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 삶의 이정표를 찾기 위해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성경의 일부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어떤 본문은 독자들에게 자극을 주고 어떤 경우에는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지난 2년간 일부 독자들로부터 해석하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성경 본문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본문들은 주로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거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 비판적인 철학자쿠르트 플라슈(Kurt Flasch)가 말한 것처럼 일부 그리스도교인이 어려운 성경 내용을 멀리하거나 무시한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의 내용을 제가 아는 신학에 짜 맞추고 싶지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 본문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 최선을다하고 싶습니다. 저의 수호성인인 켄터베리의 안셀모 성인은 ‘믿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신학이라고 생각했기에, "믿음은이해를 추구하는 것"(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가 읽는 성경 내용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해는 항상 주관적인 단계를 거칩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 성경이 말하는 모든 악은, 자기 자신을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데서 생깁니다. 카인은 형제 아벨을죽이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렇게악은 커져가고 하느님은 홍수로 모든 악인을 없앱니다.
첫째 근거는 나무 열매가 먹음직하다는 것입니다. 악은 유혹하고 길을 잃게 합니다. 금지된 열매는 특히 먹음직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제한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끼기위해 명령을 어기게 만드는 자극입니다. 둘째 근거는 나무 열매가 소담스럽다는 것입니다. 소담스럽다는 표현에는 보기 좋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악의미학입니다. 보기 좋다는 것은 성경에서 전적으로 하느님 창조의 결과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참 좋았다" (창세 1,31). 하지만 악의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눈을 혼란스럽게 하고 하느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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