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의 의견과 가치관, 생활방식이 옳은데남들이 뭘 몰라서 저러는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결단코 한 번도 없는가? 우리는 나와 다른 그룹, 나와 다른 생각과 입장, 성별, 연령, 계층, 종교,국적에 따라 끊임없이 경계를 긋고 니 편, 내 편을 나누려고 한다. 소비 행동은 신분의 상징이 되고, 직업은 정체성이 되었으며, 정치적 다름은 적개심이 되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우리‘와 ‘저들을 끊임없이 구분하는가. 무엇으로 1류와 3류를 규정하는가.
특히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이런독선에 취약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자. 우리도 때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 생각이 옳은데 왜 저 바보들은 이해를못 하는 걸까? 하지만 그런 식의 최종 결론은 대화의 문을 닫는다. 상대에게 ‘바보‘, ‘잘난척쟁이‘, ‘성차별주의자‘, ‘사회악‘, ‘기생충‘,’인종차별주의자‘ 같은 꼬리표를 붙여 파일에 착착 정리를 해버리면 상호 이해를 위한 대화는 애당초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모두가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이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이 곧 그의의견이나 행동을 이해하고 그의 관점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기때문이다.
언뜻 듣기엔 틀린 데가 하나도 없는 말이다. 즐거운데 돈까지벌 수 있다니, 왜 그런 것을 마다하겠는가? 당연히 찾아나서야 마땅하다. 하지만 왜 열정을 굳이 돈과 교환해야 하며 왜 굳이 의무로 만들어야 할까? 취미가 즐거운 것은 목적 없이 즐기기 때문이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삶의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내기에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면, 아니 조금이라도 좋아할수 있다면 삶도 훨씬 아름답고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외침은 위장되고 은폐된 엘리트주의이다. 항상 열정만 좇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부모가 대학 등록금과 집세와 용돈을 다 대주는 젊은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한 부모 가정이라면 절대 불가능할일이다. 열정을 바친 직업은 특권층에서 자기 최적화의 우아한 몸짓이 된다. 그들이 생각하는 직업은 돈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자아실현의 행위이다. 자아는 직업을 통해 마침내 정당화된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래픽 디자이너인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정체성을 직업과 결부하는 추세가 강하다. 집세를 내기 위해 하루 8시간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미국적 현상이 점차우리 사회 곳곳으로도 침투하고 있다.
우리가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우리가 개인적인 행복에만 집중한다면 어떻게 될까? 철학자 한병철의 대답은명확하다. 우리는 이미 자아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상업화하였고 정치적 유아 상태로 되돌아갔다. ‘성공한 삶‘과 현실 정치의 결합은 느슨해져버렸다. 상황을 바꾸기보다 변한 상황에 순응하라는 목소리가 더 높다. 그러나 최고의 인성 계발에 맞춰진 초점은 공동체의 참여를 제물로 삼는다. 사회 문제는 스스로를 챙기고 멋진 인생을 살아야 하는 개인의 문제로 변질된다. 가령 문화단체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하는 젊은 여성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인턴 자리 하나 얻으려고 그녀는 해외 연수를 다녀왔고 컴퓨터자격증을 땄다. 그뿐 아니다. 앞으로 이 인턴 경력을 바탕으로 더좋은 일자리를 구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은 자격증을 따야 한다. 그런 그녀에게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비슷한 처지의 인턴들과 모여 근로 조건을 논의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고민할 시간이 있을까? 10시간 중노동에 시달리고 퇴근하면 쓰러져 자기 바쁠 것이고, 기껏해야 요가나 몸에 좋다는 샐러드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것이다. 그렇기에 한병철은 말한다. 번아웃과 혁명은서로를 배제한다."
그렇다면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어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었을 때 열정을 직업으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럼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고도 마음껏 영화를 찍거나 블로그에 집중할 수있을 것이다. 그 일에 생존이 달린 것이 아니므로 편안하게 거리를 두고서 일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도가능하다. 사실은 어떤 것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이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자유가 아닐까? 먼저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열정을 일로 삼을 것이 아니라 흥미를 느끼거나 하기 쉬운 일을 열정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열정은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접근 방식이다. 그렇게 된다면우리의 모토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가 아니라 ‘네가 하는 일을 좋아하라!‘가 될 것이다. 그럼 훨씬 마음의 부담이 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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