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삶의 모습과 우리 자신을 보여 준다. 그리고 시는 우리 안의 불을 일깨운다. 자신이 마른 지푸라기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럴수록 불이 더 잘 붙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시는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는 세상에 대해서는 처음 사랑을 느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자신이든 세상이든 본질적으로 불완전할지라도,시인은 성공과 실패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묻는다. 사실 그것이 전부 아닌가. ‘나‘에 진실하기가왜 그렇게도 어려운 걸까? 그토록 단순한 일인데 말이다.

날개를 주웠다. 내 날개였다.
시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에게 묻는다. ‘마음챙김의삶을 살고 있는가, 마음놓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한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
네가 그것들을 떠나보낸다 해도
그것들은 원을 그리며,
너에게 돌아온다.
그것들은 너 자신의 일부가 된다.

앨런 긴즈버그 (어떤 것들)

꽃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돌 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라이너 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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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결과물을 사랑하게 된다. 결과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면서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때 보너스처럼 따라오는 것은 자기중심적 편향이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은 나만큼 내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어쩌면 내 작품의 팬은 나 혼자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결과물을 사랑하게 된다. 결과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면서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때 보너스처럼 따라오는 것은 자기중심적 편향이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은 나만큼 내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어쩌면내 작품의 팬은 나 혼자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까 핵심은 이것이다. 좋은 관계란 거래가 아니고거래 비슷한 것도 아니다. 좋은 관계란 거래의 대척점에서거래와는 정반대로 작동한다. 관계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장기적 관점에 근거한다. 연인, 상사나 동료, 아파트 등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단기적 관계에는 굳이 에너지를 쏟으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계에는 더 많은 사랑, 신뢰,에너지와 시간을 쏟고자 하는 동기가 생긴다. 이런 투자 개념이 바로 성혼 서약의 밑바탕이 되며, 직장에서는 애사심과 충성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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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 삶의 이정표를 찾기 위해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성경의 일부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어떤 본문은 독자들에게 자극을 주고 어떤 경우에는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지난 2년간 일부 독자들로부터 해석하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성경 본문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본문들은 주로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거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 비판적인 철학자쿠르트 플라슈(Kurt Flasch)가 말한 것처럼 일부 그리스도교인이 어려운 성경 내용을 멀리하거나 무시한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의 내용을 제가 아는 신학에 짜 맞추고 싶지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 본문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 최선을다하고 싶습니다. 저의 수호성인인 켄터베리의 안셀모 성인은
‘믿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신학이라고 생각했기에, "믿음은이해를 추구하는 것"(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가 읽는 성경 내용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해는 항상 주관적인 단계를 거칩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 성경이 말하는 모든 악은, 자기 자신을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데서 생깁니다. 카인은 형제 아벨을죽이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렇게악은 커져가고 하느님은 홍수로 모든 악인을 없앱니다.

첫째 근거는 나무 열매가 먹음직하다는 것입니다. 악은 유혹하고 길을 잃게 합니다. 금지된 열매는 특히 먹음직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제한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끼기위해 명령을 어기게 만드는 자극입니다.
둘째 근거는 나무 열매가 소담스럽다는 것입니다. 소담스럽다는 표현에는 보기 좋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악의미학입니다. 보기 좋다는 것은 성경에서 전적으로 하느님 창조의 결과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참 좋았다" (창세 1,31). 하지만 악의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눈을 혼란스럽게 하고 하느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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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유발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 메리엄-웹스터 온라인사전에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할 이유를 주는 행위 또는과정이며, 행동이나 일을 하려는 열망을 가진 상태라고 나와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에게 열정을 부여하는 힘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이다. 언뜻 보람도 없어 보이는 일을 꾸역꾸역 해내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매일 비슷해 보이는 업무를 반복하는 직장인들의 마음을,
항상 즐겁지만은 않은 인생이지만 매일 아침 일어나 다시하루를 시작하는 나와 당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는것이다. 이것은 직원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하고, 그들의 열의를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관리자들의 절실한필요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가 하는 일, 노력의 결과, 타인,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더 깊이 알고자 하는 노력에 관한 이야기다. 책의 궁극적인 목적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죽기전까지 우리가 진정으로 삶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다(간단한 해답이 있을 거란 기대만 하지 않으면 된다).

.... 돌무더기를 원위치로 되돌려 놓으라고 명령함으로써 교도관은 어빈과 재소자들이 더는 성취감을 느낄 수 없게 만들어버려 승리의 의미를 공허하게 만들었죠. 허무한 전쟁이란 곧 시시포스의 조건과 같습니다." 나는 덧붙였다. "시시포스가 바윗덩어리를매번 다른 언덕 위로 밀어 올려야 했다면 성취감이 들었을겁니다. 하지만 그는 올려놓는 순간 바로 반대쪽으로 굴러떨어질 바위를 반복적으로 밀어 올려야 하죠. 이 과정에 아무런 성취감도 없습니다."

반복되는 업무로 자신이 시시포스처럼 느껴질 때도 우리는 창의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다. 한번은 브로드웨이 배우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녀에게 똑같은 연극을 매일 밤,
몇 개월 아니 몇 년을 계속하는데 지겹지 않으냐고 물어보았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같은 레퍼토리의 강연을 반복하는 게 지겨워졌기 때문이었다. 눈이 맑고 커다랗던 그 배우는 현명하게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같은 연극에서 같은역할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하죠.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나는 뭔가 다르게 할 궁리를 해요. 손끝을 처리하는 미세한 동작, 들어가고 멈추는 타이밍, 대사에서 강조하는 단어나 어구, 캐릭터에 대한 접근 등을 조금씩 바꿔보죠. 일종의 실험이에요." 그녀는 또한, 이런 작은 변주에 관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꼼꼼히 기억해 둔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하다보니 공연이 더 재미있어졌다고,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나는 진실로 이 배우의 이야기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나도이제 그녀를 따라 하고 있다. 같은 내용의 강연을 반복해서할 때도 언제나 약간의 변주를 주려고 노력하고, 그렇게을 때 학생들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한다. 학생들을 관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과 더 소통하게 되고,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니 학생들도 나도 수업이 더 재미있어졌다. 강연의 질이 전보다 더 좋아진 것은 덤처럼 따라온 결과였다. 그러니 당신도 매일 반복해야 하는 일이 지겹고, 그지겨움까지도 지겹다면, 그래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권태롭다면, 이렇게 생각하라. 어차피 돌은 굴려야 한다. 그렇다면, 재미있게 굴리리 ..작은 생각의 변화가, 당신은 물론이고당신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다름을 가져다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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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동안 강의에서 핵가족 비판은 정말 많이 해왔는데, 이걸 이렇게 섬뜩한 방식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다니, 한편 봉감독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하더라고요. 앞에 나온 작품들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죠. 「괴물」, 「설국열차」, 「옥자)는 다 비정상적 가족이에요. 특히 엄마가 다 없어요. 그래서 외부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고, 그래서 또 출구가 있어요. 기생충은 반지하건 대저택이건 완전체 핵가족이죠. 엄마, 아빠, 아들 하나, 딸 하나. 완벽한 만큼 꽉 막혀 있어요. 외부로 통하는통로가 없어요. 왜냐? 그것만이 내 세상이니까요..

외부가 없으면 내부는공기가 희박해져요. 우리가 세상의 전부야,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윤리고 뭐고 아무것도 없죠. 우리 가족만 잘살면 돼. 잘 산다는 것도 방향은 딱 하나죠. 다 취직해서돈 벌고 그 돈으로 펑펑 쓰고 먹고 마시고…. 이게 다예요. 이런 걸 사랑이라고 거대한 착각을 하는 겁니다. 오마이 갓!

영화 중간에 보면, 큰 체육관에 수재민이 되어서 함께 누워 있을 때 아버지가 말하죠.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거기서는 다소 냉소와 절망이 담긴 말이지만 뉘앙스만 바꾸면 딱 맞는 말이에요. 계획을 더 이상 하지 않는거, 무계획의 삶을 살아 내는 거. 그래야 비로소 핵가족은 사방이 막힌 폐쇄회로에서 출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핵가족을 꽁꽁 묶어 놓는 게 바로 그 ‘우라질’ 계획이라는 거 아닙니까? 명문대를 가야 해, 공무원이 되어야 해, 대기업에 들어가야 해, 30평 이상의 아파트를 사야 해, 갭투자를 해야 해, 비트코인을 사야 해, 등등. 이놈의 계획만 내려놓으면 가족은 서로 멋진 커뮤니티가될 수 있어요.
엄마, 아빠, 아이가 친구가 되는 거죠. 친구는 친구를 부릅니다.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가 되잖아요? 잘감이 안 오나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혈연적 관계란 기본적으로 베이스캠프에 해당합니다. 베이스캠프가 뭐예요?
세상이라는 무대로 나아가게 해주는 뒷배경인 거죠. 해가 뜨면 나가서 활발하게 움직이다가 해가 지면 돌아와 휴식과 충전을 하는 곳. 그게 베이스캠프죠.

내일은 한 걸음 더 세상 속으로 갈 수 있을 테니. 그래야 삶이 재미지고 살아 있다고 느껴요. 그런데, 핵가족은 완전히 거꾸로 되어 버렸어요.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게 붙들어 매는 곳. 어디서 뭘 하든 늘 돌아가야 하는 귀「설국열차의 부녀, 옥자의 기이한 가족 등이 바로 그환처가 되고 말았어요. 니체 말대로 현대인은 뭔가를 손에 들고 집으로 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았죠. 이제 그걸 그만두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챙겨 주고 걱정한다면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오직 경제적 이익 말고 없잖아요? 그 결과 존재가 너무 무거워졌어요. 가족을 떠올리면 마음이 넉넉하고 편안하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고 답답하고 부담스럽죠. 사랑할수록 짐이 되는 관계, 그게 가족인 거죠. 그런 상황에선 서로에 대한 존중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일단 계획을 버려야 합니다. 계획이 없는, 무계획의 관계, 오직 생명 차원에서의 연대. 세상을 향해나가도록 힘차게 응원해 주는 관계, ‘살아 있음‘만으로충분한 관계. 그래야 합니다. 괴물의 비정상적 가족, 설국열차의 부녀, 옥자의 기이한 가족등이 바로 그런 거였어요.

바로 기생충의 키워드인 ‘계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위험하면 주저 없이, 가차 없이 온몸으로돌진해서 기어코 새로운 길을 내는 것. 제가 늘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가족은 생사확인이 젤 중요하다‘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생명과 생명으로서의 연대감. 멋지지 않나요? 그러면 저절로 자존감을 지키게 되고 세상에 나가서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그런 든든한 배경이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속이고 삥뜯고 짓밟고 하겠어요? 봉준호 감독은 ‘이제 그런 식의 대안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여전히 그 길밖엔없어요. 감독이 버린 카드라 해도 다시 주워서 재생시킬수밖에요.
이런 식으로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기생충의 비극은 계속될 겁니다. 집집마다 묵시록을 찍어야겠죠. 출구가 봉쇄된 채 정서적 집착과 경제적 이익만을 기준으로 하면 결국 서로 속고 속이고 미워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파국이 오기 전에 핵가족을 베이스캠프로 바꾸는 거 이건 정말 절실한 문제입니다. 디지털이온 세상을 연결하는 이런 시대에 핵가족의 쳇바퀴 안에서만 사는 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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