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앞에서 중장비를 동원한 운하 공사가 한창입니다. 시끄럽고 땅이 진동합니다. 소음은 몇 주 전부터 고질적인 두통처럼 나를 괴롭힙니다. 출판사에서는 어서 원고를 달라고 재촉합니다. 계속해서 땅이 진동하고 모터 소리가 요란하니 생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짜증을 내면 상황이 더 나빠집니다. 짜증은 내면의 소음이기 때문입니다.
공사 소음으로 괴로워하던 차에 이 상황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너의 글과 기도에 세상의 소음까지 담는 것을 잊지 말아라. 세상에서 퇴각해서는 안 된다." 소음과진동이 그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이 메시지를 찾은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듯 같은 날에, 그것도 공사 소음이 가장 심할 때, 아빌라의 테레사가 쓴 《영혼의 성 》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었습니다. "거룩함에 이르는길은 하늘의 신비한 빛으로 눈부신 그런 길이 아니다. 우리의 두려움과 좌절로 점철된 일상의 흙탕길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같은 방해를 내 글이 들뜨지 않게 현실감을 실어 주는 무게추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다고 조용해지지는 않지만, 때로는 시끄러움 가운데서도 평화를발견합니다. 받아들일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평화이지요.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어서 네 시 반이 넘기를 고대합니다. 모든 중장비가 동작을 멈추는 순간이 오면 나는 만성 통증에서 구원받은 듯편안해집니다. 그러면 또 다른 문장이 탄생합니다. 나는 마치 독수리처럼 광활한 대지 위를 비행하며 고요에 잠기지요. 고요는 내 영혼에통을 틔워 주는 맑은 공기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현존 안에 혼자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시간이 또 있을까요?
나는 고요를 사랑합니다. 고요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악기를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듣는귀를 연마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요함 속에서 귀가 정화됩니다.
다음 날 아침, 늘 그랬듯 같은 시각에 다시금 소음이 내게 인사해왔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고 해석하는 습관을 들이면 사건에 휩쓸려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원천을 통해 ‘마음의 형태를 잡는 것이 방해 거리로 말미암아뒤틀리는 것보다 백번 낫습니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다음과 끝이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일을 나의 영적 진보에 맞추는 데 익숙해졌다.
이런 연습 없이는 명상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없고, 활동적인 삶도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치우치게 된다. 이런 연습이 없으면 휴식은게으름이고 일은 훼방일 뿐이다."고대 그리스의 현자들은 하루의 장면, 만남, 사건을 자신의 마음을 만들고 인도하며 지혜를 주는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현자들처럼 우리도 보고 듣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의 의미를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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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초롱 2020-02-2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딱...!!!♡ 마음을 파고듭니다.

참치초롱 2020-02-2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서 읽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