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양승권 지음 / 페이퍼로드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체는 노동에 대한 찬사를 자기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에 몰두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이나 불만을 완화하기 위한 마취제라고 말했다. 기계적인 계획에 따른구속이 서서히 신체에 퍼져나가 각 부분을 마음대로 지배하고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구속은 습관이라는 무의식적인 동작을 통해 암암리에 그 작용을 계속한다. 그 결과 인간은스스로 순종적인 존재가 되어 조직의 그물코 속에 자기를 걸어둔다. 기계적인 활동, 규칙에 대한 생각 없는 복종, 그리고 시간의 분할을 통한 효율성의 극대화는 개인을 개별화하고 기계적인 신체처럼 움직이도록 하여 조직에 더욱 순응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간다.
노동은 부지런함과 성실함이라는 외투를 뒤집어 써 신성함을 가장한다. 그리고 이렇게 신성해진 노동 앞에서 현대인들은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아까워하며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조소에한다. 그러나 정작 ‘진정한 자기의 발견을 위한 시간은 내지는다. 니체는 사람들이 노동에 쓸 에너지를 정신의 성숙과 독립을 위해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같은 조직의 그물코‘ 안에서
자기 주도적인 사유는 진행되기 어렵고, 동일한 규격제품에 대한 동일한 욕망을 재생산 하는 좀비만 늘어날 뿐이다.

"고생해서 열심히 재물을 모으지만 다 쓰고 죽는 자는 없다.
그렇다면 굳이 고생해가며 재물을 모을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노력하는데, 그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 직위가 무슨 소용이있는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에게는 근심과 걱정이 따라다닌다.
오래 살면 살수록 근심과 걱정은 많아지는데, 장수하게 된다면그 고통을 어찌 감당하려는가?"
「지락」

장자가 말한 유희의 경지는 자신을 억압하는 잘못된 현실 을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것은 현실도피가 아니다. 고통이라는 걸림돌을 다른 방향의 디딤돌로 만든 것이다. 이런 유희의 경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지침을 준다. 원하지 않는 어떤 것이 있을 때 이것을 내면으로부터 몰아내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밀어내면 낼수록 다른 원하지 않는 것들이 나에게 몰려올 수 있다. 왜냐하면 고통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 자체가 고통을 생각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마치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잠이 더 안 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때는 벗어나려는 생각 대신 다른 성격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유희를 중시한다는 것은 절대 자유와조화의 세계를 자기 내면에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의 고통을 가라앉게 하면서 자기 내면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니체

모든 것은 가고 또 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돌고돈다. 모든 것은 죽고 또 다시 피어난다. 존재의 세월은 영원히흐른다. 모든 것은 꺾이며 다시 이어간다. 영원히 똑같은존재의 집이 세워진다. 모든 것은 헤어지며 모든 것은 다시만나 인사한다. 모든 순간에 존재는 시작된다. 모든 여기‘를중심으로 ‘저기‘라는 공이 회전한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영원이라는 오솔길은 굽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莊子
천지의 사시四時에는 소멸과 생장이 있고 만물에는 가득 참과텅 빔이 있으며, 밤과 낮은 서로 교대한다. 생명은 형체가 없는작용에서 싹터 나오고 죽음은 이 형체가 없는 작용으로 다시돌아간다. 처음과 끝은 마치 둥근 고리와도 같이 서로 영원히되풀이 되어 그 끝을 알 수 없다.
「전자방」

니체에 의하면,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생겨나고 또한첫거된다. 장자에게도 처음과 끝은 마치 둥근 고리와도영원히간이 순환하고, 만물의 변화는 예로부터 영원히 진행한다. 여기에서 존재는 매순간 다시 시작되며, 복귀의 목적도 복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닌 ‘매순간‘ 의 창조에 있다.
겨울이 긴 북유럽이나 북미 지역에는 아이스 호텔이라는관광 사업이 있다. 해마다 겨울이면 조각가들이 여행자들을 위해 강가의 얼음으로 호텔을 만든다. 봄이 되면 이 호텔은 물이되어 본래 있던 곳인 강으로 되돌아가지만 다시 이듬해가 되면새로운 아이스 호텔이 세워진다. 매년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다른 ‘힘에의 의지‘에 의해 매번 다른 모양의 아이스 호텔이 만들어지고, 이 호텔은 봄과 함께 모두 자신의 근원지인 강으로 다시 흘러간다. 영어에서는 ‘끝‘을 의미하는 ‘End’와 ‘그리고‘라는 의미를 지닌 ‘And‘의 발음이 같다. 똑같은 소리값을 지니지만, 하나는 끝을 의미하고, 다른 것은 계속을 의미한다. 우주에ind‘이란 없다. 계속 이어지는 ‘그리고 And‘의 연속이다. 우주에서 만물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바뀔 뿐이다.

옛날의 진인眞人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아도 무너지는 일이 없고,
모자라는 듯하나 남에게서 무엇을 받는 일이 없고, 한가로이홀로 서 있지만 고집스럽지 않았다. 환한 웃음 기쁜 듯하고,
일은 어쩔 수 없을 때만 한다. 덕이 가득 차서 얼굴빛이밝게 빛나고, 한가로이 그 덕에 머문다. 넓어서 큰 듯하고,
초연하였으니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는다. 줄곧 입 다물기좋아하는 것 같고, 멍하니 할 말을 잊은 듯했다.
「대종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재 사회에서 ‘근본적인‘ 위기는 인간 ‘마음의 위기다.
물론 엄밀히 따져보면 예나 지금이나 ‘마음의 위기가 없었던적은 없다. 하지만 현재 사회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마음의 위기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바뀌어 가는 사회 환경의 변화와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물질만능주의는 우리를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뒤처지지 않는 것, 또 이를 위해서 나의 ‘스펙‘을 끊임없이 쌓아나가는것밖에는 없다. 우리는 대체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프롤로그나 좋다고 평가하는 것을 쫓으면서 살아간다. 다시 말해 ‘진정 한 자기가 실종된 삶을 산다.
니체와 장자가 우리에게 베풀어 준 중요한 가르침은 이런것이었다. 우선 니체와 장자는 남의 호흡에 끌려 다니지 말고 자기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남의 평판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곧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에리히 프롬E. Fromm 은 이런 말을 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같이 있을 수 있는사람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함께 있을 가치가있는 사람이다. 애인과 헤어지면 당연히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너무 많이 사랑했어"라고 되된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많이 사랑해서 괴로운 것이라기보다는, 많이 의지했었기에 괴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니체와 장자는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 의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우리를 아주 불편하게 한다. 니체와 장자의 관점에 의하면, 반성이나 성찰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반성이나 성찰은 잘못 살았다는 증거다. 반성이나 성찰 대신 좋은 음식을 먹고 충분한 잠을 취하고 나면 새롭게 일을 도모할 힘을 얻는다. 반성이나 성찰보다 이게 훨씬 낫다. 니체와 장자는 반복해서 이 순간에 ‘충실’할 것을 설파한다. 하나하나의 시간이 시작이며 또한 끝이라고 생각하라.
얼마나 오래 만나느냐 하는 것보다 하나하나의 시간을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에 듣는 음악 등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는 나 자신이 있다. 기쁨의 싹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아주조금, 관점을 바꾸는 순간 나의 삶은 많은 것이 긍정적으로 변한다.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우리는 남이나 외부 상황 에 휘둘려 살아가는 태도로부터 탈피해, 자기 삶의 주도권을쥐고 원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자기가 하는 일을 삶의 가운데에 놓고 다른 모든 일은 그것을 위한 방향으로 다시 세팅해 야만 한다. 중앙아시아의 위구르족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의 나라에서 왕이 되지 말아라. 자신의 나라에서 자신이어라." 또 2019년 2월 19일에 유명을 달리한 전설적인 패션 디 자이너 칼 라거펠트 Karl Lagerield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살라. 그것이야말로궁극적인 럭셔리다."

Nietzsche
결코 후회하지 말라. 후회는 한 가지 어리석음에 또 다른어리석음을 더하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만약 후회할만한 나쁜 일을 저질렀다면 앞으로는 좋은 일을 하겠노라다짐하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장자의 아포리즘에서 대붕과 작은 새는 각각 자신들의 입장에서 삶을 전망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자신이 속한 틀의 한계 내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 단지 자신이 대상과관계 맺고 있는 물리적 거리나 심리적 거리에 따라 이것과 저것을 구분할 뿐이다. 관찰은 그 관찰자가 위치한 좌표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모든 인식이란 인식하는 자의 위치에 따라 내려지는 제약된 해석일 수밖에 없다. 대붕을 비웃는 작은 새는 자신의 입장에서 삶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자기의 생의 조건에 걸맞게 살아야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장자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적한다. 동시에 이 양방향의 입장이 모두 의미가있다고 보는 가치의 확장성을 강조한다. 장자는 어떤 필요를 충족시키는 유일한 최선의 길을 제시하려고 하진 않았다. 필요를충족시키는 길은 다수이며 그 어느 것도 최선의 길일 수 없다.

니체 또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나의 길이다. 너희들의 길은 어디 있는가? 나는 내게길을 묻는 자들에게 이렇게 대꾸해왔다. 왜냐하면, 모두가 가야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몸이 불편한 ‘지리소支離疏‘가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역설적 발언은 사회적 안전망이 망가져 어디에서도 최소한의 평안함을 보장받을 수 없는 엄혹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다. 동시에 몸이 불편해 권력의 입장에서는 별 쓸모가 없는 지리소가 그 덕에 오히려 자유로웠다고 말함으로써 권력의 잔인성을 폭로하기도 한다 사실 인간에게 나타나는 불완전함이란 상대적이다. 이를테면 축구장에 곱게 깔린 잔디밭에서는 옥수수가 잡초 취급을 받겠지만, 일반 텃밭에서는 필수 작물일 뿐이다.
생명 그 자체나 자연 사물에 나쁜 원칙이란 존재하지 않는제1장 삶과 죽음다. 마찬가지로 자연 사물로서의 인간에게도 나쁜 원칙이란 없다. 어떤 형태를 지니는 이미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한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을 치료하려는 사람은 비뚤어진 마음을 똑바른 마음이 되도록 고치는 것이 아닌, 비뚤어진 마음을 당사자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고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자연의 눈으로 보면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 자기 존재 의의를 지닌다. 원활한 소통이란 자신이 비뚤어져 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수용할 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현재 간직하고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타자와의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니체는 ‘반응하지 않기‘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 계획안을 말하기도 했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 습관적으로 자신의 시선을 고요함, 인내,
내면 성찰에 집중하는 것, 개별 사례를 검토하는 방법과 각사례의 모든 측면을 파악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정신을중시하는 삶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박하고 고립시키는 본능을 통제하는 것."
(우상의 황혼)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니체에 따르면,
"밝아지고자 한다면 오랫동안 구름으로 머물러야 한다"(『유고(1883)』). 행동의 과잉이라는 경거망동으로 자신의 값어치를 갉아먹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사회엔 그처럼 누군가를 깊이 좋아하는 마음, 그러한 감정적인 몰입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무의식적인 감성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맞닥뜨린 감각적인 쾌락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대신 그보다 더 중대하고 본질적인 이 세계의 현실 논리에충실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하죠. 이런 사회적인 압력은, 우리에게 훗날 진정한 너 자신이 되기 위하여 지금 나를 사로잡은 욕구를 억누를 것을, 주위의 유혹거리에 한 눈을 팔지 말것을 강요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감성은 내 자아가 추구해야 할미래의 어떤 바람직하고 완성된 모델을 제시해 두고, 지금 나의감각적인 선호를 하찮은 것이자 떨쳐내야 할 어떤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이 암묵적인 공감대는 ‘지금 네가 즐기고 있는 것은 한낱 가벼운 오락거리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이 사회의 집단 무의식입니다.

아이돌이든 아이돌이 아니든, 세상이 간편하게 단정해 둔 저마다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자리에서, 사회의 편견들과 규정들에 짓눌린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순간 그 두꺼운 벽을 깨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저 어딘가에서 우리를 구원할 참된 이데아,
완벽한 무언가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의 눈으로 깊이 성찰하는 일을 통해서, 그리고 나와 함께 이 세계를 이뤄가는 타인의 얼굴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그들의 소중함을깨달아 가면서 말이죠.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좋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모든 생명은 평생 자신을 아끼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 꾸물꾸물 길을 걸어갑니다. 결코 자신의 아픔에 지지 않으면서, 이 고통 많은 세상에서도 내 곁에 있는 이들과 같이 깔깔대면서 말이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내뿜는
‘아모르 파티‘로 가득한 곳입니다. 저마다 다양하게 못생기고,
흉도 많고, 상처투성이의 존재이지만, 그래도 자기 운명을 기어이 긍정하며 삶을 꿋꿋이 살아나가는 생명들이 내뿜는…….

도겐(道元) 선사는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불성(佛性)의 체현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꽃을 좋아하고 잡초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는 또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해도 꽃은 지고
사랑하지 않더라도 잡초는 자란다고,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하겠느냐가 문제 아닌가요? 할 수 있을까를 말하고 있다간 우린 아무것도 못하고 말아요. 캘리포니아에도 못 가고, 아무것도 못해요. 하지만 하겠다 마음먹으면 할 수 있어요. 우린 한다면 하는 거예요."
-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혜원출판사)

요컨대, 기도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인간적 운명과 인간성에 대한 관조입니다. 멀리 있는 타인의 아픔을 듣고, 상상하고공감하는 일입니다. 멀리 있는 타인의 아픔의 깊이를 가늠하고,
그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지를 인식하는 일입니다. 불교의 초기 경전인 법구경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인기척없는 빈집에 들어가 / 마음을 가라앉히고 / 바른 진리를 관찰하는 수행자는 / 인간을 초월한 기쁨을 누린다." 아마 우리 영혼을묵상하는 일은 이렇게 빈집에 들어가서 이 세상을 조용히 바라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 작가 게오르그 뷔히너는 희곡 『당통의 죽음」에서, 어느비참한 이의 입을 빌려 "인생을 가장 잘 즐기는 사람이 가장 잘기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엔 『단순한 기쁨』을 쓴 피에르 신부의 말을 덧붙여야 할 겁니다. 그는 이 세상에 오직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며, 타인을 향한 사랑과 공감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모르는 건 인생의
비극이라 했죠.... 타인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들과 진정으로 교감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기도라는 것입니다.

엑소는 〈Power>를 통해 "같이 한 목소리로 노래할 때,
나를 볼 때, 서로 같은 마음이 느껴질 때 우린 더 강해질 수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존 스타인벡은 『생쥐와 인간에서 "곁에 가까운 이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 같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건 중요치 않다. 그저 같이 있어주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사람들을 만나가는 일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Power)의노랫말처럼 "아름다웠던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우리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린 그저 우리와 운명의 짐을 나눠진 한 사람이 그 ‘힘‘과 ‘열쇠‘를 찾는 일을 도울 수있을 뿐입니다.
같이 한 목소리로 노래하면서, 우리가 저 큰 영혼의 일부분임 을 확인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책을 펼쳐 들면 순식간에 나만 남습니다. 사람으로 가득 찬 한낮의 카페 한가운데 좌석에서는, 시계 초침 소리만이 공간을 울리는 한밤의 방 한구석에 홀로 기대 앉아서든, 모두 그렇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경험이지만, 그 고독은 감미롭습니다.
게다가 책을 읽을 때 그 고독은 사실 다른 고독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자 한 자 책을 쓰는 저자의 고독과한 줄 한 줄 책을 읽는 독자의 고독 사이. 그 책을 읽는 나의고독과 그 책을 읽는 너의 고독 사이. 물론 우리는 서로에게결국 남입니다. 그러나 홀로 된 채 책을 읽고 쓰는 타인들이느슨하게 서로 연결될 때, 그 끈은 세상의 다른 범주들과 달리 억압하지 않습니다. 그 작은 평화 속에 위엄이 있고 위안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연대를 꿈꿉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문성을 이야기하고 그 중요성도 높아집니다. 전문성이란 깊이를 갖추는 것이겠죠. 그런데 깊이의전제는 넓이입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아요. 넓이의 전제가 깊이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깊이가 전문성이라면 넓이는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적인 영역에서 교양을 갖추지 않는다면 전문성도 가질 수 없죠. 사람들은 대체로 깊어지라고만 이야기하는데, 깊이를 갖추기 위한 넓이를 너무 등한시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국경과 시간적 제약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현대에는 넓이에 주목하는 게 더욱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넓이를 갖추는 데 굉장히적합한 활동이 바로 독서입니다.

문학은 오랜 세월 말에 쌓여 있는 수많은 먼지 같은 것을 털어서 그 말의 고유한 의미나 다른 의미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 자체이면서 표현 방식이기도 한 언어를 가장 예민하게 다루는 문학을 대체할수 있는 건 없다고 봐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딸이 중학생이던 시절에 학교에서 가훈을 붓글씨로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고 해요. 우리 집 가훈이 뭐냐고 묻는딸에게 박찬욱 감독이 아님 말고‘라고 했다죠. 정말 명쾌하고 좋은 말 아닌가요? 아님 말고‘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정말 인생이 행복할 수 있어요. 내가 이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님 말고‘라는 태도만 갖게 되면 다른 사람앞에서 당당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삶에서는 절박한상황 때문에 아님 말고‘를 외치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지 깃발을 꽂으려고 산에 오르지 마세요. 맑고 신선한공기를 마시며 경치를 즐기세요. 세상이 당신을 보게 하려고 산에 오르지 말고, 당신이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산에 오르세요.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은 우리가 특별하지않다는 걸 느낄 때 찾아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성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다른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데서 오는 행복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과 성취감은 내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라는 데서오곤 합니다. 그 우월감과 독자성을 위해 우리는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하지요. 그러나 머튼은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은 우리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게 인간 존재에 속해 있다는 바로 그 진리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특별하지 않음‘에서 오는행복감은 일상에서의 위안과 기쁨만이 아니라 내면적 존재에 닿은 매우 깊은 차원의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기에, 다함이 없고 헛되지 않습니다. 머튼은 이러한 영적 체험을 한 것이 깊은 밤, 고절한 수도원 성당에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가득 찬 거리 한복판을 걷는 매우 일상적인 상황에서였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전해줍니다.

루이빌 상가 중심에 있는 4번가와 월넛가의 한 모퉁이에서 나는 감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거리를 오가는 이사람들을 모두 사랑하며 그들은 나의 것이고 나는 그들이것이며, 비록 서로 낯선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서로 이질적인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던 것이다.
머튼의 이러한 체험을 적어놓은 묵상은 그가 1956년부터1965년까지 영적 묵상과 수도원에서의 체험, 문화비평 등을적은 메모들을 편집해 출간한 『토머스 머튼의 단상』에 실려있습니다. 이 책은 머튼의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성찰을 담고 있는 책 중 하나지요. 머튼은 그날 자신이 체험한 근본적깨달음을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다르다는 착각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에 너무도 안심하고기쁜 나머지 하마터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나의 행복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과 같고 다른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것에 감사드립니다."

러스킨은 ‘세상의 셈법‘이 아닌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 나오는 ‘하느님의 셈법‘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점점 더 비인간화되고 인간성은 파괴되리라는 것을 예언자적 직관으로보았습니다. 하느님의 셈법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쓸모없다고 내쳐진 사람의 곤란과 무너진 존엄에 대한 속 깊은 배려와 관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셈법은 사람을 소모품이자 이윤을 내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여타의 경제학‘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