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어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었을 때 열정을 직업으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럼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고도 마음껏 영화를 찍거나 블로그에 집중할 수있을 것이다. 그 일에 생존이 달린 것이 아니므로 편안하게 거리를 두고서 일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도가능하다. 사실은 어떤 것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이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자유가 아닐까? 먼저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열정을 일로 삼을 것이 아니라 흥미를 느끼게나 하기 쉬운 일을 열정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열정은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접근 방식이다. 그렇게 된다면우리의 모토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가 아니라 ‘네가 하는 일을 좋아하라!‘가 될 것이다. 그럼 훨씬 마음의 부담이 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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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의 의견과 가치관, 생활방식이 옳은데남들이 뭘 몰라서 저러는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결단코 한 번도 없는가?
우리는 나와 다른 그룹, 나와 다른 생각과 입장, 성별, 연령, 계층, 종교,국적에 따라 끊임없이 경계를 긋고 니 편, 내 편을 나누려고 한다.
소비 행동은 신분의 상징이 되고, 직업은 정체성이 되었으며,
정치적 다름은 적개심이 되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우리‘와 ‘저들을 끊임없이 구분하는가. 무엇으로 1류와 3류를 규정하는가.

특히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이런독선에 취약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자. 우리도 때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 생각이 옳은데 왜 저 바보들은 이해를못 하는 걸까? 하지만 그런 식의 최종 결론은 대화의 문을 닫는다.
상대에게 ‘바보‘, ‘잘난척쟁이‘, ‘성차별주의자‘, ‘사회악‘, ‘기생충‘,’인종차별주의자‘ 같은 꼬리표를 붙여 파일에 착착 정리를 해버리면 상호 이해를 위한 대화는 애당초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모두가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이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이 곧 그의의견이나 행동을 이해하고 그의 관점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기때문이다.

언뜻 듣기엔 틀린 데가 하나도 없는 말이다. 즐거운데 돈까지벌 수 있다니, 왜 그런 것을 마다하겠는가? 당연히 찾아나서야 마땅하다. 하지만 왜 열정을 굳이 돈과 교환해야 하며 왜 굳이 의무로 만들어야 할까? 취미가 즐거운 것은 목적 없이 즐기기 때문이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삶의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내기에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면, 아니 조금이라도 좋아할수 있다면 삶도 훨씬 아름답고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외침은 위장되고 은폐된 엘리트주의이다. 항상 열정만 좇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부모가 대학 등록금과 집세와 용돈을 다 대주는 젊은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한 부모 가정이라면 절대 불가능할일이다. 열정을 바친 직업은 특권층에서 자기 최적화의 우아한 몸짓이 된다. 그들이 생각하는 직업은 돈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자아실현의 행위이다. 자아는 직업을 통해 마침내 정당화된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래픽 디자이너인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정체성을 직업과 결부하는 추세가 강하다. 집세를 내기 위해 하루 8시간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미국적 현상이 점차우리 사회 곳곳으로도 침투하고 있다.

우리가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우리가 개인적인 행복에만 집중한다면 어떻게 될까? 철학자 한병철의 대답은명확하다. 우리는 이미 자아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상업화하였고 정치적 유아 상태로 되돌아갔다. ‘성공한 삶‘과 현실 정치의 결합은 느슨해져버렸다. 상황을 바꾸기보다 변한 상황에 순응하라는 목소리가 더 높다. 그러나 최고의 인성 계발에 맞춰진 초점은 공동체의 참여를 제물로 삼는다. 사회 문제는 스스로를 챙기고 멋진 인생을 살아야 하는 개인의 문제로 변질된다. 가령 문화단체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하는 젊은 여성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인턴 자리 하나 얻으려고 그녀는 해외 연수를 다녀왔고 컴퓨터자격증을 땄다. 그뿐 아니다. 앞으로 이 인턴 경력을 바탕으로 더좋은 일자리를 구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은 자격증을 따야 한다. 그런 그녀에게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비슷한 처지의 인턴들과 모여 근로 조건을 논의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고민할 시간이 있을까? 10시간 중노동에 시달리고 퇴근하면 쓰러져 자기 바쁠 것이고, 기껏해야 요가나 몸에 좋다는 샐러드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것이다. 그렇기에 한병철은 말한다. 번아웃과 혁명은서로를 배제한다."

그렇다면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어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었을 때 열정을 직업으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럼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고도 마음껏 영화를 찍거나 블로그에 집중할 수있을 것이다. 그 일에 생존이 달린 것이 아니므로 편안하게 거리를 두고서 일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도가능하다. 사실은 어떤 것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이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자유가 아닐까? 먼저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열정을 일로 삼을 것이 아니라 흥미를 느끼거나 하기 쉬운 일을 열정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열정은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접근 방식이다. 그렇게 된다면우리의 모토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가 아니라 ‘네가 하는 일을 좋아하라!‘가 될 것이다. 그럼 훨씬 마음의 부담이 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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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은 우리에게 우리의 생활 방식, 판단 기준,
우리 선택의 바탕이 되는 가치들을 되돌아볼 것을 요구합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우리 어머니인 지구> -

욕망은 언제나 왜곡되게 자신을 표현하며, 그 왜곡을 낳는 것은억압된 충동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본능적인 충동이 모든 변화를 낳는다. 본질은 없고, 있는 것은 변화하는 본질이다. 아니 변화가 본질이다. 팽창하고 수축하는 우주가 바로 우주의 본질이듯이. 내 밖의 풍경은 내 충동의 굴절된 모습이며, 그런 의미에서 내안의 풍경이다. 밖의 풍경은 안의 풍경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안과밖은 하나이다.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만물을 낳는다는 말의 참뜻은 바로 그것이다.

촌스럽다는 것은 도시스러운 것의 반대가 아니라, 도시스러움조차 모두 감싸 안는 것이다.
촌스럽다는 것은 도시스러운 것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것이다. 어린 도시스러운 것‘이 ‘어른 촌스러운 것을 맨날 놀리고 울려도 촌스러운 것은 어른스러운 것이라, 그저 조용히 웃으며 간다. 어린 도시스러운 것까지 품에 안고, 쾌활 명랑하게, 천진난만하게,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연민하면서 그렇게 뚜벅뚜벅! 3촌스러움을 어른스러움과 연결시키고 어린 도시스러움까지 품으려는 마음은 차별과 냉대를 포용과 환대로 바꿔놓는다. 대도시를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불가능한 자세다.

논에서 놀아지는 것들, 흙이 해내는 그런 경이로운 변화들을 말로써 전달하고 교육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 생명들과 함께하지않고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일이지요. 책을 천 권 만 권 읽어도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누구에게든 살아생전 한 번이라도 농사를지어보시오‘ 하고 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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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잠언 시집
류시화 엮음 / 열림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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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진다는 것 - 헤르만 헤세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그 온갖 도덕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부처도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는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는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자연주의자의 충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라.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
집,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게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라.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에 땅을 느껴라.
농장일이나 산책,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여라.
근심 걱정을 떨치고 그날 그날을 살라.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누라.
혼자인 경우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무엇인가 주고,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를 도우라.
삶과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라.
할 수 있는 한 생활에서 웃음을 찾으라.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생명을 관찰하라.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에 애정을 가지라.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조화로운 삶을 실천한 유명한 자연주의자 부부)

빈배 - 장자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배와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이니까.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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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신앙 - 개정판
프랑수아 바리용 지음, 심민화 옮김 / 생활성서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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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늘 나라의 행복을 휴식, 잔치 등 우리가 이승에서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의 팽창이라고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하늘 나라의 행복은 하느님의 행복인데 말이다.
신화神化된다는 것, 곧 교리에서의 표현을 따르면 하늘 나라에가는 것은 어떤 산에 오르는 것도, 어떤 장소에 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랑이실 뿐이므로, 영원한 삶이란 오로지 사랑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자기 생각만 하지 아니하고, 자기만들여다보지 아니하고, 자기 안에 웅크리지 아니하고, 남을 자기에 앞서도록 하는 데 있다. 이것이 하늘 나라의 행복이다.

작은 결정들과 큰 결정들 사이에는 갖가지 음계가 있지만,
인생에서 결정이 아닌 것, 자유로운 행동이 아닌 것, 선택이아닌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결정들이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좀 더 정확히 말해 한 결정 한결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삶을 만들어 간다. 어째서그럴까? 아주 간단히 말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 결정의 핵심에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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