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비판 교육은 비판적 사유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 삼기 때문에 학생에 대한 평가 방식도 우리와는 상이합니다. 우리처럼 사지선다 오지선다 하는 선다형 문제는 전혀 없고, 단수한 지식을 묻은 ‘단답형‘ 문제도 거의 없습니다. 이런 식의 평가방식 자체가 반교육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선다형 문제는 모르고도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이라기보다는 사기‘에가깝다고 봅니다. 단순한 지식을 묻는 것은 위험하다고 여깁니다. 그것은 주입식 교육에 상응하는 평가 방식이고, 주입식 교육은 파시스트 교육의 전형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지배적인 지식은 지배하는 자의 지식‘이라고 보기때문에 지식 그 자체보다는 특정 지식이 지배적인 지식이 된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독일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러니까 글자를깨우치기 시작할 무렵부터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교육을 받습니다. 국어 교과서를 예로 들었지만 정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지요. 문학작품을 쓴 작가가 어떤 시대에,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의도로 그런 작품을 썼는지 텍스트를 둘러싼 ‘콘텍스트‘ 즉 맥락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이에 대해 자신의비판적 견해를 표명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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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교육의 중점은 ‘적응에 있는 법입니다. 기존의 질서와 규범을 익혀육의 중점은 ‘적응에 있는 번이으하도록 하는 것, 보통 사회화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교육의 목표이지요. 그러나 독일 교육에서는 ‘적응‘보다 ‘비판‘을더 중시합니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기르는 것.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 이것이 독일의 비판교육입니다. 정말 놀라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청소년들이 굉장히 비판 의식이 강합니다.
선생님은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마라.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배후를 의심해라.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성숙한 민주시민이 된다"라고 가르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저는 독일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제1장의 제목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올바른 해석은 존재하는가(Gibt es eine richtige Interpretation)?‘ 문학 텍스트를 읽을 때 우선 옳은 해석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이미 해석학의 대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문학이라는 다의성의 세계에 초대장을 건네는 것이지요.
「님의 침묵」에서 님이 연인인지, 조국인지 고르라는 우리의 해석 폭력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문학작품의 해석을 마치 작가의 의도를 찾는 보물찾기로 생각하는 우리 교육과는 아주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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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오늘날 성공적인 과거청산을 이룬 나라로 인정받게것은 무엇보다도 브란트 정부 시기부터 시작된 교육개혁 덕분입니다 70년대 독일의 교육은 그야말로 과거청산 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Adorno)라는 사상가가 이를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Erziehunonach Auschwitz)‘이라는 말로 정식화했습니다. 독일 교육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으로서 ‘더 이상 아우슈비츠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표를 가진 교육이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바로이 목표 아래 독일의 교육개혁은 진행되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으로서 독일 교육의 독특한 성격을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비판 교육(Kritische Pidagogik)‘입니다. 정말 특이한 교육이지요. 세계에서 비판 교육을 교육의 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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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위‘라는 것은 본래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를 뜻하는 영어 데몬스트레이션(demonstration)‘이라는 말 자체가 자신을 드러낸다는 뜻인데, 자신을 감추는 시위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실 시위의 부정, 즉 반시위입니다. 이러한 반시위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 내면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두려움입니다.
한국인들은 정치의 광장에서는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 자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는 공개적으로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정치의 민주화는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일상의 민주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얘깁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 - 이러한 심성을 내면화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독재의 야만으로 추락할 수 있다. 이것이광장의 촛불이 내 마음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타올라야 하는 이유다.

전쟁이 끝난 후 독일에 들어온 연합군은 나치 체제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고민에 빠집니다. 과연 기업 영역에선 어떻게 나치즘을 청산해야 할까? 이들이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나치가 기업 전체를 완전히 장악해서 삽시간에 전쟁 기업으로 전환시킬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권력이 너무나 약했기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치즘과 같은 재앙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에서 노동자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결국 나치즘의 역사가노사공동결정제의 탄생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게 된 셈입니다. 이렇게 역사는 때론 참으로 역설적인 행보를 보입니다.
노사공동결정제는 1961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모든 기업에 이 제도가 적용된 것은 아닙니다. 몬탄(Montan)이라고 불리는 석탄과 철강 관련 기업들이 먼저 노사공동결정제를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사회에 노동자가 50퍼센트를 차지하면서, 오히려 회사가 더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노사간에 서로 갈등도 없고 협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생산성도 높아진 것이지요....

여기서 정말 놀라운 것볼프강 미슈니크(Wolfgang Mischnick)는 1976년에결정제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인물입니다. 여기서 정말 놀라운 것은 미슈니크가 자유민주당(FDP)의 원내 대표였다는 사실입니다.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는 일은 통상 사회민주당이라든가 노동당 같은 정당에서 떠맡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유민주당은 가장 강력하게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고 기업가의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인데, 그런 정당의 원내 대표가 이 법안을대표 발의한 것입니다. 이 자체가 너무도 놀라운 사건입니다.
저는 미슈니크가 당시에 법안을 발의하면서 한 연설을 보고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울컥했습니다. "우리 시민들은 국가 시민(Staatsburger)으로서는 의회와 정부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주권을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경제 시민(Wirtschaftsbürger)으로서는 노예로 산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유민주당의 원내 대표가 이렇게 노동자의 ‘존엄성을 역설했고, 그에 이어 표결에 들어갔습니다. 389 대 22. 압도적인 다수로 법안은 통과되었습니다. 이렇게 세계 최초로 노동자가 이사회의 50퍼센트를 차지하도록 보장하는 법안이 독일 연방의회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사실 많은 교수들이 저항도 했습니다. 그러나 68세대의 대다수 젊은 교수들은 이제야말로 대학도 새로운 문화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다니던 브레멘 대학에서도 교수와 학생은 서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또한 많은 교수들이 "나는여러분과 함께 연구하는 사람으로서(ich als Mitstudierender)"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는데, 저는 교수들이 스스로 학생과 동격으로 자신을 낮추는 모습에, 혹은 학생들을 자신과 동격의 연구자로 대우하는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교수들이 자신을 학생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진리의 독점자가 아니라 학생과같이 연구하는 학문의 동료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문화 민주화에 대한 하나의 사례입니다. 사실 충격적인 일이지요. 거창한 존칭과 수식어를 걷어내고 이름만을 부르는 순간 사람들의 관계에는 엄청난 변화가 시작됩니다. 문화라는 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 민주화란 바로 이 관계들의 민주적 변화를 뜻하는 것이지요. 남성과 여성,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이런 관계들이 수평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68혁명을 통해서 이런 문화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우리에게는 아직도 요원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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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Franco Bifo Berardi)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짚었습니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가 그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꼭 지옥의 구성 목록처럼 느껴져 섬뜩합니다.

"독일은 우리에게 ‘요술 거울(Zerrspiegel)‘입니다."
아마도 그런 거울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거울은 거울인데그 앞에 서면 내 모습이 마구 일그러지는 거울 말입니다. 독일은우리에게 그런 ‘요술 거울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요술 거울은 제대로 된 모습을 일그러뜨려서 비추지만, 이 거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비춰줄 뿐인데 일그러져 보이는 거지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거울이라는 의미입니다. 누구에게나 자기가 사는사회는 일상이 영위되는 공간, 존재가 귀속되어 있는 세계이기때문에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우리 사회를 냉정한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매우어렵습니다. 하지만 독일이라는 거울 앞에 우리를 세워놓고 보면, 거리를 두고 우리의 새로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의 일상, 우리의 삶의 방식이 뭔가 비정상적이고
부조리하고 이상한 모습 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를 낯설게 대면하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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