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지체할 수가 없구나.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저 바다가 나를 부르니, 나도 이제 뱃길을 떠나야 하리.
더 지체하는 것은, 비록 시간이 밤새도록 불탄다 하더라도,
그대로 얼어붙고 응고되고 틀에 갇히고 마는 것.
여기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져갈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련만, 어찌 그것이 될성부른 일인가?
목소리도 허공을 날 제, 자기에게 날개를 달아준 혀와입술을 함께 가지고 가지는 못하는 법,
독수리도 태양을 가로질러 날 제, 그 보금자리를 두고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

사랑은 소유하지도 않고 또 소유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할 때는 "하느님이 내 마음 안에 계시다"라고 하지 말고, 내가 하느님 마음 안에 있다"라고 하십시오.
여러분이 사랑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사랑할 자격이 있음을 알게 되면,
오히려 사랑이 여러분의 흐름을 좌우합니다.
사랑은 스스로를 충만하게 하는 일 말고는 다른 소망 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하면서 다른 소망을 가져야 할 필요 가 있다면 그것이 이런 소망이 되게 하십시오.
녹아서 밤 이슥도록 자기의 가락을 노래하며 흐르는시냇물처럼 되는 것.
다정도 병일 수 있음을 아는 것.
여러분 자신의 사랑을 깨달음으로 인해 상처받는 것,

류트의 줄들이 비록 같은 노래로 함께 울릴지라도
모두 각각 혼자이듯이.
서로 마음을 주십시오.
그러나 그 마음을 붙들어놓지는 마십시오.
저 위대한 생명의 손길만이 여러분의 마음을 잡아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서십시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지는 마십시오.
성전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고,
참나무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때문입니다.

그 내일이라는 것, 성지로 가는 순례자를 따라가는 개가 어디서 얻은 뼈다귀를 모래에 흔적도 없이 묻어 둔들그 내일이 이 지나치게 사려 깊은 개에게 무슨 의미가있겠습니까?
필요함이 아니라 필요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우물이 물로 가득한데도 목마름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결코 가실 수 없는 목마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보통 말합니다. "주기는 하겠지만, 받을 자격이 있는 이에게만"이라고.
여러분 과수원의 과일 나무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초장의 가축들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냥 주면서 삽니다. 움켜쥐고 있는 것은 멸망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받는 이들이여, 사실 여러분은 모두 받는 이들이지만 신세 진다는 부담감을 갖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나 주는 이에게 멍에를 씌우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가 준 것을 날개 삼아 그 준 이와 함께 날아오르십시오.
여러분이 신세 진 것에 대하여 지나치게 마음을 쓰는것은 모두 그냥 주는 마음을 가진 대지를 어머니로 모시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그 준 이의 너그러움을 의심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삶은 충동이 없을 때 실로어둠이고,
모든 충동은 앎이 없을 때 맹목적이 되고,
모든 맑은 일이 없을 때 허망한 것이 되고,
모든 일은 사랑이 없을 때 공허하게 되고,
여러분이 사랑으로 일할 때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결국 하느님에게 여러분을 묶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일을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사랑하는 이가 그 천으로 옷을 해 입을 것처럼 여러분 마음으로부터 자아낸 실로 천을 짜는 것.
여러분의 사랑하는 이가 그 집에 들어가 살 것처럼 정성을 다해 집을 짓는 것.

기쁠 때는 여러분의 마음 깊이를 들여다보십시오. 그러면 지금 기쁨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까지 슬픔을주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슬플 때도 다시 여러분의 마음 깊이를 들여다보십시오. 그러면 사실 지금까지 즐거움이었던 바로 그것 때문에 지금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중 더러는 "기쁨이 슬픔보다 좋다"라고 하고또 더러는 "아니다. 슬픔이 기쁨보다 좋다"라고 하십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단언합니다. 이 둘은 떨어질 수 없다고.
이 둘은 함께 옵니다. 그중 하나가 여러분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을 때, 다른 하나는 여러분의 침대에서 자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진실로 여러분은 슬픔과 기쁨 사이에 걸려 있는 저울입니다.
비어 있을 때만 고요와 평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보물을 지키는 자가 그의 금과 은을 달기 위해 여러분을 들어 올릴 때 여러분의 기쁨과 슬픔은 오르락내리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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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 서오릉 가는 길 틀림없지?" "네. 일루 곧장 가면 서오릉이에요." …… "우리도 서오릉에 가는 길이에요."
버스 종점에서 반쯤 온 셈인가?" "아니요. 반두 채 못 왔어요." 이렇게 대화를 트고 문화동에서 온 아이들과 친숙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오릉까지 간다. 쇠귀가 아이들 세계에 들어가 그들과 친해지는 비결은 두 가지다. 첫째, 아이들을 존중하고 그들 스스로 자기가나름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해 준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효능감이 떠오른다. 둘째,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이런 비결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당신은 유적지를 돌아볼 때마다 사멸하는 것은 무엇이고 사람들의 심금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를 돌이켜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새로이 읽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라고 하였습니다. ‘과거’를 읽기보다 ‘현재’를 읽어야 하며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고하였습니다. [나무야, 84】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본에 있어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확인은 매우 쓸쓸한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청산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그렇고,
완고한 현실의 구조가 그렇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지금까지우리들이 쌓아 온 생각의 성(城)을 벗어나는 것일 뿐 아니라그 성(城)을 허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숲, 서문)

인간주의의 절정인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며 이제는 자기의소산(所産)인 문화와 물질 속으로 함몰해 가고 있는 오늘의 인간주의를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현대라는 또 하나의 어두운 바다를 건너 바야흐로 새로운 인간주의를 모색해야 한다는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인간주의는 자연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며, 궁핍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인간이 만들어 쌓아 놓은 자본으로부터, 그리고 무한한 허영의 욕망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숲,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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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은 ‘생각‘을 더 잘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지만 실패를 헤치고 나갈 의지가 있을 때에만 행동이 효력을 발휘한다고 투오미넨이 설명했다.
"문제는 절대 나쁜 게 아닙니다. 문제는 좋은 거죠.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문제와 장애물 하나하나가 우리를 만들어 가는겁니다."
오늘날의 학교들은 완벽주의에 맞게 합리화되어 있어서 시험 볼 때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이 시도하고 실패할 자유가 없다. 아이들이 창조적인 존재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미래에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실패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아이들 스스로가 그럴 수 있다고 믿으려면, 아이들이 시도해볼 수 있게 어른들이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래서 투오미넨은 캐롤 드뢰에 의해 유명해진 개념인 성장형 사고방식을 언급하며, "학교에서 ‘
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은 성장형 사고방식이다"라고 말한다. 해보고말한다. 해보고, 해보고 또 해보게 하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믿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학습 목표를 찾기가힘들었고, 엄격함이 전혀 없었다. 핀란드 방식은 뭐랄까, 다소 무질서해 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중요한 점이라는 사실을 금세 이해하게 됐다.
"실수를 해도 괜찮고, 바보 같은 질문을 해도 괜찮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요." 히덴키벤 종합학교 교감인 일포 키비부리 Ippo Kiriva"가 점심시간에 나와 대화를 나누며 이렇게 설명했다.

점심을 먹으며 교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다른 선생님 한 분이대화를 거들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지 않으면 창의성이발달하지 않아요.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자유를 허용하고, 나중에는 재량권을 더 많이 주고 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놀시간도 필요해요. 그래서 저희들은 아이들에게 45분 동안 꼼짝 않고 가만히앉아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아요. 여기 핀란드에서는 일곱살짜리 아이들이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장난기어린 분위기가 이런 접근 방식의 핵심이었다. 아이들이 숨을 쉴 공간이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규칙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규칙은 깊은 의미가 있어야 하고, 어른들의 삶과도 일지되어야 해요. 저희들은 그 나이에 어울리는 감정과 행동을 존중합니다."
일포 교감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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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지휘자, 음악 감독, 음악의 선지자. 리하르트 바그너의 예술적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에 비해 인격의 추악한 측면 (지나친 과대망상증, 광적인 반유대주의, 히틀러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자이자 나치가 비공식적으로 인정한 음악의 지도자라는 꼬리표)으로 인해 명성이 가려지곤한다.
올곧은 사람은 바그너의 음악을 들을 때 이런 혐오스러운 철학과 놀라운 음악을 어떻게 동시에 받아들일까? 나는 대표적인 바그너의 (유대인)해석가인 다니엘 바렌보임에게 도움을 받았다. 바렌보임은 음악을 그 자체만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명의 여지는 없겠지만, 바그너는 히틀러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을 때는 사망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는 사실만큼은 언급한 필요가 있다.) 마이스터징거)는 16세기 중반의 뉘른베르크라는 정해진 시공간을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있어서 바그너의 작품 중 이례적이다. 그의 유명한〈반지〉 시리즈나 다른 오페라 대부분과는 달리, 이 작품에는 초자연적인힘, 동화 같은 전설, 마법의 힘이 없다. 수공업 장인 겸 가수인 마이스터징거들과 그들이 활동하던 길드의 세계를 묘사한 이 작품은, 망상과 어리석음의 세상 속에서 노래를 만드는 행동의 위안을 그린 희극이다.
이 오페라는 초연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공연에서는 프란즈슈트라우스(7월 12일)가 프렌치 호른을 연주했다. 1월에 살펴본 리하르트슈트라우스의 아버지 프란츠는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의 예연습에서 바그너가 다섯 시간 동안이나 연주를 중단시키면서 방해한다고생각해 오케스트라를 파업으로 이끌었다. 오늘날 오케스트라 세계에 이니금관 악기 주자들이 연주를 얼른 마치고 술집으로 가려 한다는 고정 관이 팽배해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이야기는 열네 살의 모차르트가 시스티나 대성당에서 그레고리오 알레그리가 시편 51장을 가사로 작곡한 신비로운 음악을 듣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 작품의 악보는 거의 150년 동안 바티칸 이외의 지역에서는 필사가 금지되어 있었다. 모차르트는 이 음악의 아름다움에 감동했고, 성당에서 나온 뒤 자신이 외운 작품 전체를 악보에 옮겨 적었다. 이틀 뒤 그는 성당을 다시 찾아가 음악을 듣고 몇 가지 소소한 수정을 한 뒤, 자신이 채보한 악보를 출판했다. 이 판본은 원곡과는 달리, 작품의 고유한 내적인 힘을 포착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모차르트를로마로 불렀고, 그에게 파문을 내리는 대신 기사단 칭호를 수여했다.
이 이야기는 일종의 상징처럼 전해져오지만, 솔직히 당시 미제레레는 이미 음악계에 잘 알려져 있었던 곡이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이 음악을다른 곳에서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작품이 모차르트의 교회 합창 음악작품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곡에 대한 그의 애정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곡에서 알레그리는 뛰어난 대위법 실력을 보여준다. 성가대가 단순한 미제레레 성가를 부를 때, 독창자 그룹은 성가대의 노래를 둘러싸며 독자적인 노래를 수놓는다.
오늘 세상을 떠난 알레그리는, 성주간 성무일도의 저녁 기도 예식인테네브레를 위해 이 작품을 작곡했다(테네브레라는 말은 라틴어로 ‘그림자‘,혹은 ‘어둠‘을 의미한다). 예식 중 성당의 모든 초가 하나씩 천천히 꺼지고마침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단 한 개의 촛불만 남는다. 이런 광경은 놀랍도록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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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퇴임했던 그다음 날부터 똑같이여기 도서관에 나오고 그랬죠. (웃음) 저에게는 요즘도 그냥교수 생활의 연장이랄까, 그런 기분이에요. 제 주위 분들은저에게 "이제 좀 쉴 때도 되지 않으셨나." "이제 슬슬 정리하셔야죠." 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잘 모르겠어요. 일단 지금은 제가 평생 살아오던 것과 똑같이 생활을 해나가려 해요.
젊었을 적처럼 힘이 넘치거나 속도가 빠르진 않더라도, 계속열심히 읽고, 또 쓰고, 변함없이 해오던 것을 천천히 이어가며, 그렇게 노년의 삶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글쎄요. 막상 서점에 가면 딱히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렇게 새롭고 다양한 책들이 많다는 건 늘즐겁고 흥분되는 일이니까요. 그 시간은, 저에게는 마치 하루하루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는 것과 같이 느껴지거든요.
지금도 서점에 가서 이리저리 거닐다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가곤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몇 시간을 서서 책을봤는데 그다지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책을 둘러보는 것은 매일의 날씨를 대하는 것과 같다. 멋진 말씀인데요. 대충 봐선 밋밋하고 새로울 것도 없는 듯하지만, 세심하게 집중해 보면 굉장히 멋진 것들이 숨겨져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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