나를 상정하여그 둘 사이에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은 외롭고 불안한나를 자유로운 존재로 지킬 수 있는 길의 하나다. 여기서 ‘소리‘없는 대화‘의 주제는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삶의 의미와 지향일 것이다.

우리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비롯하여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하류인간‘이 대량 생산되는 광경을 보고 끔찍해한다. 나와 똑같은 인간이 공장에서 생산되어 도시에 쏟아져 나온다고 상상해보자. 나라는 존재는 이미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와 다르다는 점에 안도하고 반겨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는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차이를 찾으려 애쓰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기와 같지 않다고 시비를 건다. 이 모순적 태도는 남에 비해 내가 우월하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만족해하려는 인간의 저급한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속성은 필연적으로 나와 다른 남을 나보다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차별. 억압. 배제하는데 동의하도록 작용한다.

이사야 벌린은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했다. 소극적 자유는 강제가 없는 상태로 내가 외부의 간섭과방해를 받지 않고 행동한다는 것을 말하며, 이는 다른 사람에의해 내 욕구가 박탈당하는 억압과 반대된다. 소극적 자유가남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자유를 뜻한다면, 적극적 자유는
"내 삶과 나의 결정이 외부의 그 어떤 힘이 아닌 오로지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나의 합리성이 나의 선택과그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자유로운 반면, 내 결정이 나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때, 그것은 굴종"
이다. 이러한 이사야 벌린의 적극적 자유 개념은 필연적으로참된 나‘와 비합리적인 영향으로 왜곡된 나‘를 구분하도록 요구한다. 그는 적극적 자유가 전제(專制)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놓치지 않았다. 힘센 자의 적극적 자유 행사가 많은 사람의 소극적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질‘이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소극적 자유도 누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상은 어떨까? 모든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보장하고 확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하는 것을 자신의 적극적 자유의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는 상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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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앞에서 중장비를 동원한 운하 공사가 한창입니다. 시끄럽고 땅이 진동합니다. 소음은 몇 주 전부터 고질적인 두통처럼 나를 괴롭힙니다. 출판사에서는 어서 원고를 달라고 재촉합니다. 계속해서 땅이 진동하고 모터 소리가 요란하니 생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짜증을 내면 상황이 더 나빠집니다. 짜증은 내면의 소음이기 때문입니다.
공사 소음으로 괴로워하던 차에 이 상황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너의 글과 기도에 세상의 소음까지 담는 것을 잊지 말아라. 세상에서 퇴각해서는 안 된다." 소음과진동이 그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이 메시지를 찾은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듯 같은 날에, 그것도 공사 소음이 가장 심할 때, 아빌라의 테레사가 쓴 《영혼의 성 》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었습니다. "거룩함에 이르는길은 하늘의 신비한 빛으로 눈부신 그런 길이 아니다. 우리의 두려움과 좌절로 점철된 일상의 흙탕길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같은 방해를 내 글이 들뜨지 않게 현실감을 실어 주는 무게추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다고 조용해지지는 않지만, 때로는 시끄러움 가운데서도 평화를발견합니다. 받아들일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평화이지요.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어서 네 시 반이 넘기를 고대합니다. 모든 중장비가 동작을 멈추는 순간이 오면 나는 만성 통증에서 구원받은 듯편안해집니다. 그러면 또 다른 문장이 탄생합니다. 나는 마치 독수리처럼 광활한 대지 위를 비행하며 고요에 잠기지요. 고요는 내 영혼에통을 틔워 주는 맑은 공기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현존 안에 혼자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시간이 또 있을까요?
나는 고요를 사랑합니다. 고요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악기를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듣는귀를 연마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요함 속에서 귀가 정화됩니다.
다음 날 아침, 늘 그랬듯 같은 시각에 다시금 소음이 내게 인사해왔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고 해석하는 습관을 들이면 사건에 휩쓸려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원천을 통해 ‘마음의 형태를 잡는 것이 방해 거리로 말미암아뒤틀리는 것보다 백번 낫습니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다음과 끝이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일을 나의 영적 진보에 맞추는 데 익숙해졌다.
이런 연습 없이는 명상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없고, 활동적인 삶도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치우치게 된다. 이런 연습이 없으면 휴식은게으름이고 일은 훼방일 뿐이다."고대 그리스의 현자들은 하루의 장면, 만남, 사건을 자신의 마음을 만들고 인도하며 지혜를 주는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현자들처럼 우리도 보고 듣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의 의미를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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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초롱 2020-02-2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딱...!!!♡ 마음을 파고듭니다.

참치초롱 2020-02-2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서 읽어야겠어요
 

관찰 대상 주위를 샅샅이 살피는 시선 옮기기. 두 가지 모순된발견을 나란히 놓는 시선 비틀기. 하나에 엉킨 이야기를고구마 뽑듯 뽑아내는 파고들기. 발이 데려다주는 곳 이야기를듣는 발걸음 옮기기, 동물이나 사물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는입장 들어보기. 하나를 하나로 보지 않는 잘라 보기. 글자로그림을 그려 보여주는 그림 그리기, 뭐든 훔쳐와 패러디하는도둑질하기, 단어 꼬리만 살짝살짝 바꾸는 국어사전 펼치기.
읽는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온도 높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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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돌아보면 덧없다. 제 한 몸 옳게 간수하기도 버겁다. 내가 옳다 해도 옳은 것이 아니요, 내가 그르다 해도 남들은 수긍하지 않는다. 세상일에 옳다 그르다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봄이 오면 자꾸 화단의 꽃 소식에 마음이 이끌린다. 오늘 막 핀 꽃이 밤사이 비바람에 꺾여 땅에 떨어지지나 않았을까 자꾸 신경이 쓰인다. 세상을 향한 관심을 조금씩 거두면서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자꾸 눈길이 간다.
달고 쓴 맛을 다 보고 나서 그저 손을 놓자, 세상맛은 밀랍을 씹는 것과 한가지고, 살고 죽는 일이 중요해도 급히 고개를 돌리니, 세월은 총알보다 빠르다.
苦備管好丟手, 世味渾如驪, 生死事大急回頭, 年光族于跳丸.
단맛 쓴맛 다 보고 나니 아무 맛도 없다. 한때는 죽고 살 것처럼 매달렸던 일도 지나고 나니 허망하다. 일희일비하던 그 마음이 머쓱하다.
밝은 노을이 어여뻐도 잠깐 사이에 문득 사라진다. 흐르는 물소리가듣기 좋아도 스쳐 지나고 나면 그뿐이다. 사람이 밝은 노을빛으로 어여쁜 여인을 볼진대 업장業障이 절로 가벼워질 것이다. 사람이 능히 흐르는 물소리로 음악과 노랫소리를 듣는다면 성령性靈에 무슨 해로움이있겠는가?

침정은 마음에 일렁임이 없이 맑게 가라앉은 상태다. 침정은 신정에서나온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 번잡한 사무를 보고 말을 많이 해도일체의 일렁임이 없다.
이덕무李德愁(1741~1793)는 〈원한原間)에서 이렇게 썼다.
넓은 거리 큰길 속에도 한가로움이 있다. 마음이 진실로 한가롭다면어찌 굳이 강호나 산림을 찾겠는가? 내 집은 시장 곁에 있다. 해가 뜨면 마을 사람이 물건을 파느라 시끄럽다. 해가 지면 마을의 개들이 무리지어 짖는다. 하지만 나는 홀로 책을 읽으며 편안하다. 이따금 문밖을 나서면 달리는 사람은 땀을 흘리고, 말 탄 사람은 내닫으며, 수레와말은 뒤섞여 얽혀 있다. 나만 홀로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일찍이 소란함으로 인해 나의 한가로움을 잃지 않으니, 내 마음이 한가롭기 때문이다.

일 없다고 빈둥거리면 정작 바빠야 할 때 할 일이 없다. 고요할 때 허튼생각 뜬 궁리나 하니 움직여야 할 때 찾는 이가 없다. 남이 안 본다고 슬쩍 속이면 대명천지 밝은 데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젊은 시절 부지런히 노력하고 애써야지 늙었을 때 나를 찾는 곳이 있다. 사람은 한가하고 고요할 때 더 열심히 살고, 남이 안 볼 때 더 노력하며, 젊을 때 더갈고닦아야 한다. 일 없을 때 일 안 하면 일 있을 때 일을 할 수가 없다.
사람의 쓸모는 평소의 온축蘊蓄에서 나온다.
평소의 몸가짐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부러진다. 지극한 사람이 부드러움을 귀히 여기는 까닭이다. 칼날은 예리해서 부러진다. 그래서 지극한 사람은 두터움을 중하게 여긴다. 신룡神龍은 보기 어렵기 때문에 상서롭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지극한 사람은 감추는 것을 귀하게 본다. 푸른 바다는 아득히 넓어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지극한 사람은 깊은 것을 소중히여긴다.

"마음에는 두 가지 병이 있다. 하나는 마음이 있는 데서 오는 병(有心之病)이고, 하나는 마음이 없는 데서 오는 병(無心之病)이다. 마음이 있다는 것은 인심(人心)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고, 마음이 없다는 것은 도심(道心)이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는 다른 것 같지만 병통이 생기는 근원은 실제로 같다. 경(敬)으로써 내면을 바르게 하고, 공과 사를 구분해서 이를 살핀다면 이 같은 병통이 없어진다."

유심지병(有心之病)이 있고, 무심지병(無心之病)이 있다. 마음은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마음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고, 어떤 마음을 지니느냐가 더 문제다. "자넨 생각이 너무 많아!" 안 해도 될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다는 말이다. 유심지병이다. 그의 마음은 인심(人心), 즉 계교하고 따지느라 바쁜 마음이다. "도대체 생각이 있나 없나?"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그는 무심지병에 걸린 사람이다. 그저 몸을 따라 마음이 간다. 아무 생각이 없다.

해야 할 생각은 안 하고 쓸데없는 생각만 많다. 그러니 늘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마음에 노여움과 원망이 있고 보니 말투가 모질고 사나워진다. 일을 열심히 해도 앞뒤가 바뀌어 늘 결과가 어긋난다. 두려움은 재난 앞에 흔들리고, 위력 앞에 꼼짝 못하게 만든다. 돈 문제로 인한 걱정 근심은 사람을 무력하게 해서, 옳고 그름을 떠나 계산기를 두드리게 만든다.

허튼 마음을 닦아내고, 실다운 마음을 깃들이는 방법으로 다산은 ‘경이직내(敬以直內)‘를 꼽았다. 공적인 일인지 사적인 욕심인지를 살펴 마음의 균형을 유지할 때 두 가지 마음의 병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맹자는 "사람이 닭이나 개가 달아나면 찾을 줄 알면서, 마음은 놓치고도 찾을 줄 모른다. 공부란 별것이 아니다. 달아난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마음이 주인 노릇을 못하면 몸은 그대로 허깨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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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욕은 젊어서는 즐겨도 늙으면 식는다. 분노는 참으면 없어지 요하면 물러난다. 하지만 교만은 한번 마음에 들어오면 언제 어디서고 붙어다닌다. 몸이 늙어도 교만은 시들지 않는다.
如色慾則, 老則息, 如, 忍則去, 靜則知, 惟微一納於心志 焉, 身能老而傲不衰.

습정習靜은 고요함을 익힌다는 뜻이다.
침묵과 고요도 연습이 필요하다.
정신없이 세상에 흔들리는 사이,
정작 소중한 것들이 내 안에서 빛바래 간다.
침묵이 주는 힘, 고요함이 빚어내는 무늬를우리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고요히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고요함에 익숙해지자 헤아려 살피는 일도 심드렁하다. 마음 밭은 인연따라 흘러가도록 놓아둔다. 작위하지 않는다. 실없는 농담과 공연한 말이 싫다. 산자락 집 사립문은 대낮에도 굳게 잠겼다. 나는 나와의 대면이 더기쁘다. 나는 더 고요해지고 편안해지겠다.
이수광도 무제無題)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온종일 말도 없이 좌망坐忘에 들었자니
이렇게 지내는 일 홀로 즐김 넉넉하다.
몸을 움직이면서도 고요함을 익히니
담백하게 어디서건 참나가 드러나네..
坐忘終日一言無 長工程足 自娛身在動時猶習靜濟然隨地見真吾좌망은 나를 잊은 경계다. 말을 잊고 욕심을 거두자, 부지런히 움직여도 마음이 고요하다. 담담하게 때 없이 참나와 만난다.
이게 나고 이래야나다.

고요 익혀 지내자니 온갖 생각 재가 되고
찾아오는 사람 보면 문득 놀라 꺼려지에
산 스님 지팡이 짚고 어디서 오는 게요
사립문 밖 길 위 이끼 망가지게 생겼네..
習靜居萬念灰 若逢人到便驚淸山僧枚錫從何處破我柴門一逻苔

찾는 사람 아예 없어 문 앞 길에 이끼가 곱게 앉았다. 스님 오신 것이야환영하오만, 지팡이 눌러 짚어 이끼 망가질까 겁이 납니다. 살살 오시지요.
정약용이 이승훈李承薰(1756~1801)에게 보낸 답장에서 말했다.

요즘 고요함을 익히고 졸렬함을 기르니(習靜養世), 세간의 천만 가지즐겁고 득의한 일들이 모두 내 몸에 ‘안심하기安心下氣’ 네 글자가 있음만 못한 줄을 알겠습니다. 마음이 진실로 편안하고, 기운이 차분히 내려가자, 눈앞에 부딪히는 일들이 내 분수에 속한 일이 아님이 없더군요. 분하고 시기하며 강팍하고 흉포하던 감정도 점점 사그라듭니다. 눈은 이 때문에 밝아지고, 눈썹이 펴지며, 입술에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피가 잘 돌고 사지도 편안하지요. 이른바 여의치 않은 일이 있더라고모두 기뻐서 즐거워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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