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관심이라는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항체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삶이 곧 선물이고, 우리는 자신을낌없이 바침으로써, 즉 자신을 지키려고 안달하지 않고 스스로를 내던져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성장한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줍니다.

위험에 있을 때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그때 새로운 문이 열립니다.

나르시시즘은 우리를 거울 앞으로 데려가 자신을 보게하며,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게 합니다. 따라서 모든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이만들어낸 이미지와 깊은 사랑에 빠져 그 이미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 결과가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좋다면, 그것으로만 좋을 뿐입니다. 그 결과가 자신에게도 나쁘다면, 여러분은 나르시시즘의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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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는 안 될 것 같을 때마다 책을 읽는다. 엄청 자주 읽는다는 얘기다. 그러고 나면 나는 미세하게 새로워진다. 긴 산책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처럼, 현미경에 처음 눈을 댔을 때처럼.
낯선 나라의 결혼식을 구경했을 때처럼, 어제의 철새와 오늘의 철새가 어떻게 다르게 울며 지나갔는지 알아차릴 때처럼.
커다란 창피를 당했을 때처럼,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나는 사랑을 배우고 책을 읽으며 매일 조금씩 다시 태어난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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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레오파르디가 남긴 예리한 금언들이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온갖 것을 다 찾아낸다. 어른들은 온갖 것이 다 있는 데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 "날씨가 어떻든 어느 하늘 아래 있는 인간의 행복은 항상 다른 어딘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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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사뮈엘 베케트 Samuel Becketti는 삶이 무의미하고 부조리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삶은 하나의 커다란 ‘우주적 장난 CosmicGag‘ 이다. 우리는 이 장난에 웃다가 숨이 막히기도 한다.

사르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사물과 달라서 미리 정해진 본질‘이 없다. 예를 들어 재떨이는 담뱃재와 꽁초를 담는다는
‘존재의 이유가 있지만, 인간의 삶에는 객관적인 의미가 없다. 우리가 담뱃재와 꽁초를 들고 있다고 하면 그것 또한 우리의 선택이다. 바로 인간 재떨이가 된다는 선택. 인간에게는 선택지도 다양하다. 예컨대 우리는 히피가 될 수도 있고, 변호사가 될 수도 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선택을 하는 이유가 "실존이 본질에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삶의 의미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불가피한 책무다.

객관적인 지침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선택은 임의성을 띤다.
이건 웃긴 일이다. 솔직히 이거야말로 인간의 실존이 부조리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안타깝지만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의 수많은 사물처럼 인간 역시 미리 정해진 본질을 가진 객체"라는 생각도 부조리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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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의 존재가 한국에도 알려지던 즈음, 한 인터뷰에서그는 낮게 속삭이는 듯한 자신의 보컬 방식에 대해 (여러이유 중)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는답을 한 적이 있다. 노래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예지의 목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커지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성량껏 내지르는 것이 어색한 사람, 제 안에서 부유하다 가라앉은 것들을 자기 데시벨에 맞춰 정돈해 밖으로 꺼내놓는 사람의 말과 음악은 미덥다. 보다 정확히 듣고 전달하기 위해 목소리를 낮출 줄 아는 이들이 지닌 사려 깊은태도를, 조용한 위력을 알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예지를 두고 ‘힙‘하고 ‘쿨‘하다고 말한다. 힙과 쿨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살아온 내가 그 말의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어렵다. 다만 ‘힙’이 변화의최전선을, 고유한 독창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쿨‘은 자신이 그 선두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인지하지 않는 이들에게만 붙일 수 있는 수식 같다. 그러니 적어도 그날의 영상 속 무수히 ‘좋아요‘를 받은 댓글 ‘The coolestperson on the planet 의 의미는 잘 알 것 같다.

준비된자리에서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누가 나를 보고있는지에 대해 의식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어떤 상징이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흘러나오는, 과시하지 않는데도 자꾸 비집고 나오는 눈부신 재능을 가진 사람, 가진 재능의 총량을 훌쩍 뛰어넘으며 모두를 놀라게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임을.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더 나아가선 한국인 여성이라는이유로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습관에서 벗어나려 노력했고요.
대신 ‘나를 작게 만드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왜 그러는가 그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지난봄,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연대를 구하는 긴 글을 트위터에 올렸어요. ‘우리 모두는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해야 할 일이 있다. 하지만 침묵하는 것, 흑인들 스스로 그들의 입장을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듣고, 읽고, 배우며 변화를 위해 전념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할 일이다. 저는 이 문장이 특히 좋았어요.

물결로, 모양으로, 크기로 올 거예요. 가령 가족 안에서어떤 합의에 도달하는 것, 이로써 세대 간의 격차가 조금줄어드는 것 역시 변화이고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투표에 필요한 준비물을 안내하는 것 역시 변화예요. 책을 읽고 이전까지는 절대 갖지 않았을 의문을 품기도 하고, 새롭게 다시 배우거나, 틀리게 배운 것을 의식적으로지우려고 하는 것 역시 변화고요. 이런 작은 변화들이 더큰 변화를 이끈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변화를 지속시킬 열쇠라고 생각해요.

제가 꿈꾸는 세상은 사람들이 자연과 조화롭게 살면서 서로 감사를 표하고, 자신의 신념을실천하며 사는 거예요. 모두의 창의적인 표현이 제대로인정받고 격려받는 세상, 당신이 좋아하는 것과 필요로하는 것을 자본주의가 결정하지 않는 세상, 인내와 휴식이 있는 세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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