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가 물어야 할 "왜?"는 "왜 혼자 지내는가?"가 아니라 그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으로 바뀐다. 왜 혼자지내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늘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생활의 속도와 리듬에서 사치스러운 안도감 같은걸 느꼈다.

내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사회적 기술은 근육과도 같아서 위축될 수 있고, 내가 경험한 바로도 육체적 건강을유지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지극히 간단한 사회적 행동마저도 누구를 만나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외식을 한다거나 엄청나고 무섭고 피곤한 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프랑스까지 헤엄쳐서 가려고 시도하는 것 못지않게 버거운 일로 느껴진다. 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즐길 때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익하다. 적절한 균형을 지키지 못하면, 삶이 약간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서로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진 적은 한 번도없었다. 서로의 감정적 동향을 시야에서 완전히 놓쳐본 적도 없었다. 사실은 이것도 우리가 추는 춤의 일부다. 거리를 유지하되 상대가 필요할 때 응답하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하고 서로를 잇는 끈을아예 놓아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동시에 위기를 겪은 적이 거의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은 이 노력이 가장 잘 드러난 측면이다. 누군가 우리 둘의 삶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둘의 성공과 실패를 표시한 두 선이 번갈아 오르내리는 걸 보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지음, 이영란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경제관은 고장 났다고 하기보다는 구각이라고 지적하는 게 더 맞다. 이전에는 몰라서 알 수 없던 것을 어쩔 수 없이 계산에 넣지 못하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제는 알 수 있고 계산할 수 있는 것인데도 안 하는 식이다.

이것이 환경 문제의 핵심이다. 경제 활동의 외부 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어떤 일이 유발하는 환경오염과 그것을 회복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 말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화석 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음에도 원자력 에너지가 값싸다는 이유로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것을 들 수 있다. 훗날 원자력 발전소를 닫는 데 들어가는 최소 수십 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 방사능 유출과 그로 인한 땅과 바다의 오염, 오염 때문에 발생하는 치명적인 질병과 막대한 치료비는 우리가 말하는 ‘경제’ 안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제국주의 시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건너가면서 퍼뜨린 천연두와 홍역으로 원주민들이 죽음을 당했다. 천연두와 홍역에 관한 면역력이 없던 원주민들은 낯선 균의 침투로, 유럽인들의 직접적인 학살 이전에 이미 모살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다. 극지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기후위기로 인하여 노출되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건너갔을 때와 같은 충돌이 생길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우리가 원주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V 독서 프로그램이 황금 시간대에 편성되며, 1년 내내 이런저런 책 관련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책을 선물하는 전통이 있어서, 그 시즌마다신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욜라보카플로드jolabodkand‘라고 부른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책 홍수‘라는 뜻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어떤 책을 선물할지를놓고 뜨거운 토론을 벌인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판타지 소설처럼 들린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몸이 건강해져 자존감이 높아지고 노력의 중요성을 깨달은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덩치가 될 수도 있을 테고, 독서와 인성의 관계도 그 정도 아닐까. 앞서 말한 것처럼나는 읽고 쓰는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일관성을 더 추구하며,
그래서 보다 공적이고 반성적인 인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웃을 경멸하는 오만하고 재수 없는 인간이 될 수도있을 것이다(내가 그렇다).
그렇다면 왜 읽는가? 왜 쓰는가? 개인적인 답변은 허탈할정도로 간단한데, 그러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 자는가‘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다. 수면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깨어 있으면 졸려서 버틸 수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경건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경건하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 훌륭하네, 에우튀프론, (…) 우리가 아까 이야기했던 걸 되짚어보지. 신을 기쁘게 하는 물건이나 사람은 경건하고 신에게 미움받는 물건이나 사람은 불경하다고 했지.
그렇다면 경건함과 불경함은 같은 것이 아니고 서로 반대되는 개념일 테지. 그렇지 않은가? (…) 그런데 또 우리는 신들이 종종 다른 신들과 불화를 겪거나 그들 사이에 다툼이 생겨 언쟁한다고 이야기했지 않은가? (…) 그렇다면 같은 것이신에게 미움받기도 하고 사랑받기도 할 것이오. (…) 에우튀프론! 이에 따르면 같은 것이 경건하기도 하고 불경하기도할 것이오.
플라톤, 에우튀프론》

"이게 진짜가 아니란 걸 알아요.
입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내 두뇌에 맛있다는 신호를 보내주죠. 내가 9년 만에 뭘 깨달았는지 알아요? 모르는 게 약이다. 난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아무것도."
영화 매트릭스>(1999)를 본 분이라면 아마 이 대사를 기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오랜 기간 함께 투
쟁해온 동료들을 배신하고 매트릭스‘로 돌아가려는 인물 사이퍼가 한 말이죠.

이런 목표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보며 사이퍼의 행동이 나쁘다고 손가락질했다 해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사이퍼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나 역시 그와 똑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당신은 만약 동굴 속 사람들이 된다면 혹은 <매트릭스>의인물이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가요? 어렵고 불편하기만한 현실로 나아갈 건가요, 아니면 달콤하기만 한 환상을 좇을건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장소가 관광지가 됨으로써 그 장소가 보존되는 경우도 있지만, 관광객들이 의도치 않게 활성화하는 산업으로 인해 현지 문화가 망가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문화라는 것은 개선되고 변화하게 마련인데, 관광객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런 맥락에서 관광지의 궁극적 형태는 버지니아의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 또는 티론 카운티 오마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민속촌이다.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가 이런 데서 어느 정도까지 되살려졌는지는잘 알 수 없지만, 현재가 패배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관광시설들은 전통이 본래의 목적과 분리된 뒤에도 계속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예컨대 세계시장을위해서 짜는 아란 스웨터는 아란 주민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나가는 가족을 위해서 짜는 아란 스웨터와는 다르잖은가. 겉모양은 똑같지만, 전자는 시장경제의 한 부분이고 후자는 생계경제의 한 부분이다. 생계용이라는 것과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진정성이라는 미학적 가치가 된 것이다. 관광산업이 현지의 문화와 역사를 관광객의 입맛에 맞도록 각색해서 공연하는 연극이라면, 이미 거대하고 점점 더 거대해지는 관광산업은 전 세계를 일련의 연극 무대로 바꾸어놓을 위험이 있다. 관광객의 손은미다스의 손과 정반대라서, 관광객이 찾아다니는 것은 진정성과 이질성이지만, 관광객의 손이 닿은 것은 진정성을 잃고 동질화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